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블루였다. 내가 원한 건 옐로우. 불쑥 짜증이 날 듯 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블루 두 개도 나쁘지 않은 조합이지 싶다. 붕 뜨지 않고 착 가라앉은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12월과 닮았다. 

들뜸과 기대가 차가운 하늘과 공기와 어우러져 점점 단단해져 간다.  겨울이 좋다. 12월이 좋다.

 

연락이 없던 지인에게 문득 소식을 넣었다가 항암 치료 중이라는 메세지를 받았을 때의 경황없음이란. 그녀의 선함과 맑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에 깃든 병 앞에서는 아무말도 할 수 없다. 건강해. 건강하지? 건강하기를.. 주문처럼 외우던 말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건강도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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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의 소설에는 '깊은 슬픔'이 가볍게 드리워져 있다. 그 안의 선택받지 못한, 실패자, 버려진, 상처투성이의여자, 남자, 사람에게 스스로의 어떤 부분을 투영시키며 공감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아, 뭐 이런 개떡같은 일이 다 있을까 싶지만, 사는 게 뭐 다 그런 거지 싶지만. 그럼에도 한숨이, 아주 깊은 한숨이 날 수밖에 없는. 그와 그녀와 요한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푹 빠져들어 읽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가 길고 긴 편지를 보내온다. 이해못할 것도 없지만 이해못할 이유로 사랑하므로 떠나야한, 지나치게 못생긴 여자의 입장이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부당한 놀림과 멸시,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그래서 그녀의 영혼에는 적나라한 상채기가 새겨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치유되었노라 고백한다.  그의 존재와 배려와 관심에 행복하고 또 행복했지만 믿을 수도 믿어서도 안된다고 역설하는 달의 뒷면처럼 어둡고 어두웠던 그녀.....

.......... 저는 언제나 '진행형'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였습니다. 끝없이 덧나고 영원히 이어질 그런 상처를 안고 사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흉터를 가진 여자일 뿐이에요.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차이인지 당신은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여자에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도 짐작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하자면 제게 당신은 그런 남자였습니다. (286p) 

바라는 모든 걸 얻는 것이 인생의 가치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겨우, 가까스로 얻은 것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인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포기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저 같은 여자에게... 인생의 가치는 그런 것입니다. (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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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샛노란 표지가 화사하게 핀 해바라기 같아서 오래도록 바라만 봤었다. 아니면, 불꽃이었을까. 그건 보통 보다는 특별에 가까운 감정. 내 손 가득한. 인간, 사람, 남자이거나 여자, 누구라도 마주칠 감정, 불안, 고독, 소소하지만 오래가는 상처에 대한 고백이자 기록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가수라는 걸 알고 놀랐고, 노래를 찾아봤다. 그는 꿈이 없어 절망했던 시절을 이렇게 들려준다. 청소년들이여,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마라, 그럼 관객이 되면 되니까, 그 뿐이다.   

만약, 사는 게 힘이 부친다면, 이런 책 어떤가요.  이런 위로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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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긴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오늘까지 마음이 먹먹하고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합니다. 오랜 세월 투병을 했기에 이제는 편히 쉬시라, 말하고도 싶지만 아쉽고도 아쉽습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지도 살갑게 손을 잡아 보지도 못했지만, 제가 기억하는 그녀는 참 큰 그릇이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와 같이 타인을 위로하고 배려하며 살갑게 챙기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사노라 바쁘다는 핑계로 살가운 인사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늦었지만, 물만두님 고맙습니다. 알라딘이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당신이 떠오르고 무심결에 당신의 흔적을 찾아 들를 것 같습니다. 그토록 애호하던 추리소설의 세계 역시 당신이 품었던 열정을 기억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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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0-12-1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들이 어떤 이유로든 하나둘 떠나가네요.

겨울 2010-12-1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잘 지내셨나요?
대개의 인연이 그러하지요. 슬프고 허망하고 쓸쓸한, 그러면서 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지고.
건강하세요.
 

 

우단동자, 자주 괭이밥, 송엽국, 패랭이, 꽃기린, 보라사랑초, 청사랑초, 제라늄에 노랑과 빨강의 카랑코에까지 6월의 정원은 그야말로 신천지다. 수련도 꽃봉오리를 만들었고 공작선인장도 요사스런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 중이다. 싹이 보이질 않아 애태우고 아침마다 화단 구석구석을 헤메게 했던 일일초도 여기저기서 초록빛 떡잎을 보여준다. 작년엔 따로 씨를 받질 않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느리게 성장 중이다. 천일홍의 번식력은 말이 필요없고, 설악초는 보이는 족족 뽑아내는 중이다. 설악초는 맘 놓고 키우기엔 공간도 부족하고 다른 녀석들에게 그늘을 지울까봐 두고 볼수가 없다. 패튜니아도 곧 꽃을 피울 것 같다. 문제는 메리골드, 달팽이의 역습으로 잎과 줄기가 사라지고 있다. 과꽃도 몇 포기만 남기고 뽑아줘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질 않다. 선택은 늘 어렵다. 남겨지는 것과 버려지는 것, 그 무작위의 선택이란 얼핏 잔인하기까지 하다. 아, 그리고 접시꽃도 있다.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고 꽃봉오리를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일들이 내 작은 정원에선 날마다 일어난다. 봉숭아꽃과 채송화, 쑥갓은 이리저리 치이고 부대끼면서도 살 궁리를 찾는다. 섬초롱꽃은 그늘진 곳이라 아직 활짝 꽃을 피우진 못하고 있다. 내일이나 모래쯤이면 조롱조롱 매달린 모습을 볼 것 같다. 해바라기도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해도 키울 수만 있다면 온갖 것들을 다 심고 싶은 이 죽일 놈의 호기심을 어쩌나.  

 그 중에서도 가장 위풍당당한 것은 이층집을 집어 삼킬 듯 거대해진 단감나무고, 두 번째는 단감나무와 곧 이마를 맞대고 영역다툼을 벌일 무화과 나무다. 그리고 제법 아담하게 자란 블루베리나무도 올해는 제법 실한 동글동글한 열매가 맺었다. 석류나무는 아직 작고 어려서 내년을 기약해야할 것 같고,  봄에 심은 매실과 살구나무는 이제 겨우 작은 이파리 몇 개로 살아있노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거기다 덩굴식물인 머루포도까지. 넌 언제나 클래.  

간절히 원해서 혹은 불가피하게 내 집, 내 정원에 들어와 살게 된 것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미치도록 사랑한다. 예전에는 몰랐던 알고싶지도 않았던 감정이 새록새록 솟구치는 기쁜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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