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살림지식총서 222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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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번, 죽음도 한번, 태어남도 한번, 소멸도 한번뿐이다." (쉴러)-8쪽

어떤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고찰한다는 것은 이성의 질서에 따라서 고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열정과 병리학의 질서를 따른다. 이것이 자살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자살에 대한 이성적인 논증들을 알고는 있지만 그 논증들이 자살자의 고통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자살자의 고통을 전해주는 말은 이성적인 논증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진실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나의 과학적 논증이 적어도 과학이라고 자처하려면 현상에 의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자살에 관한 논증들은 이 둘 사이를 영원한 평생선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이다.-9쪽

인간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자신을 가장 잘 제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말하자면 끊임없는 장광설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가 될 뿐으로서 오히려 자기가 아닌 타인으로서 자신을 유포하는 셈이다.(디누아르, <침묵의 미덕>)-13쪽

인생이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오래 끌어가지 않으면 안 되늰 것과 같은 그런 애착이 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대의 본질이 원래 어떻게 만들어져 있든 간에 남과 마찬가지로 그대 역시 죽지 않을 수 없으며, 품행이 나쁘고 신을 모독하는 일을 해온 사람도 마찬가지로 죽어간다. 그러므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온갖 선물 중에서 적절한 시기에 죽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각자는 무엇보다도 자기의 영혼의 약으로서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더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선물은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리니우스, <박물지> 제28권 제 1장)

신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만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은 설사 스스로 자살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이 가능하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자 최상의 선물이다.(플리니우스, <박물지> 제2권 제7장)-18-19쪽

"자살은 설사 그 사람 자신에 있어서는 부정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부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15장)-25쪽

자살이란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이것이 의도적이고 자유롭게 영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오직 신에게만 속하는 권한을 사취하는 신에 대한 범죄이므로 자살은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33쪽

소크라테스는 자살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도덕적으로 나쁜 것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것이 철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철학자에게 죽음은 평정을 가지고 맞이해야 할 단순한 불행이 아닌, 자기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일반인에 대해서는 원하는 때에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철학자에게는 인정하고 있다. -62쪽

극기주의는 그것이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과 그 영역의 경계 밖에 잇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확고하게 붙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다시말한다면 자살 행위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합리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기만 하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자유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65쪽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방법이 죽음 말고는 다른 것이 없을 때 이 세계를 떠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오직 철학자에게만 속하는 지고의 존엄이다. (세네카)-66쪽

그런데 모두가 자살을 개인적 의지의 승리로 간주하고는 있지만, 그 의지도 그 승리가 쟁취되는 순간에는 그 지지의 근거를 잃고 만다. 만일 시체가 다시 되살아난다면 그 승리가 결정적인 것만큼이나 순간적이라는 것을 알 것이지만 이제 그 승리를 연장시키고 그 기억을 보존하고 그 결과를 전개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남아 있는 전 인류의 몫이 된단 말인가? 자살을 어떠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의 부정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그 반대로 생에 대한 보다 밀도 깊은 긍정의 징표로 간주한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죽음의 의지가 존중되어야 한다면 이것 또한 이기적인 쾌락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이 의지의 실현 사이의 장애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삶에서 의지를 실현시킬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그 의지라는 현상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자살 이라는 형태로서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의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고통을 거부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68-69쪽

만일 자살이 허용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만일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살 또한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자살은 말하자면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알아보려고 시도하는 것은 수증기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수은 증기를 만져보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자살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트겐슈타인)-71-72쪽

"각자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곳에서 (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그를 위해 걱정해 주는 것뿐이다."(키에르케고어)-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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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6-0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던가요?

마늘빵 2006-06-0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요? 네! 요 책 읽고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보면 딱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아가 4만원에 육박하는 <죽음 앞의 인간>도 볼 수 있다면 더 좋을듯. 자살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축약적으로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가넷 2006-06-0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것 말고도 살림지식총서중 몇권 골라잡아서 지를까 생각중인데.. . 질러야 할까봐요. 정말 저렴한 가격에 질은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그리 나쁜 평들은 없는것 같으니까...음.;

마늘빵 2006-06-0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살림지식총서 괜찮은 거 많아요. 예전에 봤던 <르몽드>도 좋았고. 이번에 새로 산 <영화음악>도 아직 안봤는데 괜찮을거 같아요. 싸고 좋아요. 책 중에 제일 싸지 않을까 생각.

비로그인 2006-06-0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밑줄긋기 74쪽 때문에, 키에르케고르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이지요.

마늘빵 2006-06-0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