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디 영화제 개막작 <좋아해>. 영화 맛배기 광고를 통해 기대했던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104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봤던 영화였다. 영화는 여러컷의 사진들을 이어붙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한 듯 장면장면은 단절되었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 보여지는 파란하늘은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17세의 유(미야자키 아오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반년 전에 떠나보낸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방과 후 강변에서 언제나 같은 소절만 연주하는 친구 요스케(에이타)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유는 언젠가부터 그 소절을 흥얼거리며 다닌다. 한 발짝만 다가서면 잡힐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서지 못하던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멀어지게 된다. 17년 후, 음반회사의 영업을 하고 있던 요스케와 역시 음악제작회사에서 일하던 유는 우연히 재회하게 되는데… (줄거리 엠파스 협찬)

   좋아해, 라는 말 한마디 못한 채 17년이 지났다. 보면서 애절하고 슬펐지만 한편으로 답답하기도 했던 한국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우재와 연수보다도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더 어렵게 좋아한단 말을 던져놓는다. 관객은 '좋아해'란 말을 듣기 위해 104분을 기다렸고, 그것은 오랜 기다림의 가치를 충분히 보상해주지 못한다. 내가 너무나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가 나를 파고 들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사랑고백에 도달하기 위한 감독의 서술방식의 차이였을 뿐. <사랑을 놓치다>는 좀더 확실히 스토리와 순간순간 적절한 감정이입으로 관객을 울렸다면, <좋아해>는 그저 끊어진 장면을 불친절하게 연결해보여주고 별다른 대사나 줄거리 없이, 보여지는 화면을 통해 관객과 공감을 이루려 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한다. 다만 그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뿐. 별다른 대사와 줄거리 없이 장면의 이어붙임으로써 조용한 공감을 이루기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괜찮다.

  하나 더. <사랑을 놓치다>가 영화를 보는 나의 마음 속에 파고 들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의 나이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나를 울리게 한 하나의 원인으로 추정할 뿐이다. 감독의 영화 서술 방식, 줄거리, 대사, 시기적절하게 들어맞는 주변상황들, 안타까운 어긋남 등등의 영화적 설정 뿐 아니라 주인공에게 애초 부여된 그들의 나이는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20살 대학신입생으로 만나, 졸업후 직장을 갖고 한참을 방황하다 만난 30살의 남과 여. 내 나이 서른 안됐지만, 여건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 사랑의 따스한 감정을 갖기 시작할 15,16살 정도의 청소년도 아니고, 30살씩이나 먹은 그들의 힘겨운 사랑고백은 충분히 답답하고 애절하고 안타깝다. 영화 <좋아해>에는 이런 설정이 전혀 없이 흰 도화지 위에 찍어놓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툭툭 던져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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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7-1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놓치다>가 해물잡탕이라면 <좋아해>는 복지리.. 같달까? <좋아해>는 기대를 너무 한탓인지 막상 보고나서는 별로. 포스터를 받아온 것은 좋았음.ㅎㅎ 두 영화 다 별로 맘에 안들지만 하나를 택하라면 복지리가 낫다는 생각.

마늘빵 2006-07-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랑을 놓치다>는 <봄날은 간다> 만큼이나 좋았는데. 음. <좋아해>는 나도 너무 기대를 많이 한 나머지 별로. 포스터는 그거 예매한 사람들만 주는거라 난 못받았는데...

플로라 2006-07-1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의 복지리 표현, 정말 압권이네요.ㅋㅋ <사랑을 놓치다>는 못봤지만 <좋아해>랑 비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보다가 지루하고 답답했지만 <좋아해>의 담백함이 저도 무척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