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는 거리가 먼 나 같은 인간도 오늘 하루는 묘하게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면서 복잡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뭔가 이변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하루종일 쿵쿵 뛰었다. 생각외로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고 투표장의 분위기도 예전과 달리 젊어 보이는 등 징조는 많았다. 그래서였다. 가당치않은 기대를 품은 건.  

그리고, 오늘만큼은 대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동안의 어떤 선거보다 열성적으로 임한 투표였기 때문일까. 주변인들까지 챙기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기다리고 지켜보는데 어느 시점부터 머리가 마구 아프기 시작했다. 마구 흥분되는 다른 지역의 상황과는 달리 대전은 허탈할 정도로 뻔한 결과라서 맥이 탁 풀렸다. 바보소리를 들어도 멍청이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너무너무 구태의연한 선택들이다. 개도 안 물어갈 그 놈의 충청도 어쩌고 하는 소리들에 이젠 신물이 다 난다. 그들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시시때때로 단죄의 칼날을 갈았으면 좋겠다. 한 표의 권리뿐 아니라 한 표의 막중한 의무를 잊지 않기를. 이 밤 잠 못 드는 사람 많겠다. 기쁘고 행복해서 혹은 분하고 기막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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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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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고 말한다. 화이부동이란 타자와 차이를 같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조화를 이루려는 삶의 태도다. 공자가 이것을 군자의 법도로 제시한 이유는, 군자는 조화를 이루려는 자이고, 명령하여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반면 소인배는 무조건 같아지려 하는 자이다. 남이 차를 사면 나도 차를 사야 하고, 남이 여행을 하면 나도 여행을 해야 하고, 남이 자식 유학을 보내면 내 자식도 유학을 보내야 한다.-254쪽

가랑이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황새를 쫒고자 하는 뱁새 소인배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왜 나라고 못한단 말인가." 소인배들은 남들과 같아지려는 데 실패하면 그것을 곧 인생의 실패로 간주하며 불행해한다. 그들은 '난 너희와 달라'라고 말할 용기와 배포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삶을 그저 타인과 닮고자 하는 허망한 욕구로 허덕허덕 보낸다. 당연히 소인배들은 취향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은 모든 이와 모든 것에서 '같아야 한다.' 여기에 어떤 양보도, 관용도 끼어들 틈이 없다. 당연히 '조화는 깨어지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255쪽

당연히 내가 모두와 모든 것과 완전하게 같아져버린 동이의 상태에서 조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화를 위해서는 차이, 어긋남, 비켜섬, 불일치, 요컨대 다름이 필요한 것이다. 조화만일까. 사랑도 결국은 이 차이에서 시작되는 감정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와 다른 타인의 취향은 거북스럽고 짜증스럽기만한 난관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음색이 다른 악기와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세상은 독주의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이 무대다. 내 취향이 하나의 악기라면 타인의 취향은 다른 소리를 내는 또다른 악기다. 문제는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내 악기와 다른 악기가 어떻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255쪽

조선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친구 사이에 밀착이 아니라 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으로 천재적인 통찰이다. 이 틈이야말로 '어울려 다님'을 가능케 해주는 차이에 다름 아니다.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로 함께 사귀고자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작당이지 사귐이 아니다. 조폭들을 보라. 그들은 똑같은 두목, 똑같은 규율, 똑같은 질서 안에서 똑같은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친구가 만나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은 틈, 다름, 차이, 불일치들을 그대로 지키면서, 큰 그림 안에 엮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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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옻순을 삶는 일도 그 중의 하나다. 양은 냄비에 적당히 물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옻순을 넣는다. 그리고 휘휘 젓고 뒤집어주면서 옻순의 단단한 줄기가 역시 적당히 익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여타 나물들을 데치는 수준과는 다르게 물이 내내 끓는 동안에도 옻순의 형태는 달라지는 게 거의 없다. 참 단단한 녀석이다. 펄펄 끓는 물에서도 야무지게 더 짙은 초록으로 빛나면서 싱싱할 수 있다니. 난생 처음 옻순을 삶고 시큼한 초장을 듬뿍 찍어 먹어본 날. 의외의 오묘한, 단맛과 고소한 맛을 닮은 녀석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이제는 절대 너를 홀대하지 않으마.

 

나는 5월의 이맘 때가 좋다. 화창한 하늘도, 하나둘씩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들도, 꽃봉오릴 수줍게 벌리는 키 작은 꽃들도, 빨래줄에 널어 놓은 빨래까지도 어여뻐 보인다. 마치 눈에 콩깍지가 쓰인 것처럼 세상과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아마도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힘일 것이다. 대지가 숨을 쉬고 깨어나고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화단을 둘러본다. 딱히 씨를 뿌리거나 물을 주지 않아도 지난 해 피고 지며 떨어진 씨앗이 싹을 돋우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경이롭다. 화원에서 업어오는 크고 화려한 꽃이 주는 즐거움은 잠시 잠깐이다.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의 차이처럼 인공적인 미는 눈을 즐겁게 할뿐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감성을 자극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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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10-05-1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가운 여우님!^^
내집도 낯설수가 있구나 생각하는 중입니다.
천만다행히도 옻 안타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옻맛을 알았지만, 이게 어디냐 싶어요.


잉크냄새 2010-05-3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시 불밝혀진걸 오늘에야 보았네요.
음, 왜 빈집님의 새글이 서재브리핑에 안떴는지 모르겠네요.
건강하시죠? 자주 뵈어요.

겨울 2010-06-03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잘 지내시죠?
시간이 흘러 사람도 환경도 풍경도 바뀌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들이 있음을 확인하네요.
이곳에 들러 가만히 웃던 시절이 그리워요. 지금이라서 안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집 강아지는 여전히 호기심 천국. 화단 구석구석, 마당 구석구석 뒹굴며 구르며 뛰다 엎드려 뻗쳐를 한다.  

귀여운 건 아주 잠시 잠깐이었다. 보통의 강아지가 다 이런가 하다가 그럴리가 없음을 안다. 얘가 유난스러운 거다. 발에 밟힐 정도로 성가시게 졸졸 따라다니는 건 기본. 바지건 웃옷이건 물고 늘어지는 건 예사. 십만 년 만의 상봉도 그렇게 요란스럽지는 않겠다. 이상하고 이상한 녀석때문에 하여튼 고민이 많다. 붙들어 매놓자니 가엾고, 풀어놓자니 부담백배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연을 맺는다는 건 역시 어렵고도 어렵다는 걸 통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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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나의 글씨체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쓰느라고 그녀가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하였으며 또 얼마나 투쟁을 해야 했을지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그녀가 불쌍했다. 너무나 지연되고 실패한 그녀의 인생이 불쌍했고, 그녀 인생 전체의 지연과 실패가 가엾게 여겨졌다. 어느 누가 제때를 놓쳤을 경우, 어느 누가 무엇을 너무 오랫동안 거부했을 경우, 또 어느 누구에게 무엇이 너무나 오랫동안 거부되었을 경우, 그것이 나중에 가서 설사 힘차게 시작되고 또 환희에 찬 환영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것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늦은’이라는 것은 없고 ‘늦은’이라는 것만 있는 것인가. ‘늦은’ 것이 ‘결코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199~200쪽)  



한나는 내가 알아온 어떤 주인공들보다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명백하게 끔찍한 죄를 지었다. 그녀는 잘못을 시인하지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냐고.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대답할 수 없는 그 질문은 이 책을 읽고 있는 읽었을 모든 사람을 향한다.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 그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운이 좋아 살아남는 거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누가 그녀에게 쉰들러가 될 것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녀는 문맹이었다. 문맹 때문에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마져 버리고, 18년의 수형생활을 선택한다.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한다는 수치감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은 눈물겹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긴 수형생활을 마감하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려는 찰나 목을 매 죽은 선택에 대해서 왜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 긴 시간을 견뎌놓고 드디어 글을 읽고 쓸 줄도 알게 되었는데 어째서, 왜, 그녀는 죽어야 했느냐고?   

솔직히 충격이고 상상 밖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만큼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그에게 무엇을 바랜 것, 새로운 직장이나 집, 가구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더이상 소년이 아닌 그에게서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순수와 반짝임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터다. 그녀를 체념케 하고 절망케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자신은 놓치 않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 그를 대면하는 순간부터였다. 사람이, 사랑이 변하고 늙고 병들어 복구불능이 되어지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들이, 면역력을 상실한 한나에겐 치명적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그녀라서 그랬던 것일까. 진실은 한발자국씩 느리다. 한나가 기다려온 편지가 결코 오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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