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신문을 보면 화가 난다. 신문을 온통 도배하고 있는 것은 온갖 비리와 파렴치한 행각들이다.

기아 자동차 채용에서는 돈을 받고 순위를 조작해 취업시켰다고 하고, 검찰 수사관들은 재소자측과 돈거래해 수천만원과 고급승용차를 받아냈다고 하고, 70대 노인은 재중동포의 딸을 입양해 2년간 140여차례 성폭행을 자행했다고 한다. 서울 강동구 배재고에서는 한 교사가 특정 학생들의 답안을 대필하고 전담 내신관리를 하질 않나, 어느 교사는 자신의 아이를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위장전입시켜 시험문제를 유출했다고 하질 않나, 어떤 집의 자식들은 수천억원의 돈을 관리하는 아버지를 납치하라고 사설경호업체에 지시하지를 않나, 고향 선후배가 짜고서 의사와 공군조정사로 위장 채팅방에서 여성들을 꼬셔내어 성관계도 맺도, 사고가 났다고해 막대한 돈을 받아내질 않나, 신문 하루치에 실려 나오는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행각들을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사회의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은 그다지 새롭지도 않다.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인데 요새들어 파렴치한 사건들이 많이 드러나면서 좀더 실감나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 이정도인데 보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들은 어떻겠는가. 분명 이 사건들은 지극히 '운이없어' 드러났을 뿐이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다.

사건도 참 가지가지 고루 갖췄다. 사건마다 일일이 코멘트하기에는 너무나도 많다. 그래 기업에서 돈을 받고 취업시키는 거야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 치고, 경호업체에 지시해 아버지를 납치한 것도 그래 전에도 있었던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자신이 재직하는 학교의 선생이 자식을 그 학교로 위장전입시키는 것도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전담 내신관리도 넘어가자.

고향 선후배가 짜고서 의사와 공군조종사로 위장 여성들을 꼬여내 성관계를 맺고, 사고를 위장 급하다고 돈을 받아챙긴 사건은 좀 언급하고 가야겠다. 화가 나는 것은 두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에 넘어간 여성 22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온전한 회사원이거나 교사를 비롯한 전문직 여성들이라고 한다. 아니 머리에 들을 거 들을 만큼 찼고, 교육 제대로 받은 이 여성들이 왜 이런 사기 행각에 넘어가나. 그저 의사라면 꿈뻑 넘어가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교사라면 사회의 지식인 직종이다. 어떤 이는 교직은 노동직이라 하고, 어떤 이는 교직이 전문직이라 하지만, 난 교직은 전문직이자 노동직이기도 하지만 지식인 직종이라 생각한다. 교사가 되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뚜렷한 사회에 대한 시각과 교직관도 있을 터. 이들이 뭣때문에 저와 같은 사기 행각에 놀아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단 두세번만의 만남에서 그와 같은 사기를 당했다고 하니 정신이 온전히 박힌 인간인지도 의심스럽다. 그저 의사라는 돈 잘 벌고 사회적 지위를 얻은 직종의 남성이라면 마냥 좋은가?

공부 잘 해 의대 진학한 비도덕적인 사람이 딱 사기꾼으로 행세하면 남부러울 것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언젠가도 대구(?)에서 한 산부인과 의사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이쁜 여자들을 대상으로 미스코리아에 나가게 해준다며 성형해준다고 데리고 와서는 마취제를 먹여 성관계를 맺고 비디오를 찍은 사건이 발생했었다. 물론 위의 사건은 의사로 가장한 어떤 이이고,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실제 의사가 사기친 사건이지만 어쨌든 두 사건의 공통점은 속는 자는 속이는 자를 온전한 의사로 봤다는 점이다.

의사라면 당연히 도덕적일 것이고, 믿을 수 있을 것이고 라는 막연한 추측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물론 지금 우리가 당연한 도덕성을 지녀야 할 의사조차도 의심해야 되는 이 현실이 개탄스럽기는 하다. 그저 의사라면 좋아서 따르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의사들도 그렇다. 어떻게 순전히 머리만 잘 돌아가는 비인간적인 자들이 의사가 될 수 있는가. 머리 좋고 교육 잘 받은 자는 당연히 도덕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사회에 나가 파렴치한 행각을 하면 머리 나쁘고 교육 못 받은 이보다는 더욱 확실하게 사기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파장이 크다는 말이다. 그래서 머리 좋고 교육 잘 받은 이는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

어쨌든 연일 오르내리는 온갖 기사에 분노를 참지 못하겠다. 누구의 말대로 이땅의 윤리가 상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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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좋고 공부만한 사람들의 사고수준은 유아기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죠^^ 홍세화씨의 '무식한 대학생'의 논지를 약간 비틀면 심각한 건 이들이 자기가 '무식'하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거죠~

이잘코군 2005-01-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 글은 근데 어디에 있나요? 흠... 근데 전 '무식'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지식이 아닌 '판단능력'을 비롯한 사고능력을 말하는거죠. 기본적인 판단 조차도 안되는 것이 안타까워서요. 뭐 저도 그 부류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핫...

이잘코군 2005-01-2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님이 지칭하는 자는 '의사'를 비롯한 똑똑이들이었네요. 좀전에 제 답글은 그 똑똑이를 '교사'를 비롯한 전문직 여성으로 봤고요. ㅋ 어쨌든 둘다 똑똑이라는 점에서 님의 말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 홍세화씨 글의 출처를 좀 알려주세요. 처음 들은 제목이라...

릴케 현상 2005-01-2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지났는데^^ 한겨레 칼럼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의 유명 사립 여대(XX여대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이름은 삼가겠다)에서 졸업을 앞둔 01학번 음대생이 게시판을 통해 후배에게 자신이 수강한 한 과목의 대리출석과 대리시험을 청탁, 약속한 금액을 안주고 연락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중요한 것은 이 청탁한 선배가 후배에게 돈을 안줬다는 사실이 아니라 대리출석과 대리시험을 청탁했다는 사실이다. 대리수능시험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 뉴스가 신문을 장식하는가.

사실 내 주변에선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으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로 이와 같은 일이 간간히 있어왔음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말로만 듣던 이야기를 실제 뉴스로 접하니 그냥 간과할 만한 문제가 아니구나 싶다.

사실 대리출석 정도는 대학 다니면서 한 두번은 안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고백하건대 나는 1학년때 대리출석을 한번 부탁한 것이 있었으나 불발로 끝났고 나의 대학생활에서는 그것이 나의 부정의 전부다. 물론 초, 중, 고를 통틀어 나는 소위 말하는 컨닝은 해본 적도 없고 해 볼 생각조차 품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비교적 깨끗한(?) 내가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해보인다.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다른 학생들도 이 학생이 채플을 부탁하고서 돈을 주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을 추가로 공개하고 있다. 청탁 학생의 됨됨이가 어떤지 짐작할만하다.

돈을 준다고 이러한 청탁을 받아들인 약대생 후배도 마찬가지다. 20-30만원 받겠다고 부정에 가담하다니 그 학생도 알만하다. 스스로가 가담한 부정행위를 인터넷에 스스로 떠벌려 사건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했으니 그다지 머리가 비상하지도 않은 듯 하다.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마음에 공개를 한 것 같은데 이 학생도 약대 차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라 한다. 물론 들통한 사건의 주인공 음대생은 긴급 교무회의를 통해 제적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한 과목 B학점 이상 부탁했다가 제적이라는 결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단지 이 사건뿐만이 아니라 대학가에서 이러한 일은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돈을 주고 받음으로써 안전하게 그물망을 빠져나갈 것이고, 돈을 주지 않았던 음대생과 같은 경우는 이렇게 공개되는 차이일 뿐이다. 청탁자와 피청탁자 두 사람간에 약속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이런 일은 절대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약속한대로 돈을 주고 받아라 가 아니다. 아예 하지 말아라 다. 자신이 특수한 사정으로 수업을 못 들어갈 것 같으면 교수님을 찾아뵈어 사정을 말씀드리면 교수님께서는 그 점을 고려해주실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으로는 취업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도 단지 내가 돈이 남아돌고 수업에 가기 싫고, 시험보기 싫다는 이유로 이와 같은 청탁을 한다면 이는 해당 대학생의 자질 문제다. 인간 됨됨이와 도덕성의 문제다. 그는 온전히 대학을 졸업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대학이란 학문을 하는 곳이다. 아무리 오늘날 취업학원으로 둔갑했다고 하지만 대학의 본질은 학문이다. 학문을 하는 기본적인 인간상이 되지 않았다면 대학에 입학시키지 않는 것도 당연하고, 설령 입학했다 하더라도 다시 쫓아내는 것이 맞다. 그 학생과 같이 대학을 단지 취업을 위해 거쳐가는 중간단계쯤으로 생각하는 대학생들은 스스로 반성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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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고양이 - 제1회 디지털 문학대상
강기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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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에는 각 분야별로 수여하는 상이 넘쳐 난다. 그중 문학분야에는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과 같이 유명한 상도 있지만 독자에게 낯설은 상도 많다. <도둑고양이>(강기희 지음, 실천문학사, 2001) 또한 '디지털 문학대상'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상을 받은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로 책을 만든지 구텐베르크 이후 500년이 넘었으나, 이제 e-book 시대가 도래하면서 머지않아 눈부신 기술발전과 인터넷 성장에 힘입어 e-book이 보편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디지털 문학대상은 그러한 의미에서 탄생한 문학상이며,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공모방식과 e-book으로 출간된다는 점에 있어 다른 문학상과 차별성을 띠고 있다.

‘1회 디지털 문학대상’에는 일반소설 부문과 모험소설 부문, 감성소설 부문이 있는데, <도둑고양이>는 일반소설 부문의 대상작이다. <도둑고양이>에서 작가는 ‘흑묘’라는 이름의 도둑고양이와 좀 모자란 청년 허풍천의 눈을 통해 우리사회의 어두운 뒷골목 세태를 꼬집고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동네 아는 아저씨의 소개로 할머니의 약값을 벌 셈으로 시작한 도둑고양이잡이. 어느날 밤 고양이잡이를 나간 허풍천은 고양이잡이 기술을 알려주던 김선생을 통해 꽤 영리하고 잡기힘든 커다란 흑색고양이 ‘흑묘’의 존재를 알게 된다. 흑묘는 어두운 밤 여관과 호텔이 즐비한 뒷골목에만 나타난다. 흑묘는 각종 부조리, 불륜이 벌어지는 현장에 특히 잘 나타났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흑묘는 정의롭게 행동했고,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의 더러운 모습을 담아냈다. 이러한 흑묘의 눈을 통해 순수한 풍천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배운다.

주변의 집들이 모두 철거되고 재개발되는 상황에서 언덕 위에 솟은 풍천네 집만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는 구청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 또한 다른 집들이 모두 재개발된 상태에서 외따로 떨어진 미운 오리새끼 마냥 언덕 위에 솟은 풍천네 집을 좋지 않게 본다. 그러나 풍천은 구청과 동네 사람들의 요구에도 세상 떠난 아버지의 친구인 지씨 아저씨와 함께 집을 지키기로 한다. 하지만 곧 구청에서 철거용역이 투입되고, 지씨 아저씨는 경찰에 연행된다.

그동안 풍천이 샤갈의 마을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샤갈의 마을에 지씨 아저씨가 있고, 할머니가 있고, 무엇보다 풍천이 좋아하는 민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씨 아저씨가 잡혀가고, 간호사인 민희는 결국 같은 병원 산부인과 의사한테 갔으니 풍천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풍천은 이제 흑묘의 눈을 통해 세상이 어떻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몸소 겪었다. 소설은 풍천이 할머니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약간 멍청한 청년이 탕제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배경으로 어두운 밤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불륜의 현장들을 겪으면서 진행된다. 풍천와 흑묘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요즘 인간들의 이면적인 모습과 현실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소설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 병들어가는 인간의 정신상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이웃간의 정이 사라지고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지나친 쾌락의 추구와 물질적 풍요로 정신이 황폐화되어가는 요즘 세태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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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는
토마스 네이글 지음, 김형철 옮김 / 서광사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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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지난 어느 여름날, 철학이 뭔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철학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이과'에서 '문과'로 과감한 선택을 시도한 나.  비록 경제학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철학에 대한 나의 애정은 사그라들지 않고 대학 2학년 다시한번 '경제학'에서 '철학'으로의 과감한 선택을 시도했다. 이제 철학과를 졸업하는 마당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철학이 뭐에요?"하고 물으면 아마도 한숨 푹푹 쉬며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리라. 철학과를 졸업한 몸으로 철학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학교 도서관 깊숙이 박힌 꼬질꼬질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제목그대로 나에게 물어왔다.

‘이 모든 것의 철학적인 의미는?’(토마스 네이글 지음/김형철 옮김/ 서광사 1989년 펴냄). 이 책은 '사물에 대한 지식' '타인의 마음' '몸과 마음의 문제' '단어의 의미' '자유 의지' '옳음과 그름' '정의' '죽음' '삶의 의미'등 9가지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저자는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우리 주위에 펼쳐진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과연 확실한 것이고 실재하는 것이냐는 물음을 던지며, 일반적으로 우리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이나 사물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것같지만 이것은 단지 꿈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해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대해 유아론(唯我論, solipcism)과 회의주의(skepticism), 극단적 회의주의, 실증주의의 네 가지 태도를 제시한다.

두 번째 '타인의 마음'에서는 "친구와 내가 걸어가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내가 느낀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맛과 친구가 느낀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맛이 같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나의 마음을 의심한 데서 나아가 이제는 타인의 마음까지도 의심하고 있다.

세 번째 '몸과 마음의 문제'에서는 "두뇌와 의식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의식이란 것은 단지 화학적이고 전기적인 자극만으로 이루어진 것뿐인가? 우리의 마음은, 비록 두뇌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과 다른 어떤 것인가 아니면 두뇌 그 자체인가? 우리의 사고 느낌 자각 감각 소망 등은 우리의 두뇌에서의 모든 물리적 진행과정에 덧붙여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바로 물리적 과정 그 자체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신체가 마음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크게 ‘몸과 마음은 각각’이라는 이원론(二元論)과 수소분자와 산소분자가 합쳐져 물을 이루고, 탄소원자가 원자배열을 달리해 다이아몬드를 만들 듯 우리의 육체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유물론(唯物論)으로 설명하고 있다.

네 번째 '단어의 의미'에서는 "어떻게 하나의 단어, 즉 소리나 종이 위의 기호에 불과한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섯 번째 '자유의지'에서는 복숭아와 케이크 중 케이크를 선택해 먹었는데, 후에 "나는 복숭아를 대신 먹을 수 있었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다.

여섯 번째 '옳음과 그름'에서는 만약에 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혀용되는가, 공평무사함, 도덕의 보편성과 객관성 등에 대해서 차례로 다루고 있다.

일곱 번째 '정의'에서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과 같은 의도적으로 행사되는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계층차나 천부적 재능차이로 인한 의도적으로 행사되지 않는 불평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여덟 번째 '죽음'에서는 세 번째에서의 심신문제의 이원론을 다시 들고나와 영혼은 홀로 생존이 가능한 것인가, 또 죽음은 이전의 생에서의 나쁜 것의 결여로 인한 소극적인 善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전의 생에서의 좋은 것의 결여로 인한 소극적인 惡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에서는 "종국에는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기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덧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의 원 제목은 〈What Does It All Mean? A Very Short Introduction to Philosophy〉로 현재 심리철학계에서 환원적 유물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토마스 네이글의 철학입문서이다. 저자 자신은 서론에서 이 책이 철학개론으로서의 입문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을 알지 못하고 전문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누구나 한번씩은 생각해봤을 만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저자 자신이 생각한 바를 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결정이나 대답을 주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

다른 철학개론서들이 철학의 고전에서 여러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발췌, 요약하는데 비해 이 책은 순수하게 저자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어 일반인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고등학생부터 일반인들까지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철학에 초보자인 사람들이 읽기에는 내용이 좀 어려울 것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철학이란 이런 것"이라는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바로 이런 것이 철학"이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 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느껴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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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두운 도서관 책장 사이를 오가던 중에 나의 관심을 끄는 이름이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한 대형서점의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당시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첫 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소개글을 읽은 후로 그의 이름은 나의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움베르토 에코는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현대의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볼로냐 대학의 교수이다. 서양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부터 시작해 퍼스널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식을 쌓은 사람이며,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할 줄 아는 언어의 천재이다. 전세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십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우리에게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1988) 동화 <폭탄과 장군>(1988) <세 우주비행사>(1988) 이론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열린 작품> <기호학 이론> <논문 작성법 강의>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대중의 슈퍼맨> <해석의 한계>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원재길 옮김, 열린책들 1995년 펴냄) 또한 그의 다양한 저술활동을 증명해주는 책으로 에코가 문학잡지 <일 베리>지의 '작은 일기'에 기고하던 칼럼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장르상 문학비평서라고 하기에도,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다. 그냥 '에코의 일기들을 묶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당시의 문화비평이나 칼럼들은 지극히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에코는 이 칼럼에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우러나온 특이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패러디, 환상, 광기의 요소를 뒤섞은 독특한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잡지 칼럼치고는 파격적인 글쓰기의 형식과 에코의 방대한 지식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 실려 있는 글의 제목만으로 글의 내용을 먼저 짐작해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모든 글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글 제목이 '∼하는 방법'의 형식이며, 에코는 굉장히 사소한 주변의 문제를 뭔가 있는 것처럼 표현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은 이 책에 실려있는 하나의 칼럼 제목으로, 글을 읽기 전 제목을 접하는 독자들은 "이 글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정말로 우리가 연어와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혹 바다속 탐험 이야기는 아닐까?"하는 호기심을 가져볼 수 있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은 에코가 스톡홀롬과 런던을 여행하던 중에 생긴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코가 스톡홀롬 여행 중에 덩치가 엄청 큰 연어를 하나 샀는데, 이 놈을 가지고 런던으로 가 보관하기 위해 호텔객실 냉장고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고 냉장고 안에 가득 들은 술병들을 꺼내 다른 곳에 놓고, 그 안에 연어를 집어넣었단다. 그런데 호텔 직원이 에코가 술을 다 먹은 줄 알고 연어를 꺼내고 다시 술병을 채워넣었다는 것이다. 에코는 또 술병을 다 꺼내고 다시 연어를 집어넣었고, 몇 차례 이런 일이 더 있고 난 후 체크아웃을 하려고 접수대에 갔더니 술값이 엄청나게 청구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처음의 의문을 품고 글을 읽은 독자들은 글을 다 읽은 뒤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 것이다. 이 글 이외에도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 '비행기에서 식사하는 방법' '낯익은 얼굴에 대처하는 방법' '택시운전자를 이용하는 방법' 등에서 에코만의 기발하고 독특한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글이 에코가 여행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많은 글에서 패러디의 형식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에코 서문'에서 에코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패러디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오로지 기분전환을 위한 글도 들어 있는데, 비평을 한다거나 교훈을 전달한다거나 하는 의도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게 옳은 일인지 해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특별한 목적없이 하나의 유머책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에코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연어와 여행하는 법]은 1999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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