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쾌한 휴먼 코미디!? <역전의 명수>를 본 소감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난 코믹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 은근히 코믹 영화를 많이 본다. 코믹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간미 물씬 풍겨지는 휴먼 코미디와 그냥 억지로 웃기는 코미디가 그것이다. 전자에는 최근 본 <미스터 히치>나 <신라의 달밤><가문의 영광> 정도를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고, 후자에는 <여고생 시집가기> 정도를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코믹 영화를 본 다음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당연하고,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밀려드는 후회감으로 뒤끝이 개운치 않다. 하지만 전자의 코미디는 보고나면 후련하고 산뜻하다.
<역전의 명수>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웃고 즐기고 감동받을 정도면 충분했다. 내 마음은 그 정도만을 요구하고 있었고 충족시켰다.
영화제목 '역전의 명수'는 1. 역전앞(앞 前자와 '앞'이 중복 사용되었다는 동어반복의 오류임에도 일상적으로 이렇게 사용한다)을 지키는 명수 2. 인생역전한 명수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수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다. 전교 1등만 하는 현수는 결국 서울대 법대 수석입학하고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가 된다. 반면 쌍둥이 형 명수는 중학교 때 이미 주먹으로 학교를 정리하고 퇴학당한 뒤에는 군산역 뒷골목 창녀촌을 책임진다. 그곳의 여자들은 명수의 보호아래 일(?)을 하고, 명수는 그 중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가슴에 청테이프 붙인 년은 니가 처음이다"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두드려맞던 날 명수는 그녀를 보호해주고 군산 앞바다에서 그녀는 명수에게 곱게 간직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던 한쪽 가슴을 만지게 해준다.
현수. 공부 엄청나게 잘 하고 수능끝나고 여자친구와 섹스 10번째 하던 날 명수를 시켜 자기 행세를 하게 해 그녀를 버리고 서울로 떠난다. 서울대에서 만난 순희와 사귀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몰락하자 가차없이 버린다. 훗날 그녀의 복수가 시작된다.
꼬일대로 꼬여 더 이상 꼬일 것이 없는 현수와 인생 잘 풀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명수. 공부 못하지만 싸가지 있는 현수와 공부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명수.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현수의 경우를 최악의 삶으로 간주한다. 공부 엄청 잘해 대단한 사회적 위치를 누리고 있지만 비도덕적이고 싸가지 없는 경우를 사회악으로 친다. 이건 공부 못하고 싸가지 없는 경우보다 더 심하다. 후자의 경우는 사회에 그다지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전자는 존재자체만으로 대단한 악을 행한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의 싸가지는 오로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으로 환원된다.
현수를 비판하는 나는 그다지 누릴만한 사회적 지위나 명예, 부도 없기에 싸가지 없는 인간이어도 사회에 큰 해악이 되지는 않을 듯 싶다. 내가 얼마나 싸가지 있는 인간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엔딩은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유쾌하다. 그 못된 현수가 갑자기 착하게 변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인성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말야.
참. 정준호가 실제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그다지 공부를 한 축에는 속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그가 범생타입으로 생겼다는 이유로 <가문의 영광>에 이어 서울대 법대생으로 두번이나 나왔다는 건 그의 이미지에는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점잖고 따뜻하고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그를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연예인 X파일에서조차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를 외쳤던 에이스 침대 광고의 그와 같은 이미지로 늙을 위인이라 했다. 두 영화 이외에도 정준호는 대체로 차분하고 이성적이고 푸근한 역할만을 해왔다. 실제 그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튀지도 가쉽거리에 오르내리지도 않는 걸로 보아 그의 실제 모습도 영화 속의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