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구판절판


"뭔가를 진짜로 창조하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건데?"
"글쎄...... 사람들에게 음악을 마음 속 깊이 전달되게 해서, 내 몸도 물리적으로 얼마간 스르륵 이동하고, 그와 동시에, 듣는 사람의 몸도 물리적으로 스르륵 이동하게 하는 것, 그렇게 창작자와 감상하는 자 사이에 공유적인 상태를 낳게 하는 그런 게 아마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128쪽

"그런데 말이지, 몇 차례 재판소에 다니며 재판을 방청하는 동안에, 거기서 심판을 받고 있는 사건과,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일에, 이상하게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점점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게 됐거든.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거기서 옳고 그른 것을 심판받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하고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하고, 나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사는 세계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 사이에는, 아주 확실한 높은 벽이 있다.' 처음 얼마동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왜 그런가 하면 말이지, 무엇보다 내가 흉악범죄를 일으킬 가능성 같은 건 없잖아. 나느 평화주의자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어렸을 때부터 누구에게도 손을 대본 적이 없었거든. 그러니까 그냥 순수한 구경꾼으로서, 재판받는 사람들과는 달리 높은 곳에서 재판을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이거지. 그냥 남의 일로서 말이야."

"그런데 재판소에 다니면서,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 검사의 논고나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며, 범죄자의 진술을 듣는 동안에, 아무래도 자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됐어. 다시 말해서, 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 그들과 나라고 하는 두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벽이란 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벽이 있다 해도,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허술한 '하리포데'라고나 할까, 그런 얇은 벽인지도 모른다. 몸이 슬쩍 기대는 순간 뚫려나가서, 벽의 반대편으로 쓰러져버릴지 모를 그런 벽이라고 할까. 우리 자신의 내부에 '저쪽 세계'가 이미 몰래 숨어 들어와 있는데도,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지."-132-133쪽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밝은가, 어두운가 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어둠과 밝음 사이에는 그늘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잖아. 그 그늘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그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어? 나는 마리가 성격적으로 별로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해."-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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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9-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유를 그렇게 낳았군요! ㅎ
추석에 무슨 책 갖고 갈까 했는데 요거 들고 가야겠어요.
아직 읽지도 않았고 안 무거워서...ㅎ
아프락사스님, 추석 잘 보내세요 ^^

마늘빵 2005-09-1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플레져님 오랫만이에요. 제가 요새 뜸해서. 이 책 그냥 읽기 편합니다. 그다지 딱 끌리는 내용은 아닌데 편안한게 읽을 수 있는 책. 하루키를 싫어하는 분이 많은데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전 싫지도 좋지도 않은 작간데.

이리스 2005-09-1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추석~
저는 아직도 삼실임돠... 이제는 몸에 열이나서 땀이.. -.,-

마늘빵 2005-09-1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직도 삼실에 계시면 어쩐대요. 구두누님. 회사에서 넘 일을 많이 시키는거 아녀욧. 추석때도 나오진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