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때부터 밤을 지새우려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72시간 릴레이 집회에 머릿수 하나 더 보태고 싶어서, 내일이 일요일이니 토요일 저녁 열심히 뛰고 일요일 쉬면 되겠구나 싶어서, 다시 시청광장을 찾았습니다. 저녁때 시청에 갔을 땐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한쪽에선 손피켓과 양초와 종이컵을 나눠주고 있었고, 한쪽에선 역시나 만화가의 거리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또 광장 한복판엔 양초와 종이컵, 김밥, 마스크, 우비 등을 파는 장사꾼들이 군데군데 퍼져있었습니다. 며칠간 비슷한 패턴으로 시위가 반복되자 눈치빠른 장사꾼들이 대목을 노린 것입니다. 물론 사지 않아도 광우병 국민연대에서 국민들의 성금으로 산 물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잘 모르는 시민들은 돈 주고 구입할 밖에요.
아직은 집회가 무르익지 않았고, 시청부터 광화문, 종각, 종로, 청계천 등에 넓게 시민들이 퍼져있어, 영풍문고로 가서 책을 샀습니다. 마침 영풍문고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권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거리로 나와 시청으로 향하는데 어이쿠, 한 시간 사이에 시청부터 광화문 도로까지 쭉 들어찼습니다. 시청 광장은 물론이고. 지인과 합류하여 초에 불을 켜고 행진을 따라가는데, 어제 그 인원(적게는 십오만에서 많게는 이십만)과 맞먹는 인원이 오늘도 참여한 것 같았습니다. 행렬의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았고, 듣기로는 남대문즈음 왔을 때 선두가 이미 종각을 넘어 광화문까지 갔다고 들었으니 어마어마했죠. 저는 중간 대열에 끼어있었는데. 언론보도로는 십이만이라고 합니다. 이제 한번 모이면 십만은 기본입니다.
처음에 여고생들로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이삼십대를 끌어들였고, 직장인을 끌어들였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중고생 친구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젠 대학생과 각종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그랬답니다. 촛불 집회의 배후는 한총련이라고? -_- 한총련 깃발이 나부끼니까 깃발 중 가장 강해보이고 만만해보이는 한총련을 지목했나봅니다. 그러게 내가 전에도 한총련은 깃발 가지고 나오지 말래니깐.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좌파용공세력 어쩌고 하면서 박정희, 전두환식 이마이크로바이트 뇌용량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죠. 지난 날엔 북파공작원을 사칭한 이들이 시청 광장을 접수하고 시민들을 폭행하더니, 어젠 또 위아래 흰양복 입고 백구두를 신은 목사 한 분이 졸개들을 데리고 나와 이명박이 하달한 임무수행에 열심히더라고요.
우리는 그제 그 코스대로 시청에서 남대문, 회현역, 종각, 그리고 다시 어딘지 모를 그 장소(아마도 경북궁)로 가서, 다시 샛길로 광화문에 도착했습니다. 시위대에 머릿수 하나 채우고 있으면 도통 얘네들이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되는 인원이 어디로 쪼개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어제 제가 있던 곳은 광화문이었습니다. 다른 팀은 또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세종문화회관 앞의 그 철통같은 바리케이트를 어떻게 해봐야 하는데, 답답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가, 어떤 분이 사다리를 놓고 버스 위로 올라가시더군요. 그렇게 몇명이 올라가 바로 연행되고, 어떤 분은 경찰 아크릴 보호막을 뜯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상황이 급반전되자 전경이 버스 위로 우르르 올라오고, 시민들도 하나둘씩 기어올라갔습니다.
사다리를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대여섯개 되는 사다리를 버스에 대고 여기저기서 올라가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경찰은 분말소화기를 다량 발사하며 시위대를 바로 진압해버리더군요. 사다리 서너개는 빼앗겼다 하고, 시민은 방패로 사정없이 찍혔습니다. 소화기를 엄청나게 뿌려대는 바람에 광화문 일대는 뿌옇게 변해버렸습니다. 바로 앞에서 소화기를 맞은 분은 쓰러지고, 몇 분이 의료진에 의해 옮겨졌습니다. 눈을 뜨지 못하고, 목격자에 의하면 코와 입에선 계속해서 분비물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뒤쪽에 있는 저는 그냥 가지고 온 손수건 하나 정도로 코와 입을 감쌌지만, 앞에 있던 분들은 직접 맞아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습니다. 시민 한 분이 또 어디서 가지고 오셨는지 경찰에게 소화기를 분사했습니다. 너만 쏘냐, 나도 쏜다. :) 시위대 쪽이야 소화기 하나 밖에 없었으니 얼마 쏘고 끝났지만 양쪽에서 쏘니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가고 집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모두 끊긴 상태에서, 에이 화장실이나 갔다오자며 광화문 역 지하로 내려갔는데 화장실은 또 어찌나 먼지. -_- 남녀 시민 몇 분이 같이 화장실로 향했는데 볼 일 보고 나오니 모든 문이 다 닫혀있었습니다. 남은 통로가 1,8번 출구 뿐이었는데, 이거 무섭더군요. 나갔더니 전경들이 쭉 깔렸습니다. 고작 시민 네 분과 함께 있었는데, 무슨 어두컴컴한 골목을 지나지나 결국 있던 자리로 나오긴 했지만, 그 골목마다 전경들이 쭉 깔려있었습니다. 골목 가게 아저씨는 통과하려면 양초를 버리고 가야지, 하셔서 으하하하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아 이렇게도 나올 수가 있구나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골목으로 전경들이 우르르 나와 우리 진압하면 꼼짝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골목이 시위대의 후미였기 때문에.
시간은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집에 가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갈 사람은 지하철 끊길 시간에 다 갔고, 남아있는 어린아이부터 중고생, 직장인, 대학생, 나이든 할아버지들까지, 이들은 밤을 샐 작정으로 이곳에 남아있었습니다. 그 인원만 해도 어림잡아 오만은 되어 보였습니다. 휴일을 맞아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팀들도 많았는데, 강원대와 카이스트가 눈에 띄더군요. 멀리서 와서 고생하는구나. 이대로 대치상태가 계속되자 깃발부대가 앞으로 나가 닭장차 앞에서 깃발로 전경들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위협은 아니고, 그냥 눈 앞에서 흔드는 정도. 여러 깃발이 모두 앞으로 나가 흔들리니 그것도 나름 괜찮더군요. 아무런 위협도 가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하는 것 같은. 그 중 몇몇 깃발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전경에게 낚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슬슬 지쳐가고 뒤쪽으로 빠진 일부 시민들은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하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추위를 달래고자 가지고 있던 골판지며, 각종 종이조가리들을 모아 불을 지피고 오손도손 빙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어떤 시민은 쓰레기를 줍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앞에 있던 일부 대학은 무리를 이끌고 쉬었다 다시 가겠다며 뒤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 앞에는 고등학생 남녀 셋이 있었는데, 아마도 추정컨대 둘은 연인이고 하나는 꼽사리같이 보이더군요. 셋다 깔쌈하게 생겼는데,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의 장난스런 애정행각이 재밌었다는. -_- 외투를 안 가지고 나온 관계로 너무 추워서, 또 지루하고 심심해서 시청방향으로 나가봤는데, 포장마차가 잔뜩 들어서있어서 떡볶이와 오뎅국물로 배를 채우고는 다시 시위대로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세종문화회관 뒷길에 있던 전경차를 부수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시민들이 주변 공사장에 있던 쇠파이프를 들고 와서 창문을 깨는 소리였는데, 사람들이 말렸지만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더군요. 너무 흥분한 그 시민은 이미 닭장차를 아작냈습니다. 함께 하려는 다른 시민이 쇠파이프를 들고오자 제지하며 쇠파이프를 멀리 내던지기도 했습니다. 머릿수가 많아지니 다양한 사람들이 시위대에 동참하게 되고, 그 중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저지선을 뚫고 싶었던 것입니다. 밧줄로 닭장차를 끌어내거나,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려는 시도까진 좋은데, 별 도움도 안되는 화풀이성 쇠파이프질은 눈쌀 찌푸리게 하더군요. 다음날 신문에 뭐라 나올지 기사 제목과 내용이 뻔히 보였습니다.
다시 이번엔 밧줄을 이용해 세로로 박혀있는 우측 닭장차를 끌어내는 시도가 있었는데, 성공했습니다. 닭장차 한 대가 50미터 가량 멀리 나왔고, 시민들은 다시 중간에 가로로 세워져있는 닭장차를 끌어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로로 있는 닭장차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위에는 전경들이 우르르 올라가 무게를 더하기도 했고요. 하나 뺀 걸로 만족해야 했는데, 이미 날은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뒤로 비켜서세요, 라는 말이 들리더니 좌측 도로 멀리서 엄청난 인원의 전경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놀래서 뒤로 뒤로 물러서고, 이미 우리 머릿수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안 시민들이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스크럼을 짰습니다. 아무리 많이 와봐야 우리보다 못하긴 했습니다. 그치만 악악! 하는소리와 함께 방패로 바닥을 찍으며 앞으로 전진하는 전경을 막기는 어렵더군요.
순식간에 우리는 인도로 내몰린 상황이었지만 시민들이 아예 전경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훨씬 더 많으므로. 어떤 시민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너희가 갈 길은 한 곳 밖에 없다. 청와대 쪽으로 도주하라." 큭큭. 전경이 시위대를 내몰았다고는 하지만 정말 시민들이 전경을 포위하고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디읃자 모양으로 전경들이 시민들을 몰아내며 해산시키려고 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인원이 너무 많아서. 이제 끝났구나 싶어서 저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고 일어나 기사를 보니 시민들 중 한의사 분이 건강탕을 지어와서 시민과 전경들에게 나눠주고, 일부 시민은 전경에게 꽃을 달아줬다는 훈훈한 소식이 있더군요. 상당수 전경들은 눈에 독기를 품고 시민들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충돌을 할 필요는 없었죠. 분노는 청와대로 보내야지.
날을 새니 체력이 완전 고갈됐습니다. 한 두시를 기점으로는 발바닥도 아프고 눈도 감기고 미칠 것 같은데, 외투도 없지 돗자리도 없지 따뜻한 차도 없지 잘 수도 없고,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인데, 이대로 그냥 택시타고 가버릴까 싶다가도, 조금만 더 참자, 택시비가 얼만데 지금 가냐, 하는 생각에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 돌아댕기다 버텼습니다. 네 시를 넘기면서는 더 힘들어지더군요. 새벽공기는 너무 춥고, 불지피며 모여앉은 시민들 근처에 가서 조금이라도 온기를 회복해보고자 하지만, 연기만 잔뜩 먹고. -_- 그러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니 이제 힘이 났습니다. 단지 아침이라는 이유로 힘이?! 촛불집회 아홉번 참여하면서 날을 새기는 처음이었는데, 다음에 날을 새게 된다면 외투와 돗자리,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촛불집회 참여 생략. 6월 10일에 열번째 촛불집회 나갑니다.
명박아. 엉아가 너 때문에 이주일째 뭔 고생인지 모르겠다. 이건 뭐 시사회 당첨되고도 거절해야 하고, 퇴근 후에 집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영화 본지도 어언 백만년같고, 책도 별로 못 읽고, 엉아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됐다. 고마하고 내려와라. 내려오면 엉아가 때리진 않을게. 처음 일만 명이, 십만 명 되고, 이십만 명 됐거든, 백만 명 되면 내려올래? 니 옆에 애들 자른다고 해결되는거 아니니까, 괜한 애들 잡지 말고 - 아니지 걔네도 어차피 자를거긴한데 - 너부터 내려오면 돼. 엉아가 요새 피곤하다. 청와대 가서 아침 식사하려고 오늘 밤샜는데, 결국 박카스 하나 못 얻어먹고 집에 왔다. 3일 연휴가 직장인에게 어디 자주 오는 기횐줄 아니? 엉아가 회사 들어간지 얼마 안돼서 휴가도 없어요. 그만 됐다 이제 내려와라. 안내려오면 엉아 10일날 또 간다. 그때보자.
p.s. 어제 처음 뵌 부산에서 달려오신 글샘님, 그리고 몇 차례 함께하며 처음 또 같이 밤을 지샌 라주미힌님, Jade님 수고하셨습니다. 6월 10일날 만나요. :) 공지영씨도 6월 10일에 온다고 합니다. 저는 오나 안오나 별 상관없지만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