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도 그보다 더 튼튼한 방패는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입시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이에 대한 대비책은 항상 생겨난다. 논술시험이 본고사 식으로 나오자 논술과외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논술과외와 더불어 면접과외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수능시험이 변별력을 잃자 논술과외와 면접과외가 등장한 것이다.

강남일대의 명문대 출신의 강사들을 포진시켜, 이들이 출신학교에서 얻어내는 정보를 토대로 면접 질문과 대답, 면접시 요령, 교수들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처하는 법, 심지어는 학교에서 면접관에게 내리는 내부지침까지도 미리 학생들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사전 시뮬레이션을 마친 이들은 실제 면접에 임해서도 준비되어있기 때문에 버벅댈리가 없다. 실제 면접에서는 전공 석사들이나 알 수 있는 내용까지도 나오기 때문에 이를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고교 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침을 믿고서 면접에 임한 학생은 속수무책으로 날아드는 질문에 버벅댈 수 밖에 없다.

돈 있는 자는 고액 논술과외와 면접과외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고, 돈 없는 자는 오로지 혈혈단신으로 두터운 대학문을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돈으로 대학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하여 일반 과외를 막고자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낮추고 EBS 강의에서 출제하고 해도 그 다음의 장벽인 논술과 면접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반짝과외인 논술과 면접에서 더 큰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당국은 이래저래 방법을 고안해보지만 더 나은 방법이라도 내놓아봐야 또다시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갖추고 있는 이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며, 대학을 돈으로 가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정말 순수하게 공평한 조건에서 대학을 갈 수 있는 때는 언제나 올런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대학 이름에 의한 사회서열화가 구성되어 있는 현실에서 대학은 신분상승의 전제조건이다. 현실에서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오직 '대학'에 있다. 그래서 대학입시에 대한 갖가지 부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더 이름있는 대학을 나오기 위해 돈을 바르는 것이다. 대학에 의한 서열화가 고쳐지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현상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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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의 자녀는 교원임용고시, 공무원 시험 등의 국가 주관의 모든 시험에서 10%의 가산점을 얻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국가유공자를 대우해서 자녀에게 일정부분 혜택을 주는 것은 좋은데, 그 혜택의 정도가 문제다. 국가유공자 10%가산점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경기불황이다, 20대 태반이 백수다, 라는 말이 떠돈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는 회복될 기미마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태는 더 심각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갖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일반회사로 취직을 하기보다는 국가 공무원이 되어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자 한다. 일반회사에 애써써 들어가봐야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몇몇 뿐이고, 어차피 결국 또 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잘하는데 누가 자르냐고 하지만 살아남는 수보다 잘리는 수가 많은 상황에서 그 안에 들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커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공무원으로 몰리고 있다.

국가주관의 시험에서 유공자 자녀에게 10%가산점을 주게 되면 이러한 치열한 경쟁속에서 이들은 '거저먹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교원임용시험의 경우 1점차이로 우수수 나가떨어지는 판에 10점도 아니고 10%를 준다면 이는 '응시하기만 하면 합격보장'이라는 문구를 유공자 자녀의 이마에 붙여주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미 드러난 실례에서 모집인원보다 유공자 자녀의 응시인원이 더 많아 유공자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아예 경쟁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는 어쩌다 일어난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시험에서 발생하게 될 '현실'이다. 교원임용시험의 경우 미술, 음악, 윤리, 국사 등의 소수의 인원을 뽑는 과목들은 유공자 자녀들 중에서의 경쟁이 있을 뿐 기타(?) 지원자들의 도전은 애초 원천봉쇄당한다.

국가에 큰일을 해 기여를 한 사람의 자녀에게 국가가 혜택을 주는 것은 배려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이유로 다른 다수의 사람들에게 차별을 가하는 꼴이 되면 이는 더이상 '혜택'이 아닌 '차별'이 된다. 혜택과 차별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치열한 경쟁현실에서 저들에게 1점정도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하지만 10%라면 20점이 넘는 점수인데 어느 누가 같은 시험 경쟁자가 20점이상을 먹고 들어간다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있겠는가?

국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무엇이 바른 선택인지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교사는 인격과 실력으로 뽑아야지 가산점으로 뽑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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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가는 사건임에도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느라 이제 펜을 들었다. 사건인 즉 2005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폰을 이용한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인데, 광주에서의 적발을 시작으로, 수능시험이 있던 날의 해당 시간의 전국의 문자메세지를 조사해본 결과 550여건이 더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해당 휴대폰의 가입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작업중이라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가 누구이던간에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통한 부정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 이에 추가로 이전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취한 명문대생을 대상으로 한 대리시험도 몇건 있었다고 한다.

적발되어 경찰서를 오간 학생들은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그저 대학에 가고 싶었을 뿐이다, 라고 말하며 잘못을 뉘우치고-정말 잘못을 뉘우치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고교교사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국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라는 제목의 참회의 글을 올리며 사건의 잘못은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사에게 있다며 스스로 죄를 지었음을 자청했다.

일부에서는 이는 우리사회의 학벌주의로 인해 생긴 결과라며 학생들 개개인의 잘못을 들추기 보다는 사회전체의 문제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물론 수능부정행위는 우리사회의 학벌서열화로 인해 좋은 대학, 좋은과를 나오지 못하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비록 아직 성년이 안된 고등학생들이지만 이들 역시 이를 모를리는 없다. 본인들이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부모들이 이미 철저히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에 의해서라도 학생들은 간접적으로 학벌주의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 수능시험에서 좋은 점수가 필요했고, 부정행위를 통한 편법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학벌주의로 인해 생겨난 결과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잘못을 사회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치자면 인간 개인에 의해 생겨나는 여타 다른 부도덕한 일들 또한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잘못이지,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을 범한 개인에게 영원한 면죄부를 쥐어주는 꼴이되며, 모든 잘못은 사회와 국가에 있다는 식의 결론으로 도달한다.

국가와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학벌주의와 서열화로 인한 폐단임은 확실하지만, 이들을 용서하기에는 잘못이 너무도 크고 괴씸하다. 비록 아직 미성년의 학생들이라고 하지만 고등학생이라면 정신이 성숙할대로 성숙해있는 상태다. 나는 아직 미숙하니 잘못을 범했더라도 봐주시오, 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조직적인 범죄가 형성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이 매우 교활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선생님을 희망하는자로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사되기를 희망하는 자로서, 나는 어쩌면 잘못을 범한 학생들을 감싸주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에 의한 범죄행위가 바로 선생님과 부모들의 이러한 '감싸주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지하고 있을까? 무조건적인 사랑과 배려와 관용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사건을 미화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나중에 더 큰 일을 벌여도 되겠다 라는 안일함을 줄 뿐이다. 선생이 학생을 혹은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한 무조건적인 봐주기보다는 학생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욕을 먹는한이 있어도 따끔한 질책을 가하는 것이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2005년도 수능 부정행위 사건의 전말을 모두 공개하고, 관련자 모두를 엄격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한다.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전과를 씌우지는 않더라도, 해당 학교에서의 자체 정학과 함께 향후 3년간 수능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3년은 결코 가혹한 시간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다 늦게 공부해 대학에 다니는 사람도 아직 많은 상황이다. 3년간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간을 주는 셈이다. 그리고 관련된 대학생 역시 해당 대학에서 제적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한다. 물론 이번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에 등록금을 벌고 싶어서 가담하게 됐다는 어느 여학생의 사연처럼 보기 딱한 경우도 있지만, 그 학생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점을 안다면 그에 따르는 처벌을 순순히 따라야 할 것이다. 처벌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잘못을 뉘우치는 정도는 자연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또한 장기적으로 우리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서열화를 해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지식인과 관료를 비롯한 사회전체가 고민해야봐야할 문제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모든 것은 수능시험 하나로 줄을 세우는 서열화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대학별로 각각 입학전형을 달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대학에 3불 정책을 쓰고 있다. 본고사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고교간 차별 금지가 그것인데, 개인적으로 이중 본고사만은 허용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시점에 각 고교간 차별을 둔다는 것은 하위등급으로 분류된 고교에 재학중인 학생에게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됨으로 이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기여입학제 역시도 돈으로 대학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대학은 실력으로 가야지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운도 따른다. 그러나 본고사는 궂이 반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본고사 규제로 인해 논술시험이 본고사로 둔갑하는 현상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이럴바에야 본고사를 허용하고, 논술시험은 논술답게 치루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애초 학생들이 가고싶은 몇몇 대학을 스스로 마음속으로 지정해놓고 그 대학이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도록 노력한다면 대학입학이 '수능시험에 의한 서열화'로 정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번 수능 부정행위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고, 따라서 처음부터 엄격한 처벌을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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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피천득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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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는 월간 <샘터>의 400호 발간기념으로 <샘터>를 통해 글을 쓰고 계신, <인연>이라는 수필집으로 유명한 금아 피천득 선생과 샘터사 고문인 우암 김재순, 그리고 굳이 법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법정스님, 그리고 소설 <상도>로 유명세를 치룬 작가 최인호 선생의 대담을 채록한 책이다.
 
 네 분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고, 피천득 선생과 김재순 선생이 만나 각각 90대와 80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삶을 살아온 이들의 삶의 경륜을 담아낸 1부와 70대인 법정스님과 60대인 최인호 선생이 만나 종교, 죽음, 사랑, 가족, 행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우연찮게 90대에서 60대까지 고르게 분포되었는데 이들의 삶에 녹아든 생각과 경험이 어우러져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내고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때로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대담을 통해 또다른 사유로 연장해가는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대체로 묵직하고 깊이있는 주제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것이 어쩌면 또 '대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루어졌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책도 두껍지 않아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틈틈히 읽기 좋다. 나 역시 지하철을 오가며 어느새 한권을 다 읽어 버렸다. 가볍게 일독을 권한다. 

 읽다 인상적인 구절을 여기 발췌해본다.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늘 있습니다. 내가 직면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고통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법정 스님)

 "사랑이라는 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저 아이가 좋아할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겁니다."(법정 스님)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말에서 습관이 나오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을 이룬다."(법정 스님)

 "참된 지식이란 깨어있음인 것 같아요. 지성인이 지식인과 가장 다른 점은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깨어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최인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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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살림지식총서 136
강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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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만한 책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나를 비롯한 독서애호가들은 일간지 책소개란이나 인터넷서점 메일을 통한 정보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 또한 한국일보에서 금요일마다 싣는 책소개란을 통해 접하게 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매우 싸다. 3.300원으로 요즘 대부분의 책값이 만원에 육박하는 시점에 3천원 남짓하는 책이 나왔다는 것은 책을 구입하는데 있어서도 부담감이 덜하다. 알고보니 살림출판사에서 나오는 '살림지식총서' 중 한권이었다. 책 자체가 얇고 크기도 작아서 주머니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다.

 저자 강성민은 교수신문의 기자이다. 그 자신이 교수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 사이에서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내어 얇은 책으로 낸 것인데, 머리말에서 저자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여기에 등장하는 주제들은 이미 지금껏 무수하게 다루워왔던, 사실상 '금기'에 속하지는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또 다루기 어려운 주제, 다루기 예민한 주제라는 점에서 금기라면 금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스승비판, 전공불가침의 법칙, 논문형식의 실험, 이성의 세계에서 추방된 주제들, 생존인물에 대한 탐구,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 김우창 혹은 학제성, 참을 수 없는 생태의 비생태성, 문화비평에 '문화'와 '비평'이 없다, 대중적 글쓰기의 허구성, 근대성 콤플렉스의 장으로 나누어져있으며,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학계의 관행과 불가침의 법칙을 비롯해 상식을 깨는 글들이다. 물론 이 '상식을 깨는 것'또한 강성민 기자 뿐 아니라 그 이전에 다른 이들이 시도한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각각의 글들이 실명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생생하다. 지식인 논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들을 좋아할 듯 하다. 대단한 뭔가를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비판들을 한데 모아 지금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비판들이 그저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이 글을 읽는 학계의 주인공들에게 이성적, 심정적 영향을 끼쳐 학계의 변화를 가져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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