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아마도 추정컨대 수능시험에서의 집단 컨닝사태와 이후 계속 되는 내신시험에서의 컨닝 사건이 입에 오르내리면서 - 사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와중에 내신시험에서의 컨닝대책으로 내세운 것이 아마도 '학부모 감독제'였나보다. 이게 언제부터 학교 현실에 적용되었는지는 난 모른다. 이번 시험이 첫 감독이니깐.
시험감독 이틀째.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답안지와 시험지를 나눠주고, 학부모 한분이 뒷문으로 들어오신다. 맨 뒤 정중앙에 서계시고, 난 맨 앞 정중앙에 서있고. 앞뒤로 감시를 당하는 아이들은 절대 컨닝할 엄두를 못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닝을 하는 이들은 꼭 있다. 교무실에 웬 학생 하나가 불려왔는데 된통 혼나는걸로 봐서 아마도 컨닝인가보다.
앞뒤로 감독을 세우니 학생들이 컨닝할 생각을 덜 하는건 사실인거 같다. 사실 할래야 할 수도 없다. 앞뒤로 보는데 어떻게 해. 학생들의 학부모를 모셔놓고 일일 감독을 시키는 것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나의 아이들과 친구인 이들이 시험보는 장면을 눈으로 보기도 하시고, 어떻게 시험을 치르는지도 보면서 평소 공부해라 공부해라 만 외치시던 부모님이 정작 시험을 보는 학생의 입장에서 느껴보기도 하는 기회인 것도 같고. 아이들도 우리 엄마와 같은 분이 뒤에 계시니 마음이 뜨끔하기도 할테고 말야.
그런데 학부모 감독제의 문제점도 있다. 물론 보완가능한 부분이다. 사실 시험장에서 첫 대면하는 학부모와 교사는 간단히 꾸벅 하고 머리 인사정도만 나누는데, 부동의 위치를 고수해야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잘 모르고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학부모에게 뭔가를 지시하기가 참 뭣하다.
가령, 선풍기 바람에 한 아이의 답안지가 멀찌감치 날아갔다. 그런데 그 아이의 위치는 중간지점이다. 원칙대로라면 학부모가 와서 답안지를 주워서 아이에게 전달해야하는데, 학부모는 이를 보지 못했고, 못봤는데 내가 학부모를 시켜서 그걸 줍게 하기는 참 뭣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움직여서 답안지를 얼른 주워 해당 학생의 책상에 놓았다. 결국 교사는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경우처럼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몇 차례 발생한다. 나는 보고 학부모는 보지 못한 상황. 컨닝으로 의심되는 학생의 옆에 다가감으로써 위기감을 조성해 컨닝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해야하는데 그때에도 발견자가 다가가야지 내가 신호를 보낸다고 해서 학부모가 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식으로 학부모 감독의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사실 이는 충분히 보완 가능한 부분이다. '교사는 부동, 학부모는 유동' 이라는 공식을 깨고, 발견자가 움직이고, 가까이에 있는 자가 움직이되, 둘 중 한 명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전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 이때 학부모와 교사 둘 다 시험감독의 임무에 충실해야한다는 점이 전제된다.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학부모 감독의 경우 그냥 시험이 끝날 때까지 서있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두 사람의 감독체제가 아닌 한 사람은 감독, 한 사람은 존재 자체로서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 감독에게도 충분히 사전에 시험감독의 요령에 대해 숙지시키고 - 그 분들도 과거에 중, 고등학교 거치면서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절차와 주의점을 알려드리면 금방 적응하실 것이다 - 현장에 투입시키는 것이다. 그럼 지금 내가 경험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 사족
시험에 있어서 학생들을 감독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난 내가 누군가를 감시하고 누군가에게 긴장을 조성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두 눈 부릅뜨고 누가 딴짓거리 하나 누가 컨닝하나 주의깊게 시험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명령한다는 것.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다. 감시받고 통제받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 내지는 반감이 있다고나 할까. 시험 감독을 매일 들어가면서도 난 이점이 내내 걸린다. 물론 학생들은 자신들이 감시받고 억압받고 통제받는다는 상황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