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온전한 의미의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적인 에너지, 행동에 특별한 "기분" 또는 "색조"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감정이란 행동의 한 측면, 곧 "에너지가 실린" 측면으로 정의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인지, 정서, 판단, 욕구, 육체 등을 모두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14쪽
감정이 심리 단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정은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이다. 곧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구체적, 즉각적 관계이되 항상 문화적,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관계이며, 이로써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됨의 문화 규정들을 구현하게 된다. 요약해보자면, 감정이란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 관계들이며, 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덕분이다. 감정이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 고도로 내면화되어 있고 비반성적인 측면인 이유는, 감정에 문화와 사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5-16쪽
감정이입 - 타인의 관점이나 감정과 동일시하는 능력 -은 감정 기술인 동시에 상징 기술이다. 곧 감정이입의 전제조건은 남들의 행동이 보내오는 복잡한 신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남들의 행동과 감정을 해석할 줄 안다는 뜻이다. 소통을 잘 하려면 감정 기술과 인지 기술 둘 다를 매우 복잡하게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곧 감정이입에 성공하려면 남들이 자기의 자아를 은폐하는 동시에 노출하는 복잡한 신호망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49쪽
경제 영역은 감정이 결여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로 가득한 영역이 되었다. 이때 정서란 공조의 과제를 담당하는 동시에 공조의 과제에 의해 운용되는 정서, 또는 "인정"을 토대로 한 갈등 해결 양식을 뜻한다.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상호의존 네트워크를 용구하고 창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서를 그 상호작용의 핵심으로 삼다보니, 애초에 자기가 수립했던 성정체성을 해체하게 되었다. (중략) 소통의 에토스는 남자들과 여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게 하고, 친화적이 되게 하고, 자기를 상대방의 눈으로 보게 하고, 상대방에 감정이입하게 하며, 이런 방식으로 남녀의 구분을 흐린다. -54-55쪽
감정 자본주의는 여러 감정 문화들을 재배치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자아를 감정적이 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들을 좀더 도구적 행위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55쪽
감정이란 본디 상황적이고 지표적이다. 곧 감정은 자아가 특정 상호작용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며, 자아로 하여금 자기가 특정 상황에서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속기이다. 요컨대 감정은 특정 대상에 대한 암묵적, 구체적 문화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그 대상을 평가하고 상대할 때 지름길로 가게 함으로써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80쪽
"인정이란 자기상실의 통찰에서 시작된다.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대방 속에서 나를 잃는다는 것, 나 자신이자 나 자신이 아닌 어떤 타자 속에서 그리고 그 타자에 의해서 전유된다는 것이다."(주디스 버틀러)-82쪽
"상상 속의 키스는 실제 키스에 비해 좀 더 쉽게 조절할 수 있고, 좀 더 철저하게 즐길 수 있고, 좀 더 깔끔하다."(존 업다이크)-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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