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시인이 되고 싶었던 한 청년에게 총 556만원을 훔친 상습절도죄로 징역 17년 형이 내려졌다.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동경 전경환이 새마을 사업 비리로 약 70억 상당의 돈을 횡령하고 징역 7년형이 내려졌으며, 2년 3개월 뒤 풀려놨다. 17년형을 받은 한 청년은 이에 반발하며 1988년 10월 8일 교도소 이감 중 동료 12명과 함께 탈주에 성공하여 서울 한 복판에서 9일간 인질극을 벌이다 죽었다.

  영화 <홀리데이>는 그런 영화다. 1988년 대한민국에서 서울 올림픽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던 인질극을 그린 영화다. 그 인질극의 주인공 지강헌을 그린 영화다. 지강헌은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상습 절도로 17년을 선고받았으며,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자신보다 훨씬 많은 70억을 횡령하고도 2년 3개월만에 풀려나자 분노했다. 정당한 분노였다. 분노란 것에 '정당한'이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것은 당연했다.

  대부분의 탈옥수들이 잡혔지만, 지강헌을 비롯한 총 4명은 이후 8일간 강도짓을 하며 버텼고,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의 포위를 받고, 일부는 자살, 지강헌 역시 할 말을 다 한 채 깨진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으나, 숨이 붙어있는 상태에서 경찰의 총탄 두 발을 맞아 다음날 죽었다.



  지강헌은 경찰의 불심검문에도 단 한번도 걸리지 않았으며, 기회가 있었기에 충분히 도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애초 탈주를 시도한 원인이 되었던 것에 대해 할 말을 다 하고자 인질극을 벌이며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죽어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으면 죄가 있어도 죄가 아니고, 돈이 없으면 죄가 없어도 죄가 있다. 물론 지강헌은 상습절도죄로 수감되었지만, 그의 불우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의 희망대로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켰고, 그 책임을 환경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죽어갔다. 비지스의 홀리데이 대신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원대로 말을 다 한 채 죽어갔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이 사회는 너희처럼 큰소리치는 놈들이 망쳐 놓은 거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고, 돈 없는게 죄다! 나는 돈 없고 빽 없는 놈이라 이렇게 된 거다! 도둑놈? 범죄자는 바로 너희 같은 놈들인데.... 바로 너부터 죽여버리겠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고 죽겠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죽지 못한 게 한이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우리나라 법이 이렇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내 할말 다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시를 한편 남기겠다. 내 유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염세주의자이다!”

  이것이 지강헌이 남긴 말이다.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염세주의자라는 말. 그는 정말 그랬을 것이다.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비관은 세상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다. 증오는 희망으로 변하지 않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88년 지강헌이 죽어가며 한 말이지만 2006년 아직도 이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얼마전 판사들이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받고 판결을 내려줬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한 두명이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꽤나 높은 직책에 있는 이들조차도, 우리가 믿고 우리의 죄를 심판해달라고, 우리의 억울함을 벗겨달라고 요청해야할, 판사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 판결은 애초 요구받았던 그대로였다. 돈이 있으면 확실히 죄가 있어도 죄가 아니다. 그리고 돈이 없다면 죄가 없어도 죄이다.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어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치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훔치다 잡혀간 사람들, 물론 그들은 죄를 지었다. 절도죄를. 하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그들의 잘못이라 말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돈이 없으면 반드시 죄가 되는건 아니지만, 죄를 저지르기 쉽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아직도 유효하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앞으로 20년이 지난 뒤에 이 말이 입가에 다시 맴돌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안다. 그것이 오직 희망사항이란 것을. 정의는 언제나 현실과 멀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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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6-07-2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有錢無罪 無錢有罪 라는 말! 요즘이 더 맞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06-07-2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며 당시 뉴스에서 나오던 장면이 겹쳐지더군요. 저 창살 장면 .. 미화된 부분도 있었지만 괜찮았던 영화에요..

마늘빵 2006-07-2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시절이라 이런 사건이 있는줄도 몰랐어요. 나중에야 알았죠.

책방마니아 2006-07-27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이런 사건 있는지 정말 몰랐단 말이야? 우리 초등학교 3학년 땐가 이 사건이 티비에서 생중계로 방영되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1988년 올림픽을 열면서 (당시 정부의 정당성을 국내외적으로 인정 받기 위한 꼼수였다고 볼 수 있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서울 내 빈민촌 등이 철거되는 과정이 씁쓸하게 느껴지더라. 근데 이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을 연기한 최민수 말이야. 목소리 너무 오버하는 거 같더라. 비열한 연기를 하는 것 까진 좋은데, 너무 겉멋 들이는 것 같아 좀 거슬렸음 ~

마늘빵 2006-07-2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민수 연기는 항상 좀 그렇더라구. 느끼하구 오버하는 느낌. 음. 난 이런 사건 있는줄 몰랐는데. 그때 내가 뭐 하고 놀았길래 그렇지. 하긴 그땐 뉴스같은거 거의 안봤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