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알라딘에서 알려주는 독서 통계를 보았는데, 올해 산 책이 작년보다 2배가 넘는 양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처음으로 세 자리 수가 되었다). 통계를 쭉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세 가지였는데, '이래서 올해 내 삶이 피폐했나..'하는 생각과 '이래서 내 방이 요지경인가..'하는 생각, 그리고 '이 많은 책 중에 내가 읽은 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었다. 북플 독서통계는 지금까지 내가 산 책 중 읽은 것이 1/4이라고 말해준다.. 아무튼 이런 수치들을 보면서 알라딘에서 매겨주는 올해의 책 말고, 왜 올해 내가 산 책 이렇게 많았나를 생각하면서 결산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내가 매기는 올해의 책들은 당연히 올해 나온 책이 아닌 올해 내가 읽은 책이다. 원래는 내일이나 모레쯤 정리하려고 했으나, 내일과 모레 모두 나는 아침 일찍 상경해야 하고, 지금 읽고 있는 책 중 올해 안에 끝까지 다 읽을 가능성이 있는 책이 없어서 시간이 잠시 남은 지금 정리를 해 놓는다..
1. 올해의 문학
올해 읽은 소설 중에는 작년에 읽은 『스토너』처럼 깊이 몰입하는 감동을 준 작품도, 제발트처럼 ‘이건 뭘까..’라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충격적으로 신선한 작품도 없었다. 그렇다고 올해 읽은 소설이 다 평작이었던 것은 아니고, 역시 걸작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소설도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굉장하다고 느꼈던 『장미의 이름』을 올해의 문학에 올린다.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이는 소설이어서, 더 많이 보고자 『중세의 미학』을 샀지만 책장에 꽂혀 읽힐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 권을 더 뽑자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고를 수 있겠다. 읽으면서 정밀하게 짜여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보코프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 제대로 알고 썼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문득 끊임없이 회자되는 단어의 힘이 항상 긍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평소에도 시집을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고, 시를 읽는 속도도 다른 책보다 워낙 느려서 올해 완독한 시집은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뿐이다. 최근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 「그날」이 언급되었을 때 반가우면서도 쓸쓸한 마음이 교차했다. 「그날」도 좋아하는 시지만, 요즘 들어 「그날」만큼 자주 떠올리는 시는 「1959년」이다. 일부분만 인용하면 이렇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과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올해 산 시집 중 두 권을 더 올려본다. 아직 펼치지도 못했으나 올해 나와줘서 고마운 시집들이다. 특히 나는 최승자 시인의 『빈 배처럼 텅 비어』에 마음이 간다. 「외로움의 폭력」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내 감정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2. 올해의 비-문학
‘비문학’이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아서 분야별로 올해의 책을 고르고 싶었지만, 소설의 비중을 줄이고 다른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올해의 목표는 또다시 좌절되었다. 안타깝게도 전체를 통칭해서 한 권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내년에는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책으로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고른다. 프리모 레비의 책들이 항상 그렇지만, 특히 이 책은 읽는 내내 그 안으로 침잠하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 영화 <사울의 아들>에 대한 글을 적을 때도 언급했지만, 여전히 홀로코스트는 내가 사로잡혀 있는 주제 중 하나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지, 여전히 파시즘의 논리가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심지어 대놓고 드러내는 자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독일인들의 편지를 보면 우리도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작년 문학동네 계간지를 훑어보다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다루어지는 죄책감(guilt)와 수치심(shame)에 대한 논의를 조르조 아감벤이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에서 다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감벤의 책은 『호모 사케르』를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상태라 다른 책을 사는 것도 미뤄두고 있었는데, 내년부터 바로 아감벤 읽기를 시작하라는 신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쉽게 선정에선 밀렸지만,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 역시 많은 자극을 주었던 책이었다. 밑줄을 하도 많이 그어서 따로 타이핑도 해두었는데, 그 분량이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다 적으니 27쪽이 나왔다. 돋움체 9포인트), 책 역시 얇은 분량에 담긴 사상의 깊이가 나를 압도해서 정리하는 것은 미루어 둔 상태다. 아직 이해가 덜 되었다는 판단도 미룸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그의 진단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아수라와 같은 세계에서 놀아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두 눈을 똑바로 뜨는 것뿐이다.
3. 올해의 표지
원래 올리려던 책은 김엄지 작가의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였으나, 최근에 읽은 『서브텍스트 읽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책 크기도 들고 다니기 편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각 철자들이 실처럼 엮여 있는 모습이 텍스트의 어원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도 아주 어려운 편은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는 겉으로 보기엔 최근의 산뜻한 표지 디자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평범한 표지처럼 보이지만, 표지의 촉감이 특이해서 올해의 표지에 같이 올렸다. 궁금하신 분은 도서관에 가서 한 번 만져보시길..
4. 올해의 입문서
언제나 궁금한 것은 많은데 혼자 찾아가며 배우는 처지라, 이런저런 입문서들을 읽을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올해의 입문서로 골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 한국 사회에 강하게 몰아쳤던 화두가 페미니즘일 텐데, 올해 출간된 책들을 보면 실천적인 페미니즘 저서는 많이 나왔지만 이론적 페미니즘을 다룬 저서가 많이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실천력도 거의 밑바닥인 사회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붕괴를 불러온 수많은 원인 중 하나는 꼰대로 대변되는 경험 중심주의와 이론의 홀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천적 페미니즘의 열풍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했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모든 것이 하나의 일화로 편입되고 진정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페미니즘이 부딪쳐야 할(혹은 지금도 부딪치고 있는) 싸움에 필요한 것은 세밀한 이론의 칼이다. 이론 쪽에서도 정희진과 같은 국내 여성학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의 소개가 주디스 버틀러 하나로만 집약되는 것에도 나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을 비판한 마사 누스바움 등의 견해도 언급되는 과정이 있어야 이론이 더 정교화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론의 소개서뿐만 아니라 이론의 원전들, 이를테면 『빨래하는 페미니즘』에 나오는 여성학 저서들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그에 대한 논의도 생산적으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급진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이 계속 지속되는 것이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으나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도 올려놓는다. 굉장히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이지만 블랑쇼의 사상에 다가가는 것이 녹록치 않아서, 짧은 분량인데도 매우 천천히 읽고 있다(한 달 동안 읽고 있는 듯). 내년의 기대작 정도로 정리해야 할까? 어찌됐든 내년에 나는 블랑쇼와 어떻게든 마주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이 책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매력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5. 올해의 발견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몰랐던 올해의 발견은 이승우 작가의 소설들이다. 원래는 이름도 모르는 작가였지만, 몇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만만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장이 주는 단단한 힘이나 사유의 치열한 싸움은 오늘날 한국의 젊은 작가에게서 찾기 어려운 자질이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의 이면』을 최고로 꼽지만, 나는 지금까지 읽은 세 권의 장편 중 『에리직톤의 초상』이 제일 좋았다. 처음에 발표된 1부에서 끝났다면 나의 평가는 더 박했을 것이다. 그의 소설에 담긴 정신적 가치나 사상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어떤 식으로든 깔려있다. 『독』과 『지상의 노래』까지 읽어보고 싶었으나 역시 다른 책에 치였다. 내년엔 더 읽을 수 있겠지..
읽으면서 종종 ‘이 사람은 기독교적인 이청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 사람의 소설에 반한 데에 다 이유가 있었구나라고 느꼈다. 이청준 작가는 내가 지금껏 읽었던 한국문학 중 가장 존경하는 작가이므로. 그나마 많이 읽은 분야가 한국문학인데, 그 가운데 내가 항상 최고로 꼽는 장편은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과거의 내 독해를 수정하면서 읽었다. 네 번째 독서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에도 나는 세 번째 독해를 수정하게 될까.
북플 독서통계를 보고 대충 계산을 해보니 내가 올해 읽은 책은 5-60권 정도다(악스트를 포함한 수치여서 별로 신뢰할 수는 없다). 정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알아야 할 것은 많고, 탐구해야 할 주제도 많고, 시간은 모자란다. 내년에 이해타산적인 공부를 마치고 내가 원하는 무용성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1월이 되어봐야 알 수 있으므로, 내년에도 공부에 치여서 틈틈이 도둑질하듯 책을 읽을지, 아니면 좀더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칠흑의 시대에 필요한 건 더 넓고 깊은 이해이고, 이를 위해 내가 정한 첫 번째 목표는 최근에 구입한 서양철학사를 정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