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반데라스, 안소니 홉킨스, 캐서린 제타 존스. 외국 영화배우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조차도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 사람은 이미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고 볼 수 있다. 영화계의 큰 아버지뻘인 안소니 홉킨스는 그렇다치고,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사실 아카데미상 두개 부문과 골든 글로브상 2개 부문에 오른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물론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마스크 오브 조로>를 찍기 전에도 <에피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데르페라도> 등의 작품을 통해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그가 오늘날의 위치에 도달하게 한 주역은 아무래도 <마스크 오브 조로>로 봐야 할 듯 하다. 한편 캐서린 제타 존스 역시 <블루쥬스> <캐서린 제타 존스의 더 그레이> <타이타닉>(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이타닉이 아니다) 과 같이 TV드라마를 통해 데뷔는 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날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결국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고 봐야한다.

  <마스크 오브 조로>는 또 하나의 영웅을 담은 영화이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의 영웅 영화들은 부지기수로 많고, 여기에 조로가 더 가세해봐야 별 티도 안나지만, 다 똑같은 구조의 영웅영화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 그 안에 또다른 숨은 매력이 있기 마련. 조로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이 화려한 장비를 가지고 온갖 묘기를 부리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내게 주어진 것은 훌륭한 말 한필, 칼 한 자루, 그리고 눈만 가린 복면. 아 망또도 있다. 힘찬 말 달리는 소리와 함께 망또 휘날리며 등장한 조로. 아무 죄 없이 붙잡혀 죽어가는 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귀족의 군대에 맞서 싸운다. 그리곤 떠나갈듯한 민중의 함성소리와 함께 숲으로 사라진다. 이 짜릿한 쾌감. 영웅영화에서라면 흔히 있는 구조다. 갑자기 등장해 불쌍하고 착한 사람들 구해주고 소리없이 사라진다. 배트맨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신과 같이 추앙받는 존재는 아니다. 분명 보통 사람이고, 단지 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정의감에 넘칠 뿐.

  그는 당시 귀족 중의 한 명이었다. 데 라 베가 가문의 돈 디에고. 그에게는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딸 엘레나가 있다. 그러나 조로의 활약 이후 그의 정체를 알아버린 몬테로에 의해 습격당하고 체포된다. 체포과정에서 그의 아내는 총에 맞아 죽게 되고, 딸은 그의 적수 몬테로가 데려간다. 몬테로는 디에고의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는 없었고, 그녀가 죽게 되고 디에고가 감옥에 갇히자, 디에고의 딸을 데려다가 자기가 키운다. 엘레나는 다 큰 숙녀가 되어서도 몬테로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 것. 당연히 디에고는 20년간의 잠적생활 끝에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 알레한드로를 조로로 키운 뒤 엘라나를 찾으로 간다.

 
* 첫번째 조로. 안소니 홉킨스. 극 중 돈 디에고.



* 두번째 조로. 알레한드로. 한때 말 도둑이었으나 형의 죽음 이후 만난 디에고에 의해 조로로 탄생.



* 캐서린 제타 존스. 영화 속의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극중 엘레나.


  사람들은 핍박받은 생활 속에서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은 난세에만 등장한다. 스페인의 멕시코 지배가 있었고, 조로는 멕시코인들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정부에 맞서 싸웠다. 영웅이 필요했고 첫번째 조로가 나타났던 것. 20년 뒤 몬테로, 행동대장 러브를 끼고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왕국을 세우려는 야심을 가지고, 멕시코 민중들을 금광을 캐는데 동원한다.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조로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이미 이전의 조로는 늙었고, 새로운 조로 알레한드로가 등장한다. 두 조로는 힘을 합쳐 몬테로와 러브를 몰아내고 멕시코 민중을 구한다.

  내용만 따지면 사실 별거 없는 영화인데, 이 영화가 당시 온갖 영화제를 휩쓸었던 것은, 영화 속의 많은 볼거리와 흥미진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세 주연들의 연기도 대단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칼놀림과 그 자태.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천도룡기>를 비롯한 중국의 무협영화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조로도 그것을 터득하고 있을 줄이야. ^^; 조로는 다수와 싸우더라도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 조용히 고요하게 다가가 치고 빠진다. 디에고가 알레한드로를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일개 도둑에 불과했던 알레한드로에게 부드러움 속의 강인한 검술을 가르친다. 첫번째 볼거리는 바로 이러한 검술에 있다.

  두번째는 사랑. 역시 영웅영화에는 사랑이 빠지면 안된다. 영웅들에게는 항상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디에고에게는 알레나의 어머니가 있었고, 알레한드로에게는 알레나가 있다. 알레한드로가 몬테로의 집에 귀족으로 분장, 잠입해 알레나와 설전을 버리는 장면, 이후 러브의 춤 파트너였던 그녀를 가로채 열정적인 스페인 춤을 추는 장면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역시 부드러운 춤 속의 강인함이 부각되는 장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었다면 키스로 연결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접어두고. ^^

  두 사람은 마굿간에서 한번 더 조우하게 되는데, 한 차례 진탕 땀을 빼며 싸우고 도주하는 조로를 마굿간에 기다린 것은 엘레나. 그녀는 조로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덤벼라. 도전이다. 두 사람은 이내 칼을 쥐고 서로를 겨냥하며 칼싸움을 하는데, 이건 칼싸움인건지 사랑싸움인건지, 싸울래면 제대로 싸워랏! 먼저 선제공격으로 조로의 망또를 벤 엘레나. 이젠 조로 차례다. 조로는 엘레나에게 제대로 복수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겉옷을 벗고. 조로는 엘레나의 원피스에 흠집을 냈다. 사사삭 몇번 하고 다니. 엘레나의 원피스 윗부분이 반으로 쪼개지며 양옆으로 흘러내린다. 헉! 노출. 근데 아쉽게도 엘레나의 검고 긴 머리칼이 중요부위(?)를 가려버렸다. 므흣.

  세번째. 영웅영화에 복수가 빠질 수는 없다. 대개 영웅들은 이전의 사적인 원한으로 인해 복수의 칼을 갈다가 더 큰 것을 위해 싸우다보니 어느새 영웅이 되어있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개인적 원한을 공동체 전체를 위한 원한으로 전환시킨 것. 디에고가 그의 아내를 죽이고,  딸을 빼앗아간 몬테로에게 원한이 있듯,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형을 죽인 러브에게 원한이 있었다. 영웅놀이 끝에 개인적 복수와 공동체의 정의는 함께 실현된다. 몬테로가 죽으니 디에고의 원한을 갚은 것이고, 러브가 죽으니 알레한드로의 원한을  갚은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핍박받은 멕시코 민중 전체의 정의의 실현이다. 더이상 좋은게 뭐 있나. 그와 더불어 명예도 얻었으니.

  싸움을 다 끝낸 조로 2세. 알레한드로는 죽어가는 조로 1세 돈 디에고의 바램대로 그의 딸 엘레나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디에고가 요람에 놓인 그의 딸 엘레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던 그 장면이 그대로 반복된다.

 

 

 

 

* 2005년 <레전드 오브 조로>가 10월 즈음 개봉한다고 하는데, 역시 감독은 마틴 캠벨이고, 주연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로 <마스크 오브 조로>와 동일하다. 기대되는군....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노 2005-08-0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아카데미나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지 수상은 못했는걸루 아는뎁쇼..글구 캐서린 제타 존스가 출연한 건 영화가 아니라 TV드라마인데...데스페라도,에비타 ㅎㅎㅎㅎ 아니면 말구요

마늘빵 2005-08-0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ㅡㅡa 수상은 못했나요? 잘못 알고 있나. 에... 그건 티비 드라마가 맞네요.

물만두 2005-08-0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도 나왔을걸요^^;;;

마늘빵 2005-08-0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수정했어요. 제가 잘못 알았나봅니당. 므흣. 후보만 올랐군요. ㅡㅡa

하이드 2005-08-0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타존스의 벨마. 그리고 트래픽에서의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