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SERI 연구에세이 14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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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은 시인이자  소설가이지만 실상 시인이나 소설가로서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의 업적과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은 몇몇 지식인들을 거쳐 복거일에 닿게 해주었으며, 복거일은 내게 미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식인이 되었다. 대개 개인에 따라서 지지, 동의, 공감하는 지식인과 이와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지식인으로 나눌 수 있다면, 복거일은 그 어느쪽도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반대에 위치되는 지식인일 것인데, 그의 의견에는 반대할지라도 그의 문제제기는 들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는 기존에 다른 지식인들이 주장하던 것을 반복해서 언급하지 않고, 항상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또한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인들 사이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점을 지적하며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관점을 취한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선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거센 물살이 되었다. 활기찬 자본주의 체제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난 한 세대에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런 사정은 반어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반어를 느긋한 마음으로 음미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러기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우리의 안녕과 복지에 너무 큰 위험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책이다. 복거일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의 가장 큰 비판은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며, 이를 제대로 옹호해야만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정의로움과 도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효율성을 언급하며 자본주의를 옹호했으며, 복거일은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기에 '정의로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정의로운가? 자본주의 이전에 "그것을 떠받치는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을" 밝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복거일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재산권의 정의로움을 밝히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 제도에 바탕을 두었고사유재산 제도는 재산권을 통해 세워지고 유지되므로, 재산권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만일 재산권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른 면들에서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재산의 형성에 대한 공헌에 바탕을" 두고 있고, 재산의 형성에 공헌한 이들이 공헌 정도에 따라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며, 그것 말고 우리는 다른 어떤 기준도 생각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노동가치설에 근거를 두며, 노동으로부터 재산권이 나온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는데, 사회주의의 대표주자인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이 논파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재산은 그것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옳다는 사회주의의 근본적 가정" 뿐 이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더 잘 옹호해주고 있다 한다.

  복거일이 이 책에서 펼치는 자본주의 옹호론의 구도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기본은 사유재산권에 있으며, 사유재산권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우며, 고로 자본주의 또한 정당하다는 식이랄까. 그러나 중간에 좀 더 보충되고 언급되어야 할 것이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에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뽑아내는 부분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복거일은 평등과 정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불과 30-40년 전의 롤스와 노직 등의 논쟁과 관련해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는데, 복거일은 노직의 롤스비판을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롤스의 노직에 대한 반박을 그 근거로 삼는다면 복거일의 주장은 쉽게 논파당한다.

  평등에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있으며, 기회의 평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결과의 평등에는 다수가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거일은 기회의 평등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버트 노직의 <무정부, 국가, 그리고 이상향>에서 "기회의 평등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존재하는 것은 특정한 사물에 대한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권리들 뿐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기회의 평등이 정당하다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라는 것이다.

  잠시 이 책을 벗어나 롤스와 노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복거일은 책에서 노직의 입을 빌려 롤스를 비판하면서,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연결짓는다. 그러나 롤스 비판자인 노직의 눈에는 롤스의 이론이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노직이 말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이익을 증진하는 동안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으며, 고로 자신이 증진한 이익을 타인에게 나눠줄 정당한 근거로 없고 궁극적으로 누진세와 같은 세금의 적용은 재산권에 대한 배타적 권리의 박탈인 동시에 세금에 해당하는 양만큼 국가가 개인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롤스에 따르면 개인의 이익 개선이라는 부분이 순전히 개인 활동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타자와 연관되어 있다. 후생경제학자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차등원리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근거를 언급한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인데 "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분배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어느 한 사람의 효용도 증가시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고로 복거일이 앞서 자본주의에서 노직의 입을 빌려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을 옹호한 부분은 롤스와 센에 의해 논파된다. 복거일은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비판에 대해 자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적극 옹호해보려 했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 진행되었던 서양에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논쟁 안에 다 들어있던 내용이라 더 언급하거나 옹호할 꺼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롤스와 노직의 논쟁에 대해 공부 중인지라 더 깊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한 학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데 그친다는 점에서 그다지 효력이 없다고 본다.

  이 책은 매우 얇지만 읽기는 어렵다. 가볍게 읽으려고 했다간 큰 코 다친다. 이 책의 목차 순서상 중간 부분에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잘 모르는 이들이 등장하는데다가 생소하지 않은 언어로 생소하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지라, 그치만 그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은 아니라는 판단에 꼼꼼히 읽지 않고 넘어갔다. 분량에 상관없이 어렵게 쓰여진 책에 대해 꼼꼼히 읽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자신없으나 이 책에서 복거일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논증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주로 생각하고 언급하는 것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한 가지, 복거일은 이 얇은 책자 안에서도 꽤나 많은 인용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 인용구들이 전부 다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짧게 짧게 끊어 인용하거나 복거일이 본인의 입을 통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책의 난이도만 높아지게 길게 늘어뜨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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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2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소 간명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므로 경제적 문제에 평등은 본성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의 평등은 역설적으로 상대적으로 못 가진 계층의 이기심의 발로이지요..
인간의 이기심을 국가 제도로 억제하면 궁극적으로 "북한"이 됩니다.


드팀전 2007-01-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거일은 흔히들 자유주의의 전사로 이야기하지요.이 책을 보진 않았지만 그 도상에 놓여 있는 것 같네요...그리고 한사님의 평등론에 대한 간명한 생각에는 절대 동의할수 없습니다..푸웃.그러고보니 많이 보던 어떤님의 선악론과 유사하네요.그냥 '잘난척 하지말고 제 살길 잘 찾아라'가 늘 그의 결론이었는데..

이잘코군 2007-01-25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 음 전 아직 확실한 입장이나 시각이 잡히진 않았지만,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강점도 있지만 그 폐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논쟁이 되는 것이겠고, 그 와중에 폐해를 수정할만한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겠죠. 사회주의적 요소가 꼭 아니어도요. 좀 더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드팀전님 / 네 복거일의 책을 계속 보고 있는데, 논리는 같죠. 자유주의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 관점에서 보는 사안들을 바라보죠. 이번에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구입했습니다. 이것도 함 봐야겠어요.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SERI 연구에세이 14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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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자본주의의 높은 효율만을 내세우는 주장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변호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점을 주장할 수 없으면, 그래서 정의를 내세우는 자본주의의 반대자들에게 도덕적 고지를 내주면, 어떤 다른 가치들을 내세워도,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주장은 밀릴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바로 그 길을 골랐다. -12쪽

자본주의와 그것을 떠받치는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또렷하지 않고 길고 어려운 설명이 따라야 비로소 밝혀질 수 있다. 반면에, 평등을 내세우는 주장들은 직관적으로 옳게 여겨진다. 자본주의의 반대자들은 자본주의의 변호자들보다 늘 목청이 높았고 훨씬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는 사정이 이상하지 않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자본주의가 효율적일 뿐 아니라 정의로운 까닭을 밝히는 일은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렇게 한 뒤에야 우리는 자본주의를 적대적 세력으로부터 지킬 수 있고, "제때를 만나 태어나기 위해 베들레헴을 향해 비척거리는 사나운 짐승"이 이땅에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터이다. -13쪽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사실은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의가 사람 마음에 자연스러운 무엇으로 다가오리라는 생각은 합리적이다. 자연스러움이 정의의 핵심적 특질들 가운데 하나임을 명확하게 증명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무엇이 정의로운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정의감이 진화의 산물이므로, 그런 사정은 필연적이다. -14쪽

자본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을 밝히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재산권이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 제도에 바탕을 두었고 사유재산 제도는 재산권을 통해 세워지고 유지되므로, 재산권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만일 재산권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른 면들에서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정의로울 수 없다. -22쪽

최종결과 원칙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구조적 원칙들 가운데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 평등이다. 그래서 그들은 평등한 분배가 가장 정의로운 분배라고 여긴다. 자연히, 자본주의를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결정적 결점으로 꼽는다. 그리고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을 보다 잘 이룬다는 점을 들어 대안적 체제들을 내세운다.
그러나 평등은 좀처럼 모습을 또렷이 드러내지 않는 개념이다. 그래서 그것은 정의하기가 무척 어렵고 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들을 뜻한다.
그런 혼란을 줄이려면, 먼저 평등을 기술적으로 쓰는 경우와 당위적으로 쓰는 경우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사람들의 특질이 평등하다는 얘기와 사람들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구별해야 한다. -53쪽

로버트 노직은 <무정부, 국가, 그리고 이상향>에서 "기회의 평등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존재하는 것은 특정한 사물들에 대한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권리들 뿐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기회의 평등의 정당성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다.

"모든 사람들이 기회, 생명 등등과 같은 것들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과 이 권리를 강제하는 것에 대한 주요 반론은 이 '권리들'이 사물들과 물질들과 행동들의 하부구조를 필요로 하며 다른 사람들이 이것들에 대한 권리들과 자격들을 지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권리의 달성에 다른 사람들의 권리들과 자격들을 지닌 사물들과 행위들의 어떤 이용들이 필요하면, 누구도 그런 권리를 지니지 못한다. 특정한 사물들(저 연필, 그들의 몸 등등)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권리들과 자격들 그리고 그들이 이 권리들과 자격들을 행사하기 위해 하는 선택은 어떤 개인의 외부 환경과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확정한다. [...] 특정한 권리들의 이 하부구조와 부딪치는 권리들은 존재할 수 없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어떤 깔끔하게 다듬어진 권리도 이 하부구조와 양립 불가 관계를 피할 수 없으므로, 그런 권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들에 대한 특정한 권리들이 권리들의 공간을 채워서 일반적 권리들이 어떤 실질적 상태로 존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노직, 1974) -55-56쪽

반면에, 대안적 체제들에선, 공산주의든 국가사회주의든, 에드워드 윌슨이 "평등의 이념과 야만적 강제의 편리한 동거"라 부른 질서가 탄생했고, 그 질서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임이 드러났다. 그러한 질서 속에서,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려면 강제적 소득 이전이 필요하고, 강제적 소득 이전을 위해선 강력한 국가 권력이 필요하고, 그런 권력은 소수 정예 집단에 집중되고, 그렇게 소수에 집중된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하므로, 결국 권력을 쥔 정예 집단만 잘 살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억압을 함께 맞는다.-66쪽

대안 공동체들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잘하면, 복잡하고 경쟁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이 잠시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피난처 노릇은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 피난처가 사소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대안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렵다.
보다 일반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안'이란 말은 너무 가볍게 쓰인다. 현존하는 관행, 질서, 풍습, 규칙, 법, 기구, 공동체 또는 사회에 대한 '대안'을 선뜻 내놓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것들이 많은 대안들 가운데서 가장 나은 것들로 판명되어 사회적 진화를 통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대안'이라고 제시된 것들은 거의 모두 이미 오래전에 시험되어 버려진 것들이다.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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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전쟁 영화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꼭 반드시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너무나 흡사한 스토리 라인과 격전과정, <태양의 눈물>은 2001년 개봉한 <블랙호크다운>과 쌍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블랙호크다운>이 개봉했을 당시 흥행성적이 박스오피스 1위로 8주간 지속되었던 반면, <태양의 눈물>은 첫주 2위에 올랐으나 이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블랙호크다운>을 전편이라고 봤을 때, 후편인 <태양의 눈물>은 소말리아 대신 나이지리아를 택했을 뿐 스토리의 목적은 변함없다.



* 레나 켄트릭스 박사와 그녀의 환자들. 저 아프리카 사람들은 알까. 이 영화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 엔딩 크레딧에 이름 한번 올리지 못할 사람들이지만 저 사람들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작사(정확히는 제작사와 미국방부)는 그들에게 무엇을 대가로 영화에 출연해달라 말했을까. 음식일까 아니면 의료품?

  레나 켄트릭스 박사를 구출해오는 것이 임무였고, 임무를 무사히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나의 애원과 두고 온 마을의 참혹한 실상을 하늘에서 보게 된 워터스 대위는 헬기를 돌려 함께 먼 길을 걸어온, 그대로 내버려두면 반군에 의해 살육당하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서기로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나중에 판단하자,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이상 저들을 두고 갈 순 없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카메룬 국경까지 우리는 함께간다.

  함께 먼 길 떠난 레나 일행 속에 누군가 첩자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반군의 추격군이 잠도 자지 않고 우리를 추격한단 말인가. 그들이 쫓는자 누구인가. 레나 박사를 구하기 위해 파견된 네이비씰은 이제 어느덧 나이지리아의 암살당한 대통령의 외아들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또 함께 가는 저 많은 사람들을 살려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위에서 명령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대령의 명령을 어겨가면서 워터스 대위는 그들의 유능하고 충실한 부하들을 이끌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



* 오른쪽에 워터스 대위역의 브루스 윌리스. 그의 똥씹은 듯한 표정은 참으로 다양한 영화에 그의 얼굴을 들이밀게 한다. 개인적으로 브루스 윌리스에 대해서는 (어디서 기원했는지 모를)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출연하는 매 영화마다 그의 똥씹은 같은 표정을 보는건 이제 좀 질렸다. 그는 왜 한결같이 똥씹은 표정일까. 한 가지 표정으로 다양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55년생인 그도 이제 나이 꽤나 먹었는데 아직도 몸을 던지는 액션연기가 가능하다니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싶다. 나는 저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 전쟁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대위님을 따르겠습니다. 저들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짐짝 취급하기 싫습니다, 그들이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면 저도  삽니다, 아 이 눈물 겨운 현장이라.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먼 이국 땅에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다니. 

  정말, 영화 보는 내내 네이비씰 대원들의 그들에 대한 동정, 애정, 연민을 느낄 수 있었고, 심지어 눈물까지 흐른다. 무참히 도륙당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과, 아이는 내던져져있고, 엄마는 반군에게 가슴을 도륙당한 채로 목숨만 붙어있다. 누구는 휘발유에 불태워지고, 누구는 질질 끌려다니며 강간당하고, 누구는 칼에 찔려 죽고, 누구는 반군 앞에 춤추며 죽어간다. 영화는 선악의 구도를 확실하게 감잡게 해준다. 무참히 주민들을 살해하는 반군은 악의 화신이요, 소수의 인원으로 그들을 처단해 주민을 구출하며 눈물 흘리는 미군은 정의의 사도다. 아 진짜 나도 영화 보면서 눈물 흘리지만 내 눈물이 역겹다.  

   영화를 볼 때 꼭 알고 봐야 할 것 하나는 2001년말 선보인 <블랙호크다운>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대 테러전을 수행하기 바로 직전에 개봉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2003년 초  <태양의 눈물>은 미국의 이라크 전을 앞두고 개봉되었다. 이 두 영화의 의미는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알리고 핍박받는 그들을 구출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그들 국가에 대한 전쟁선포를 정당화하는데 있다. 두 영화 모두 미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만들어진 영화이며, 아프리카에서 인민들을 이끌고 반군에 저항하는 스토리는 마치 미국이 정의의 사도인양 묘사되고 있다. 순수한 전쟁 영화로서 볼 영화는 절대 아니다. <태양의 눈물>은 2001년 당시 <블랙호크다운>으로 인해 대 테러전의 국민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판단, 이라크 전을 앞두고 다시 한번 같은 수법으로 지지율을 상승시키려는 미 부시정부의 전략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영화를 통해 정당화시키고 있다. 남의 땅에서 내정간섭한다는 반론은 그냥 그렇게 넘긴다쳐도, 미군이 정말 그들이 주둔하며 전쟁을 치룬 그 국가들에서 영화와 같은 외딴 민족에 대한 동정심과 애정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지 의문이다. 영화 속 반군처럼 젊은 여자애들 강간하지 말고, 너희들 앞에서 춤추며 쇼하라고 하지 말고, 아무런 이유 없이 두건 씌워놓고 러시안룰렛 놀이 하지 말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살해하지나 말아라. 한참 이라크 전쟁이 진행 중일 때 언론을 통해 사진으로 전해진 영국군과 미군이 행한 그 참담한 실상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 속 반군의 모습은 그 사진의 영국군과 미군의 모습과 별로 다를 바 없던데.

 
p.s. 순수하게 즐기는 전쟁영화로 봤을 때 - 이 영화에 담긴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빼놓고 본다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 <태양의 눈물>은 <블랙호크다운>보다는 확실히 떨어진다. 사실감과 긴장도와 눈물 자아내는 극적장치면에서도.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순수하게 즐기는' 전쟁영화로 봤을 때 합격점을 줄 만하다. <태양의 눈물>의 안톤후쿠아 감독과 브루스 윌리스 주연은 <블랙호크다운>의 리들리 스콧 감독과 이완 맥그리거, 에릭 바나 주연보다 캐스팅 면에서도 떨어지지만, 두 영화만을 놓고 비교하지 않고, 모든 전쟁영화를 통틀어 본다면 둘 모두 만족스럽다. 재밌는 사실 한 가지는, 한스 짐머라는 음악감독이 두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아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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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2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케이블 TV에서 몇차례 방영하더군요.
말씀처럼 선악의 구도와 결말이 뻔한 영화이므로 몰입이 좀 어려웠답니다.

 



  (이 영화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보고픈 분들은 제목 빼고 다 잊어. 아예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지 말 것)



  "로맨스라고 하기엔 애틋함이 부족하고, 스릴러라고 하기엔 스릴이 부족하고" 

  감독은 미리 예상했던걸까? 관객들의 반응을. 영화 초반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레이첼은 잘 나갈 거리도 없는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곤 곧 팩스가 도착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남편의 글에 대한 화답이 온 것.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스릴러라고 하기엔 스릴이 부족하고." 레이첼은 말한다. "스릴을 더 넣어서 다시써봐" 돌아오는 남편의 대꾸 "피를 더 넣으라고?" 

  이미 영화 초반의 두 사람의 대화는 아직 한참 남아있는 이 영화의 뒷부분을 미리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어지는 아이의 죽음과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레이첼, 그리고 그다지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그녀의 남편. 레이첼은 친구 샤론의 권유에 따라 그녀가 구해다준 어느 외딴 섬마을의 경관 뛰어난 하얀집을 얻게 된다. 이곳에서 글이라도 쓰면 죽은 아이도 잊고 책도 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 이 남자배우 꽤 멋있다. 스코틀랜드 태생 한스 매디슨이라고 하는데 <캐논 인버스> <아발론의 여인들> <데스워치> 에 나왔었다고. 내가 <캐논인버스>는 봤는데 기억이 안나네. 뭐 그렇지. 알고 봐야 아는거지, 모르고 보며 모르지. 그의 얼굴을 두고 올랜도 볼룸과 브래드피트를 닮았다고 하면 말 다했지.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도 모르고 봤던지라 더욱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다정한 남편과 아내의 대화에서, 그리고 비록 아이가 죽었지만, 외딴 섬마을로 들어와 지난 일을 잊으려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곳에서 만난 등대지기 앵거스와의 만남, 그리고 절벽 아래 바위 사이로 툭툭 파도치는 소리와 해변을 거닐며 뛰어다니는 말들의 모습에서 '스릴'과 '공포'를 느끼지 못한 것은 비단 나 뿐이 아닐 것이다. 장르를 모르고 본 나는 기대이상의 로맨스와 스릴을 만끽했지만, 장르를 알고 본 사람들은 기대 이하였을 듯 하다.

  무언가에 대한 기대는 본디 그것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보다 더 큰 만족감으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엄밀히 '만족'이란 기대 이후의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꽉참과 비움의 느낌일 터지만, 기대는 이미 나의 사물에대한 만족감을 형성시킨 채 만들어진다. 로맨스를 기대했던 이도, 스릴러를 기대했던 이도 이 영화에선 어느 것에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맨스도, 스릴러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로맨스에서도, 스릴러에서도 기대치 않은 만족감을 느꼈다.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이란 그런 것이지.

  영화 개봉에 앞서 로맨스로도, 스릴러로도 홍보를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고, 두 가지 모두로 홍보를 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없다. 극장 개봉영화로서 부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불운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전혀 모르고 봤다면 괜찮지만, 이미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으므로 영화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말 것. 스토리, 배우, 감독 등 모든 면에서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데미무어에 대한 열광적인 팬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영화. 로맨스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기대 이하 일 것이다"



p.s. 보너스 헐리우드 엿보기

 

* 데미무어. 62년생인 그녀는 78년생인(나보다 한살 밖에 안많아) 15살 어리다는 애쉬튼 커쳐와 2005년 9월 24일 결혼했다지. 벌써 시간이 횟수로 3년째 접어들었네. 62년생이면 40대 중반쯤 된거 같은데 나이먹고 나이먹은 티가 별로 안난다. 그러니 한참 연하남과 스캔들나고, 결혼까지 하지 않겠어. 배우로서도 아직 그녀는 한창이다.  



* 데미무어와 브루스 윌리스의 딸이라지. 루머 윌리스. 88년생으로 엄마 아빠와 같은 직업에 종사중이다. 헐리우드 영화배우로서 재밌는 사실은 그녀가,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인 브루스 윌리스와 같은 영화 <호스티지>에 출연했다는 사실. <호스티지> 영화 봤지만 얘가 어디에 나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근데 또 재밌는건 지금의 아버지인 애쉬튼 커쳐는 78년생이니깐 얘랑 10살 차이라는거네. 뭐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로맨스 좋지만 -_- 이건 좀... 근데 엄마닮았으면 이뻐야되는데 안이쁘다. 아빠 닮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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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비 무어가 많이 날씬해 졌군요.
사진이 좋습니다. 하하

 



* 스포일러 경고

  만나고 탐색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탐색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연속된 삶'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어느날 그 혹은 그녀와 어느덧 잠자리를 함께 하는 사이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잠자리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 혹은 그녀가 내 마음 안에 자리잡는 것이 사랑이려니.

  여자들은 말한다. "왜 남자들은 한결같이 지가 좋아서 만나고선 먼저 차버리는거야?" "응 옛날에 목장에 한 마리의 숫소와 구십구마리의 암소가 있었는데, 이 숫소는 구십구마리의 암소들과 한번씩 돌아가면서 잠자리를 하고는 거뜰떠도 보지 않는거야. 그래서 어떻겠어? 목장 주인은 옆 목장의 숫소와 자기네 숫소를 맞바꾸기로 한거야. 그럼 새로 온 숫소는 다시 또 구십구마리의 암소와 잠자리를 하지 않겠어?" 소위 이것이 암소이론이렸다. 암소이론에 따르면, 남자는 결코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며, 구애를 통해 사랑을 획득한 남자는 그녀와의 달콤한 시간을 보낸 뒤 걷어차버린다. 어디까지나 암소이론에 따르면. 어떻게 사람을 소에 비교할 수가 있지, 라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동물과 다르다는 생각은 여기서 그만. 인간이 동물인건 맞잖아. 인정해야지.




음무우~ 음무우~  얘(↑) 암소

  방송국 토크쇼 섭외담당 제인 굿웰은 새로 온 방송국 PD 레이에게 반해버렸고, 둘은 금새 만지고 물고 빨고 하는 사이로 변했지만, 레이는 곧 헤어진 여자친구에게로 돌아가고, 제인은 차였다. 둘이 함께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간다고 살고 있는 집 방뺐는데. 남자친구한테 차이고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불행한 일은 홀로 오지 않는다지. 그러나 구원자는 나타나는 법. 방송국의 바람둥이 PD 에디는 자기네 집에 방이 비었고, 여기로 이사오라는 제안을 한다. 날 차버린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의 집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에 '승락'버튼을 누르는 쾌감이라니. 레이에게 차인 제인은 이제 자신이 남자들에게 차인 이유를 스스로 합리화시키기 시작한다. 암소이론으로.



* 제인(애슐리 쥬드)과 레이(그렉 키니어).
  두 사람이 있다. 신문만 보고 있는 남자와 그런 그를 향해 웃음지으며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자.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과정이야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사람들은 언제나 겪는 과정이거니와, 때로는 그것이 결혼이라는 안정된(?) 사회적 제도 속으로 들어가 둘만의 영원한 사랑을 '법' 아래 약속하기도 하고, 때로는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날 차버린 그 혹은 그녀로 인해 폐인생활을 하기도, 그놈시끼는 못된 놈이라고, 뭐 그런 못된 년이 있냐고 오랫동안 연락끊었던 친구녀석들을 불러내어 술마시며 주정하기도 한다. 끝까지 홀로임을 자처하지 않는 이야 누구나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만, 누구나 다 영원한 사랑으로 골인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영원한 사랑이란 것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사랑의 시소게임에서 위로 붕 떠버린, 상대방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기합리화할 거리를 찾는다. 아 쟤는 어차피 나랑 성격이 너무 안맞았어, 쟤는 돈도 없었는데 뭐, 어차피 우리는 헤어질거였어, 라고 상대방을 꼬투리 잡아 이별의 통보는 '먼저'와 '나중'의 차이였을 뿐 결과는 같았을 거라 믿는 이와, 나같이 잘해준 여자가 어딨다고, 나같이 이쁘고 성실하고 자기만 사랑하는 여자가 어딨다고 나를 차버릴 수가 있어, 어떻게 지가 감히, 라고 자기자신의 모습에서 '사랑의 구조적 결함'을 찾지 않고, 상대방에게로 떠넘기는 이도 있는 법. 이별을 받아들이는 유형도 가지가지. 자기자신을 깎아내리며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오로지 내 잘못이라고 스스로에게 이별의 원인을 부담짓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지만, 자기자신에겐 문제가 전혀 없고 오로지 저 미친놈 때문이라며 저 못된놈 때문이라며 상대방에게 이별의 원인을 돌려막는 짓도 바보같은 짓이다. 전자와 후자 중 한 가지를 택해야만 한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르지만.



* 야해. 끈나시에 끈팬티 바람으로 있는 제인(에슐리 쥬드)과 팬티 바람으로 있는 에디(휴 잭맨). 그 차림으로 있는데 뭔 일 안나는 니들이 더 이상해. -_-

  영화 속의 제인은 이별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이별의 원인을 레이에게 뒤짚어씌운다. 저놈시끼가 못된 놈이라서 나를 꼬드겨놓고는 단물 쪽쪽 빨아먹고 이제 지겨워져서 버린거지 그런거지, 라고. 65세의 마리 찰스 박사로 가장하여 암소이론 이란 칼럼으로 각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왜 숫컷들은 죄다 그 모냥이야. 암컷들을 사랑한다 할 땐 언제고 그냥 내다버리고는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다니.

  부정하지 않겠다. 나의 과거를 반성합니다. -_- 나의 연애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던(솔직히 짧지) 것으로, 한참 좋은 시간 보내며 그녀로부터 사랑을 받던 그 시기에,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나를 반성합니다. 제인의 암소이론에 따르면, 나는 새로운 암컷을 찾아 떠난 못된 숫컷일 뿐, 어떤 말도 이별의 이유에 대해 대답해주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영화는 암소이론을 정당화시키기 보다는 암소이론은 그저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상처받은 한 여자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것으로 결론나니, 그렇담 나는 비난의 화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건가?

   제인은 다른 남자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나, 그에게서 버림받았을 때나,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조언을 하고 아껴주던 바람둥이 에디에게 사랑을 느낀다. 사랑에 상처입은 한 여자를 보듬어줄 수 있는건 곁에서 위로해주던 또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날 때 그가 그 자리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 그렇다면. 영화의 또다른 결론은, 아픔을 겪고 있는 여자가 잘 넘어온다? -_-v 남자의 꼬시기 전략의 대상은 갓 이별을 통보받고 울고 있는 여자. 어쩜 바람둥이 에디는 그것을 너무 잘 안 것이 아닐까.'바람둥이'자격이 있다면, 전략적으로 그러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을지도.

  사랑이 불현듯 다가오듯 헤어짐도 불현듯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랑의 달콤한 첫키스는 반갑지만 갑자기 다가온 이별의 첫키스는 반갑지 않다. 하지만 사랑이 오듯 이별도 온다. 사랑이 온다고 이별도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 원인에도,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된 원인엔도, 내가 그에게 이별을 선고한 이유에도, 그가 나에게 이별을 선고한 이유에도, '누구탓'은 없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탓'은 있다. '똑같이 똑같게'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똑같이 양쪽모두에' 존재한다. 사랑이 이별로 둔갑한 순간 그에게나 나에게나 헤어짐의 모든 것을 전가할 필요 없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혹은 그와 나에게 이별의 원인이 있을지니. 사랑에 '두 사람'이란 조건이 필요하듯 이별에도 '두 사람'이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 더.



* 애슐리 쥬드. 날씬하고 몸매 이쁘고 입술이 매력적인 이 여자. 그룹 U2의 보노보노가 '피플'지를 통해 에이즈 퇴치 운동 ;RED'에 가입하도록 요청하여 청년에이즈 퇴치 운동 본부에 속해 니카라구아 온두라스 과테말라에서 활동중이라 한다. RED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과 함께 만든 브랜드로 여기에서 올리는 수익을 에이즈 퇴치 기금으로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지칭한다. 얼굴과 몸매 만큼이나 이쁜 짓 하네.

p.s.

근데 한 직장 한 부서내에서 여기저기 붙어먹는건 너무했다. -_- 팀원도 네명인가 다섯명 밖에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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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1-2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슐리 쥬드의 경우 분명 매력적인 배우임에는 틀림없으나.....
왜이리 나오는 영화마다 영 꽝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속에 책 2007-01-2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애슐리 주드 참 좋아해요..사실, 이 영화외에는 그닥 큰 인상을 준 영화가 없긴 하지만. 아무튼, 조오기 위에서 애슐리랑 휴랑 저 차림에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나긴요..벌써 눈빛이며, 마음속이며 저기서 게임 다 끝났더만요..ㅎㅎ

이잘코군 2007-01-21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 그러게요. 나온 영화들은 죄다 꽝이죠. -_-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이 없는건지, 안들어오는건지.
데이드리머님 / ㅎㅎ 먼일이 일어나긴했죠. 근데 너무 오랫동안 암일도 안일어났잖아요. 같이 살면서. ㅋㅋㅋ

비로그인 2007-01-2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오브 비홀더, 외에는 잘 찍었다 싶은 영화가 없었지만, 아이 오브 비홀더는 애슐리 주드 없이는 안될 영화였죠.

이잘코군 2007-01-2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쥬드님 그 영화는 아직 못봤어요. 근데 쥬드님과 애슐리 쥬드의 '쥬드'는 같은 쥬드인가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