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정철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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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저축과 투자의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는가? 만약 안다면 재테크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본개념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는 '한번 배워 평생 가는 똑똑한 재테크 습관'이라는 부제에 충실하고 있다. 사회생활한지 얼마 안돼서 여기저기 돈 쓰다보니깐 남아난 것도 없고, 대학시절 학자금대출 받은 것은 아직도 갚고 있는 중이고, 없는 돈이지만 뭔가 안될까 하고 이저저거 머리 좀 굴려보고픈 이들이 봐야할 책이 딱 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놀랍게도 재테크와 관련해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일수록 실현 가능성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닫는 것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독자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단돈 1000만 원이라도 빨리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부자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달콤한 묘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통쾌해했다. 부자마인드 하나로 드라마틱하게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는 스토리에 열광했다." 

  그건 정말일테다. 지금껏 나온 재테크/실용 분야의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았던가. 부자들의 인생살이법이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나는 2년만에 몇 억을 벌었다 등등의 이런 제목들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같은 재테크 관련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달콤함은 조금도 주지 않는다. 정말 쥐어짜란다. 허리띠 졸라매고 아둥바둥 살아 돈 빠짝 모으란다. 다만 옛 어른들 말씀과 다른 것은 그걸 가지고 고스란히 은행창구에 가서 계좌를 만들 것이 아니라 은행을 버리라고, 은행을 버리고 투자를 하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옛 어른의 말씀과 다른 것은 그것 하나이다. 이 마인드를 가지고 이제 어떻게 투자하고 돈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방법을 알려준다. 최소한의 이런 마인드 - 허리띠 졸라매고 졸라게 저축하면서 그 돈으로 투자할 생각 - 이 없다면 더 이상 책장을 넘겨봐야 손만 아프다.

   이 책은 20대후반에서 30대초반을 겨냥하고 있다.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대개 사회생활 이제 몇년 지닌 여자들과 군대 면제 받은 남자들, 그리고 제대하고 막 대학 졸업하고 취업에 겨우 성공한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이야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문제지, 돈 있으면 다 대학가니깐 절대다수가 '학사'를 기본으로 이력서를 꾸리니 대학을 안나온 이들을 여기에서 제외시켰다고 해서 그들을 차별한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런 흐름 속에서는 대학을 안가는 이들이 더 특수한 경우이므로, 그들에게는 또다른 인생설계법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재테크 마인드와 몇몇 방법들은 실제로 내가 머리 속에 생각해놓고 있는 바였다. 그간 신문을 보면서 아 나도 이거 해봐야지, 저거 해보면 어떨까, 이런 막연한 그림은 그리고 있었는데, 일단 돈이 없다는 것, 대출금까지 하면 내 통장은 마이너스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본 뒤에도 나는 아직 대출금 때문에 발벗고 나설 수 없는 형편이지만, 최소한 대출금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졌다. 예전엔 아 대출금 언제 갚아, 이것 때문에 안돼, 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대출금으로 생겨나는 이자가 내가 대출금을 갚지 않고 돈 모아 투자해서 얻어낼 수 있는 이익금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돈이 조금 있더라도 대출금을 먼저 갚는 것이 우선이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바로 이런 것이 이 책을 읽은 효과이다. 그래 나 돈없어,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돈이 없어도 조금만 모으면 최소한 100만원만 있어도 투자는 가능하고, 매달 꼬박꼬박 월급들어온다면,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전제하에, 돈이 금방 모일 수 있고, 이걸 가지고 투자연습이 가능하다는 것은 깨달았다. 나는 세대주도 아닌지라 청약어쩌구 가입하지도 못하니, 또 큰 목돈이 있어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통장을 이자주지도 않는 은행통장으로 하지 말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일단 재테크의 첫 발을 밟은 것이라고.

  184쪽 에는 도식이 하나 그려져있다. 나는 이제 어디에 해당되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A에서 J까지의 타입을 나누고, 내가 어디에 해당하는가인데, 나는 E 유형이다. "내 집 마련이 가장 힘든 상황이다. 종자돈 모으기와 청약통장 만들기를 하루라도 빨리 병행해야 한다." 며 일단 청약통장을 준비하라 하지만 난 세대주가 아니라구우우. 이거 가짜로 어떻게 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데 나는 대출금이 먼저인걸. -_- 아 오늘 대출금 나가는 날인데 확인해봐야겠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읽은 후에도 변함없는 사실은 내가 '재테크를 하기에는'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지만, 재테크 마인드는 생겼다. 의욕은 넘친다. 자 이제 허리띠 졸라 졸라. 근데 내일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이브와 크리스마스에는 돈 좀 써주자고. (됐어됐어 그런 마인드가 이미 넌 글러먹었다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특별한 날엔 돈 써야지 맨날 어떻게 아득바득 모으고 있어 써써)

  자 이제 내가 제일 먼저 재테크를 위해 할 일은, 월급통장 바꾸고 대출금 얼른 갚는 것.

 

  잡설.

  아마도 추정컨대 지금까지 내가 돈 주고 구입한 자기계발서적은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21살 이래로, 딱 세번이다. <보물찾기> <남자생활백서>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그리고 굳이 하나를 더 말하자면 철학자 탁석산의 <대한민국 50대의 힘>인데, 이건 분류만 자기계발이지 자기계발이라고 하긴 뭣하기 때문에 패스. 딱 이 세 권은 모두 구입결과 대만족이었다.

  대놓고 나는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등에 반감을 표했지만, 자꾸 이래되면 대놓고 반감을 표현할 수 없다고. 구입한 실용서적들이 100% 만족감을 주면 어쩌자는거야. 분명한 것은 아직도 나는 서점에 깔리는 많은 자기계발/실용서 중 다수가 쓰레기라는 것에는 동의한다는 점  -그치만 그 중 이렇게 잘만 발굴해서 보면, 때로는 그것들이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음으로써 대개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그중 쓰레기가 아님을 증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형 인간>과 같은 안좋은 책들이 나오기 때문에(내가 아침형 인간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 이다. 또다시 그러나, 몇 차례의 이런 선택의 결과로 이쪽 부류의 책들에 대한 전반적인 혐오나 반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앞으로도 자기계발서적을 구입할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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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6-12-2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알아봤더니 월세 들어와있는 집주인께서 원하면 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아직 일단은 대출금이 먼저 인거 같아서요. 대출금 빼고 다음달부터 매달 꼬박꼬박 조금씩이라도 해볼까 생각중여요. ^^

놀자 2006-12-2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재테크 서적 몇권을 봤는데 별로더라구요. 그래서 관심을 끊었는데
이 책은 좋다니 읽어봐야겠어요.^^ 감사~

이잘코군 2006-12-2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자님 / 네 이 책은 괜찮으실 겁니다. 재테크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실치 않으시다면. 다른 것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괜찮은 거.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 갔더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 내용은 별로겠군, 했는데. 하핫. 보고싶어졌어요.

이잘코군 2006-12-2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지 않는 사람님 / 네 이거 재테크 쪽 베스트셀러인거 같아요. 꽤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테크에 대한 마인드와 전반적인 안내가 친절합니다.
 
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10월
절판


이에 나는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에 대한 일종의 보충서인 이 책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 손실에 대한 정보 부족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여러 전문가 집단의 보고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인류의 언어 사상 중대한 순간에 와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죽음은 현실이다. 그게 문제가 되는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 책은 그렇다는 주장을 담고 있따.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 책의 목표는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언어의 죽음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떤 언어가 죽어가고 있는가? 언어는 왜 죽는가? - 그리고 왜 유독 그런 일이 일어나는 듯이 보이는가?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어려운 질문을 다루고 있따. 언어의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응할 방법은 있는가? 대응해야 하는가?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이 특히 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면밀하고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궁극적인 대답은 힘찬 '그렇다'와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11쪽

만일 내가 한 가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라면 내 언어는 의사 소통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미 죽은 것이다. 언어는 말 할 대상이 있을 때에만 정말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은 나 혼자뿐일 때 내 언어에 대한 나의 지식은 과거 내 일족이 사용한 구어의 저장소 내지 기록 보관소와 다를 바가 없다. 만일 그 언어가 문자화 된 적이 없거나 기록된 적이 없다면 남아 있는 것은 그게 전부이다. (그런 언어가 아직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보관소는 보관자가 죽은 지 오래된 뒤에도 계속 존재하지만, 문자나 테이프로 기록되지 않은 언어는 마지막 사용자가 죽는 순간 보관소 또한 영영 사라져 버린다. 하나의 언어가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지 않은 채 죽으면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17쪽

물론 그 가운데 다수는 같은 언어의 여러 방언을 가리키는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별할 때 다른 방향의 어려움이 야기된다. 주어진 이름이 있을 때, 그것은 한 가지 언어 전체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하나의 방언을 가리키는가? 언어 체계가 두 가지 있을 때 이를 두 가지 별개 언어로 생각해야 하는가, 한 언어의 방언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언어학자들의 논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지도 한 세기 이상 지났다. ... 중략 ...
간단히 설명하면, 순전히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가지 언어 체계가 (두드러지게)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면 이 둘은 같은 언어의 방언으로 간주한다. ... 중략 ... 반면에 순전히 언어학적 관점보다 정치, 사회학적 기준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도 있어서, 서로 이해가 가능한데도 별개의 언어로 취급되는 언어 체계도 있다.
... 중략 ...
영어가 세계 공통어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영어의 새로운 변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현재로는 싱가포르 어, 가나 어, 카리브 어, 또 그 밖의 '신종영어'들을 '영어의 변종'쯤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지역에서 정치, 사회적 움직임이 생겨나 이런 영어가 장차 하나의 언어로 '승격'하는 것도 분명히 가능하다. -24-27쪽

언어는 그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죽었다고 표현한다. 물론 기록된 형태로 존재할 수는 있지만,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살아 있는 언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은 말할 상대방이 없으면 유창한지 아닌지를 보여줄 수 없으므로, 하나의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한 명 남았을 때, 그리고 젊은 층에서 배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실상 죽은 것이다. 그러나 두 명 또는 스무명, 또는 200명이 남았을 때는 어떨까? 언어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야 할까? -28-29쪽

각주 밑줄

언어교체는 통상 (개인이나 집단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위기 언어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자주 보게 되는 용어 몇 가지를 더 소개한다. 언어손실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더 이상 사용할 능력이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언어유지는 사람들이 한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특별한 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유지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언어충성은 한 언어에 대한 위협이 인식되었을 때 그 언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관심의 표현이다. -38쪽

문화란 주로 말과 글이라는 언어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죽음으로 인해 언어의 전달이 무너지면 지식 상속에 심각한 손실이 일어난다. 즉, 언어의 다양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우리가 끌어 쓸 수 있는 지식 기반이 낮아지기 때문에 인류이 적응력이 감소하는 것이다.-60쪽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으면서 세계관을 또 다른 훌륭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면 객관적인 취향을 개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T.S.엘리엇) -85쪽

특정 견해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죽은 언어를 분석하고 추론하고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는 소위 지적 훈련 때문이 아니다. 지적 훈련은 다른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그 언어로만 그 견해가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디야드 키플링) -86쪽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흡수할 때 위기 언어에 영향을 끼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에서는 지배 언어를 말해야 한다는 지대한 압력이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이런 압력은 정치, 사회, 또는 경제적 차원에서 행사된다. 보상이나 추천, 또는 정부나 전국 기관이 도입한 법률 등의 형태를 띠는 '하향식' 압력일수도 있고, 소속 사회의 유행이나 동류 집단의 압력 형태를 띠는 '상향식' 일수도 있으며, 또는 부분적으로만 인식되고 이해되는 정치, 사회적, 경제, 사회적 요인들 간의 상호 작용 결과 뚜렷한 방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압력이 어디에서 오든 결과적으로는 - 제 2단계 - 두 개 언어를 병용하는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원래 언어 사용 능력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서 새로운 언어를 점점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알게 도니다. 그러다가 (대개는 급속도로) 두 개 언어 병용 상태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언어가 새 언어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121쪽

우리는 자기 조상의 언어를 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 믿고 또 외관과 행동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토착민 공동체 속에 그렇게나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실제로 일부 보고에 따름녀 언어를 민족 정체성의 유력한 상징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문화에 따라 다른 것 같다. -179-180쪽

언어 교체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증거는 압도적으로 많다. 새로운 문화와 옛 문화는 물론 서로 다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딴판도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 연구가 거의 시작되지도 않은 - 질문은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언어 교체가 일어날 때, 문화의 유지되는 부분과 잃는 부분은 무엇인가? 옛 언어의 어떤 요소들이 중대한 문화손실없이 새 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가? 한편, 옛날이야기는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구연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하고, 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지혜의 많은 부분 또한 새 언어로 설명과 논의가 가능하다. 다른 한편, 번역 과정에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잃게 된다. 새로운 언어는 이야기가 지니는 온기와 정신을 그대로 전달해 주지 못할 것이고, 말의 응수도 잃게 되며, 일화나 농담도 그 재미가 빠져 버릴 것이다. 의례에서 사용되는 표현도 운율과 음률의 무게가 전과 같지 않을 것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 지니는 이런 한계는 잘 알려져 있고 모든 언어에 공히 해당되는 사항이다. 프랑스 어로 번역된 작품을 통해 우리가 프랑스의 삶과 문화, 생각을 대단히 많이 배울 수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위기 언어의 문화적 무게를 그 언어를 교체해 들어가고 있는 지배 언어로부터 일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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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정철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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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무엇보다 현재 지출한 돈이 30일간 수주에서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점은 엄청난 혜택이다. 이 돈을 갖고 주식투자를 해 차익을 챙길 수도 있고, 적어도 결제일까지 지출재금의 이자만큼은 챙길 수 있으니 분명 확실한 이득이다. 하지만 신용카드야말로 재테크 성공의 가장 큰 '괴물'이다. 여러분의 '정상의 경험'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악마'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본성의 나약함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지출한 500만 원이 당장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장점으로 여기기보다 500만원을 추가로 소비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 아니, 카드한도라는 현실적 제약이 없다면 무한대의 소비를 시도할 태세다. 하나의 카드로 만족 못해 결제일을 달리한 3-4개의 카드를 갖고 현금서비스를 통해 순환 결제하는 '카드 돌려막기'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이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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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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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언어들에서 근본적인 것은
그것들이 어떤 것을 기술하는 데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어떤 것은, 어찌 되었는지, 이 세상이다.
늘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매체에
- 안경을 닦는 일에 -
관심을 쏟는 것은 철학적 잘못의 결과다.
(칼포퍼)-7쪽

민족주의적 열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적절한 수준에 머물면, 사회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되면, 지나친 이기주의적 행동이 개인에게 해롭듯이, 정치적 짐이 되어 오히려 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해친다. 자연히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을 잘 쓰는 길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시민들의 자아를 넓히는 데 이용하는 것일 터이다. 민족주의는 궁극적으로 확대된 이기주의이므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지닌 '나'라는 개념의 외연을 넓히는 데 쓰는 것은 자연스럽다.
... 중략 ...
동해의 이름을 조선해로 바꾸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보다는 그렇게 조그맣지만 실속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일본에게 앗긴 것들을 되찾는 길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년 전 정이 선생이 갈파한대로, "마음에 사무쳐 목숨을 버리기는 쉽지만, 조용히 의로움을 이루기는 어렵다." -45-46쪽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를 큰 가치로 여기고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적 강제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민족적 특질들에 따라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그것은 나라를 이루는데 주력이 되는 민족에 속하는 개인들이 소수 민족들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더 큰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민족이 정의하기 어렵고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민족을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자들에겐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조화시키는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아니 한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그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기 이익 추구를 배척하지 아니 한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리라고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족국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런 이익의 추구가 다른 민족국가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만을 둘 따름이다. 거기에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두 이념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65-66쪽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민족구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고 따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국익'이란 말은 궁극적으로 민족국가를 이룬 개인들의 이익 집합을 나타내는 '간략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들의 함수다. -66쪽

세계가 점점 긴밀하게 통합되고 서양과 우리 사회 사이의 지식의 물매가 여전히 싼 터라, 번역투는 점점 우리 문체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점점 닦여가면서, 그것은 우리 언어 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간단한 예로서, '한잔의 술'은 번역투고 '술 한잔'이 우리 말투이므로, 전자를 쓰지 말자는 주장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자에선 '한잔'에 그리고 후자에선 '술'에 강세가 주어진다. 따라서 그 둘을 다 쓰되 구별하는 것이 우리 말을 기름지게 하는 길이다). 실은 번역투는 우리 언어의 생장점의 한 측면으로 진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24-125쪽

궁극적으로 영어가 단 하나의 국제어로서 거의 모든 부면들에서 쓰일 것이다. 반면에 민족어들은 점점 활력을 잃고서 차츰 사라질 것이다. 현존하는 3천 개 내지 6천 개 가량의 언어들 가운데 백 년 안에 반이 쇠멸하리라는 추산도 나왔다.
...중략...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런 상태가 민족어들의 완전한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사라지기엔 민족어들은 너무 큰 지적 자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민족어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사용되고 보존되고 계승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민족어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 언어'들로 남을 것이다. -173-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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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3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7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에서 살다 - 바보 이반의 산 생활을 적은 생명의 노래
최성현 지음, 허경민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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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로 익히 알려진, 바보 이반 최성현의 또다른 삶 이야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산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스무해가 지났다. 이 책은 산 스무살이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홀로 그곳에 멀찌감치 문명과 떨어져 살며 무슨 즐거움을 찾고자 했을까.

  사람들은 자주 내게 이렇게 묻는다.
  "무슨 재미로 산에 살아요?"
 
 그 하나는 나를 찾아오는 풀과 나무, 새, 벌레, 짐승 등과 만나는 재미다. 움직일 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어떻게 내게 온다는 것인지 짐작이 안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잘 살펴보면 뜻밖에도 많은 나무들이 움직인다. 제 힘으로, 혹은 남의 힘으로.

  책 한장 한장에는 최성현씨가 스무해 동안 홀로 산에 살며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기록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순수하게 산살이를 지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우리가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즐거움을 느낀다. 개구리밥과 물옥잠, 뽕나무 아래 찾아온 밤나무 등등 나라면 무심코 지나칠 만한 것들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뽕나무를 찾았더니 밤나무가 나오고, 밤나무를 찾았더니 또 무엇이 나오고, 자연은 그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자연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작은 어느 것 하나를 지나쳐버리기 때문이다.

  매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반복되고, 뜨거운 여름살이, 추운 겨우살이 준비하는 것도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결코 산 살이에 실증을 내지 않는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삶이 무엇이 그리도 좋을까. 하지만 그 시골 홀로 집짓고 사는 그곳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밖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보고 있노라면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겉으로 별다른 일이 없다고 하여 따분하고 심심한 인생살이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그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살며 삶의 철학을 깨닫기도 한다. "환경문제는 어느 일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인 것이다. 공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공장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과학자도, 그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정부도, 그것을 사서 쓰는 소비자도 잘못인 것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사서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놈이 나쁘다'라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저도 사실은 이렇게 잘못된 것이 있더군요' 라는 식의 자기 성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고발은 쉽고 고백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는 고발의 방식이 많다 하지만 고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고발과 고백은 차원이 다르다. 고발은 적을 만들지만, 고백을 통해서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고백은 자기를 열고 상대방을 연다. 우선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때때로 만나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

  사물을 보는 깊이있는 시각은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함으로써, 홀로 절에 틀어박혀 도를 닦으면서도 길러지는 것이지만, 최익현과 같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면서도 -그것이 벌써 이십년이지 않은가- 길러진다. 젊은 날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그때 그가 공부한 철학적 지식이란 것과 그가 이십년 동안 산에서 살며 자연스레 삶 속에서 체득한 인생철학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양서를 읽거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을 기르고, 결국 나를 돌아보기 위함일진대, 바보 이반 최익현은 그것을 산살이를 통해 길러냈다.

  산으로 가는 산책은 작은 출가와 같다.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자꾸 걷는다.
  본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들은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말한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
 

  그는 이렇게 매일매일 작은 출가를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산책길에 본 것에서, 들은 것에서, 말한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은 떨어져나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매일매일이 그에겐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새로운 인생이다. 오늘 밤나무를 보고 느낀 것과 내일 똑같은 밤나무를 보고 느낀 것은 같지 않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을테니까. 이렇게 하루를 지내다보면 어느새 밤은 어둑해지고, 다시 또 따스한 햇살이 마당을 비춘다. 마당이랄 것도 없다. 여기 모든 곳이 내 집이니. 하지만 또 내 집이 아니다. 이곳은 그저 내가 머물다 가는 곳이니.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낀다. 정말 존경스럽고 부러운 삶이지만, 결코 문명과 세속이 찌든 내가, 또 매일매일 복잡하게 돌아가는 이 곳이 싫지 않은 내가, 이곳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세속을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살며 대자연의 이치와 신비로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 한 구석에 있으나, 나에겐 그것은 언제고 구석에나 머물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한 없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 오늘의 뉴스를 뒤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잠시 책을 읽으며 꿈을 꾼 듯 하다. 여기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바삐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 잠시 마음의 휴식을 가져다준 책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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