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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ㅣ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의 출발
그것은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는 것
좀머씨는 소설 속 화자인 '나'에게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겨준 인물이다. '나'는 어릴 적에 나무 타기를 좋아했던 소년이다. 그런 소년의 마을에 조금은 괴짜인 좀머씨가 살고 있다. 마을 사람 누구도 그의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그의 과거 행적도 아는 사람이 없다. 좀머씨는 누군가의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없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되물으면 곧장 지팡이를 앞세워 멀리 사라져 버리기 일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좀머 아저씨가 분명하고 확실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제대로 된 문장으로 말하는 소리를 딱 한 번 듣는다.
P27
주말이면 소년은 아버지와 경마장엘 가곤 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도로는 물이 불고, 비는 우박으로 변하면서 주변 기온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잠시 날씨를 지켜보게 된다. 한참 후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소년은 길 끄트머리쯤에서 사람의 형체를 보게 된다. 좀머 아저씨였다. 아버지는 나쁜 날씨 때문에 아저씨를 도우려 하지만 아저씨는 반응이 없다. 그러자 아버지는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던 말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죽겠어요" 순간 아저씨는 그 말에 우뚝 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P. 36
소년은 그때 그의 목소리와 표정을 자세히 보게 된다. 아저씨는 뭔가에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집으로 돌아온 소년과 아버지는 어머니와 좀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저씨가 폐소 공포증 환자라고 듣게 된다.
그 말은 실제로 <폐쇄>라는 말과 <공포증>이라는 두 단어가 합해진 단어인데,
<폐쇄>란 <닫음> 혹은 <고립>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밀폐>라는 뜻을 가진...
P. 40
이 부분이 소년이 아저씨를 인상 깊게 살펴보게 된 첫 번째 경험이다. 소년은 어른들한테 들은 <폐소공포증>이라는 단어를 괴상하다고 표현한다. 소년은 아저씨는 아무런 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요도 받지 않았으며,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자기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서라고 해석한다. 단지 그것을 위해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뿐이고, 다른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빗속에서 본 아저씨의 표정을 떠올린다. 뭔가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면 몹시 갈증이 난 얼굴이 생각난다. 그러자 소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잊으려 애를 쓰게 되고 그렇게 힘쓸수록 더욱더 그의 표정이 생각난다. 이는 그의 잠을 방해한다. 하지만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라는 아저씨의 말을 기억하자마자 곧장 잠에 빠진다.
이 소설은 길이가 길지 않다. 하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하나하나가 왜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작품이 읽어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마치 큐브를 가지고 노는 듯한 그의 사유의 힘을 즐기기 때문일까?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소년은 혼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게 된다. 8살 소년이 성인용 자전거를 그것도 혼자 타는 법을 익힌다. 소년은 자신의 키와 맞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풍겔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우는데 자전거 페달 문제로 지각한 것 때문에 선생님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 일로 소년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나 역시도 풍겔 선생님처럼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다그치고 야단치고 특히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의 모든 행동을 판단하고 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무튼 이 사건 때문에 소년은 죽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가기로 결정한다. 억울함 때문에 소년은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고, 그 마음은 곧 분노로 바뀐다.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착한 소년이었는지 자신이 죽고 난 이후에 슬픔을 통해 깨닫게 해주리라...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장 모습을 상상하며 자기감정에 빠져 막 몸을 던지려던 순간... 나무 밑에서 좀머 아저씨를 발견하게 된다.
깊은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 그것은 뭔가 고통스러운 신음에 가까웠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갈망과 절망이 엉켜서 가슴에서부터 배어나는 깊고 참담한 소리였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중환자가 내는 끙끙 앓는 소리같이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도록 만드는
그 애절한 신음 소리는 아저씨를 홀가분하게 해준다든가
아저씨에게 안식을 준다든가 단 1초라도 아저씨를 쉬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
P. 95~96
소년은 아저씨를 발견 한 이후 곧장 나무에서 내려온다. 소년은 자신의 짓거리가 웃긴다고 여긴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다니! 그리고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P. 97
앞서 좀머 아저씨는 폐소 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폐소는 밀폐 혹은 고립하고도 연관이 있다 했다. 좀머씨는 죽음으로부터 평생을 도망친 사람이라 했다. 밀폐라는 단어가 주는 공간의 범위가 죽음이란 단어 앞에서는 한없이 작게 여겨진다. 세상 그 어디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좀머 아저씨에게 밀폐란 단순히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소설을 20대 때 읽었을 때는 이런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왜 이런 작품들이 좋아지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경험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인물들의 삶과 교감하며 읽기 때문일거다. 이처럼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곱씹어 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이 재미와 더불어 내 사유의 지평을 넓혀 줄 수도 있음을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통해 알게 된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혹은 고립된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서 쉽게 눈과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야기가 독특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중시 여긴다. 하지만 작가는 지나치리만치 인간관계에서 결벽증을 보이는 듯하다. 단적으로 틀에 박힌 말이라는 표현에서 본 것처럼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관점이 보인다. 이처럼 본질을 깊게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고통일 것이다. 좀머 아저씨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아챈 소년의 행동에서 나는 공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한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작품!!! 좀머씨 이야기였다.
그 말을 산 이유는 단지 경마 때 그 말을
그것의 고유한 특성대로 달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P.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