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메 칸타빌레 신장판 2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권은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 치아키의 데뷔를 준비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음악제를 통해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노다메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음악제 멤버의 다수가 훗날 치아키와 오케스트라를 함께 한다는 측면에서 2권은 다음 단계를 위한 단초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음악적으로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5번이라는 마이너한 곡을 소개하고 있어 이채롭다. 한편 바르토크의 조곡이 정확히 무슨 곡인지 알 수 없었는데, 검색 결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슈트레제만은 자신이 창설한 S 오케스트라를 스스로 퇴단하고 오히려 타도를 선언한다. 인기남 치아키에 대한 시기와, 적당한 계기에 치아키에게 지휘자 기회를 부여하는 선의와 악의 사이를 묘하게 줄타기하는 슈트레제만이 흥미롭다.

 

치아키가 뛰어난 재능에도 절망하는 까닭은 일본을 떠나지 못하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비행기도 못 타고, 배도 탈 수 없는 그는 섬나라에 고립될 운명이어서다. 2권에서는 음악제를 가는 도중에 해수욕장에 끌려간 치아키의 쩔쩔매는 모습을 통해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치아키가 무너지는 대목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그의 트라우마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일본 고유의 색채가 농후하다. 성적 요소를 담고 있는 언어와 행동, 슈트레제만의 환락가 출입, 코타츠와 프리고로타 같은 일본 문화의 긍정화, 무엇보다 특유의 과장된 언어 구사와 지나친 의미부여 또는 신성화에 가까운 추앙 등이 그러하다. 때로는 살짝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도 있지만 이를 눈감아 줄 수 있는 건 치아키와 노다메의 환상의 쿵짝과 함께 그들의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다.

 

<소개곡>

베토벤 : 교향곡 제3E flat 장조 Op.55 ‘영웅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C단조 Op.18

 

<등장곡>

바르토크 : 피아노 조곡 Op.14

드보르작 : 교향곡 제5F장조 Op.76

쇼팽 : 즉흥곡 제4C#단조 Op.66 ‘환상 즉흥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다메 칸타빌레 신장판 1
니노미야 토모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다메 칸타빌레>의 열렬한 팬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극장판은 물론 국내판 드라마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언젠가 꼭 실물 만화책을 소장하고 싶었는데, 신장판이 나온 줄 미처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알게 돼서 전권을 일괄 구입하였다. 최신본다운 깔끔한 편집에 적당히 두툼한 분량에 신장판만의 특별 보너스까지 만족스럽다.

 

1권은 치아키와 노다메의 만남, 그리고 미네, 마스미같은 주요 배역과 부채 선생, 마지막으로 슈트레제만의 등장까지 향후 작품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들을 줄줄이 소개한다. 1권의 핵심은 치아키와 노다메가 협연하는 모차르트의 연탄곡이다. 부채 선생에게 반항한 덕분에 열등반으로 쫓겨난 치아키지만 그것은 차라리 운명이다. 여기서 노다메의 독보적 재능은 물론 이를 맞춰줄 수 있는 치아키의 실력과 함께 두 사람 모두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보여준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두 연주자의 독자적 개성과 유기적 호흡 사이를 오가면서 참으로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후에 치아키는 노다메 못지않은 미네와 예기치 못한 협연에서도 빛을 발하게 된다. 천방지축 날뛰는 미네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섬세하게 리드하는 치아키를 통해 미네 역시 진지하게 음악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원래부터 치아키를 은근히 연모하던 노다메는 협연 이후 치아키에게 완전히 빠져든다.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멋진 피아니스트, 치아키와의 만남을 통해 노다메는 음악과 사랑의 아름다움에 비로소 눈뜨게 된다. 구박받으면서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치아키에게 다가가고 그의 방에 근거지를 마련하는 노다메, 잔뜩 구박하지만 결국은 노다메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마는 치아키 두 청춘남녀의 아옹다옹을 보는 재미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다소 정적인 소재에 활기를 불어넣는 힘이다.

 

<소개곡>

모차르트 :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KV 448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제5F장조 Op.24 ‘

베토벤 : 교향곡 제7A장조 Op.92

 

<등장곡>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제8C단조 Op.13 ‘비창

쇼팽 : 야상곡 제2Eb단조 Op.9-2

베토벤 : 교향곡 제1C장조 Op.21

베토벤 : 교향곡 제9D단조 Op.125 ‘합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소학 - 교수용 지도서 한자한문교육총서 4
함현찬 지음 / 전통문화연구회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수년 전 한자 공부에 매진하였다. 덕택에 꽤 높은 급수의 자격증을 획득하였지만, 시력 약화를 대가로 지급하였다. 이후 방치하다시피 세월을 보내다 보니 요즘 현격한 실력 퇴보를 절감하고 있다. 한자도 까먹지 않고 한문 공부도 새롭게 할 겸으로 한문 고전을 조금씩이나마 다시 시작하련다.

 

새로운 책은 아니지만 우선 손에 잡힌 김에 우선 첫 번째로 <사자소학>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은 나름의 장점이 있으니 교수용 지도서라는 점이다. 기존의 <사자소학>은 한자 공부 목적에 치중하여 본문, 한자, 해석의 간단한 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은 본문, 해석, 한자 구성은 동일하되, 문장 구조, 주요 한자의 문법 해설, 출전과 쉼터라는 심화학습과 고사 소개 등이 추가되어 있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한문의 구조와 형식’, ‘허사(虛詞)의 용법을 추가하여 단순히 한자 학습을 넘어 한문 해석을 위한 도움을 주려고 함을 볼 수 있다.

 

父生我身, 母鞠吾身으로 시작하여 非我言耄, 惟聖之謨로 끝맺는 이 책은 조선 시대의 아동교육 도서다. <논어>, <예기> 등 유학 고전에서 인간과 사회의 기본 질서를 설명하고 수용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당대의 가치관으로서는 지극히 타당한 내용이겠지만 현대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전통적이고 유가 편향이 한계로 다가온다. 오늘날 여기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지키라고 요구했다가는 많은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조선 시대의 윤리 도덕이 이러하다고 하는 점을 이해하고 그것이 요즘의 것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비교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오늘날 독자는 이 책의 내용보다는 한자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리라. 등장하는 한자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수준이 아니고 반복되는 한자도 제법 많다. 따라서 한자 학습을 위해서는 꽤 좋은 교재라고 하겠다. 다만 지나치게 한자 자체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제목처럼 네 자 자구가 네 구절로 구성하여 나타내는 전체적 뜻을 음미하면 더욱 좋다. 단순한 한자 모음이 아니라 자체로 교훈적 목적을 위해 엄선한 문구들이다. 덧붙인다면 문장이 비교적 쉬우므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구조를 파악하는 연습도 유용하다.

 

<사자소학> 외에도 기초 한문 교재로 <추구>, <계몽편>, <동몽선습>, <격몽요결>, <천자문> 등을 거친 후 비로소 사서삼경으로 나아갔다고 하니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다면 이것도 제법 흥미로울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로선집 - 에드워드 2세 / 파리의 대학살 /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06
크리스토퍼 말로 지음, 강석주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록 작품>

1. 에드워드 2

2. 파리의 대학살

3.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

 

예전에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탬벌레인 대왕>, <몰타의 유대인>, <파우스투스 박사>을 강석주 번역으로,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을 임이연 번역으로 읽었다. 그의 나머지 작품은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근년 들어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영국 르네상스 시대 희곡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말로와 마주쳤다. 시간이 꽤 경과하였기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른 번역본을 골라 이전 작품을 재독하고 강석주 번역의 이 책을 비로소 펼친다.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

 

이 비극에서 유난히 잔상에 남는 장면은 아이네이아스가 디도와 카르타고를 떠난 후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대사와 행동이다. 디도는 자신이 연인에게 예고하였듯이 카르타고의 여왕으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든다. 디도의 죽음을 목격한 이아르바스, 이아르바스의 자살을 본 안나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모두가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사랑을 얻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이다.

 

(디도) 살아라, 못된 아이네이아스여! 진실된 디도는 죽는다. (P.327, 51)

 

과연 디도는 진실하다는 표현을 쓸 만하다. 그녀와 이아르바스는 곧 결혼할 사이였지만, 신들의 개입으로 그녀는 불가항력적으로 아이네이아스를 사랑하게 된다. 멸망한 트로이를 떠나 방랑하던 아이네이아스 처지에서도 아름다운 여왕, 재건의 토대가 될 카르타고는 매혹적인 정주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맹세하기조차 한다. 아이네이아스는 주피터의 명령을 따라 카르타고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디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디도) , 아니에요, 신들은 연인들의 사랑을 측정하지 않아요. / 아이네이아스를 불러내는 것은 아이네이아스 자신이에요. (P.319, 51)

 

제아무리 아이네이아스가 주피터를 핑계 삼지만 결국 이를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주체적 판단은 그에게 있음을 그녀는 명백히 짚어내고 있다. 고대와 중세에 신의 권위가 절대적이라면 르네상스 시기에 신의 권능은 의심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 확실한 토대가 있음에도 고대인 아이네이아스는 불확실한 신의 예언을 좇아 떠난다. 작가 말로는 이렇게 관객에게 되묻는다. 가니메데스와 희희낙락하는 주피터, 서로 유치하게 배척하는 비너스와 주노와 같은 신의 명령이 르네상스 당대의 독립적인 인간에게 과연 절대성을 지니는가를.

 

<파리의 대학살>

 

종교개혁에 따른 신교와 구교의 갈등은 종교를 떠나 역사적으로 많은 폐해를 끼쳤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헨리 8세의 수장령으로 일순간에 가톨릭을 배척하고 국교회 체제로 전환한 영국도 내부적으로 평화롭지 못하였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되새겨볼 때 종교로 인해 다툼과 살육이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그것이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음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말로는 이웃 나라 프랑스의 역사적 사례에서 그것을 잔혹하게 보여준다.

 

(대비 카트린느) (방백) 잔인한 피로 이 결혼식을 끝장내 주리라. (P.165, 1)

 

종교 간 분쟁을 봉합하기 위해 추진된 나바르 왕과 마가레트 왕비의 결혼. 그것이 평화로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음은 왕비의 어머니 카트린느 대비의 방백으로 초반부터 예고된다. 결혼식은 신교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구교인 카트린느 대비와 기즈 공작, 앙주 공작 일행이 꾸민 음모였음을.

 

카트린느 대비와 기즈 공작의 불륜, 두 사람의 엄청난 권력욕. 형 샤를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앙리 왕이 된 앙주 공작과 기즈 공작의 불화. 기즈 공작의 살해, 구교 수사에 의한 앙리 왕의 독살 등. 희곡 한 편으로 담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종교와 정치를 둘러싼 숨 가쁜 전개가 이어진다. 여기서 두드러진 대목은 시종일관 반복되는 죽이라는 대사다. 앙주, 뒤멘느, 공자고, 레트, 그리고 기즈는 불문곡직하고 신교도를 모두 죽이겠다고 신성한 십자가에 맹세한다. 죽음이 임박한 앙리 왕은 나바르에게 로마 교회를 파멸시킬 것을 맹세시키며, 부르봉 왕조를 개창하는 나바르 또한 엄숙하게 구교 섬멸을 선언한다.

 

(기즈) 난 정책적으로 종교를 만들어냈지. / 종교란 악마 같은 것이야! / , 부끄럽군, 아무리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 그토록 단순한 소리를 지닌 단어가 / 그렇게 중요한 문제의 동기가 된다고 생각하다니. (P.170, 2)

 

이 작품에서 종교는 부수적이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와 무기로 종교를 방편 삼고 있음을 기즈는 인정한다. 기즈는 왕위로 올라서기 위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극 중에서 진정한 권력욕의 화신은 카트린느 대비다. 그녀의 맹렬한 욕망 앞에서 모성애조차 힘을 빼앗길 정도다. 두 사람이 불륜 관계임이 흥미롭다. 권력의 끝판에는 누가 남아 있을까.

 

(대비 카트린느) 만약 그가 내 말을 거절한다면, / 그의 형처럼 즉시 그를 제거하고 / 무슈가 왕관을 차지하게 할 것이오. / ,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다 죽일 것이오. / 살아있는 한, 카트린느가 여왕이기 때문이오. (P.202, 14)

 

<에드워드 2>

 

셰익스피어의 영국 사극 독자라면 말로의 이 작품이 낯설지 않다. 말로의 에드워드 2세는 셰익스피어의 에드워드 3세의 부왕이다. 하지만 양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데, 에드워드 2세는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안고 죽임을 당한다.

 

서양 사회에서 동성애는 범죄 행위로 처벌받는 죄악이었다. 기독교적 가치관은 이를 금기시하였다.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이 동성애를 자행한다면 이는 당대 사회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하여 임금은 무치(無恥)라고 관용적 마음을 갖더라도 은밀한 사생활이라면 몰라도 버젓이 드러내놓고 표방한다면 용납받기 어려울 것이다.

 

말로는 에드워드 2세와 귀족계급 간 알력 원인을 단순화한다. 왕의 동성애, 그리고 개비스톤과 훗날 스펜서에 대한 왕의 무분별한 총애. 왕은 자기 총신인 개비스톤을 옆에 두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에게 엄청난 직위를 하사한다.

 

(에드워드) 짐은 이 자리에서 그대를 최고 시종장, / 국가와 짐을 보좌할 비서관, / 콘월 백작, 맨의 영주이자 왕으로 삼노라. (P.24, 11)

 

개비스톤 본인은 물론, 왕의 동생인 켄트 백작조차도 과분하다고 지적하지만 왕은 굽힘이 없다. 이 정도의 지위야말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왕으로서 줄 수 있는 선물로 여기며, 귀족들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도록 강요한다.

 

(에드워드) 그가 비록 태생이 천하다 할지라도 나의 총신이니 / 너희 중에 가장 거만한 자도 그에게 몸을 굽혀야 할 것이다.

(랭카스터) 전하, 저희를 이렇게 경멸하시면 안 됩니다. (P.34, 14)

 

귀족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랭카스터 백작, 숙부와 조카 모티머 등은 왕의 처사에 극력 반대하여 위력으로 왕을 굴복시킨다. 왕과 귀족의 잇따른 대립, 두 세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왕비 이사벨라. 말로는 에드워드 왕의 무분별한 언행과 정당하지 못한 정책을 통해 그가 왕으로서 자격 미달임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오죽하면 켄트 백작마저 형을 떠나 왕의 반대편으로 돌아서고 만다.

 

겉보기에 갈등의 원인은 왕의 동성애이고, 왕이 개비스톤과 스펜서에게 베푸는 과도한 특혜지만 조카 모티머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권력의 키를 누가 쥐고 있는가에 대한 다툼이다. 에드워드 왕은 자신이 왕이기에 만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랭카스터를 위시한 귀족들은 왕의 권력은 귀족들의 지지와 옹립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여차하면 왕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갈등은 끝내 전면적인 무력 충돌로 이어지고 귀족들의 몰락과 에드워드 왕의 승리로 귀결된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대륙에서 건너온 이사벨라 왕비와 조카 모티머의 개입으로 왕은 쫓겨나고 만다.

 

권력은 양립하지 못한다. 권력은 독선적이다. 권력을 빼앗긴 과거 권력자는 우선적 제거대상자가 되고, 그것을 요구한 게 이사벨라 왕비임이 아이러니하다. 왕에게 버림받은 왕비가 조카 모티머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고 비난한들 부질없다. 왕비는 아들을 왕좌에 올리려는 목적으로, 조카 모티머는 실질적 권력자가 되려는 의도로 영합하였기에 그들의 사랑의 순수성은 알 길이 없으니. 최소한 이사벨라는 그를 사랑했음을 마지막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카 모티머) 이제 모든 게 분명해. 왕비와 모티머가 왕국을 / 다스릴 것이다. 왕도 그 누구도 우릴 지배하지 못한다. / 내 적들은 괴롭히고, 친구들은 승진시킬 것이다. / 내가 명령을 내린 것을 누가 감히 제어할 것인가? / 난 너무도 강력하여 운명도 날 해칠 수 없다. (P.146, 54)

 

권력은 무자비하며 맹목적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은 모두 반대파를 서슴없이 제거한다. 에드워드 왕은 귀족들을, 이사벨라와 조카 모티머는 에드워드 왕을, 켄트 백작을. 그리고 권력은 항상 오만하다. 조카 모티머는 에드워드 왕의 전횡에 분노하였지만, 스스로 권력의 과실에 탐닉한다. 그의 득의양양한 대사를 보면 에드워드 왕과 차이가 없음에 놀라게 된다. 그것이 권력욕의 힘이다. 그의 몰락은 여기서 불가피하게 된다.

 

말로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적 흐름을 위해 부분적으로 연대를 뒤섞기도 하며 등장인물의 이름도 슬쩍 고친다. 개비스톤은 동일하지만, 극 중의 스펜서는 역사적으로 휴 데스펜서이다. 개비스톤은 단순한 총신이지만, 데스펜서는 간특한 총신으로 평가받는다. 에드워드 왕의 몰락은 사실 개비스톤이 아니라 데스펜서에서 비롯하였다.

 

옮긴이 해제에 따르면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은 그의 초기작이며, <에드워드 2><파리의 대학살>은 말기작이다. 특히 후자는 말로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후자는 당대 정치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에드워드 2>는 왕의 자격, 총신, 왕과 귀족의 관계 등을 다루면서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고 무제한이 아니며 왕좌가 전복될 수 있음을 알려주며, <파리의 대학살>은 종교의 가면을 뒤집어쓴 권력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보여주면서 종교 간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

 

말로의 작품세계는 치열하다. 셰익스피어라면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더라도 힘을 빼고 해학을 집어넣으며 말랑말랑하게 넘어갔을 텐데 말로는 오로지 정공법이다. 그의 작품을 평하면 으레 등장하는 극단적 상상력과 극한의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형은 이를 말해준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서 우리는 디도에게 더할 수 없는 연민을 품는 동시에 권력 헤게모니를 쟁취하려는 세력 간 분쟁의 파국이 어떻게 비인간적인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동시에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 야만과 지상낙원이라는 편견에 갇힌 열대의 진짜 모습을 만나다, 2024 세종도서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매년 점점 더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 나간다. 유명 관광지의 경우 한국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말도 들리는 걸 볼 때 불과 몇십 년 전 김찬삼 홀로 세계여행을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은 대부분 여행보다는 관광에 가깝다. 명소를 구경하고, 맛집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한 후 돌아와 이를 자랑하는 일련의 행위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돌아다니고 있는 타국 현지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해는 배제되어 있다.

 

저자는 지리학자의 관점에서 열대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관광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길 바라는 의도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해당 열대 지역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더위, 습도, 폭우, 벌레 등의 존재는 오로지 짜증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겉보기에 남다른 외모의 사람들이 무지와 폭력, 가난에 찌들어서 사는 삶은 동정과 때로는 멸시의 대상으로 비치겠지만, 그네들의 기후, 역사와 정치, 문화와 사회구조 등을 들여다볼 줄 알면 그네들의 삶의 모습과 우리의 것이 별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1부에서 저자는 지리학의 개념으로 열대우림 기후, 열대몬순 기후, 열대사바나 기후로 크게 구분되는 열대기후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열대 지역을 소개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리 수업을 떠올리면 된다.

 

2부는 본격적으로 열대기후가 특징적으로 발현되는 열대 지역을 세부적으로 파헤친다. 열대우림의 보르네오섬과 아마존을, 사바나 지역인 빅토리아호와 세렝게티 초원을, 킬리만자로 등으로 대표되는 열대 고산지대와, 카리브해 같은 바다 휴양지를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의 시각에서 찾아간다.

 

열대우림의 생물 다양성과 기후 보전을 위해서 중요한 곳이지만 인간 삶의 터전으로는 부적합한 환경임을, 그리고 인구 증가와 경제개발을 위해 보르네오와 아마존 지역이 계속하여 훼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질 정부의 아마존 개발에 전 세계적 환경 파괴의 비난이 있지만, 브라질인의 관점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들의 아마존 개발을 중단시킬 명분이 없다. 전 세계인의 쾌적한 삶을 위해 브라질인만 손해를 감수하라는 주장은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 개발 논쟁도, 대다수의 열대 지역을 휘감는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혼란도 결국은 열대 지역 주민들에게 내재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때, 그것은 근현대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의 강점이 남긴 깊은 상처의 결과임을 상기할 때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네들을 총괄적으로 표현하는 열대성의 개념을 저자도 이렇게 접근하기에 그네들에게 온화하고 동정적이며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

 

이른바 열대성이라는 개념은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진귀한 타자를 발견하여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발명하여 정형화되었다. (P.33)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여행가이드 책자의 성격을 지닌다. 아마존강 원류의 상이한 거대한 흐름이 합류하는 장엄함,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섬에서 볼 수 있는 열대우림의 맹렬함을 활자가 아니라 양 눈으로 생생하게 체험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와 생명의 호수에서 죽음의 호수로 오염되고 있는 빅토리아호, 동물 다큐 프로그램으로 친숙하게 된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이야기 등은 시간상, 비용상 가기 어려운 사람에게 흥미와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테마이기도 하다.

 

여행지의 자연과 문화는 서구의, 혹은 한국 사회의 관점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각각의 삶터에서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연과 문화의 체계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적응하며 행복한 삶을 향해 분투하고 있다. (P.237)

 

3부는 열대 지역에 대한 인문학적 안내다. 토인비와 카 같은 저명한 역사학자조차도 아프리카를 문명과 역사가 부재한 땅으로 평가하였다는 사실에서 뿌리 깊은 인종에 바탕을 둔 환경결정론을 알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내심도 마찬가지인 게 미국, 유럽 사람과 동남아시아, 흑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구 근대문명을 이룩하고 식민지를 경영한 국가를 모든 면에서 우월시 하다 보면 각 지역마다의 독자적 고유성은 평가절하하고 무시하기 마련이다.

 

열대 지역의 식민지 경험은 좋건 나쁘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문화 섞임 현상에 주목한다. 자의든 타의든 서로 다른 인종, 문화,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섞이게 되면 갈등과 불화가 우선 떠오르지만, 믈라카 사람들, 그리고 싱가포르의 사례를 통해 그것이 결코 필연적인 귀결이 아님을 알려준다.

 

믈라카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이 서로 얽힌 일상생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종교의 차이가 항상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며, 로컬의 일상생활 공간에서 얼마든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P.287)

 

저자가 설명하는 싱가포르의 열대성은 보타닉 가든,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보면 자연성보다 인공성에 가깝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반강제적으로 독립 당한 그들이 자연개발과 보전, 집단 간 평화 공존을 이룬 역사를 훑어보면 분명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대 체험을 한 유일한 조선시대 인물인 문순득과 정약전의 인연을 보면 천초(天初)’라는 호가 뜻밖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문순득의 신분이 상인이었기에 그의 체험이 더욱더 객관적이고 생생할 수 있었음이 차라리 다행이다.

 

처음 이 책의 표제를 봤을 때는 열대 지역을 지리학의 관점을 분석하게 해설하는 책으로 생각하였기에 여행가이드에 가까움을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다소간 실망감도 품었다. 점차 읽어나갈수록 대다수 독자에게는 오히려 적절한 지리학적 지식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익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듯이 관광객의 겉핥기 눈길로 열대 지역의 자연과 사람을 보는 태도를 벗을 수 있다면 우리네의 열대 여행은 더욱 뜻깊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