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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이 사람을 특정한 단어로 칭하기엔 너무나 활동 반경이 넓고 깊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그가 가 간섭하고 있는 모든 활동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움베르트 에코. 이미 수년 전에 <논문 잘 쓰는 방법>, <장미의 이름>으로 확 빨려들었지만, 이후에 접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전과 같이 지적 자극을 받거나 작품을 보고 놀라진 않았다. <장미의 이름>의 경우, 그 책을 해설하여 각주를 단 책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소설이지만 소설이라기엔 마냥 편히 읽을 수는 없는. 이후의 저작들에선 그런 강렬함이 없었다.
꾸준히 에코의 저작을 담당하여 출간하고 있는 열린책들에서 이번에 <책의 우주>가 나왔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꽤 많이 팔리고 있다. 책이 팔린다면 그건 순전히 이 책의 내용 중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에코 때문일 것. 움베르트 에코와 함께 대담을 나눈 이는, 국내에선 잘 모르겠지만, 그의 이력을 봤을 때 프랑스에선 꽤 인지도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장클로드 카리에르. 프랑스 출생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그리고 둘의 만남을 주선하여 사회를 본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장필리프 드 토낙.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이 책의 내용을 구성했다.
제목에 '책'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이 책이 과거와 지금, 미래의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확히는 '책'이라 지칭되지만 다른 물적 형태를 띤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에코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위협하는 지금, 만일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의 저장고 예를 드는데, 예전에 테잎에 음악을 담아 들었다가 테잎이 늘어지고, 찢어지는 등 훼손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에 씨디가 나와서 마치 늘어지는 등 훼손됨 없이 음악을 처음 담았던 그대로 들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지금은 씨디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식하는 즈음에 이르렀다는 것.
'책의 우주'라는 제목은 무척 추상적이다.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종이책과 전자책만을 이야기하기에는 이 책은 너무 두껍고, 그 외에 다른 이야기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잡스러운 수다가 많이 들어가 있다. 한 장에서 한 가지 이야기만 파고들기보다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주제와 범위를 정하지 않고 대담자 마음대로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읽고나도 뭘 읽었는지 알 수 없게 한다. 흐릿하다. 에코의 기존 저작들 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같은 수다집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내게 그의 수다 스타일은 별로 맞지 않는 듯하다. 다 읽었지만 남는 게 별로 없었다.
덧)
이 책의 중간을 넘어섰을 즈음에 나오는 카리에르의 말이다. "(아스완 댐 건설 위원회에) 철학자도, 이집트학 전문가도 없었던 것입니다. 미셀 세르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기자는 세르가 놀라는 걸 보고 오히려 놀라는 거예요. 그는 물었습니다. "이런 위원회에 철학자가 무슨 필요가 있나요? 미셀 세르는 이렇게 대답했죠. "여기에 이집트학 전문가가 빠졌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겠소?"
몇 년 전 철학자 탁석산에게서 들은 것 같다. 그도 비슷한 지적을 했었는데 철학과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항상 철학자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철학자는 해당 자리에서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만의 역할이 있다는 것. 세르의 마지막 되물음에서 철학자의 역할이 별거 아니네,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세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세르는 '철학자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 단 이때의 '철학자'는 단순히 철학을 전공하고 공부한 '철학 전공자' 또는 '철학 교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의 '철학자'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