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책읽는 재미를 늦게 알게된 덕에 읽고픈 책이 너무 많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무리 빨리 읽어도 새 책은 수없이 쏟아져나오고(우리나라는 책의 수로 치자면 일년에 발행되는 책의 숫자가 세계에서 몇번째 안에 들더군요), 나는 그것들(과거에 발행된 것들과 현재 발행되는 것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미래에도 발행되는 것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출판되어 나오는 책들 중에서도 '양서'라 뽑히는 책들을 고른다 할지라도, 그 수 또한 만만치 않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한 책들만 해도 그것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과거의 책들, 흔히 말하는 동서양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먼저 읽어야겠지만 내게 먼저 눈에 띄고,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현재의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는 책을 지은 일본의 어느 저널리스트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내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그때그때 모조리 사들여라.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책을 많이 읽으려면 미리미리 읽고픈 책들을 사들여야한다. 그래야 나를 읽어주세요 하고 외치는 집안에 가득히 쌓인 수많은 책들에 미안해서라도, 또 그 수많은 책을 산 돈이 아까워서라도 읽는다. 내 책상에는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있다. 많다고 할 수 없는 이 책들 중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얼마되지 않는다. 열 손가락 안에 뽑을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그만큼 책을 읽지 않아왔다. 그러나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크다. 책을 읽고 싶은데 이 많은 책들을 읽자니 하나하나 정성스레 음미하며 읽기가 힘들다. 왜냐. 다른 책들이 나를 읽어주세요 하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빨리 읽어야 그 다음 책을 또 읽을텐데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보니 한권 끝내기가 힘들다. 그렇다. 나는 책을 매우 늦게 읽는 편이다. 그렇다고 꼼꼼히 읽지도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읽는데 그렇게 된다. 어릴적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지 않은 탓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리게 책을 읽는 나 자신이 짜증나기도 하고 그래도 느리게라도 읽지 않으면 여기서 더 속도를 냈다간 시간버리고 내용도 모르는 격이 될 것 같아 겁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책읽는 재미'란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는 시기여서 나는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 책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아니 모든 것이 다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작가와 나, 세계와 내가 소통하면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작가는 내게 그 동기를 혹은 사건의 실마리를 던져준 것 뿐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사건을 풀어가는가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각기 느낌이 다르고 얻는 것이 다른 것은 바로 그런 때문이다. 작가가 쓴 동일한, 똑같이 인쇄된 책을 들고 있지만 사람마다 그 안에서 얻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흡사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희열을 느끼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와 처음 만날때 들었던 곡을 나중에 그와 헤어진 후에 다시 듣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사랑하는 이와의 기억, 장면들이 스쳐지나갈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울해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곡을 듣고 흥겨움을 느낀다. 같은 음악이지만 개인의 경험차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책읽는 재미는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아 가을이도다. 독서의 계절, 사색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책을 읽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움 뿐이다. 어서 돈을 벌고 시간을 내 남는 시간에 책을 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