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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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아리스토텔레스)-6쪽

특정 재화를 사고팔아도 무방하다고 결정할 때, 우리는 최소한 은연중이라도 그것을 상품으로, 즉 이윤을 추구하고 사용하기 위한 도구로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27쪽

우리는 시장 경제를 가진 시대에서 시장 사회를 이룬 시대로 휩쓸려왔다. -29`쪽

시장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다른 것보다 기준이 높은지, 혹은 더 가치가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누군가 섹스를 하거나 간을 이식받는 대가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여기에 동의한 성인이 기꺼이 팔고자 한다면, 경제학자가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얼마죠?"일 뿐이다. -33쪽

부패라고 하면 흔히들 부정 이득을 연상한다. 하지만 부패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59쪽

종교의식이나 자연의 경이로움을 사고팔 수 있는 재화로 다루는 것은 그것을 향해 경의를 표현하는 태도가 아니다. 신성한 재화를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바꾸는 행위는 그 가치를 잘못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63쪽

"벌금은 부자들에게는 푼돈이다. 정부는 부자들이 실제로 타격을 받을 만한 영역, 즉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지위, 평판, 명예 등을 더욱 세게 겨냥했어야 한다."(중국인민대 사회학과 자이전우 교수)-105쪽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도덕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방식을 가리키고, 경제학은 세상이 실제로 작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적용하려면 그것이 장려해야 할 태도와 규범을 변질시키는지 따져봐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127쪽

도덕적 책임이 따르는 영역에서는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어떤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더 수준 높고 더 적절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도덕적 가치를 묻지 않고 사람들의 선호를 무차별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129쪽

도덕적,시민적 규범을 단순히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비용 효율적인 방식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규범의 내재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다. -167쪽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177쪽

"대중에 대한 봉사가 더 이상 시민의 주요 임무가 아니고 시민들이 직접 봉사하는 대신 돈으로 봉사하려 한다면, 국가는 머지않아 멸망하고 만다."(루소)-178쪽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평등이 점차 심화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점차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고 일하고 쇼핑하며 논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낟.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스카이박스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민주주의에 좋지 않으며 만족스러운 생활방식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 사회적 위치, 태도,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275쪽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고, 행복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가 윤리와 정치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이때 말하는 행복이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심리적 만족감과는 다르다. 그리스어 ‘유다이모니아’는 인간의 삶이 가진 내적인 목표를 충실히 실현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이란 만개한 꽃과 같이 충실하고 온전한 삶의 모습을 일컫는 객관적 성격의 개념이다. (김선욱)-316-317쪽

참된 정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삶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며, 경제는 그러한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는 경제를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는 윤리다. (김선욱)-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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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내용은 6월 1일 연세대 노천 극장에서 있었던 샌델의 강연을 발췌한 것이다. 

 


오늘 주제는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이다. 많은 것들을 돈으로 사고 있는 현실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있는가,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것이다. 


시장 경제와 시장 사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장 경제는 시장 경제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 하지만 시장 사회에서는 우리의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가족 생활, 건강, 교육, 시민으로서의 삶 등 모든 것이 시장에 의해 지배받는다. 우리는 이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상품과 재화를 사고 판다. 인기 있는 강좌의 티켓이 인터넷 상에서 거래가 된다.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라면 암표를 거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안 된다면 왜 안 되느냐. 누군가 말해달라. 


발언자 “원칙적으로 레이디 가가의 티켓을 암거래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발언자 “레이디 가가의 표를 누구나 사고팔 수 있다. 이것은 오락이다. 가고 싶은 사람은 사고, 팔고 싶은 사람은 팔면 된다.” 


중국의 예를 들어보겠다. 중국의 어느 곳에서는 치료를 받기 위해 하루종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 그런데 기업이 노숙자를 고용하여 그 줄을 서게 한다면, 예약진찰권을 받아서 더 높은 가격에 원하는 이들에게 판다면 어떤가. 이 상황이 적절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그것은 민주주의가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이든, 의사의 진찰권이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B: “헌법상에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샌델:  "레이디 가가의 티켓 값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의 인권은 침해당한 것인가? 레이디 가가의 티켓 암거래는 괜찮지만 의사의 진찰권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달라." 

C: “레이디 가가의 공연은 선택의 문제이다. 기본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진찰권은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시장의 권리가 적절한 곳과 적절하지 않은 곳을 구별해주었다(전자는 공연, 후자는 진료권).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인가 아닌가. 이는 논란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철학 강연에 오기 위해 암표를 거래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느냐.(청중 웃음)


D: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도록 한다면 부유한 이들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한 이들이 그 표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샌델: "이 분과 생각을 달리하시는 분?"

E: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마이크 같은 것. 공공재는 다르다. 장기 매매가 암적으로 거래되고 있다면 어떨까.” (이하 생략)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의 기준, 원칙이 있는가. 교육에 대한 접근권은 어떤가. 명문대 입학 사례를 보자. 내가 그 명문대 총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연세대 총장. 대학 입학을 지원한 이들이 많다. 그런데 대학은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제안을 해 보자. 전체 정원의 10%를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한테 파는 것이다. 우선 입학 정원의 90%는 그 학업능력에 기반을 두고 받고, 나머지는 성적이 뛰어나지 않아도 졸업까지 할 수 있다. 최고의 학생은 아니지만 낙제할 만한 학생들은 아니라고 생각해 보자. 어떤가. 


F: “해당 재화의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은 부모님이 얼마나 부자인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학생의 열정과 능력에 따라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가치가 퇴색한다. 대학의, 교육의 본래 목적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G: “기부를 받으면 돈을 활용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0~40%는 안 되지만, 10%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샌델: “왜 퍼센트에 따라 달리지는가.” 

G: “10%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샌델: "그렇다면 50%는 어떤가. 퍼센트에 따라 달라지는가?"


대학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매매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반대자 중 다른 이유를 말하실 분?


H: “부유한 사람들만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공정하지 않기 때문” 


이번에는 현금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학업 성취 능력이 낮은 어린이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돈을 주고 있다. 좋은 성적을 내는 학생들에게는 현금을 주는 것이다. 또 책을 읽으면 이에 대해서도 현금으로 보상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이 학점 50달러, 책을 읽으면 2달러씩 준다. 이 제도를 시행해보겠는가. 


I: “돈으로 보상을 할 때에는 그 행위가 무척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또한 교육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

샌델: “어떤 교육의 목적을 위배하는가.”

I: “돈을 줘서 책을 읽게 하고 성적을 올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그런 꿈을 가져야 하기 때문. 아이가 진정으로 독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도 있다. 그 자체를 좋아하게 해야.”

J: “나는 반대한다. 처음에는 돈을 줘서 읽게 해도 나중에는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할 수 있다.” 


현금 보상 제도가 중단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 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독서를 한 것일까? 습관이 형성되어 더 큰 가치가 발생했을까. 아이들은 압박을 당해서 그것을 할 경우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감사카드를 쓸 때마다 돈을 받았을 경우 이런 습관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감사에 대한 중요성을 느낄 수 있을지. 하나의 시나리오이다. 중요한 것은 태도와 규범.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스위스의 경우이다. 핵폐기물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논란이 되었다. 산에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다. 적합한 부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동의를 해야 했다. 주민에게 질문을 했다. 의회에서 핵폐기물을 이곳에 두겠다고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51%가 받아들였다. 재무적 보상을 한다면 매년 모든  주민들에게 6천 유로까지 지급한다면 이 핵폐기장이 이곳에 있는 것에 동의하느냐 물었다. 25%로 반이나 낮아졌다. 경제적 논리에 따르면 이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면 더 예스라고 답할 거라 생각하지만, 수용도가 더 낮아졌다. 뭐라고 설명할까. 


K: “의회의 결정은 의무라고 생각했겠지만, 인센티브를 준다고 할 때에는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이 그곳이 적합한 곳이 아니라,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을에 설치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샌델: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경제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 케이스다."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자. 어린이집. 아이들은 부모님이 올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집에서는 늦게 온 부모님한테 벌금을 물게 했다. 더 많은 부모가 늦게 왔다. 원래 더 적게 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에 왜 그랬을까. 이 또한 역설이다. 이전에는 어린이집에 늦게 오면 부모가 죄책감을 느꼈지만, 벌금 제도가 시행되자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생각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 죄책감이 수반되지 않는다. 인센티브 때문에 다른 가치들이 밀려난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이 제도를 없앴다. 그런데 늦게 오는 사태는 계속되었다. 의도와 정반대로 된 것.


 의무감이 돈으로 변질되거나 침해되면 한번 부여받은 의무감은 다시 형성하기 어렵다. 정통 경제학은 인간 경험의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것.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중립적이라고 말한다. 물질적 재화에 대해선 그게 맞다. 하지만 비물질적인 재화, 즉 인간관계, 시민으로서 의무, 교육 등은 비시장적 가치이다. 현금적 보상은 해당 재화들의 가치가 변질되고 변형된다. 


미국 내전이 있었을 때 북쪽에서는 징병제를 도입했다. 링컨대통령이. 법에 따르면 남북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있었다. 다른 법 조항에서는 일정 금액을 정부에 지불하고 의무를 면제받을 수도 있었다. 이런 경우 괜찮다고 생각하느냐.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 한국과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 그는 공연을 통해 큰 행복을 준다. 엄청 돈을 번다. 만약 유명한 스타이고, 경력이 중단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수익의 반을 정부에 내고 군을 면제 받을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수입이 올라간다. 그는 계속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이런 경우 어떤가? 찬성하는 분 손들어 달라. 반대하는 분 손들어 달라. (청중을 보며) 조금 전(미국 남북전쟁 사례)과 같네요. 


L: “국위선양을 누군가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민들은 똑같은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찬성할지 모르겠다.” 

샌델: "그 수익이 빈곤 계층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도 반대할 거냐. 누구 의견 있으신가"

M: “모두가 국민이다. 연예인이전에 국민이다. 국민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발언자 “각자의 위치에서 국위 선양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공연이든, 축구든 뭐든 그것으로 나라를 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샌델: "누구 반대하시는 분?"

N: “비가 수익금을 나라에 내는 것은 시장적 가치이다. 그러나 국민으로서의 군복무는 비시장적 가치이다. 그렇다면 군에 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군에 가는 의무감이 약화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체의 의무감을 낮춤으로써 나라에 해가 되는 것.” 

L: “의식의 문제다. 자기 입장에서 이기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극소수다. 그 사람의 기여가 돌아돌아서 나에게 돌아온다면 내가 좀 더 양해를 하면 되는 것 아닐까?” 

N: “삼성 이재용이 전투기 20억짜리를 샀다. 그리고 면제를 받는다면. 군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행위가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공재는 많은 사람들의 기여에 따르는 것, 비시장적 가치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성, 의무. 시장 논리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것, 사회가 돈으로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의 의무라는 것이다. 시장 원리와 돈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분별해야 한다. 어떤 경우 시장이 거래되는 재화의 성격을 변형시키고 몰아내기도 한다. 중요한 비시장적 가치를 보면 시장과 돈이 위협하는 가치가 있다. 최근 돈으로 더 많은 것을 사고, 빈부의 격차도 심해지고 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그렇다. 부자와 가난한 이들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만나며 교류하는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부자들의 영여과 가난한 이들의 영역이 다르고,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주지는 않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공공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논쟁하고 관용하고, 존중할 수 있다. 어떤 사회를 만들기를 바라는가 라는 질문과 관련 있다.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논의가, 정의가 다를 수 있다. 공정 사회가 무엇이냐 하는 것. 그러나 이를 중요하게 논의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돈과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돈이 무척 소중하다고 말한다. 돈의 가치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어떤 영역에서 위협이 되는지도 논의되지 않는다. 여기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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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만인가.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이후 한국을 방문해 한 차례 강연을 한 바 있다. 이 날 누군의 말에 따르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 인구 수로 보자면 한참 차이가 나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당시,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부정의한 행태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에 대한 결핍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의 하버드대 간판과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사는 사람들의 구매 패턴도 무시 못할 것. 


  이번 책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김영사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판권을 사올 때에는 매우 싸게 들여왔다고 했는데, 샌델 인기가 높아진 이후 그의 판권은 얼마나 비싸졌을까. 한 예로 무라까미 하루끼의 "1Q84" 판권을 최근 문학동네에서 큰 돈 주고 들여왔다는 이야기(선인세를 준 만큼 팔기는 했지만 수익이 많이 남진 않았다고 들었다), 또 스티븐 잡스의 자서전을 민음사에서 큰 돈 주고 사왔다는 이야기(민음사에서는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등을 참조해봤을 때-이 때문에 한국으로 들여오는 판권의 가격대가 무척 높아졌다고 들었다-, 이번 건은 과연 얼마일까 궁금하다. 


  강연 행사는 아산재단과 연세대, 와이즈베리가 주관했다. 와이즈베리는 신생 출판사임에도 샌델의 판권을 따올 수 있었던 건, 미래엔이라는 큰 회사에 소속된 출판 브랜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한 달 전부터 신청자를 받았고, 듣기로는 초대장이 만오천 장 발송되었다고 했다. 연세대 노천 극장의 수용 인원은 만 명이다. 신청하고서 안 오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더 많이 초대한 것 같은데, 이 날 강연장에서 관계자가 샌델 강연의 티켓이 온라인에서 3~4만 원에 거래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그냥 버려지는 티켓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만 명인지 만오천 명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날 노천 극장은 빼곡히 찼다. 


  개인적으로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 보다는 교통편이 더 편리했고, 대학 정문부터 강연장까지의 거리도 경희대보다 더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노천 극장 계단 입구부터 사람들이 가득 줄을 서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인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고, 줄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 대단한 열기. 경희대 강연 때와 같은 뜨거운 인기를 실감한다. 노천 극장이고, 계단에 앉아야 했기에 경희대 보다는 불편했지만, 샌델 식 토론 수업은 여전히 재밌었다. 그는 사람들을 자극하고, 발언하게 하고, 맞붙이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이끌어 나갔다. 


  처음에는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만이 발언했는데, 샌델이 한국어나 영어 중 아무거나 상관이 없고, 자신에게 편한 것으로 말하라고 하자, 후반부로 갈수록 용기를 낸 사람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하거나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발언자 중에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도 있었고, 초등학교 교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도 있었다. 경희대 때와 이번 강연을 봤을 때, 영어로 말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감에 넘쳤고, 한국어로 말하는 이들은 약간은 주눅들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영어권 강연자를 앞에 놓고 있어서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묘한 풍경이다. 분명 통역자와 자막 번역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청자가 모두 한국인인 점을 감안하면, 발언자는 한국어로 발언했어야 했다. 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청자가 아닌 샌델을 배려한 걸로 보이진 않는다. 

  

  경희대 때보다 샌델은 느리게 말을 했고, 자막 번역자는 그때와 동일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타가 훨씬 적었다. 사실, 경희대 강연 때 번역자가 오타를 내면서라도 발언 내용을 번역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보여 강연을 재밌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는데. 이번 번역자는 오타는 줄었고, 샌델의 말을 어조를 살려 잘 번역해서 또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번역자는 강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손이 바빴겠지만, 샌델의 통역자는 한국어로 발언하는 이들이 나온 후반부 때에서야 비로소 일을 좀 했을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연과 이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강연의 패턴은 같았고, 샌델은 자신이 책에 쓴 내용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요한 부분을 위주로 토론을 이끌었다. 즉, 강연은 책의 요약본이라고 볼 수 있다. 발언자들이 책을 읽고 왔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샌델은 책에서 다룬 부딪히는 주장들을 발언자들에게서 직접 끌어내려 했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추가로 발언하게 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 그는 강연 도중 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사회가 부정의하다고 답변한 비율이 높았으며, 올바른 행동을 이끌기 위해 돈으로 보상하거나 유인하는 방식이 괜찮은가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인보다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찬성한다는 통계 자료 결과를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 통계는 강연에 앞서 아산재단과 미국의 서베이가 각각 천 명 이상의 시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것이다. 


  샌델이 출연한 시점을 기준으로, 강연은 일곱시 반 정도에 시작하여 아홉시 반 정도에 끝났으니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샌델을 보냈다. 노천 극장을 빠져 나오며 입구에 마련된 와이즈베리의 책 판매대에서 책을 구입하는 중년 아저씨도 있었다. 청자의 나이대는 주로 20대가 많았고, 어린아이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했다. 아무래도 평일 일곱시라는 시간의 제약, 연세대 노천극장이라는 거리의 제약으로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 근거리에 있는 나도 퇴근하고 택시타고 바로 갔는데. 그의 강연은 그 스타일이나 내용, 청중의 분위기 등 이곳까지 와서 들을 가치가 있었다. 


  오늘 트위터에서 본 이야기다. 샌델은 이후 박원순 시장과 만나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들렀다고 한다. 그는 행동으로 끝나지 않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샌델의 근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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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0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강연소식 듣고 아프님 거기 갔으려나 싶었는데 역시 들었네요. 잘 읽었어요.

마늘빵 2012-06-03 13:11   좋아요 0 | URL
네, ^^ 경희대가 초큼 더 재밌었어요. 열기는 여전했고.

글샘 2012-06-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쌍용차...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 있죠...
돈으로 얻을 게 있는 넘들과의 싸움... 거긴 정의도, 도덕도, 윤리도 없는... 괴물들이 살죠.ㅠㅜ
 
철학에게 미래를 묻다 - 미래를 읽는 22가지 생활 속 화두
안광복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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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못 느끼고 있습니다." 라는 눈총은 곳곳에서 쏟아진다. 내 기분이 아주 꽝이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솔직한 마음 그대로를 보여 줄 수 있는 가족과 친구는 사라져 간다. 그럴수록 각종 심리 검사는 늘어난다.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제대로 느끼는지 아닌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탓이다. 심리 검사로 드러난 수치와 전문가의 설명을 통해서만 내 감정이 뭔지 알 수 있다면, ‘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에 친절함이 넘칠수록 외로움도 깊어 간다.-32쪽

"돼지나 소의 식습관을 바꾸는 것이 돼지와 소를 먹는 사람이 다이어트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피에르 베일)-37쪽

"공짜는 선택이 아니라 피하지 못할 종착점이다."(크리스 앤더슨)-119쪽

우리 시대에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철학은 제대로 된 의미를 찾기 위해 ‘상식’을 흔들어 댄다. 잘못된 길은 아니 가는 것만 못하다. 물론 인생의 정답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큰 산은 오를수록 모양새가 달라지는 법, 지금 내게 보이느 인생이 ‘삶의 본래 모습’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찾고 또 찾는 노력은 중요하다. 훈련된 판사라 해서 꼭 옳은 판결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노력은 그의 판결을 좀 더 진리에 가깝게 만든다. 진정한 의미를 좇기 위한 의심과 탐구도 인생을 조금씩 진리로 끌어 올릴 테다. -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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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지음 / 꾸리에 / 2012년 3월
품절


"원래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징은 그것이 현존의 사회질서 속에 특정한 분야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은 어려운 말이지만, 요컨대 경제학이 현존질서 속에서 경제현상이라는 대상을 차지하고 정치학이 정치분야를 갖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철학은 현존 사회질서 속에 그 귀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철학이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존 질서 속의 일부가 아니라 그 현존질서 전체, 즉 그 ‘통째’이다. 따라서 다른 분야의 학문이 자칫하면 현존질서 전체를 주어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 일부분으로서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과 달리 철학은 현존질서 전체가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정면에서 문제 삼게 되며, 때로는 잘못된 현존질서 속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과 대등한 처지에서 대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을 ‘세계관의 학문’이라 부르는 이유이고, 철학이 다른 학문분야들의 ‘통괄자’로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유이며, 그리고 나아가서는 역사 속에서 철학이 많은 박해를 받아온 이유이다."(서준식, "옥중서한")-8-9쪽

철학은 언제나 세계 전체 또는 존재 전체를 생각하는 보편적 학문이다. 당연히 철학이 탐구해야 할 그 전체 속에는 경제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영역에 속하는 주식회사 역시 하나의 존재자로서 철학적 성찰의 대상일 수 있다.-9쪽

철학자는 무엇을 보든 존재에서 무에 걸쳐 있는 삶의 전체 지평으로부터 그것의 존재 의미와 진리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9-10쪽

주식회사는 오늘날 우리의 삶을 가장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지평이자 존재의 진리가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장소이다.-10쪽

독재 아래 있는 자는 자기 삶의 주인이라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타인의 후견과 보살핌 아래 있는 사람을 자유인이라 할 수도 없다. -23쪽

노동자의 자유와 주체성은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항는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 하지만 공장이나 기업 내에서 어떤 노동자도 ‘홀로주체’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의 자유로운 자기형성은 동료 노동자와의 만남 속에서 생산활동의 ‘서로주체’가 되어 그것을 공동으로 결정하고 형성하는 활동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24쪽

우리 시대에 기업은 단순히 고용계약에 의해 노동자가 자기의 능력과 시간의 일부를 투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단순한 거래의 상대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 또는 사회적 존재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지평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1쪽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참된 만남을 방해하는 지배체제는 결국 자유를 열망하는 인간의 손에 해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엄연한 철칙-41쪽

국가를 기업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은 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기업을 노동자가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58쪽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의 마지막 목적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므로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자기를 도구적으로 희생하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아무리 많은 이윤이 남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유로운 이윤추구의 극한은 생명의 소진이다. 이윤추구의 욕망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욕구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동자 경영권이 보편화될 때 우리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생산과 노동의 균형점이다.
-66쪽

시장은 우리가 서로 수동성을 공정하게 교호나하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장소일 때 자유의 장소가 된다. 그러나 시장에서 실현되는 경제적 자유란 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을 더욱더 결핍 속에 빠뜨려 자기의 결핍을 채운다거나 자기의 자유를 항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타인을 노예 상태에 빠뜨림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라면, 그런 종류의 시장경제를 가리켜 자유라고부르는 것은 강도의 자유나 도둑질의 자유처럼 언어의 남용일 것이다. -74쪽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소유관계를 바꿈으로써,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업의 주인을 바꿈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유혹에 빠지는 까닭은 내가 보건대 인간의 자유가 소유에 기초한다는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노동자가 기업을 소유할 때만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소유를 통해서만 자유를 확보하려 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자유가 무엇인지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해란 자유를 선택의 능력이나 권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100-101쪽

노동자가 기업의 노예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 기업을 반드시 소유해야 할 필요는 없다. (중략) 자유가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형성하는 활동에 존립하는 한에서, 자유는 자기가 하는 활동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의미한다. -105쪽

권력은 언제나 인격적 만남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요, 만남은 내가 사물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로서, 권력은 오직 이 만남에 의해 만남을 위해 정립되는 한에서만 정당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20쪽

경영권은 정치적 권력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력이다. 그런데 이런 권력은 타인의 인격 전체가 아니라 반드시 타인의 일부를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것은 대개 어떤 일을 위해 타인의 능력을, 즉 타인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력을 도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하지만 그 일부가 타인의 인격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까닭에 이런 권리는 사물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인격에 대한 권리이다. 그리고 타인이 행사하는 권력 아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그 권력행사의 대상으로서는 도구적 존재이다. 이 권리가 무제한적으로 확장된다면, 이는 타인의 인격 자체를 완전히 도구화하고 사물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노예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은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이 어떤 근거에 따라 어떤 범위와 한계 내에서 도구적으로 쓰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같다. -123-124쪽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다른 어디도 아니고 사물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뒤섞어버린 데서 비롯된다. 즉 소유할 수 있는 것과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구별 없이 뒤섞어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의 뿌리인 것이다. -130쪽

노동자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참된 의미에서 기업의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소유권을 자본가의 손에서 국가의 손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소유권과 기업의 지배권, 즉 경영권을 분리시키기 않으면 안 된다. -131쪽

시계의 통일성은 외적 강제에 의한 것이요, 한 송이 꽃의 통일성은 부분들의 자발적 결합에 의한 것이지만, 이 자발성은 맹목적인 것이다. 이에 반해 공동체의 통일성은 의식된 자발성에 기초한다. -285쪽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재벌의 주식회사는 이런 거짓된 존재의 최종적 현실태이다. 너와 내가 만나 세계를 더불어 형성하는 활동 속에서 자유를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주체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려 하고, 자기는 자본으로 만들려 한다. 지배하기 위해서는 소유해야 하며, 소유하기 위해서는 상품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야 하며, 나의 모든 능력은 그 상품을 구매하고 생산할 수 있는 자본이 되어야 한다. 상품이 될 수 없는 세계의 부분은 나의 지배권 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타자, 그리하여 언제라도 나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는 타자이다. 그리고 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는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은 쓸모없는 잉여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런 세계에서 모든 것은 자본과 상품의 관계 속에 용해되어야 한다. -297쪽

정신은 세계를 비추는 한에서 내용을 얻게 된다. 하지만 정신이 텅 빈 거울을 비추게 되면, 그것은 어김없이 거울처럼 공허한 원초적 자기에게로 퇴행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잠옷 입은 이건희가 거울을 볼 때, 처음에는 거울이 이건희를 비추지만 나중에는 이건희가 거울을 비추게 된다. 그 둘은 아무런 내용 없이 공허하다는 점에서 똑같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그런 자기 방을 모형으로 만들어 자기 생일날 손님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는데 이는 마냥 뜻 없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방은 또한 우리가 사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텅 빈 거울이 거울을 비추고 있는 방, 그리하여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엘리베이터처럼 공허하게 서로를 비추고 있는 세계, 움직이지 못하는 거울들이 서로를 비추면서 무한히 자기를 복제하고 증식하는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이다.-302쪽

주주에겐 배당금을, 노동자에겐 경영권을!-320쪽

참된 의미에서 정치는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주체로서 형성하는 활동에 존립한다.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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