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있는 위치에 따라 주변을 바꿔나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건 어쩌면 습관이 아니라 그 '결과'를 지칭하는건지도. 기존에 있던 어떤 새로운 모임이나 집단에 들어가면 내가 들어갔을 때를 전후로 해서 점차적으로 집단이나 모임이 나를 중심으로 조금씩 바뀌어간단 느낌이랄까. 그게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운게, 내가 그 모임이나 집단의 중심은 분명히 아닌데, 그냥 나라는 존재가 추가됨으로써 내 색깔이 짙게 반영된다고나 할까. 여튼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건 아마도 내 눈에 보이는 잘못된 부분이나 아니면 개선시키고 싶은 점들을 지적하고, 바꿔나가려는 의지와 행동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새 직장에 들어가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기존에 있던 분이 나가고 그 자리를 내가 채우게 되면서, 그 분이 하던 일을 고스란히 인수하게 되었는데, 일과 관련된 어떤 자리에서도 생각대로 일이 진행이 되지 않아 그 분들에게 내 생각을 강하게 어필하고, 이것저것 주문도 하는 등 입사한지 얼마 안돼서 스스로도 너무 강하게 나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체적인 분위기나 일의 진행방식이 내 스타일(?)대로 자리를 잡았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실무자가 교체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만, 무게가 너무 나에게 쏠려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카리스마 있는 인물도,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맨 앞에 나서서 이끌어가는 유형도 아닌데,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거나 시간만 흘러가고 일이 뒤죽박죽이 되었을 때는 마지못해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성격 좋고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이 한둘씩은 있는지라 나는 조용히 묻어가는 편이다. 묻어가지만 못마땅한 부분이 있거나 이렇게 바뀌었음 좋겠다는 지점이 있으면, 불쑥 나와 한 마디씩 하고 들어간다. 이런 습관 때문인지 언제나 2인자일뿐 1인자는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마지못해 1인자의 일을 어쩌다 떠맡는다고 해도 그건 비어있는 자리를 2인자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습관이나 행동 양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이 만나는 자리에도 적용된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나와 사물이 만나는 공간에서도 그렇다는 말이다. 비정규직 인생 3년이다보니 직장을 자주 옮겼는데, 옮길 때마다 그 곳의 근무환경이나 체계를 바꿔나가려 했던 것 같다. 다만 비정규직인지라 떠나는 날이 정해져있어 굳이 튀어가며 드러내지는 않았을 뿐. 뭐 대단한 건 아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드러나는데, 이면지를 안쓰고 다 버리던 곳에서는 이면지함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 보관했다가 꼭 새 종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인쇄물은 이면지로 뽑아 활용했다거나, 그도 여의치 않을 땐 아예 이면지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내가 사용하는 경우, 또 사놓고 활용하지 않던 용품들을 꺼내다 필요한 곳에 활용토록 한 경우 등이다.
새 직장에서는 가만보니 쓰레기 분리 수거가 되지 않은채 종이며, 휴지며, 과자상자며 기타 등등의 모든 온갖 것들이 다 한 곳에 버려지고 있었다. 그래서 A4 박스통을 물 떠먹는 정수기 옆에 갖다놓고 나 혼자 거기에 각종 택배 상자며 과자 상자, 종이컵 등을 모아놓고 있었는데, 이게 다음날 아침에 보니 상자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상자째로 가져가셨나보다 하고 생각하고는, 다시 새로운 A4 박스통을 가져다가 이번에는 '재활용품함. 버리지 마세요.' 라고 크게 써놓고 다시 정수기 옆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또 사라져버렸다. -_-
아니 왜. 왜 재활용 하자는데 상자를 통째로 가져가는거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산타클로스마냥 아침 일찍 - 아니 산타클로스는 야밤에 다니지 참 - 다녀가시는지라 청소하는걸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통째로 가져가서 한꺼번에 재활용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좀더 살펴봐야겠다. 재활용 되는건지 아닌건지. 근데 재활용하지 않고도 쓰레기를 버릴 수 있나. 쓰레기 수거를 안해갈거 같은데. 그래서 이사님과 만나는 자리에서 각 층별로 재활용품 통을 만들면 어떨까요, 하고 건의를 드리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생각만. 생각만 하고 말하지 않은건 들어온지 얼마 안된 신입사원이 너무 나대는거 같기도 해서. -_-a
회의 때 먹고 버려지는 과자비닐도 그냥 버리면 부피를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항상 세로로 돌돌 말아서 길쭉하게 만들고 그걸 비비꼬아 조그맣게 만들어 버리는데, 이러면 정말 아주 조그매지기 때문에 많은 양의 쓰레기를 확 줄일 수 있다. 한번 살짝 또 말해봤던게 회의 때 종이컵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러지말고 플라스틱 컵을 여러개 사서 그걸 사용하는게 어떻겠냐고. 회의 인원이 많으면 물컵용, 음료수컵용으로 한 사람이 두 개씩 컵을 차지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책상 위에 널려있는 컵이 많아지는데 그걸 설거지 할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 내가 하겠다고 살짝 말했지만 나만 하고 있으면 다른 분들이 미안해지니깐 그것도 뻘쭘. 결국은 그냥 종이컵을 쓰고 있다. 일단은 나 혼자라도 종이컵 안쓰기 운동을 하면서 실천할밖에.
참, 식당에서도 규정상 미니자판기에 종이컵을 쓰면 안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들 사용하더라. 이때는 머그잔을 일일히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해서 - 들고 다니고 싶지만 - 그냥 나도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시곤 한다. 나름 일상 생활에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운동을 한답시고 하는데, 이게 나혼자 그렇게 생각해서는 실천하기 힘들다. 주변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함께 해야 실천도 편한데 말이지. 강요할 수는 없는게 언제 어디서나 자기컵을 사용한다거나 일일히 재활용품을 분리하고, 쓰레기 부피를 줄여나가는 작업이 귀찮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근데 해본 결과 그게 습관이 되면 별로 불편한 것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습관화 시킬 때까지가 불편하고 귀찮은 것일 뿐. 회의 때 종이컵 안쓰기 운동은 어떻게 좀 해보고 싶은데 말이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