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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141쪽)
청춘, 이라고 읽고 쓰는 순간마저 살이 떨리는 듯, 그것은 온몸과 마음을 감전시킨다. 그 시절, 푸르른 한철에는 감당하기에도 벅차 헉헉 거리고, 도망치거나 숨거나 외면하거나 하나였다. 그런데 오묘하게도 이제 나이 마흔에 이르러 심장이 뛴다. 가슴을 망치로 치는 것처럼 아프거나 멍이 들지 않고 순수하게 설레고 즐겁다. 원래가 청춘은 지나온 후의 그리움으로 쓰여 지는 건가. 그래선 가.
'청춘의 문장들'을 새해 첫 날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다. 김연수는 젊고 잘생긴 작가다. 책 표지 안쪽의 남정네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책에 박히는 작가들의 사진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 이런저런 매체에서 만나는 사진이라면 모를까, 혹은 이미 죽은 이의 흑백사진이라면 모를까. 그랬는데, 날카로운 콧대가 두드러진 작가의 사진을 읽기 전과 읽는 중과 읽은 후에 아주 자세히 바라봤다. 이전에 김연수란 작가는 두 권의 소설로 기억한다. 옛날 옛적에 읽은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와 근자에 읽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앞에 건 10여년도 더 전에 읽어 기억은 안 나지만 재미와는 무관한 지루하고 골치 아픈 소설로 기억된다. 뒤에 건 한번으로 읽은 척하기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어야지 벼르고 있는 중이었다. 소설을 다시 읽을 요량으로 고이 보관하기는 그리 흔치 않다. 한사람의 작가를 소설 두 개로 얼마나 알 수 있나. 좀 더 어렸다면 적극적으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다녔겠지만 이제는 그것도 시들하다. 단지, 이렇게 우연으로 만나지기 전엔 깊게 관심 갖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폭삭 늙었다는 증거다.
사실 ‘청춘의 문장들’은 별 생각 없이 골랐다. 반드시나 기필코 와는 관계없이, 요즘은 소설 읽기가 겁이 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산문집이 진도도 나가고 딱딱하고 번잡한 정신을 유연케 하는지라. 소설이 읽히지 않는 건 부끄럽게도 게으름 탓인데, 나 게으르다고 인정하기는 싫은 거다. 두어 권짜리 장편소설을 완독하는 데는 열정과 몰입의 시간이 필수다. 안 만드는 건지 없는 건지 하여튼 모르겠지만 당분간 소설은 금할 테다.
작가의 성장기와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유려한 문체로 그려지는 이 책은 아주 멋지다. 사적으로 마음산책이란 출판사의 책들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디자인과 표지의 색도 흡족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구김이나 접혀지지 않게 다룰 정도다. 빳빳한 그린 톤의 속지도 맘에 든다. 염소처럼 종이를 먹을 수 있다면 야금야금 아껴서 먹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개의 작가들이 그렇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자세, 직업이 된 작가로서의 피나는 노력들에 두 손이 모아진다. 한때는 모든 작가들은 천재라고 믿었었다. 펜만 들면 술술 빈종이가 채워지는. 작가들의 소설만을 보면 착각할 수도 있다. 허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같은 창작론류 류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마법의 펜 따위는 없음을 알았다. 글쓰기는 피를 토하는 처절한 노동임을 안다. '청춘의 문장들'이란 책의 가치는 김연수의 사적인 일상과 추억과 기억의 보물창고이기도 하지만 그의 소설이 어떤 기초에서 쓰여졌는가를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쉽게 무심히 휘리릭 읽어치우고 집어던지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한다. 물론 소설 중에는 함량미달의 일회용도 부지기수다. 내용과는 무관하게 모든 책을 그러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나의 청춘에 대한 기억은 고통과 환멸과 비루하고도 비루한 이 삶의 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매사 비관주의자에 가까웠기에 하루하루가 지겹고 지루해서 그 시절이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다. 나이 30세를 지나 40세가 되리라곤 꿈도 안 꿨다. 그런데 모든 건 지나가더라.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도 그런 시절이 있노라고 회고하더라. 작가 김연수의 청춘은 날줄과 씨줄로 엮여 그의 소설 속에서 빛나는 문장들로 재탄생될 것임을 안다. 그것이 이 책의 존재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