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지나간 정원은 초토화가 된다. 쓰러지고 엎어지고 널브러진 꽃나무를 서둘러 일으켜 세우고 지지대를 만들어주고 쓸려간 흙을 돋아주느라 비가 쉬어가는 잠깐의 막간이 금쪽같다. 그놈의 개구리밥이 뭐라고. 행여 떠내려 갈 새라 연과 부레옥잠을 키우는 고무다라의 물도 연신 퍼내야 한다. 꽃대 하나가 뚝 부러져나간 백일홍이 내내 눈에 밟힌다. 소국과 분꽃은 노끈을 찾아 묶어준다. 화분에 심은 국화는 비가 들이치지 않은 곳으로 들인다. 비에 약한 선인장들과 제라늄, 마지나타와 행운목은 이미 안전한 곳으로 대피 중이다. 목련나무는 으름덩굴이 무거운지 비바람에 기울어졌다. 무화과나무도 왼쪽으로 심하게 쏠렸다. 또, 비가 내린다. 순식간에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 쏟아진다. 해가 그립다.
식물을 키우는 건 아이 돌보는 일에 버금간다. 깊은 밤 빗소리에 깨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이 궁금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이 진짜 인줄 알았다. 식물과의 교감은 낯설고도 신기한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듯, 첫 만남, 설렘, 지속적인 관심, 쌓이는 정으로 맺는 결실, 꽃이나 열매의 수확. 그리고 씨를 받는 내년의 기약. 여러해살이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년생들이 더 예쁜 이유는 시작과 끝이 분명해서다.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긴장시키는 은근한 매력 같은 게 있다. 강낭콩을 까다가 싹이 튼 녀석이 있어 화초고추 화분 구석에 묻었는데 하루 만에 잎이 나더니 잭의 콩나무처럼 쑥쑥 자란다. 옷걸이를 반듯하게 펴서 기둥을 만들어줬더니 곧장 몸을 말아 타기 시작한다. 신기해서 보고 또 보며 웃는다. 얘좀 보라고 자랑까지 한다. 팔불출.
이제부턴 비가 좋다는 입버릇은 쏙 들어갈 듯. 더불어 비오는 날 떨던 궁상도 사라질까. 사람의 취향이나 습성, 관계가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체험하는 중이다. 이웃으로부터 사랑초와 스파디필룸을 나눠 받아, 오늘도 새 화분을 샀다. 시작은, 작은 땅에 몇 가지 씨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당에는 올망졸망한 화분들이 일렬로 서기 시작했다. 타인의 정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바라보는 것도 새로 들인 버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