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가 자라서 사리를 분별하게 되면 '철이 들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말은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절기가 여름인지 가을인지를 제대로 알아서 더 이상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어린이는 철이 든 것입니다. 말하자면 때를 알아야 철이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수한의 <역사에세이>에서 참고)

우리는 아직 군대갔다오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혈기왕성한 진보적 성향을 띠며 사회비판을 하는 남성에 대해 군대갔다오면 철이 들거라는 말을 한다. 이는 군대갔다온 사람이라면 나이 많은 어른이든 갓 제대한 예비역이든 그 연령대를 초월하여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철이 든다'는 의미는 위에서 말한 철이 든다는 의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어떻게 다를까?

자유분방하고 혈기왕성하여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군미필자의 남성에게 군대갔다오면 '철이 든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네가 지금 그렇게 자유롭게 사회를 비판하고 그러는 것도 다 한때다, 군대갔다오면 다 달라진다 라는 식의 의미가 담겨있다. 즉 다시 풀어 이야기하면 군대가서 군대의 상하 조직문화와 명령과 복종체계를 몸으로 익히고 나오면 그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비로소 '철이 들었다'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이 든다'의 본래 의미와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 같지 않은가?

계절이 바뀌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 나아가 사리판단을 하는 것을 '철이 든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사람에게보다 그냥 조직에 따르고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이 말을 사용하니 이 말이 그 본래의 의미와는 반대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어떤 사람에게 군대갔다오면 철이 들거라고 말하는 그 화자 본인이 '철이 들어야'하는 것이고, 그가 지칭했던 청자는 반대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화자에게 "넌 철이 들어야해"라고 말하는 것이 '철이 든다'의 본래 의미를 생각할 때 더 바람직할 것이다.

앞으로 누군가 당신에게 "군대갔다오면 철 들겠지" "군대갔다오고 철 들어야지"라고 말한다면 '철이 든다'는 것의 본래 의미를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당신도 그들에게 한 마디 하라. "너나 철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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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가장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나는 그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다.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고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철학은 인간의 사고영역을 넓게, 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먼저 이러한 준비를 위해서는 철학, 국문학,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 3총사가 필수적이다. 사고의 넓이, 깊이를 기르는데는 철학보다 좋은 것이 없으며, 그것을 말과 글로써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논리학(철학의 한 요소)과 국문학 만한 것이 없다. 말과 글에 있어 철학은 논리를 제공하고, 국문학은 올바른 단어사용이나 문장구조 등에 관한 지식을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형식적인 준비가 끝났다면 세상을 바라보기에 앞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역사학이다. 역사학은 세계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서술하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를 예상케해주는 학문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토대가 세워졌다면 그 다음은 정치학과 사회학이다. 정치학과 사회학은 이러한 기초 위에 살을 붙여준다. 사회와 정치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세상을 바르게 판단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이고 정치인 것이다. 우리는 이 엇나가는 사회와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기초적인 토대로서 세운 철학, 국문학, 역사학과 같은 학문들로 현실을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한가지 또 덧붙이고 싶은 것은 법학인데, 사실 우리사회에 있어 법은 기득권자,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법의 근본적인 취지는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지만 사소한 영역으로 들어서면 그것은 권력을 지키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법은 현실을 다스리는 기준으로서 작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철학, 사학, 국문학과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것이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과 같은 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법으로 하자, 법이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하지만 법 이전에 법을 형성하게 한 더 근본적인 철학과 역사가 있는 것이다. 법의 가장 기초적인 자유, 평등, 인권과 같은 개념은 본래 철학으로부터 시작했다. 법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규준임에는 틀림없으나 법의 이념을 지킬 때에만 그러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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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이 나 모르게 나의 습관이나 행동양식 등을 따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 싫어한다.) 물론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하려고 하지 않고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예외로 하고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를 아는 어떤 사람이 나의 행동이나 습관, 흔적들을 보고서 그것을 익히고 따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 내 나름대로 필기를 하고 체크하는 방식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남이 내 방식을 보고 마음에 들어 따라하면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공부를 해오며 습득해온 나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공부를 하면서 자기 습관을 익히면 될터인데 나를 따라한다. 나는 이것이 매우 못마땅하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지금과 같은 나의 글쓰기 방식을 따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또한 매우 불쾌할 것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방식이 있을텐데 남의 것을 왜 따라하느냔 말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그럼 넌 남의 방식 따라한 적 없느냐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어떤 분야에 미숙해 양해를 구하고 그들의 것을 배우거나 따라한 일은 있지만 그것은 내가 정말 그것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 '모름'을 인정하고 행한 일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내가 나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 모르기 때문에 배우겠다는 것, 따라하겠다는 것과 자신이 그것을 처음부터 사용한 것인양 행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후자의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속였고 남을 속였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라. 미숙하면 미숙하다 인정하라. 그렇기 때문에 남의 것을 배우고, 모방하고, 가져오겠다면 그 누구든 그를 따뜻이 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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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우리사회의 논객들 각각은 그 나름대로의 글쓰기의 스타일이 있다. 강준만 교수 같은 경우는 글을 거침없이 쓰면서도 모든 사람이 알아듣도록 쉽게 쓰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어떤가? 나는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는가? 어렵게 쓰는가? 쉽게 쓰는가? 내가 글을 어려우면서도 쉽게 쓰려고 한다. 무슨 이상한 논리냐 할지 모르지만 할 말을 다 하면서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말하려 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말하려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지식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다음에 내가 쓸 글에서 그만큼의 사람들에게 생경한 용어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려고 한다는 것은 그것이 쉽게 쓴다는 말과 어떤 관계가 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논리적인 글은 사람들이 읽기에 한눈에 들어오는 글을 말한다. 거기에는 함정이 없다. 그냥 읽으면 바로 들어올 뿐이다. 그런면에서 논리적인 글은 쉬운 글이다.  

전에 나는 내 글쓰기 방식을 자유연상식 글쓰기라고 한 적이 있다. 즉 붓가는대로, 키보드위에 손가는대로 쓰는 글이란 말이다. 어떤 것을 쓰다가 다른 것이 생각나면 거기에 연관시켜 또 쓰고, 또 쓰다 다른 것이 생각나면 또 연관시켜 또 쓰고...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 선에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이러한 글쓰기의 단점은 쓰면서 앞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고 지나갈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끊어줄 필요가 있다. 자유연상식 글쓰기는 독자가 읽기에 가장 편안한 글쓰기다. 그냥 따라오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실을 가지고 미궁속으로 들어갔다가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오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다. 그럼 내 글은 쉬운글? 어려운글?
결론은 쉬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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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글을 쓸 때 어렵게 쓰는 사람이 있고, 쉽게 쓰는 사람이 있다. 어렵게 쓰여진 글에는 보통 사회학적, 철학적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며, 외래어나 한자어의 사용이 잦다. 쉽게 쓰여진 글에는 가급적 한글전용으로 쓰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고, 어려운 외래어나 전문용어, 한자어는 배격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둘 중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글의 성격에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가 적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렵게 쓰여진 글은 그것 나름대로, 쉽게 쓰여진 글은 그것 나름대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라면 쉽게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문용어가 많이 들어가고, 한자, 외래어가 많이 들어간 글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글이고, 머리아픈 글이다.

그러나 쉽게 쓸 수 있음에도 어렵게 쓴 글은 좋은 글이 아니지만 어려운 용어를 들어가며 쓸 수 밖에 없는 글이 있기도 하다. 철학책이 가장 대표적이다. 철학자들은 일부러 그들만의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철학을 논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쓸 수 밖에 없고,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석판명하게 드러내려면 그런 단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상의 용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그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창안해야 했고 그것으로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용어들이 시대를 지나오며 계속 해서 만들어지고 지금의 철학책처럼 알 수 없는 글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철학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표면상 어렵게 보이지만 그 핵심 용어를 파악하고나면 그 구조가 쉽게 들어오는 것이 철학책이다.

그것은 어려우면서 쉬운 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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