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눈물이 많은 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감상주의자와 이성주의자로 구분을 짓는다면, 나는 나 자신을 감상주의자로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극히 이성주의자이고 싶다. 또한 실제로 감상과 이성이 양분된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나를 세웠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이성의 방향에 많이 치우쳐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이 80이라면 감상이 20이다.

그런데 그러한 구분과 달리 나는 눈물이 참 많은 편이다. 눈물이 많은 것은 감상적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나는 이성의 영역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편, 때로는 감상적인 것이다. 나는 나를 '눈물이 많은 남자'라고 말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괜히 아무일도 아닌 것에 질질짜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타인의 시각과 상관없이 나는 실제 눈물이 많은 남자 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20여해를 살아오면서 이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나는 눈물이 많았다. 중학교때는 중간,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공부를 하면서 '완벽'하게 시험범위를 공부하지 못하면 나는 시험 전날 울곤 했다. 나 자신에게 짜증을 내며... 내 스스로 만족스러운 공부를 하지 못한 까닭이기도 했고, 내게 있어 '만족'이라는 것을 성립시키려면 '완벽'한 공부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또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물론 남들앞에서는 애써 아닌 척 하며 눈물을 자제하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눈물을 잘 흘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눈물이 많은 남자라는 것을 모른다. 조금전에도 난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내 가슴을 울리게 했다.

얼마전 티비를 보니 어떤 의사가 하는 말이, 감정표현을 애써 억제시키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밖에서 울어주지 않는다면 속에서 운다는 것이다.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다. 나는 표정이 없다. 사진을 찍을 때건 무엇을 할 때건 나에게서 한가지 이상의 표정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나는 웬만한 웃긴 대화나 웃긴 이야기에도 잘 웃지 않는다. 웃기지 않기 때문에 웃지 않기도 하지만 애써 참으려 할 때도 있다. 이렇게 표정을 감추는 것이 내게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는 그동안 표현을 감추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또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가끔 내가 눈물을 많이 흘릴때가 어쩌면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모여 한꺼번에 발산하는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눈물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써 그런 '사실'들을 감추고 싶지는 않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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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읽는 재미를 늦게 알게된 덕에 읽고픈 책이 너무 많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무리 빨리 읽어도 새 책은 수없이 쏟아져나오고(우리나라는 책의 수로 치자면 일년에 발행되는 책의 숫자가 세계에서 몇번째 안에 들더군요), 나는 그것들(과거에 발행된 것들과 현재 발행되는 것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미래에도 발행되는 것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출판되어 나오는 책들 중에서도 '양서'라 뽑히는 책들을 고른다 할지라도, 그 수 또한 만만치 않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한 책들만 해도 그것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과거의 책들, 흔히 말하는 동서양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먼저 읽어야겠지만 내게 먼저 눈에 띄고,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현재의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는 책을 지은 일본의 어느 저널리스트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내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은 그때그때 모조리 사들여라.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책을 많이 읽으려면 미리미리 읽고픈 책들을 사들여야한다. 그래야 나를 읽어주세요 하고 외치는 집안에 가득히 쌓인 수많은 책들에 미안해서라도, 또 그 수많은 책을 산 돈이 아까워서라도 읽는다. 내 책상에는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있다. 많다고 할 수 없는 이 책들 중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얼마되지 않는다. 열 손가락 안에 뽑을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그만큼 책을 읽지 않아왔다. 그러나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크다. 책을 읽고 싶은데 이 많은 책들을 읽자니 하나하나 정성스레 음미하며 읽기가 힘들다. 왜냐. 다른 책들이 나를 읽어주세요 하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빨리 읽어야 그 다음 책을 또 읽을텐데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보니 한권 끝내기가 힘들다. 그렇다. 나는 책을 매우 늦게 읽는 편이다. 그렇다고 꼼꼼히 읽지도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읽는데 그렇게 된다. 어릴적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지 않은 탓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리게 책을 읽는 나 자신이 짜증나기도 하고 그래도 느리게라도 읽지 않으면 여기서 더 속도를 냈다간 시간버리고 내용도 모르는 격이 될 것 같아 겁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책읽는 재미'란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는 시기여서 나는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 책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아니 모든 것이 다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작가와 나, 세계와 내가 소통하면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작가는 내게 그 동기를 혹은 사건의 실마리를 던져준 것 뿐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사건을 풀어가는가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각기 느낌이 다르고 얻는 것이 다른 것은 바로 그런 때문이다. 작가가 쓴 동일한, 똑같이 인쇄된 책을 들고 있지만 사람마다 그 안에서 얻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흡사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희열을 느끼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와 처음 만날때 들었던 곡을 나중에 그와 헤어진 후에 다시 듣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사랑하는 이와의 기억, 장면들이 스쳐지나갈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울해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곡을 듣고 흥겨움을 느낀다. 같은 음악이지만 개인의 경험차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책읽는 재미는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아 가을이도다. 독서의 계절, 사색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책을 읽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나를 보며 안타까움 뿐이다. 어서 돈을 벌고 시간을 내 남는 시간에 책을 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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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육교 위나 지하철 계단에 앉아 도움을 청하는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IMF 이후로 이런 이들이 급증하다가 요새 다시 줄어드는 추세이다. 내가 집밖을 잘 나서지 않는 탓인지 모르지만 난 이들을 본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종로에 가면 어디에서든 이런 이들을 한 두 사람씩 꼭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을 도와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그들 중에는 때론 정상인이면서 장애인인 척 하는 이들도 있기도 하다. 물론 사이비 들은 극히 드물다.

난 약자의 편에 서고 싶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싶으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항상 '마음만'으로 였다. 실제적으로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준 적은 없다.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한편 나 또한 그리 부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부유함'을 누리고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또 나보다 부유한 자들과 비교를 하게 마련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픈 많은 일들이 어느정도의 '부유함'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들이고, 이것들을 하나하나 이루기 위해서는 나는 나의 조그마한 '부유함'이라도 남에게 쉽게 내줄수가 없다. 사고픈 책, 사고픈 씨디, 보고픈 영화 기타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의 '부유함'을 요구하고 있다. 항상 나는 모자란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작은 '부유함'을 그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나에게 치명적이다. 차비 500원을 아끼기 위해 걸어다니고, 점심을 굶으며 모은 돈으로 겨우 씨디 한장을 산다. 그들을 위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네가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한다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에 동의하고 나의 변명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와 같은 이들이 항상 하는 말이 나중에... 나중에... 내가 좀더 여유가 있으면 그때 가서 돕자. 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되면 또 난 너무 여유가 없어 라고 다시 변명할지 모른다. 아는 것을 행동에 옮기기는 정말 힘들다. 그것이 나의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더욱 힘들다. 나는 언제쯤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말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어렵다... 난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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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행정구역상 그곳이 광화문인지, 종각인지, 종로인지는 모른다. 편의상 종로라고 하자. 종로에 있는 교보문고 건물의 벽에는 위와 같은 글귀가 쓰여져 있다. 교보문고를 지날 때 마다 저 글귀를 보면서도 무심코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새삼 저 말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사람이 책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책은 사람을 만드나? '만들다'라는 단어의 전자와 후자의 의미는 다르다. 그것은 기본적인 국어 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간파해 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자의 '만들다'는 의미는 '제작하다'라는 뜻을 지닌 것이고, 후자의 '만들다'라는 의미는 '수양시킨다', '성숙시킨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 책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을 수양시키고, 성숙시킨다. 사람을 잘 발효시킨다. 사람의 됨됨이를 높여주고, 인격완성의 길로 인도한다. 예로부터 "책이 스승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문구이다. 나는 학교제도교육 속의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보다 책 한 권에서 배운 것이 더 많다. 책은 사람을 한 순간에 변화시키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다수는 젊은 시절에 책 한 권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다. 책은 인간에게 생각의 시간을 주고,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그의 삶의 방향을 일러준다.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아 그 시절에 내게 영향을 준 책이라곤 애써 떠올리려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대학시절에 읽은 책 중 내게 사색과 깨달음, 삶의 방향을 일러준 책들은 먼저 탁석산 선생님의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을 들 수 있고, 삼인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 안의 파시즘', 쿠바의 혁명가 '체게바라 평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외에도 플라톤이나 헤겔 등의 철학자들의 생각 또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책을 읽는 순간이 기쁘다. 즐겁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나는 쾌감을 느낀다. 나에게 생각할 꺼리 들을 주는 모든 것은 반가움의 대상이다. 책은 생각할 꺼리를 주는 것중 으뜸이다. 나는 책을 통해 논다. 놀이를 한다. 내가 어떤 이의 책을 읽을 때 그는 내 머리 속에 들어와 장난을 친다. "이거 라니깐". 그러면 나는 "아니야 그건 아니야. 왜냐면..." 하고 그의 장난에 반응을 보여준다. 내 머리 속에는 그와 내가 들어있다. 둘이서 서로 시비걸고 장난치고 뒹구르고 한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세상을 좀더 멀리, 좀더 깊이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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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말을 한다. 사람이 재산이다. 그것은 아마도 주위에 사람을 많이 알아두라는 말일 게다. 내가 어려울 때 선뜻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라는 말일 게다. 한편으로는 인맥관리를 잘 하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 내가 어떤 분야에 있어서 성공하고자 할 때 그 분야의 사람들을 알아두면 나에게도 적잖이 도움이 될테니...

그렇다. 사람이 재산은 재산이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전에 어떤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려면 일년 이란 세월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있어 사람을 사귀는 일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며, 나에게 있어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평범한 인생의 진리는 과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원체 내성적이고 독자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내게 있어-어찌보면 독단론자 로 보일 수도 있는-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접근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나와 그들 사이의 접점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나의 가치관이라는 것은 소위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좌파주의자 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 진보냐 보수냐를 따질 만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으며, 그들 중에서 진보진영에 속하는 자들을 골라내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또 이들 중에서도 나와 행동습관을 달리 하는 자들이 많고, 나의 행동습관을 그들의 그것으로 강요하는 자들도 많다. 물론 그들은 그것이 강요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들과 동화되기가 힘들다.

나에게 있어 사람이 재산이게 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가 남들보다 뛰어난 자이기를 꿈꾼다. 여러 방면에서 남들보다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그것이 나만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나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나와 그들 사이의 일치점을 찾기란 쉬워진다. 물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납득이 가능한 당연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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