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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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서평란에 소개된 글을 보고 점찍어놨다 구입하게 된 책이다. 구입한지는 한달도 더 됐지만 이제서야 보게됐다.

 실제 <생각의 지도>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럴 듯한 대단한 뭔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마치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을 꿰뚫는 어떤 성찰을 담아내고 있을 것 같은 책의 제목은, 그러나 사실상 책을 열어보면 그다지 기대했던 바에 못미침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책에 실망했다. 그것은 책 제목을 통한 나의 기대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나의 기대에 못미쳤다는 것 뿐이다.

 <생각의 지도>는 미국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이 쓰고, 그의 제자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번역했다. 아무래도 저자의 밑에서 공부한 사람의 번역이라 저자를 오해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는 안심해도 좋다. 대개의 '번역'이란 저자의 실제 의도와 번역자의 해석간의 차이를 항상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줄여 저자의 말을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했다면 잘된 번역이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면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다. 일단 번역은 믿고 가자.

 동양의 사고 방식과 서양의 사고 방식.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그리 말한다. 다른 이들은 모두가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강의 차이점을 감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바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채 어떤 '감'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와 그의 연구진들은 이러한 차이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각종 실험을 한다. 그리고 실험결과를 통해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도출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기준은 문명과 문화다.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각기 그 사람이 발붙여 사는 땅의 문명과 문화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 혹은 애초 미국에서 태어나 계속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의 경우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서양의 문명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며, 동양은 중국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단체와 조직보다 개인의 행복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으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탁월성에 도달하고자 했다. 

  반면, 동양의 문명의 시점인 중국에서는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의 탁월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의 우애와 관계를 중시했고 튀지 않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로부터 서양에서의 권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 리'이지만, 동양에서으 권리는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확립된다.

 대략적인 동서양의 차이점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동양인은 사물을 볼 때 전체 속에서 조화를 중시하며, 서양인은 각 사물의 개별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어떤 풍경을 보여줬을 때 동양인은  풍경의 전체적인 구성을 쉽게 기억하지만 서양인은 특별한 사물 하나에 집착한다.

 또, 교실에서 동양에서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이 더 많이 오가며, 서양에서는 '어떻게'라는 질문보다 '왜'라는 질문이 더 많이 오간다. 이는 서양인들이 사건을 인과관계에서 보기 때문이다. 목표지향적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는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사건속의 인물과 사건정황과의 관계적 맥락을 중시하기에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실생활의 부분의 경험을 통해 동서양의 차이를 도출해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양인은 꼭 그러한 사고를 하고, 서양인은 꼭 이러한 사고를 한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동서양인의 '경향성'을 도출한 것이지 어떤 특정 개인의 성향을 가리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인이면서 서양인보다 더 서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결과를 통해 나는 동양인이니까 이런 거구나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가지 덧붙이지만 저자 역시 책 뒤에서 잠깐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섀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문명의 종말>과 함께 읽으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세계정세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이 생길 수도 있겠다. 더불어 내가 한가지 더 추천하고자 한다면, 나 역시 읽지 않은 책이지만 하랄드 뮐러의 <문명의 공존>도 함께 읽으면 <문명의 충돌>에 맞서는 다른 견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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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지킬박사 하네? 하고 케이블 티비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는데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던 영화랑 틀린 것이다. 제목만 같고 내용은 다른 하지만 역시 이 영화에서도 지킬박사는 등장하는 홍콩액션영화였다. 하필 제목을 똑같이 할 건 뭐람 하면서 계속 보긴 했지만, 그래도 원작을 보지 못한 아쉬움만 커졌다.

 이 홍콩액션영화에서의 지킬박사는 아내와 함께 홍콩에 신혼여행을 왔다가 홍콩 갱단에게 장기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관광가이드를 가장한 한의사이자 무술가인 할아비의 도움으로 지킬박사만 살아나고 폭발로 손상된 얼굴을 새로이 성형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만든다. 지킬은 할아비에게 한의학과 무술을 배우면서 복수를 하게 되는데...

 그런데 홍콩에 전설로만 알려졌던 미국의 배트맨이나 슈퍼맨과 같은 정의의 사도인 '호랑이'가 할아비였던 것이고, 이후의 호랑이는 바로 지킬이었던 것이다. 지킬은 그렇게 복수를 함과 동시에 홍콩의 호랑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다지 별 볼 것 없는 액션영화이고, 본래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영화에서의 그런 이중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오락적인 액션에 치중함으로써 단지 유명 영화의 제목을 따왔다는 인상을 풍기기만 했다. 그냥 오락용 영화로 애써 찾아보진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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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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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한 부분인 윤리학만을 따로 떼어놓아 볼 수 있는 개론서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분께 추천할 만한 '딱'인 책이다. 제목과도 같이 이 책은 '서양윤리학사'를 다루고 있다.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에링턴의 저서로, 윤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책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현재(이 현재가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다) 20세기 윤리학에 대한 방대한 저술을 준비중이라니 사뭇 기대된다.

 이 책의 옮긴이 김성호는 익히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자정도는 접해봤을 만하다. 그가 어떤 철학이론에 대해서 대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철학사를 배울 때 쓰고 있는 교재인 코플스톤의 <합리론>의 옮긴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대학에서 교수자리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활발한 철학 번역 활동으로 철학 학부생에게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역시 기반을 확립하지 못한 철학 연구자가 자신의 이름을 빛내는 또다른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가 이를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다. 또 의도했다 하더라도 외국의 좋은 철학서를 번역한다는 작업은 고되고 돈도 안되는 일이기에 그에게 더욱 힘내라 말하고 싶다.

 서론이 길었다. 본 책은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딱히 다른 경쟁적인 윤리학사를 다룬 철학서가 없는 마당에 독보적인 윤리학 개론서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각각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초보자가 처음부터 이 책을 접한다면 질려버리고 말것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윤리학사, 철학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깔려있는 독자에게라면 그의 지식을 더욱 깊이있게 만들기에 적합한 책이라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물론이고 소피스트까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그리고 중세의 윤리설, 홉스, 스피노자, 버틀러, 흄, 칸트, 헤겔, 니체, 20세기의 윤리학이라는 많은 목록을 지니고 있고, 더불어 더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함으로써 윤리학에 있어서는 자기 할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더 읽어야 할 책이 에링턴이 만든 목차 뿐 아니라 옮긴이가 현재 번역되어 있는 철학서 중에서 추천한 더 읽어야 할 책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더 읽어야 할 책'은 모두 영어원서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각각의 철학자들의 윤리학부분을 엮어내면서 아무래도 해당 철학자의 윤리학 저서를 기본으로 하고 이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책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당 철학자의 윤리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와 반대되는 철학자의 비판과 문제점 모색, 반론 등을 함께 다루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윤리학 저서를 풀어냄으로써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게 엮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물론 내가 철학사를 한 눈에 볼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철학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나마 4년간 접했다는 내가 볼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그리고 그저 의심으로 끝낸다. 나의 내공의 한계 때문일거라는 스스로의 학문탐독의 소홀함으로 그 이유를 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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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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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에티쿠스>는 서양윤리학에 대한 윤리학 개론서라 할 수 있다. 현재 서양철학사만을 놓고 본다면, 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두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두권, 코플스톤의 합리론과 영국경험론, 그리스로마철학사, 중세철학사 등이 있고, 우리나라 서양근대철학학회에서 따로 엮어 만든 서양근대철학이 있으나, 윤리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철학사는 부재한 것이 사실이었다. 최근 윤리학 분야에서도 윤리학만을 따로 다룬 윤리학사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호모 에티쿠스>는 그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저자 김상봉씨는 일간신문을 통해서도 자주 이름을 접한 분이다. 연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온 뒤 독일의 괴팅겐, 프라이부르크, 마인츠 대학에서 서양철학, 서양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하고 칸트연구로 마인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그리스도신대학대의 종교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학교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다른 세명의 교수와 함께 쫓겨나게 되었다. 학계 풍토상 쫓겨난 경우 다른 어느 학교에서도 교수나 강사로 받아주질 않아 사실상 주류 철학계에서는 밀려난 분이시다. 이후 학벌없는 사회 모임을 꾸리고 있으며, 철학자라는 명칭으로보다는 학벌없는 사회 사무총장이라는 이름으로 일간 신문 칼럼란에 자주 오르내리신 분이다.

 김상봉씨는 지금 소개하고 있는 <호모에티쿠스>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철학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나르시스의 꿈>,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등이 그러하고, 역시 학벌반대모임 사무총장 답게 <세 학교 이야기>라는 책도 썼다. 그의 저서들은 순수 학술적인 부분에 기반을 두고 있다기 보다는 철학의 언저리를 다루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러나 그 언저리가 철학에서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자기사유를 통해 재생산된 철학이라는 의미에서 언저리다.

 <호모에티쿠스>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서양윤리학사의 이론적인 부분만을 엮어서 낸 것이 아니라 자기사유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연관하여 재생산된 윤리학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중간중간 윤리학 이론 사이에 우리네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현실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서양윤리학의 시초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어,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스피노자, 흄, 칸트에 이르기까지 윤리학의 핵심 철학자들을 뽑아서 엮었다. 그중에서도 칸트에 대해서는 세 장에 걸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김상봉 자신이 칸트윤리학에 심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

 다만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홉스, 버틀러, 헤겔, 벤담과 밀, 니체, 그리고 이후의 윤리학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서양철학사를 모르는 초보자가 보기에도 쉽게 설명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의 부족한 부분들을 다른 책에서 보충해야한다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부족한 부분은 서광사에서 나온 <서양윤리학사>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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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본지 며칠이 지난 영화다. 이제야 영화감상평을 올리는건 철저히 나의 게으름때문이다. 하긴 다른 생각을 하느라 좀 늦어지긴 했다.

 밥을 먹으며 켜게 된 티비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화다. 맨처음부터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부터 본거 같긴 하다. 내용의 흐름상. 그냥 밥 다 먹을 때까지만 보려고 했는데 역시 내 취향의 영화에 제대로 걸린 나는 끝내 끝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지루한 하루하루에 싫증을 느낀 실직 회계사 모건 설리번이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 디지콥의 산업스파이가 된다. 그는 이제 위조된 이름을 부여받아 모건으로서의 삶을 접는다. 그러던 중 어느날 리타라는 여인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데, 디지콥에서는 스파이들에게 세뇌용 약을 투입해 자아를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건은 모건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조직에 충실한 산업스파이가 되어버린다. 디지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린다. 리타는 썬웨이의 스파이가 되면 모건을 구해주겠노라 약속하고 모건은 이에 응한다. 결국 이중 스파이가 되어버렸다.

 영화 <매트릭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마치 <매트릭스>와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영화에서나 이 영화에서나 주인공이 자아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두 영화의 중심에는 자아정체성이라는 주제가 가로놓여있다.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네오와 또한 어느 것이 나인지,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건. 그래서 이 영화는 <매트릭스>에서 느껴지는 신비감이 고스란히 다른 방식으로 느껴진다.

 어떤 긴박감은 없다. 하지만 중간템포의 빠르기로 진행되는 영화 속에서 모건의 고민은 결국 관객의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관객 또한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매트릭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관객은 이미 답을 예상하고 있었고, 네오의 혼란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싸이퍼>에서는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이 바로 모건이다. 그러나 <싸이퍼>는 <매트릭스>와 같이 그 고민이 영화가 끝난 현실에까지 와서 우리로 하여금 머리아픈 고민을 하게 하지는 않는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싸이퍼>는 순전히 스릴러 영화나 책속의 가공세계 이야기일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여실히 깨닫는다.

 본래 싸이퍼는 cipher 영(零, zero)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랍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영'이란 모건의 '자아정체성'을 두고 하는 말일터이다. 그러나 '자아정체성'은 비단 영화 속 모건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실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고, 그나마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인지 묻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물음을 던진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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