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는 것, 실체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이 왜 문제인가? '가시성'의 문제를 근대적 권력 개념과 민주주의 문제로 확장해 강조한 것은 이탈리아 철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다. 그는 현대 대의제에서 권력에 대한 민주주의의 이상은 공중에게 그 실체가 가시적으로 노출되는데 있다고 보았다. 현대에 들어와 공공성 내지 공론장이라는 말이 공개의 의미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을 '보이지 않는 권력'이 커지는 문제로 본다. 그리고 민주적이고 사법적인 통제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유형이,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를 관리하는 영역에서 주로 확대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19쪽
현행 제도에 따르면 정부는 1인당 연간 1,16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사법시험 합격자들에게 연수를 시킨다. 연수생 신분이지만 별정직 공무원 5급 1호봉에 해당하는 급여도 지급한다. 회계사, 변리사, 감평사, 노무사 등 다른 어떤 국가시험에서도 없는 연수 제도다. 그 자체로 형평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만, 연수원을 마친 변호사들이 김앤장이나 사설 로펌에 취직하는 현실은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그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변호사 연수를 시켜 법률 사기업에 공급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40쪽
변호사법 제44조[명칭]에서는 "법인이 아닌 자는 법무법인 또는 이와는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제하나고 있다. 일반인들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법무법인(로펌)인 줄로 알고 있다. 일반적인 법률사무소라며 변호사와 사무장, 그리고 여직원으로 구성된 작은 사무실 형태를 상상한다. 반면 법무법인은 조직적이고 전문적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 형태로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개인사무소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단일한 조직체처럼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김앤장 스스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56쪽
김앤장은 기존의 우리나라 법무법인 제도가 합명회사 형태만을 인정하고 있는데 "합명회사 형태의 로펌은 의사 결정 시 전원찬성이 요구되어 효율성이 떨어지며, 업무에 관여하지도 않은 구성원이 모든 수임 사건에 대해 무한연대책임을 부담하도록 하여 대형화할수록 잠재적 책임 부담 위험이 증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앤장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에 로펌들은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기존 로펌들도 김앤장처럼 이상한 조직 형태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앤장을 제외하고 그런 일은 없다.-56쪽
<변호사법> 제31조[수임제한]은 "변호사는 당사자 일방으로부터 상의를 받아 그 수임을 승낙한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그 직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쌍방대리 금지의 원칙'이다. 이 경우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도 같은 사건의 당사자를 동시에 대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변호사와 그와 같은 사건에 관하여 직무를 행하는 것은, 먼저 그 변호사를 신뢰하여 상의를 하고 사건을 위임한 당사자 일방의 신뢰를 배반하게 되고, 변호사의 품위를 실추시키게 되는 것이므로 그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는 변호사가 직무를 집행할 수 없도록 금지한 것"이라고 판시(대법원 2003.11.28. 선고 2003다41791 판결)하면서, "여기서 사건이 동일한지의 여부는 그 기초가 된 분쟁의 실체가 동일한지의 여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분쟁의 실체가 동일하면 쌍방대리 금지의 원칙에 따라 사건을 맡을 수 없으며, 이를 어기면 불법이 된다.-60-61쪽
실제 개인에게 지급한 소득보다 높게 소득을 신고하는 것은 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즉, 소득을 신고해서 탈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소득을 많이 신고 한다. 그러면 세무 관련해서 위험 부담은 없어진다. 그런 다음 당사자에게 세무 신고 금액보다 대폭 낮춘 급여를 지급하면, 세금을 완납한 안전한 비자금이 조성되는 것이다.
물론 늘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탈세에 대한 의혹도 있다. 대표적으로 재벌 총수를 변호하면서 약정된 수임료 이외에 별도의 성공보수를 받는 경우다. 성공보수는 드러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사례에서 보듯이 재벌의 비자금에서 받기도 한다. 이 경우에 소득 신고가 필요 없다. 아니, 소득 신고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김앤장에 대규모 비자금 조성 의혹과 탈세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87쪽
소송은 김앤장의 전공 분야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수석 합격과 수석 졸업의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이 즐비하며,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재요 수재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과도한 수임료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국회의 감시를 회피하기 위해 정보 공개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소송으로 먹고사는 전문가 집단이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수단을 활용해 재무 상황 및 소득 상황과 관련된 정보 파악 노력을 억압하려는 것은 공공성을 지는 법률 전문직이 취할 태도는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를 자처하는 수재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이렇게 사용하는 모습을 '길을 잃은 수재들'이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89쪽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들의 개업 현황을 살펴보면 이들은 대부분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냈거나 중소규모 로펌에 근무한다. 헌재 재판관은 정치적인 사건을 많이 처리하기 때문에 로펌에서 특별히 그들의 경험이나 영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헌법소원이나 헌재 관련 사건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대형 로펌을 찾는 것도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마디로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고위 법관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기피하고 있으며, 대법관이 되기를 선호한다. 퇴임 후 진로를 미리 계산하는 것이다. 고위 법관들이 퇴임 후 대형 로펌 행을 꿈꾸고 고액 수임료를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불행이다. -100-101쪽
공정위는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제도를 만들고 불법, 부당 행위를 조사해 제재하는 경제 검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들의 형태는 검사가 어느 날 갑자기 옷을 벗고 로펌에 들어가 자신이 기소한 사건의 변호를 맡는 꼴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도덕성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위 조직은 물론 정부의 공적 업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당연히 공익과 사익 사이에 심각한 충돌이 발생한다.-106-107쪽
공무원들은 평가에 민감하다. 승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들 민간근무휴직 공무원에 대한 근무 실태 평가를 매년 1회 실시한다. 그런데 실태 조사 보고서는 민간근무지에서의 평가가 그대로 인용된다. 즉, 김앤장의 평가를 그대로 인용하기 때문에 김앤장의 평가가 곧 공정위의 평가가 된다. 이들은 업무 추진 실적, 업무 수행 능력, 복무규율, 법령상 복무규정 등 4개 항목 모두 최고 등급인 '탁월'을 받았다. 공정위는 이들의 급여명세서를 받기 때문에 이들이 부당한 금전을 수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당한 사실이 있으면 복무규율이나 법령상 복무규정에 따라 제재하거나 징계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적하지도 않고 징계하지도 않는다. 알면서도 방치하고 눈감아 버린다.-110쪽
최장집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의 민주화>에서 민주주의를 제양ㄱ하는 네 가지 담론을 이야기한다. 차이와 갈등의 표출을 억압하는 통합이데올로기,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도덕주의, 시장의 효율성과 경제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전문가주의가 그것이다. 전문가주의의 기술 합리성이 민주적 가치에 우선해 강조되거나 민주적 결정을 대체하려 한다면 그 사회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전문가들의 기술 합리성과 관료들의 사적 이익 추구가 결합될 때 만들어지는 문제의 전형적인 양상 한가운데에 김앤장이 있다. 국가 경영에는 경제와 법률 지식이 필수적이 되었다. 이를 갖춘 전문가들은 권력자의 '귀'와 '책상'을 잡아서 국가정책을 좌우하고 있다.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이들 관료와 법률 전문가는 가난한 다수의 이익보다 사회의 지배적 이익에 경도될 수밖에 없다. 민간부문에서 거대 법률 기업이 성장하고, 이들과 국가 기구의 밀착이 사회 상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145쪽
회전문 현상(밑줄그은이 주 : 공무원이 로펌에 갔다 복직하는 등 왔다리갔다리하는 작태)을 이용하는 인사들의 기본 동기는 공적 경험을 기업에 활용하거나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다. 회전문을 이용하는 인사는 기업에 관해 우호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른바 개혁과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정책과 법률제도가 그것이다. 금융경제연구소의 홍기빈 박사는 "경제 관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각종 경제학 개념과 수치와 통계로 무장하고 중요한 사회적 사안들을 모두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로 바꿔 버린다. 이들은 국가 개조에 맞먹는 결과를 가져올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금융허브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적 동의나 추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일갈했다. -165쪽
정부의 관료 특히 경제 관료들은 전문성을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 권력이 되었다. 이들은 앞장서서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시대에 일종의 종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과 거대 자본과의 우호적 관계 또는 결탁은 사적 이익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확신에서 나온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김앤장과 투기자본은 거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앤장은 법률 서비스를 앞세워 투기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관료들은 퇴직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취업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의뢰인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판검사와 고위공직자 출신의 이들이 공직 생활에서 배운 자신의 전문성을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고액의 수수료와 맞바꾸는 것이다. 투기자본은 공공성에 대한 공격과 노동자에 대한 해고와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산과 저임금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니 만큼, 이들이 받는 엄청난 보수는 결국 비정규직과 해고자, 공공성 파괴로 인한 대가인 셈이다.-177-178쪽
변호사윤리장전 제14호[위법 행위 협조금지 등]에서는 "변호사는 의뢰인의 범죄 행위 기타 위법 행위에 협조하여서는 아니 되며, 직무 수행 중 의뢰인의 행위가 범죄 행위 기타 위법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된 때에는 즉시 그 협조를 중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229-230쪽
돈 되는 사건을 주로 하는 김앤장이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개인 간 소송을 담당하지 않는지, 또 개업 변호사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앤장이 힘없는 노동자들의 밥그릇은 철저하게 걷어찬다는 사실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핸드폰 문자 해고'로 유명한 2004년 외환카드 노동자 정리해고 당시에 외환은행과 외환카드의 합병을 총괄하면서 노사 대책도 책임졌다.이때 김앤장은 정리해고 통보를 문자로 보내더라도 법률적인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핸드폰 문자 해고와 사내 컴퓨터 이메일을 활용한 해고 통보는 기업이나 금융권의 구조조정 매뉴얼이 되었다. 정리해고자들이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하자 변호사 5명, 노무사 1명을 동원해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는 외환은행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 이들 해고자는 대법원까지 소송을 계속했지만 패소했다. 대법원에서는 '심리불속행'으로 재판마저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밑줄그은이 주 : 옮기면 끝도 없어서 이하 생략) -230-231쪽
노사 분규도 김앤장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경영진은 쉽게 타결할 수 있는 내용도 일일히 법률자문을 받는다. 모든 것을 법률적인 견지에서만 판단해서 보내온 답변에 경영진이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노사 분규가 장기화된다. 협상이나 양보로 쉽게 풀릴 수 있는 것도 노동쟁의가 발생한다.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매우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교묘하고 집요하게 노동조합을 탄압하도록 조언한다. 고소, 고발은 기본이다. 직장폐쇄, 사내 통신망 차단과 암호 변경 등 정보통신 차단도 동원된다. 서약서 제출 요구, 출입 통제, 노조 게시물 철거 심지어는 자본 철수 협박까지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다. 노사관계가 악순환이 될수록 법률 사업은 커진다.-231-232쪽
김앤장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고객을 위해서다. 피해자가 있다면 수혜자 그룹도 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김앤장은 가진 자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옹호한다. 수임료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노동조합에 자문을 하거나 해고자의 소송을 맡아서 진행한 적이 없다. 강자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동자들이 눈앞에 보이는 사용자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교섭잉나 협상을 진행한다면 그 뒤에 숨어 있는 김앤장을 놓치기 쉽다. 노동조합은 김앤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자기 회사의 노사문제가 해결되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회성에 그치면 피해는 계속되게 마련이다. 김앤장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는데 노동자들은 일회성에 그친다면 그 싸움의 승패는 뻔하다.-233쪽
공정위는 불공정거래를 감시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핵심적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불공정 행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에 가서 직접 체험을 하면서 직무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정위 직원들이 가는 곳은 대기업과 대형 로펌들뿐이다. 불공정행위를 할 가능성이 가장 큰 기업에 취업해서 무엇을 배워 온다는 것인가? 결국, 퇴직 후 갈 수 있는 잠재적 기업이나 로펌에 가서 미리 연수를 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정위뿐만 아니라 정부의 민간근무휴직 제도의 대상에서 대기업 집단은 제외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 정도 변호사 숫자를 가진 대형 로펌도 제외되어야 한다. 제도의 취지에 맞게, 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기업이나 업체에 가서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그 입장에서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속)-246-247쪽
(이어서) 휴직 후 문제가 생기면 공직에서 퇴직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무마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사고를 치고 나서도 로펌이나 대기업의 품에 안길 수있다면 그 만큼 공직자로서의 윤리 의식과 준법 정신은 약해진다. 이들에 대해서는 퇴직 후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심사는 물론이고 사법처리를 받도록 해야 한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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