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목소리가 높다. 좌파의 반성에서 시작된 '제 3의 길', 우파에 뿌리를 둔 '뉴 라이트'가 나온데 이어 자신들이 정말 순수한 중도라고 외치는 '신 중도포럼'이 등장했다.
여기에 동참한 이들의 이름을 난 모른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뭐라 말을 못하겠다. 다만 우후죽순 스스로 중도라고 내세우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좌파'와 '우파', '좌익'과 '우익', '진보' 와 '보수'의 논쟁 속에 지친 이들을 달래주겠다는 심성으로 이들이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쁘게 말하자면 난 이들이 새로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틈새를 파고든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좋게 말하자면 그들의 말대로 진정한 중도이겠지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단을 좋아하면서도 극단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극단적인 사고를 하기가 쉽고, 극단에 매력을 느낀다. 왜냐면 극단에서는 강한 주장을 낼 수 있고, 주장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도는 뭔가 어정쩡하고 아무것도 아닌 맹탕인 것 같이 보인다.
과거에는 중도를 지칭하는 '회색분자'라는 말은 악의가 섞여있었다. 하지만 '회색분자'가 '중도주의자'로 둔갑하는 순간 '악의'는 사라진다. 최인훈은 자신의 소설 <회색인>을 통해 오늘날 '중도주의자'라고 불리우는 이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최인훈은 한국적 이데올로기 자체는 집단 이념의 지배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때 이념은 개인의 자유와 모순되는 것으로 또다른 체제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개인은 개인의 생각을 떠나 집단 내부의 요구에 순응해야하고 집단 내부의 사고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를 잃어버리게 된다.
지금 스스로 '중도주의자'라고 내세우는 이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당파성을 지니지 않기를 원하고, 당파성을 벗어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가 '중도'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회색인'이 좋지 않은 단어로 간주된 것은, 사회가 개인의 이념의 소속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도인 '회색인'은 갈 곳을 잃어 방황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반대다. 사회가 개인의 이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얻었고 자신의 자유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당파성을 갖길 거부하고 중도에 머무는 것이다. 중도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위치이고 그렇기에 지금에 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저런 중도주의자들이 자꾸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인 듯 하다.
덧붙이며...
어느 집단에 소속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나도 중도주의자인 셈이다. 하지만 난 스스로의 이념의 색깔을 좌파자유주의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