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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 생명의 경제학 - 개정판
존 러스킨 지음, 곽계일 옮김 / 아인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존 러스킨은 내가 경애하는 작가다. 예술평론가로서도 탁월하지만 후세에 남긴 그의 영향은 단연 사회사상가로서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소개된 내용을 본 이후 김석희 번역본을 두세 번 읽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어렴풋하게 다가왔지만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답답함을 느낀 채 방치하였다. 수년이 경과한 시점에 새로운 번역본으로 재차 도전해 본다.
이 책은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다. 그가 보기에 아담 스미스에서 비롯하여 리카도를 거쳐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집대성된 경제학-러스킨은 상업경제학이라고 부르는데-은 학문의 목적 자체를 잘못 지향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학문인데 인간이 아닌 사물과 로봇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단지 뼈 없는 인간을 가정한 체조학에 관심이 없듯이 영혼 없는 인간을 가정한 경제학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P.27)
전통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에서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중요성이 이어진다. 판매자는 최고의 가격에 재화를 판매하는 게 당연하고, 구매자는 최저의 가격에 재화를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다. 시장 구성원이 각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에 매진하는 와중에 발견하는 사실은 적정한 수준의 가격보다 높거나 낮을수록 일방에게는 커다란 이익이 된다는 점이다. 나의 이익이 상대방에게 어떤 결과를 헤아릴 필요 없이 가능한 가장 큰 이익을 구하는 게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오히려 권장되기조차 한다. 따라서 고용주와 고용인은 대립하는 상호 이해관계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전투적인 관계로 악화되기 마련인데, 러스킨은 이러한 관계를 거부한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최대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정의와 애정이다. (P.32)
작가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앞서 온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라고 말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먼저 와서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와 게을러서 늦게 온 노동자에게 똑같은 대우를 한다면 누가 성실하게 일하겠는가?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보편적 인식룰이다. 러스킨의 미덕은 여기서 시작한다.
싼 가격의 상품이 고품질의 상품을 구축하고, 저렴한 인건비의 노동력이 비싼 노동력을 대체하는 현상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소비자로서 한정된 예산으로 값싸게 지출하면 현명하며, 경영자로서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모든 게 인간과 무관하다면 말이다. 무한정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 노동자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입을 얻지 못한다. 인간이 배제된 ‘부’는 무슨 가치가 있는가? 이것이 러스킨의 질문이다.
‘부’의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다. (P.72)
러스킨은 부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인간을 죽어가게 하고, 사회를 타락시키는 부는 참다운 부가 아니다. 부는 인간과 사회를 살아가게 하고 생명이 약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부의 본질이므로.
‘가치 있다’는 말은 곧 ‘생명에 유용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진실로 가치 있고 유용한 것이란 바로 그 기능을 다해 인간을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란 뜻이다. (P.156)
“생명이 곧 부다” 이 생명은 사랑과 환희와 경외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다. (P.195)
이것이 러스킨의 경제학을 ‘생명의 경제학’이라 지칭하는 까닭이다. 인간과는 동떨어진 창백한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정의로운 부를 구현하기 위한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이 그의 관심사다. 나중에 온 노동자에게도 동일한 임금이 지불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노동자로서 품위 있게 살아가야 할 적정 수준의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기존 노동 계층의 삶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정당한 임금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노동에 대한 공평하고 정당한 보수는 그 일을 하기 원하는 노동자의 숫자에 전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P.119)
그러면 부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러스킨은 정의의 역할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의 편중을 막고, 인간이 정신적으로 부에 함몰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 그에게 부와 정의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러스킨은 국가와 개인에게 각각 요구한다. 국가는 단순히 노동자의 고용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명에 유용한 고용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다수의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가 부유한 국가라고 하면서. 개인도 마찬가지다. 최저 생존에 급급해하는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삶이 가능하도록 주장해야 한다.
그대여! 먹고 살 권리를 주장하되, 거룩하고 온전하고 순전한 삶을 살 권리를 보다 큰 목소리로 높여 주장하라. (P.201)
러스킨의 주장은 일견 사회주의와 유사하게 보인다. 전통경제학에 기반한 자본주의 비판에서는 맥락이 닿아 있지만, 사유재산권의 강화와 개인의 가치에 대한 중시에서는 결이 다르다. 영국 노동당의 정신적 지주가 그의 사상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다. 게다가 그는 수동적인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적극적 노력을 강조하며 구체적으로 그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예시하고 있다. 전혀 생소하지 않고 근년 들어 유행하는 공정무역의 기치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사상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당초 잡지에 연재하다가 갑작스레 중단된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게 이 책이다. 하나의 완결된 체계를 갖춘 저작이 아니기에 얼핏 산만해 보이지만 실은 고도로 함축적이고 예언적이다. 낯선 논의에 당황할 수 있지만 그의 문장과 주장에서 느끼는 따스함은 비할 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