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지음 / 꾸리에 / 2012년 3월
품절


"원래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은 그것이 현존의 사회질서 속에 특정한 분야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은 어려운 말이지만, 요컨대 경제학이 현존질서 속에서 경제현상이라는 대상을 차지하고 정치학이 정치분야를 갖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철학은 현존 사회질서 속에 그 귀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철학이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존 질서 속의 일부가 아니라 그 현존질서 전체, 즉 그 ‘통째’이다. 따라서 다른 분야의 학문이 자칫하면 현존질서 전체를 주어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과 달리 철학은 현존질서 전체가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정면에서 문제 삼게 되며, 때로는 잘못된 현존질서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과 대등한 처지에서 대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을 ‘세계관의 학문’이라 부르는 이유이고, 철학이 다른 학문분야들의 ‘통괄자’로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유이며, 그리고 나아가서는 역사 속에서 철학이 많은 박해를 받아온 이유이다."(서준식, "옥중서한")-8-9쪽

철학은 언제나 세계 전체 또는 존재 전체를 생각하는 보편적 학문이다. 당연히 철학이 탐구해야 할 그 전체 속에는 경제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영역에 속하는 주식회사 역시 하나의 존재자로서 철학적 성찰의 대상일 수 있다.-9쪽

철학자는 무엇을 보든 존재에서 무에 걸쳐 있는 삶의 전체 지평으로부터 그것의 존재 의미와 진리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9-10쪽

주식회사는 오늘날 우리의 삶을 가장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지평이자 존재의 진리가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소이다.-10쪽

독재 아래 있는 자는 자기 삶의 주인이라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타인의 후견과 보살핌 아래 있는 사람을 자유인이라 할 수도 없다. -23쪽

노동자의 자유와 주체성은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항는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 하지만 공장이나 기업 내에서 어떤 노동자도 ‘홀로주체’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의 자유로운 자기형성은 동료 노동자와의 만남 속에서 생산활동의 ‘서로주체’가 되어 그것을 공동으로 결정하고 형성하는 활동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24쪽

우리 시대에 기업은 단순히 고용계약에 의해 노동자가 자기의 능력과 시간의 일부를 투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단순한 거래의 상대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 또는 사회적 존재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지평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1쪽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참된 만남을 방해하는 지배체제는 결국 자유를 열망하는 인간의 손에 해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엄연한 철칙-41쪽

국가를 기업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은 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기업을 노동자가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58쪽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의 마지막 목적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므로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자기를 도구적으로 희생하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아무리 많은 이윤이 남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유로운 이윤추구의 극한은 생명의 소진이다. 이윤추구의 욕망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욕구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동자 경영권이 보편화될 때 우리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생산과 노동의 균형점이다.
-66쪽

시장은 우리가 서로 수동성을 공정하게 교호나하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장소일 때 자유의 장소가 된다. 그러나 시장에서 실현되는 경제적 자유란 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을 더욱더 결핍 속에 빠뜨려 자기의 결핍을 채운다거나 자기의 자유를 항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타인을 노예 상태에 빠뜨림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라면, 그런 종류의 시장경제를 가리켜 자유라고부르는 것은 강도의 자유나 도둑질의 자유처럼 언어의 남용일 것이다. -74쪽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소유관계를 바꿈으로써,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업의 주인을 바꿈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유혹에 빠지는 까닭은 내가 보건대 인간의 자유가 소유에 기초한다는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할 때만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소유를 통해서만 자유를 확보하려 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자유가 무엇인지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해란 자유를 선택의 능력이나 권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100-101쪽

노동자가 기업의 노예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 기업을 반드시 소유해야 할 필요는 없다. (중략) 자유가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형성하는 활동에 존립하는 한에서, 자유는 자기가 하는 활동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의미한다. -105쪽

권력은 언제나 인격적 만남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요, 만남은 내가 사물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로서, 권력은 오직 이 만남에 의해 만남을 위해 정립되는 한에서만 정당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20쪽

경영권은 정치적 권력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력이다. 그런데 이런 권력은 타인의 인격 전체가 아니라 반드시 타인의 일부를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것은 대개 어떤 일을 위해 타인의 능력을, 즉 타인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력을 도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그 일부가 타인의 인격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까닭에 이런 권리는 사물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인격에 대한 권리이다. 그리고 타인이 행사하는 권력 아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그 권력행사의 대상으로서는 도구적 존재이다. 이 권리가 무제한적으로 확장된다면, 이는 타인의 인격 자체를 완전히 도구화하고 사물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노예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은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이 어떤 근거에 따라 어떤 범위와 한계 내에서 도구적으로 쓰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같다. -123-124쪽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다른 어디도 아니고 사물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뒤섞어버린 데서 비롯된다. 즉 소유할 수 있는 것과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구별 없이 뒤섞어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의 뿌리인 것이다. -130쪽

노동자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참된 의미에서 기업의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소유권을 자본가의 손에서 국가의 손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소유권과 기업의 지배권, 즉 경영권을 분리시키기 않으면 안 된다. -131쪽

시계의 통일성은 외적 강제에 의한 것이요, 한 송이 꽃의 통일성은 부분들의 자발적 결합에 의한 것이지만, 이 자발성은 맹목적인 것이다. 이에 반해 공동체의 통일성은 의식된 자발성에 기초한다. -285쪽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재벌의 주식회사는 이런 거짓된 존재의 최종적 현실태이다. 너와 내가 만나 세계를 더불어 형성하는 활동 속에서 자유를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주체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려 하고, 자기는 자본으로 만들려 한다. 지배하기 위해서는 소유해야 하며, 소유하기 위해서는 상품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야 하며, 나의 모든 능력은 그 상품을 구매하고 생산할 수 있는 자본이 되어야 한다. 상품이 될 수 없는 세계의 부분은 나의 지배권 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타자, 그리하여 언제라도 나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타자이다. 그리고 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는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은 쓸모없는 잉여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런 세계에서 모든 것은 자본과 상품의 관계 속에 용해되어야 한다. -297쪽

정신은 세계를 비추는 한에서 내용을 얻게 된다. 하지만 정신이 텅 빈 거울을 비추게 되면, 그것은 어김없이 거울처럼 공허한 원초적 자기에게로 퇴행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잠옷 입은 이건희가 거울을 볼 때, 처음에는 거울이 이건희를 비추지만 나중에는 이건희가 거울을 비추게 된다. 그 둘은 아무런 내용 없이 공허하다는 점에서 똑같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그런 자기 방을 모형으로 만들어 자기 생일날 손님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는데 이는 마냥 뜻 없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방은 또한 우리가 사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텅 빈 거울이 거울을 비추고 있는 방, 그리하여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엘리베이터처럼 공허하게 서로를 비추고 있는 세계, 움직이지 못하는 거울들이 서로를 비추면서 무한히 자기를 복제하고 증식하는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이다.-302쪽

주주에겐 배당금을, 노동자에겐 경영권을!-320쪽

참된 의미에서 정치는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주체로서 형성하는 활동에 존립한다.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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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반납한다 - 위로받는 청춘을 거부한다
안치용.최유정 엮고 씀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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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보험이란 게 사실 한 달에 40시간 이상 일하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건데요. 그러면 지금 저처럼 주 40시간 일하면서 한 달에 80만 원 이상 버는 상황이 3개월 이상 유지되면 기초생활수급이 끊겨요. 참 난감한 게, 기초생활수급자는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하려고 해도 수급 자격을 유지하면서 일하려다 보니 4대 보험이 제공되지 않는 나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그럼 더 나쁜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거죠."(공기)-23쪽

"비장애인을 뽑아도 일에 익숙해지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 사람에게도 적응 기간을 준 거다. 내가 배려한 게 아니다." (미국 한 시각 장애인 요리사의 상사)-122쪽

겉으로 장애 여부가 확연히 드러나는 중증 장애인과 달리, 경증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자각하는 방식에서 혼란을 겪곤 한다. 경증 장애인은 스스로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다고 여기며 장애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나름 자존심을 지키려는 이런 태도는 장애를 (사회적으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극복하게 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하지만 "숨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이미 장애 사실을 알고 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까? -138쪽

"호소하는 것과 권리를 찾는 것은 다르죠. 그러니까 권리를 주장하면서 호소하면 '저들도 권리가 필요한 동등한 시민이구나.'하고 여기게 되지만 호소만 하면 시혜를 베풀어야겠다고 여기게 되겠죠. 관심이 다르잖아요?"(조병훈) -158쪽

"꼴리는 건 본능 때문이나 덮치는 건 권력 때문이다."(2011년 7월 16일 슬럿워크 구호)-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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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평화 발자국 10
김성희 글.그림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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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말, 싹 다 거짓말이야. 한두 번이 아냐. 내가 이번에는 또 무슨 말 하나 가만히 들어 봤어."
"이 자식들... 대기업이면서 하는 짓은 왜 뒷골목 깡패야."-122쪽

아버지가 어떻게 죽은 것인지, 아이에게도 아버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산 사람의 몫이고, 삶이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다. 그 끈질김으로 이 사회가 이끌려간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행위를 외롭지 않게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사회는 조금씩 더 진보했지 않았나.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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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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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길 수 있으세요? 아버님!"(삼성 직원)-49쪽

"황유미 씨는 사표를 썼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회사 사람이 아니구요."(삼성 직원)
"사표는 당신들이 쓰라니까..."(황유미 아버지)
"그래서 안 쓰셨어요? 쓰셨잖아요!"(삼성 직원)
-61쪽

"삼성이, 이렇게 큰 회사가, 사람이 몇 사람 죽었다고 서류를 이렇게 가짜로 올릴 것 같아요?"(근로복지공단 직원)
(근로복지공단은 우수 기관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해마다 경영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과거에는 직업병으로 판정받는 비율이 60퍼센트 이상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4년 동안 이것을 5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뜨려 경영 흑자를 기록했다.)-76쪽

"사회단체 같은 곳 있지 않습니까. 거기 사람들은 만나지 마세요. 그러니까, 아무도 만나지 마세요. 회사가 한 10억 해 줄 테니까."(삼성 직원)-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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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5-1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저도 어제 이 책 봤어요. 이야기라는 게 확실히 힘이 있어. 정말이지, 더 화가 나더라고요.

마늘빵 2012-05-12 20:07   좋아요 0 | URL
이제 "먼지 없는 방" 볼 차례에요.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

생각보다 강의를 신청한 사람도,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알라딘과 출판사 측은 많은 사람들이 오리라 예상하고 연세대 안의 대강의실을 예약한 것 같은데, 강의실은 1/3 정도가 찼을 뿐이었다. 평일이고 연세대 안 깊숙이 있다 보니 시간에 맞춰 찾아오기 힘들다는 점 등도 작용했을 것. 


한 방향 강의 형식이 아닌 곽정수 한겨레21 기자, 장석준 전 진보신당 창준위, 그리고 책의 저자 김상봉 샘 이렇게 세 분이 함께 무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대를 바라보는 자리에는 꾸리에 출판사 대표, 알라딘 인문 엠디, 도서 커뮤니티 리더스가이드 대표, 레디앙 마케터 등이 보였다. 강의 전 어떤 분께서는 김상봉 선생님께 사인을 받기도 했는데, 뒤에서 듣기로는 번역가였다. 


이 책은 김상봉 선생님의 젊은 시절부터의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의문. 이 물음은 다시 기업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전개되었다. 다음은 김상봉 선생님의 말씀을 부분 발췌한 것이다. 


*

기업의 경영권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누가 답할 수 있는가? 궁금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기업은 기업을 소유한 주주들의 도구일 뿐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기업은 토지와 같은 부동산도, 동산도 아닌 것이다. 


철학 앞에 어떤 단어를 붙이면 철학의 종류가 성립이 되는데, 경제 철학은 없다. 헤겔 이후의 철학은 무가치한 것, 잡다한 철학이다.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다루는 것이 형이상학인데, 그 대상에는 주식회사도 포함된다. 


주식회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자 어떤 활동을 위해 결속한 단체이다. 소유할 수 없고, 소유주가 있을 수 없으며, 대표자가 있을 뿐이다. 대표자는 활동을 대표할 때에만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다. 현재는 돈을 내는 사람들이 주식회사의 주주나 대표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닌 활동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활동가인 노동자는 사물화되어 있고, 자본은 인격의 이름을 달고 이 사람들의 공동체인 주식회사의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의 이건희는 주식의 1%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는 70여 개의 삼성 계열사 법인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개인 기업, 가족 기업, 동업자 기업이 주식회사로 넘어가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과 닮았다. 자본주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의 의문에 대해 성실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한국의 학자들에게 기대할 순 없기 때문에-그들은 외국의 경제학자 이론에 기대고 있다-해외에서 발표한 뒤 논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한국에서 내놓은)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왜 kbs, mbc 의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가? 왜 방송사의 노동자들이 뽑으면 안 되는가? 삼성, 현대 뿐만 아니라 공기업들도 해당한다. 공기업에서부터 이 운동(노동자 경영권)을 시작해볼 수 있다. 

“진리의 빛은 한 번 밝혀지면 꺼지질 않는다.”(김상봉) 가장 설득력 있는 진리의 기준은, 네가 말한 그 개념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설계도가 되느냐(스피노자)라고 묻는 것. 그게 된다면 막을 수 없다. 모든 제국, 모든 절대 권력은 그렇게 붕괴해왔다. 현실적 가능성 여부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상상 속에서 정합성을 가진다면 이야기하고 시작하면 된다. 마르크스조차도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인과 만났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디비디를 틀어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선물받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처절함으로 얻은 민주주의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경제의 민주화를 말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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