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
가야트리 스피박 외 지음, 주해연 옮김 / 산책자 / 2008년 7월
절판


추방되었을 때 우리는 권력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법기능을 특권처럼 휘두르는 물샐틈없는 군사적 권력의 손아귀 안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추방된 자들의 상황은 자연 상태에 놓인 벌거벗은 삶이 아니라, 박탈의 조건과 상태를 생산하고 유지하도록 고안된 권력과 강제로 구성된 어떤 조건입니다. (버틀러)

* 벌거벗은 삶 : 정치 공동체 밖으로 내던져져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국가권력에 노출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14-15쪽

‘국가 없는 자’가 되는 것은 법적, 군사적으로 작동하는 국가권력에 의해 봉쇄되고 제한되는 것입니다. (버틀러)-22쪽

아렌트에게 정치의 영역이란 바로 이러한 권리 박탈과 무임금노동, 그리고 거의 인식되지 않거나 인지할 수 없는 인간 존재들의 영역을 가정함으로써 성립되며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구성됩니다. (버틀러)-24쪽

아렌트에게 자유는 자유를 실천하는 행위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유란 다수의 사람들이 실행하는 것이기에 공동으로 조율된 노력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관계 안에서 존재합니다. 아렌트는 자유가 자연 상태라는 관념을 거부하며,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이 귀환하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소위 자연 상태 역시 거부합니다. 자연은 누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류하여 결정짓는 박탈의 정치적 구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권력이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실행하는 공동의 조율행위에 누구를 가담하지 못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자유의 실행입니다. 분류 범주를 정교화하고 집행하는 정치적 행위로 시민이 아닌 자는 특정 ‘지위’를 부여받게 되며, 이 지위는 국가가 없는 자에게 보호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 역시 박탈합니다. (버틀러)-28-29쪽

민족구가는 민족이 특정한 방식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민족 공동의 합의에 기반하여 설립되었고, 민족과 국가가 일치한다는 가정 아래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족은 단일하고 동질적인 것으로 이해되며, 국가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 단일화되고 동질화되어야 합니다. 국가의 적법성은 민족에서 나오기에, ‘민족적 소속’에 어긋나는 민족적 소수집단은 ‘적법하지 않은’ 거주자가 됩니다. (버틀러)-36쪽

봉쇄와 추방은 민족 국가의 내부에서 벌어지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벌어지는지에 따라 구분됩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봉쇄와 추방 모두 내부/외부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기제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이 경계는 누군가 그곳을 통과하거나 통과할 권리가 거부되는 순간에 존재합니다. (버틀러)-39쪽

"우리의 정치적 삶은 우리가 조직을 통해 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에 기대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오직 다른 것을 형성하는 사람들과 평등한 관계에 있을 때에만 행동할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며, 공동의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아렌트)

여기서 ‘인간’이란 개개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공통성과 평등의 상황을 가리키며, 공통성과 평등은 변화와 행위를 구축하는 기본 전제입니다. 소위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평등한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행동하고, 변화를 만들어내고, 무엇인가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의 개인적 행동은 평등의 조건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다른 말로, 그 개인적 행동은 무엇보다 평등을 확립하는 행동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행동은 복수의 행동이 되고,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행동이 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버틀러)-57-58쪽

노래를 부름으로써 거리가 자유로운 집회 현장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행동은 자유의 표현이자 권리를 향한 호소입니다. 또한 거리라는 공간의 틀을 다시 짜고, 법적으로 금지된 바로 그 순간에 집회의 자유를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적인 정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버틀러)-63-64쪽

‘권리를 가질 권리’에서, 후자는 설사 그 권리 보장을 국가에 요구한다 하더라도, 어떤 국가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전자는 법치를 통해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버틀러)-65쪽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가로막는 권위에 대항하여 자유를 행사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행동은, 자유와 평등이 현재 생각되고 있는 방식을 넘어서서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버틀러)-66쪽

자유가 행사되고 있다는 것과 목적이자 목표로 요구하는 자유와 평등 사이에는 물론 간극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시 말해, 내가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수행적 발화 자체가 당장 나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이미 자유를 실행한 것입니다. 또한 이를 적법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행동은 자유의 행사와 현실의 간극을 공적 담론 안에서 공표함으로써 그것을 가시화하고 결집시킵니다. (버틀러)-68쪽

국가는 우리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에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최소한의 추상적 구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재분배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스피박)-94쪽

칸트는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에서 윤리적인 국가라는 것이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중략) 윤리는 국가 구조의 추상화를 방해하지요. 이러한 구조는 법체계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국가구조를 보호해야 하는 까닭은 이 법적 구조가 정의를 판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스피박)-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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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2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틀러의 책이네요. 저도 보관함으로 ㅎ

마늘빵 2010-02-26 11:36   좋아요 0 | URL
스피박과의 대담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버틀러 혼자 이야기를 한다눙.

가넷 2010-03-0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틀러는 이름만 들어 봤고, 스피박은 어렵던데(정확히는 스피박을 '소개'하는 책이긴 합니다만;;;)... 이 책은 아주 얇더라구요. 처음 나왔을때 얄팍하기도 하고, 대담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민족에 대한 이야기라서 살려고 하다가 '만' 기억이 나네요.

마늘빵 2010-03-03 09:5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논의하는 지점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고, 스피박과 버틀러의 별다른 차이도 잘 모르겠어요.

가넷 2010-03-03 21:31   좋아요 0 | URL
뭐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은 어떨까요?

마늘빵 2010-03-04 16:08   좋아요 0 | URL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도 그냥, 뭐. ^^ 오늘 막 손에 든 책이 있는데 <민족은 없다>라는 책은 제가 찾던 거네요. 근데 아마 절판으로 나올 겁니다.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 연락하여 별도 구입하거나 중고를 구해야 해요. 저는 중고로 구했는데, 중고도 이제 검색이 안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