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백과사전
김원중 편저자 / 을유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고사성어 백과사전>은 건양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원중 씨가 엮은 책이다. 그는 이미 이쪽 분야에 있어서는 양질의 좋은 책들을 많이 내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지금 보고 있는 <고사성어 백과사전>을 비롯하여 2004년 출간한 <당시>, <송시> 도 그러하다.

 고사성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국어공부를 하면서 많은 고사성어를 접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좀 뜸해졌지만 아직도 우리는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서 연재되고 있는 고사성어를 간혹 접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서 혹은 다른 교양서적을 읽다가 인용된 고사성어를 볼 수 있다.

 고사성어는 만들어진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것은 속담과도 같은 것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삶의 곳곳에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는 고사성어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진부하고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원중씨는 바로 이러한 점때문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책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대동소이한 형태를 띠고 있고, 고사성어가 우리에게 줘야 할 의미를 그 책들이 제대로 매개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지금과 같은 책을 내놓을 수 있었고, 이 책은 다른 인문사회과학의 베스트셀러 못지 않게 팔려나갔다. 확 눈에 띄는 노란색으로 일단 시선을 끌고 책이 담고 있는 각 고사성어의 내용 또한 훌륭하다. 한자어를 모두 풀이해줬으며, 이와 관련된 해설은 물론이고, 실제 그 고사성어가 담겨 있던 시의 전문까지 소개하고 있다. 모르는 고사성어가 나올 때 이 책을 참고한다면 아마도 참고자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이 책을 들춰보면서 나는 지금보다는 고등학교 때 고사성어를 훨씬 많이 알았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무식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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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중,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성적 부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비록 고등학교 2, 3학년때는 성적이 하락했다고 쳐도 고등학교 1학년 통틀어 전교 1등을 했던 나도 고교생활기록부 1학년 성적에 '수'가 아닌 '우'가 수두룩하게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우를 많이 받고도 전교 1등을 했었다면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성적부풀리기는 없었다.

 하지만 요새는 고등학교에서 '수' 와 '우' 를 받지 못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한다고 한다. '우'를 받더라도 놀림의 대상이 된다니 지금의 고등학교 현실을 알만하다. 담당 과목 교사는 시험전에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알려주거나 혹은 암시를 해주고, 학생들은 해당 문제지만 들입다 보면 '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현실. 문제를 가르쳐주는데도 공부하기 싫어 하지 않은 학생들만이 '미' '양' '가'를 받는 현실. 지금의 고등학교의 현실이 그렇다.

 대학입시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들만큼은 성적을 잘 주자는 것이다. 그래야 동일 수능점수를 획득하더라도 다른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대입에 있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들의 마음은 이해간다. 교사들을 비판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도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이 얼굴 모를 다른 학생들보다 더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다면야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 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점수를  퍼주고 있는 교사가 아니라 지금의 대학입시의 현실이다.

 사실 학생부 성적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수능점수를 얼마나 받아내냐는 것이지. 그런데 수능마저도 변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로또 수능'이 되어버린 마당에 너도나도 잘 받은 수능점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학생부 성적과 논술시험이다. 논술시험을 보는 학교가 몇몇 학교에 국한되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수능을 제외하고는 학생부 성적만이 또다른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글쎄. 아직 학교현장에 나가보지 않아 학생들의 시험성적이 어떻게 매겨지고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점수에 따라서 80점 넘으면 수, 그 밑이면 우, 미, 양, 가가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상위 몇 퍼센트는 수, 그 다음은 우, 미, 양, 가로 나눠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상위 몇 퍼센트만이 수를 받을 수 있다면 성적 부풀리기가 발생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개 등급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분류하려면 객관적으로는 수는 상위 20%, 우는 다음 20% 이런 식이 되야할텐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상위 20%에게 수를 주는 것도 퍼주기라고 생각한다. 수는 상위 10%, 우는 다음 10%, 미는 다음 20%, 양은 다음 20%, 가는 다음 40% 이렇게 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등수는 서열화를 조장한다고 해서 폐지했다. 그러나 성적 퍼주기를 방지하자면 상위단계의 변별력을 세분화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고, 상위 10% 주장을 내세웠다.

 점수를 좋게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다. 하지만 모두가 '수'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너도 나도 조금씩만 공부해서 '수'를 받을 수 있다면 아이들은 공부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는 교육의 의미가 없어진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더 많이 알고 깊이 알 수 있도록 지식을 가르치는 역할도 수행한다.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은 길러줘야한다. 성적부풀리기는 궁극적으로 이것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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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 중대장이 자기네 중대 훈련병 약 200명 가량의 데려다가 똥을 찍어 먹게 했단다. 이유는 화장실 대변기에 물이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똥이 뭍어있었던 것. 열받은 중대장은 중대훈련병들을 차례로 불러 각자의 손가락에 똥을 찍게 한 다음 입에 넣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똥 같은 경우가 있다.

군대간 모든 훈련병이 똥을 먹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 먹는 군대'라는 '모든 군대'를 지칭할 수 있는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제목을 단 것은 똥먹는 군대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에도 이렇게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내가 군생활을 하던 2002년과 2003년에는 똥같은 경우는 종종 봤어도 내게 똥을 먹인 사람은 없었다. 만약 똥을 먹인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당연히 그 자리에서 똥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고, 즉각 사단장쯤 되는 이에게 신고를 하거나 이번 사건과 같이 국가인권위원회나 언론에 알렸을 터이다.

과거에도 종종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이번 훈련병들 중 소수의 의식있는 자가 편지를 통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렸기에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지 그들이 교육받은대로 '절대복종'을 했다면 중대장이 구속수감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중대장은 다음번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똑같은 처방책(?)을 내놓았을 테고 말이다.

군대를 가면서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사회에 없는 사람 취급받는다고 해서 각각의 인간 개별자의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들을 군수품 목록 몇 종에 분류한다고 해서 이들이 정말 군수품이 되지는 않는다. 군대는 마치 저들이 자신의 소유물인양 다루어서는 안될 터이다. 저들은 너희들과 계급이 다를 뿐이지 저들도 인간이다. 저들이 인간이 아니라면 너희들도 인간이 아니다. 만약 장교가 훈련 중 위사람으로부터 저런 대우를 받더라도 그들은 그와 같은 대우를 온당하다고 생각할까?

윗 사람에게 아부하고 아랫사람에게 막대하는 경우를 군대에서는 수없이 볼 수 있다. 위에 있건 아래에 있건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다. 그들을 너희와 다르다고 생각지 말라.

철학자 칸트는 "내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게하라"는 말을 했다. 의지의 준칙이란 나의 주관적 기준이고, 보편적 입법은 사회공통의 객관적 기준이다. 따라서 나의 주관적 준칙이 보편적 입법에 원리에 맞게하라는 것은 나의 행위와 판단의 객관성을 획득하라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선하냐 악하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행위하기를 내가 기꺼이 바랄 수 있는지를 되물어보면 된다. 사건의 시초였던 해당 중대장을 비롯한 군대에 있는 다수의 지휘관들이 이 점만 마음에 담고 있더라도 저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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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 고등학교의 담임교사가 자신의 반 학생의 시험답안지를 대필하는 등의 행위로 성적을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사는 검사의 아들인 해당 학생이 이 학교로 위장전입하는 것을 돕고, 자신의 반에 배정되도록 하여 체계적인 성적관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교사들에게 이 학생에 대한 불법과외를 하도록 제의했으며, 시험문제지를 불법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해당 학교가 국공립학교인지 사립학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적법한 절차를 통해 채용된 교사가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건에 연루된 교사가 담임교사를 제외하고도 더 있다는 사실은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비단 이 학교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만큼 교사들의 도덕성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인데 사실 교사채용시에 이 부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불가능하다.

어느 한 사람의 인성은 시험을 통해 판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채용된 교사들을 데려다 놓고 인성교육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채용된 교사들은 그만한 도덕성쯤은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따로 모아 도덕교육을 시킨다면 교사들도 자신을 의심한다며 반말할 터다. 그저 이런 사건이 터져도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태입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해결책이 없다. 물론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좀더 꼼꼼하고 깐깐한 교육청의 감사를 실시한다면 사전에 예방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조그마한 해결책은 될 수 있을지라도 교사의 도덕성을 회복시킬 만한 혹은 도덕적인 사람을 교사로 채용할 수 있는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다만 외부의 감시와 감독은 비도덕적인 교사라고 할지라도 비도덕적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감시, 감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에만 말이다.

현재로서는 각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양심적인 다른 교사들의 감시와 고발을 통해 비도덕적인 교사를 걸러내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한 양심적인 교사의 고발 조치로 인해 사건이 드러날 수 있었다.

덧붙이며 해당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한 기간제 교사의 답안 정정 요구 거부는 정교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해당 기간제 교사는 이로인해 다음해에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정규직 교사인 기간제교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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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물음이고, 항상 결론을 내릴때마다 결론이 달라지는 물음이다. 전에는 독서는 취미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독서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간에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독서는 필수다. 실전에서 몸으로 부딪혀 경험하는 직접경험을 제외하고는 독서는 간접경험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가령 인도로 여행을 가고자 할 때 우리는 무턱대고 인도행 비행기를 타는 것 보다는 인도라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가치관, 지리적 배경 등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앎은 실전에서 오는 충격을 다소 완화시켜주며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무의식적으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는 것과 이 물은 뜨겁다 라고 인식한 후에 물에 손을 담근 후의 반응은 다르다. 똑같은 온도의 뜨거운 물이라 할지라도 이 물이 뜨겁다 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의 몸은 이미 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사람은 깜짝 놀라고 당황한다.

  독서는 그런 역할을 한다. 미리 경험하는 체험을 함으로써 어떤 일을 수행해나감에 있어서 사전에 대비하는 자세를  길러준다. 그래서 나는 독서는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서는 취미일 수도 있다. 취미란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즐기는 활동이다. 한참 일하고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어떤 사람은 티비를 보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으며, 어떤 사람은 책을 본다. 그럼 첫번째 사람에게 취미는 티비시청이고, 두번째 사람에게 취미는 음악감상이며, 세번째 사람에게 취미는 독서다.

 공부로 하는 독서와 취미로 하는 독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부로 하는 독서는 책의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외우려는 자세로 덤벼들게 된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읽는데 있어 부담감이 없다는 말이다. 그저 편안한 자세로 편안한 머리로 의식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다. 이럴 때 독서는 취미가 된다.

 이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취미를 언급할 때 난 독서를 포함시키겠다. 이전까지는 특기는 드럼연주요, 취미는 글쓰기 정도를 썼다. 하지만 글쓰기와 더불어 독서를 포함하겠다.

 결론. 독서는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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