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직에 몸담고 있거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들이 신문지상에 잇달아 오르내리고 있다.

사례 1. 경찰간부가 정복을 입고 회식 중 커피배달온 여고생에게 말했다. "벗어" 여고생은 경찰복을 입고 있는 그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시키는대로 했다. 그리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싶었지만 가해자가 경찰이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소송을 냈다.

사례 2. 경찰대 출신의 경찰이 인터넷 채팅으로 12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었다. 후에 미성년자 성관계자 처벌시 드러났으나 봐주기 수사로 인해 처벌을 면했다. 이후 논란이 되자 사표를 냈다.

사례 3. 한 초등학교 교사가 반 여학생 10여명을 12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나 학생들은 성추행당했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학교 투서함에 넣었다.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조치하지 않았다.

사례 4. 대구의 한 치과의사가 미모의 여성들을 유인해 미인대회에 내보내준다며 전신마취후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

사례 5. 공무원이 회식 술자리 후 집에 가던 동료 여성공무원을 성폭행했다.

이상의 사례들은 적어도 최근 5일이내에 신문지상에 올랐던 사건사례이다. 범행의 가해자는 모두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경찰이거나,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치과의사, 국가의 녹을 받고 있는 공무원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자들이다. 신문을 통해 위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밖에는 안나고 화가 치밀어 숨이 막혀온다.

죽어라 공부해서 경찰대 나와 경찰간부되고, 치대 나와 치과의사 되면 뭐하나. 저들의 최소한의 양심조차도 지니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사람'이라는 종(種)으로 분류가 되는 것조차 수치스럽다. 겉만 사람이고, 겉만 엘리트였지 하는 짓은 영락없는 짐승들 아닌가. 짐승도 저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짐승만도 못한 이들이다.

사회의 어느 부분보다도 가장 '도덕성'이 요구되는 경찰과 공무원과 의사가 최소한의 양심조차도 저버렸다면 그 사회는 이미 볼 것 없는 타락한 후진사회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노동운동가 전순옥씨는 20일 동대문경찰서 대강당에서 '인권과 한국 민주화'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그녀는 "경찰의 모습에서 그 나라의 인권과 민주화를 판단할 수 있으니 이젠 약자를 돕고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달라"고 주문했다. 경찰의 모습이 그 나라의 인권을 반영한다는 말을 위의 범죄사례에 비춰본다면 이미 우리나라는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후진사회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유엔 인권위원회에 서명을 하고 인권, 인권을 외치지만 오직 말만 그러할 뿐 정작 인권을 가장 소중히 해야할 저들이 인권은 커녕 양심조차도 팔아버렸으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다시는 이와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첫째, 먼저 인간이 되지 않은 자는 고등교육을 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어떤 테스트를 통해서나 심사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각각의 자녀를 기르는 가정에서부터 이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는데도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가차없이 더이상의 고등교육을 중단해야한다. 대학 나오고 대학원 나오고 석사, 박사 해봐야 이런 애들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밖에는 되지 않는다. 인간이 되지 않은 엘리트는 가장 무서운 범죄자다. 따라서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알아서 통제해야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나쁜 인간이 사회로 나와 그가 있어서는 안되는 자리에 머물고 있다면, 그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차없이 형벌을 가해야한다. 의사라면 의사면허를 박탈시키고, 경찰이라면 경찰 자격을 박탈해야한다. 또 그가 교사라면 평생 교사를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이라면 공무원 자격을 취소해야한다. 이후 그를 사회봉사원이나 기타 교육기관에 머물게하며 인성교육부터 다시 시키고 '평생봉사'를 명해야한다. 겉으로 좀 나아졌다 싶다고 해서 다시 내보내고 해서는 안된다. 사회의 범주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되, 그는 최저임금을 받는 조건하에 사회봉사에만 열중하게 해야한다. 왜냐면 인간이 안된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인성에 비했을 때 받아서는 안될 고등교육을 받아 사회에 머물렀고 그렇기에 같은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사회의 하위층에 있는 사람보다도 죄질이 더 나쁘다. 감옥에서 몇년 살다 나오고 하는 식의 형벌보다는 사회의 테두리내에서 살되, 평생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 그에게나 사회에게나 더 낫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첫번째 단계에서 차단을 해야한다.

국가 전체가 갈수록 도덕불감증에 걸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범죄의 질은 더더욱 나빠지고, 그 수단은 교활하고 악랄하다. 성폭행 피해자의 연령은 갈수록 내려가고 있고, 범죄자는 사회의 부랑자나 소외자가 아닌 최고의 엘리트라 지칭되는 이들이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나쁜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화된 그들 중 소수의 인원의 잘못된 행동은 그들이 받은 교육의 한계점을 지적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의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은 과거보다 더 큰 윤리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은 이미 쓰레기통에 간 형국을 맞고 있다. 기술과 자격, 능력은 나중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이냐 짐승이냐의 문제다. 교육의 철학을 되돌려야한다. 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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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뺐다. 간만에 책정리를 했다. 제대한 뒤로 좁은 방안에 수많은 책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정리를 할까 고민하며 나름대로 1차 정리를 했는데 오늘로써 2차 정리를 마무리했다.

1차 정리 때에는 단지 많은 책을 효과적으로 쌓아 공간을 넓히려고 애썼고, 이번에는 이미 본 책과 그렇지 않은 책, 그리고 본 책도 아니고 가까운 시일내에 다 읽은 책도 아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봐야할 책, 이미 봤고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책들로 구분을 지었다.

이미 본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 멋모르고 고른 책들이다. 가령 <재미있는 수학이야기>-책 제목이 정확치는 않다-라든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101가지 이야기>와 같은 책들이 이에 속한다. 개인적인 관심사에 따라서는 이 책들도 다시 볼 수 있겠지만 이미 나의 관심사가 철학과 전과후 과도하게 집중적으로 변한 탓에 저 책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손에 잡히지 않을 듯 하다. 이렇게 분류된 책들은 나의 책상에 달린 책꽂이 꼭대기에 올라가 이제는 나의 시선에서도 벗어났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이 책들을 어디 기증을 하거나, 요즘 유행타기 시작한 '프리유어북 운동'에 내놔 방생을 하거나, 둘다 아니라면 다음번 이사갈 때 버려질 듯 싶다.

다음으로 이미 본 책들, 하지만 앞으로도 다시 읽을 확률이 높은 책들은 모두 한꺼번에 모아 일층은 세로로 정상적으로 세워 꽂고, 공간부족으로 인해 나머지 책들은 옆으로 뉘어 세로로 꽂힌 책들 위에 가지런히 쌓아놨다. 여기에 해당하는 책들은 <체 게바라 평전>, <선의 나침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장미의 이름>, <코드훔치기>, <오만과 편견> 등 소설, 비평, 평전, 에세이, 자서전 등 다양하다.

세번째로 아직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은, 하지만 앞으로 천천히 참고서적으로서 계속해서 볼만한 책들, 가령 코플스톤의 <그리스 로마 철학사>, <합리론>, <경험론>라든가, 요한네스 휠스베르거의 <서양철학사>, 플라톤의 <국가>,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등 주로 철학사에 해당되는 책들이다. 이렇게 분류된 책들은 나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책상 위에 나란히 꽂혀있다.

마지막으로, 위 세 가지 유형에 속하지 않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나의 책상에 붙은 책꽂이 이층과 삼층, 그리고 옷장 옆에 있는 4층짜리 조그마한 책꽂이 이층부터 사층까지를 점하고 있다. 책욕심이 많은지라, 게다가 책과 음반은 반드시 사서 읽고 들어야한다는 생각에 그때그때 읽고픈 책들을 사놓기만 하고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음반이야 편안히 앉아 혹은 누워서 들리는대로 들으면 그만이지만, 책은 능동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탓에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읽지 않고 꽂아두고, 또다시 다른 책을 구입하는 행각을 반복해왔다. 지금은 자금난으로 그런 습관적인 행동조차도 조심스럽지만 군입대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탓에-그나마 한 아르바이트도 두달이 안되지만-그 돈을 모두 책에 쏟아부었던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책들로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제국>, <성의 역사>, <정의론>, <미국의 민주주의>, <불가사리>, <1968년>, <레닌> 등이 있다. 대부분 읽기 까다로와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보면 졸리는 딱딱한 책 중에서도 더욱 딱딱한 책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선뜻 꺼내읽지 않고 그저 눈요기감으로 바라보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젠 하나하나 꺼내 읽어야지. 하지만 하루하루 서점에 진열되는 신간서적에서 눈을 뗄 수는 없는 터라 아주 가끔은 그들 중 하나를 집어삼켜야겠다. 아무리 자금난이라하지만 그 신간서적들이 내 손에 닿지도 않고 진열대에서 하나하나 사라져가는 일은 도저히 두고볼 수가 없다. 마치 이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대단한 책벌레인양 비쳐진다. 이럴 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읽지는 않는다." 어쩌면 난 책읽기를 즐기기보다 책수집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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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리주의자 밀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인간이,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자"라는 말의 원형이다.

공리주의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벤담을 필두로 한 양적 공리주의와 위에 언급한 밀의 질적 공리주의인데, 벤담은 쾌락은 오직 한 가지며, 질적차이는 없고 양적 차이만 있다는 주장을 하고, 밀은 쾌락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된 밀의 문장은 질적인 쾌락을 추구하자는 주장의 다른 말이다.

흔히 '쾌락주의자' 라고 하면 연상되는 것이 날라리다. 과거의 고급날라리의 대명사 '오렌지족', '낑깡족' 등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 그리고 밤바다 원나잇스탠드를 즐기는 그들이 '쾌락주의자'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벤담식 쾌락주의고, 그와 다른 밀의 쾌락주의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밀의 소크라테스와 돼지에 비유된 발언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무게가 들어가 있다. 물질을 향유하기보다 정신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밀식의 쾌락주의자들로는 아마도 산사의 스님들을 비롯한 정신수양에 힘쓰는 종교인들, 배굶는 생활을 하지만 진리를 위해 바른 소리를 내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들을 비롯한 지식인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면에서 나는 벤담보다는 밀에 매우 가까운 놈인 것 같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어설프게나마 그려본 나의 미래 가정을 이끌어갈만한 약간의 여유가 있는 재산만 주어진다면 나는 진리를 위해, 문화예술을 위해 살 의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유있는 재산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마도 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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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의 동력은 물질적 동기와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에서 나온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한테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기 원한다. 공동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불행을 느끼고 의기소침해지며 삶에 대한 의욕마저 잃는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직접 읽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오랜 기억에 의거하건대, 종로의 한 대형서점에서 바라본 이 책은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이긴 하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도 없거니와 '읽고 싶은 책'의 목록에서 상당히 뒤로 쳐져있는 책인지라 내가 이 책을 정식으로 읽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 하다.

어쨌건 각설하고, <역사의 종말>의 한 부분을 발췌해 떨궈놓은 위 글은 내게는 우선적으로 철학자 헤겔을 연상시킨다. 다음은 상명대 불어불문과 박정자 교수의 홈피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우선 「의식의 진리는 자기의식이다」라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한다. 대상을 지향하는 그 어떤 의식도 실은 자기 의식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며, 이 의식은 자기의식으로 복귀, 통일되지 않을 수 없다. 자기의식이란 자기에 대한 의식인데, 헤겔이 의식 중에서 최고의 단계로 본 이 의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성적 확신」과 「지각」, 「오성」의 3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단계에서는 대상의 존재를 감성적으로 확신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대상의 성질을 지각하며, 셋째 단계에서는 대상 세계의 법칙을 인식한다. 이 3단계가 모두 대상에 대한 의식이며, 이 대상의식(헤겔은 이것을 그냥 「의식」이라고 부른다)은 아직 자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감성에 사로잡힌 대상지향적 의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이 어떻게 자기의식으로 고양될 수 있는가? 헤겔은 인간의 의식 자체가 자기의식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주체가 대상을 지향하는 이유는 대상을 자기것으로 구성하려는 「자기에 대한 궁극적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가 타인을 알고자 하는 것은 나를 알기 위함이요, 타인을 인정하는 것은 나를 인정하는 것이고, 타인을 증오하는 것은 타인 속에서 발견한 나의 모습을 증오하는 것이다. 즉 주체와 객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식이 세계 속에서 만나는 타인 역시 또 다른 자기의식이다. 두 자기의식이 마주 보는 최초의 상태는 일방적으로 자기의 인정만을 구하는 두 자기의식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정(認定)투쟁이다. 이 투쟁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우선, 하나의 자기의식이 또 다른 자기의식을 마주볼때 그 사이에는 즉각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중 하나의 자기의식은 탈자(脫自) 상태에 빠져 자기자신을 상실한다.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존경하거나, 상대방의 권위에 눌려 꼼짝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제 그의 본질은 타자에 달려있고, 타자가 그를 지배하는 자로 나타난다. 이렇게되면 원래의 자기의식은 고양되기 전의 의식 차원으로 다시 떨어지고, 타자에게 예속된다. 이렇게 타자에게 예속된 자기의식은 그러나 탈자(脫自)되는가 싶은 순간에 타자를 지양하여 그것을 자기화(自己化)한다. 즉 타자를 본질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의식 차원에 떨어졌던 자기는 다시 자기의식을 확립한다. 그러나 이때 반대로 상대방이 이쪽의 자기의식에 예속된다면 두 자기의식의 관계는 영원한 지배-예속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자기의식은 타자를 자기와 대등한 자기의식으로 인정하고 또 자기도 그렇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된다. 자기의식은 원래 타자 속에서 자기자신의 존립 기반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서 타자를, 자기의 존재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존재를 자립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 상대방 속에서 자신의 존립 기반을 추구했던 이쪽의 자기의식 역시 실체적 존립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의식의 일방적인 타자 지양은 있을 수 없고, 나의 완전무결한 존재는, 나와 완전히 대등한 또다른 자기의식에 의해 인정됨으로써만 보장된다. 헤겔의 그 유명한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이 바로 그것이다. 주인은 노예를 해방함으로써만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노예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앞에서 본, 자기의식의 순환 운동에 의해 그가 역으로 예속당하여 노예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참된 자유는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타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또 나에 의해서 자유로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나는 참으로 자유롭다」(Hegel, Enzylop die der philosophieschen Wissenchaften, p.198) 내가 인정 받으려 하면 타자도 마찬가지로 인정 받으려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실체적 존립기반을 타자에게서 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인정 받기 위해서는 타자를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타자 부정은 자기 부정이고, 타자 긍정은 자기 긍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을 살펴보건대 아마도 후쿠야마의 인정욕구에 대한 발언은 그보다 한참 전의 시대를 살았던 헤겔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나는 후쿠야마와 헤겔이 말하는 '인정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구는 다양하다. 식욕, 성욕 등의 인간의 기초적인 욕구를 비롯하여 명예욕, 지식욕, 창작욕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욕구가 존재한다. 인정욕구는 그중 명예욕과 쉽게 연결지어도 무방하다 생각된다. 명예욕이라는 것이 범위가 커 지식욕이나 창작욕 등의 것들이 명예욕의 집합 안에 포함되는 원소로 볼 수도 있겠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욕구가 있기에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면 거기서 목표에 실패한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려하는 것이다. 공동체로부터 인정을 받은 개인은, 인정욕구의 결과 행복을 얻는다.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한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붙어 아양을 떨거나 입에 발린 발언을 통해 그들과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추구하는 뭔가를 내가 성취함으로써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이었고, 몇몇 분야에서 나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단 한번도 떨어지지 않는 성적으로 전교 1등의 목표를 달성하여 공부 잘하는 놈으로 인정을 받았고, 대학에 와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함으로써 드럼연주로써 여타 드러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내 실력이 학교 바깥 세상에서는 그다지 훌륭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지만, 학교 내에서는 적어도 인정을 받았다. 그 외에도 내가 시도하는 분야는 몇몇 가지가 있으나 아직 그들 분야에서는 남들의 인정을 받을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내 성격을 좀더 사교적으로 바꿔보려 노력중이지만 아마도 선천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자존심세고, 홀로있음을 즐기는 편인 나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과연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상컨대 크게 바뀌지는 않으리라 본다. 따라서 나는 지금까지 해오던 인정투쟁을 계속해야한다. 내가 원하는 여러 분야에서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그들은 나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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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며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건드리더니 지하철 노선표를 눈 앞에 갖다대며 경북궁으로 가려면 어느쪽 지하철을 타야하냐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내 앞을 가리켰는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런....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럼 나한테 영어로 물었나? 왜 못 들었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This' 그랬더니 알았단다.

흠... 이 열차를 타고 두 정거장 후에 내려야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영어가 안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걍 책만 봤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난 후 드는 생각은...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로 물어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중 하필 책을 보며 열중하고 있는 나를 건드릴건 뭐람. 아무래도 젊은 학생이니 영어를 할 줄 알겠다 싶었나? 그 사람에게 악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내가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 바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도 못하냐~ 라는 식의 핀잔을 주는 것이 일반화된 반응인데 나는 그 반응이 못마땅하다. 난 한국에 살고 있고 한국말을 할 줄 안다.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에 온다면 한국어를 하던가 아니면 바디랭기지를 하면 된다. 이들에게 영어로 보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할 줄 알고 더한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영어를 못하는 것이 죄는 아니란 말씀.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고 하지만 영어를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렇다면 '에스페란토어'를 하자.


아래 글은 한겨레21 504호 참조

에스페란토어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이다. 그가 태어난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어를 창안했다. 에스페란토는 말이 같은 민족사회에선 그 민족어를 사용해 발전시키고, 말이 서로 다른 국제관계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쓰자고 주장한다. 현재 120여개 나라에 사용자가 산재해있고, 이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기점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억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에스페란토협회와 주요 도시에 그 지부가 조직돼 있고, 단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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