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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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고 말한다. 화이부동이란 타자와 차이를 같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조화를 이루려는 삶의 태도다. 공자가 이것을 군자의 법도로 제시한 이유는, 군자는 조화를 이루려는 자이고, 명령하여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반면 소인배는 무조건 같아지려 하는 자이다. 남이 차를 사면 나도 차를 사야 하고, 남이 여행을 하면 나도 여행을 해야 하고, 남이 자식 유학을 보내면 내 자식도 유학을 보내야 한다.-254쪽

가랑이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황새를 쫒고자 하는 뱁새 소인배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왜 나라고 못한단 말인가." 소인배들은 남들과 같아지려는 데 실패하면 그것을 곧 인생의 실패로 간주하며 불행해한다. 그들은 '난 너희와 달라'라고 말할 용기와 배포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삶을 그저 타인과 닮고자 하는 허망한 욕구로 허덕허덕 보낸다. 당연히 소인배들은 취향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은 모든 이와 모든 것에서 '같아야 한다.' 여기에 어떤 양보도, 관용도 끼어들 틈이 없다. 당연히 '조화는 깨어지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255쪽

당연히 내가 모두와 모든 것과 완전하게 같아져버린 동이의 상태에서 조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화를 위해서는 차이, 어긋남, 비켜섬, 불일치, 요컨대 다름이 필요한 것이다. 조화만일까. 사랑도 결국은 이 차이에서 시작되는 감정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와 다른 타인의 취향은 거북스럽고 짜증스럽기만한 난관이라기보다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음색이 다른 악기와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세상은 독주의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이 무대다. 내 취향이 하나의 악기라면 타인의 취향은 다른 소리를 내는 또다른 악기다. 문제는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내 악기와 다른 악기가 어떻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255쪽

조선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친구 사이에 밀착이 아니라 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으로 천재적인 통찰이다. 이 틈이야말로 '어울려 다님'을 가능케 해주는 차이에 다름 아니다.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로 함께 사귀고자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취향이 필요하다. 취향이 같은 사람들만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작당이지 사귐이 아니다. 조폭들을 보라. 그들은 똑같은 두목, 똑같은 규율, 똑같은 질서 안에서 똑같은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친구가 만나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은 틈, 다름, 차이, 불일치들을 그대로 지키면서, 큰 그림 안에 엮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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