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나이가 익어간다.

더 이상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흔에 마시는 술이 달다.

저녁마다 소곡주랑 오디술을 야금야금 마시면서 드는 생각.

나이와 술맛은 비례한다.

오늘은 맥주를 한 캔 마실까.

안주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창문 열고 바라보는 하늘 한 조각이면 땡.

술맛을 알았으니 이제 철드는 일만 남았구나.

유년, 청년의 기억은 멀리 밀쳐두고 이젠 성장하고 싶다.

자기 연민도 혐오도 낡고 삭아 별 볼일 없으니

미련 한 조각 동동 떠다니는

내 바다로부터 개구리헤엄을 쳐야지.

죽을힘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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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요리의 대부분은 생애 처음인 것들이다. 오늘 끓여 먹은 감자국도 그러하다. 요리 앞에만 서면 덜컥 겁부터 나고 소심해지는 버릇이 있어 무조건 못해, 안해가 태반이다. 그러다가 문득 할 마음이 생기면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를 적어서 꾸역꾸역 만들어보곤 성공하면 자신감이 붙고 실패하면 그럼 그렇지 하면서 의기소침의 되풀이다. 세상에 쉬운 요리는 하나도 없다. 그 쉽다는 된장국도 매번 맛이 다르거나 이상한 걸 보면 내게 요리의 신은 분명 없음이다. 어쨋거나 오늘의 감자국은 성공했고 덕분에 약간 자신감이 상승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그런데, 작년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감자찌기가 역시 대실패를 보고나니 다시 욕이 완전 상실. 문제는 무대포 정신이다. 기억이 안나면 다시 방법을 찾아 보든가 해야지 있지도 않은 뭔 감을 믿고 시작을 한 것일까. 남이 찌면 포실포실 맛난 감자가 내가 찌면 정체불명의 요상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덕택에 바퀴벌레 잡는 용도로 쓰기로 했다. 그렇게 위안을 삼아야지.

요리 못하는 인간의 특징 걸핏하면 손을 베인다는 거다. 지금도 엄지에 상처가 있지만 하루도 손가락이 성할 날이 없다. 혼자일 적에 뭘 먹고 살았나 싶다. 먹는 걸 즐기지 않는다고 하면 이상히 여기는데 수고에 비해 결과물이 형편없으면 점점 요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뭐든 대충 적당히 고픈 배만 채우자는 주의자가 살림이라는 것을 그럴듯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으니 지난 2년간의 날들은 손가락에서 상처가 가실 날이 없음이다.

요리 잘하는 친구를 보면 일단은 스스로가 즐긴다. 먹는 거든 만드는 거든. 난 그 둘다가 불가능하다. 내가 만들어 놓고도 먹고싶어하지 않는 딜레마.  일부는 유전적 요인도 무시 못한다. 엄마의 요리가 맛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맛이 없으니 음식에 관한 흥미도 관심도 없고, 기대도 없고, 체질로 굳어진 거다. 또 나이가 나인지라 음식 못하는게 무진장 창피할 때가 있다. 한때는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니 죽을 맛이다. 요리도 배우는 때가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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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피고 지던 녀석의 이름이 ‘끈끈이대나물’. 오늘 꽃씨를 받아놓고서야 이름을 찾아보았다. 몹시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몰라도 그만이라는 무심함이 공존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어긋남이다. 꽃이나 사람이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관계가 돼야 신뢰와 친목이 다져지는 것을 간혹 잊는다. 편지봉투에  깨알보다 작은 씨를 받아 이름과 날짜를 적어놓았다. 내년 봄, 자그만 새싹으로 만나기를.




코스모스, 코스모스 노래를 불렀더니 이웃의 아주머니가 운동 다니러 오시는 둑길에서 슬쩍 하셨다면서 두 뼘 정도 큰 코스모스를 주셨다. 허연 뿌리가 햇볕에 드러나 축 늘어진 것을 오전에 심었는데, 저녁에 보니 바짝 곤두서 있다. 꽃을 보면 씨를 받고 싶어진다. 하나씩 하나씩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봄날에 뿌리고 싶다. 화원에서 예쁜 화분에 심어진 화초를 사다 놓는 것과 직접 씨를 받아 뿌려 크는 과정을 보는 건 천지 차이다.




몇 포기 얻어 심은 브로콜리도 무럭무럭 자란다. 파란 애벌레가 보여서 담배 우린 물을 아침저녁으로 분무했더니 다행히도 무탈하게 크고 있다. 시골에서 공수해온 대파도 부추 심은 사이사이로 모종했다. 흙냄새를 잘 맡아서 반듯하게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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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2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알만한 꽃씨에서 뿌리가 내리고 꽃잎이 생기고 꽃술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몽님의 뿌리가 내리고 술이 익기 위해 아프시되 너무 깊이 앓지는 마요.
우린 모두 알고보면 아프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끈끈이대나물, 여름까지 졌다 폈다 하는 모가지가 길어 예쁜 꽃이죠^^

겨울 2008-06-2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대 중간 중간에 끈적이는 갈색의 액이 묻어있어 벌레를 잡는다는데,
어쩌다 재수없게 걸리지도, 좋아라 달려들지도 않는 듯 해요.

혼자라서 아프지 말아야지 하는 것도 있지만,
일단 아프면 무력감이 밀려들어서 싫어요.
한없이 작아지고 낮아져 땅으로 꺼질 듯한 그 존재감 없는 기분 참 싫잖아요.
전 여우님 아프시다는 소식 들으면 특히 많이 놀라는데요.
왠지 큰일이라는 생각에 마구 당황스럽다는.
그러니까 누구보다 건강하시라는^^


 

 

바라본다. 며칠 전 꺼내 겉먼지를 닦아내고 아직 한번도 날개를 돌리지 않았다. 병원에 들렀다가 세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피해 문 앞에서 서성거린 날이다. 아직은 실내가 더위보다는 추위에 가깝기도 하고 인공적인 바람이 싫은 이유도 있다.  선풍기는 불시에 들이닥칠 손님을 위해서다. 길거나 짧은 여행 뒤의 땀을 식힐. 그럼에도 시선이 자꾸 초록에 가까운 파랑에게 향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흙 한줌 없는 집이 있다. 그 집을 보면 숨이 막힌다. 결벽증에 가까울 집주인의 부지런함도, 미성의 에누리 없는 말씨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좀 어떤가. 바지런하게 쓸면 좋고 바빠서 혹은 게을러서 골목을 좀 어지럽힌들 어떤까. 살아있는 나무가 계절 따라 잎을 떨구고 열매를 맺는게 자연스런 이치지. 애완동물이나 화초에게 나눠줄 손톱만큼의 인정머리도 없는 이웃은 사절이다. 가식적인 인사치레도 피곤하다. 열매는 부실해도 정성스레 고추나무가 담긴 화분을 관리하는 이웃, 아욱이며 상치며 토란을 심어놓고 뜯어먹는 어떤 이웃, 철마다 이름도 모를 꽃씨를 얻어다 심어놓고 소복하게 올라온 모종이 자라면 몇 뿌리씩 나눠주는 즐거운 이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반짝 장마 뒤의 햇살은 얼마나 반가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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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2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풍기 꺼내놓고 정작 한번도 돌리진 않았네요. 선풍기 바람을 직접쐬는 일은 호흡기환자에게 좋지 않으므로 가급적 간접 바람을 쐬시는게 좋습니다. 선풍기 날개 바람따라 미세먼지가 따라붙잖아요. 전, 우몽님의 글을 읽으면 우몽님댁 풍경을 한번 보고 싶어져요. 마당도 있고, 꽃나무도 있고, 뜯어먹을 뭣도 있고(우리집일쎄 ㅎㅎ)이런점에서 아파트 베란다의 화초들은 무지막지한 환경인자를 강제주입당하며 버티고 있는거죠. 아파트 건축물 자재 자체가 문제 덩어리잖습니까. 단독주택이 좋은건 마당이 있고, 흙이 있고, 화분이 아닌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있다는 점이죠. 또 구석에 세워놓은 빗자루나, 물바가지, 살림살이가 자잘하게 널려 있어서 좋아요.

겨울 2008-06-2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제가 좀 늦었죠? 몸살인지 뭔지 며칠 아팠어요. 단독주택의 마당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한켠에는 수돗가도 있어 걸레도 빨고 나물도 씻는 그런 집에 살아요. 상당히 낡았지만 올 봄에 페인트칠을 했더니 산뜻한 집이 되었어요. 여우님 사는 모습에서 저는 참 보고 배우는게 많아요. 소나무같기도 하고 대나무같기도 한 올곧은 모습이랑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혹은 쓸 수 있는 것이 늘 경이로와요. 그리고 전 여우님댁을 제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어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 미국산쇠고기를 둘러싼 무서운 음모와 충격적인 진실! 미스터리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광우병 다큐멘터리!
콤 켈러허 지음, 김상윤.안성수 옮김, 김현원 감수 / 고려원북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전염병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책은 은폐와 거짓말, 거짓말 끊임없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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