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년 전인가부터, 아니 어쩌면 작년부터인지도, 새해 신문에 끼어오는 신춘문예발표란을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니 습관이라하긴 뭣하구나. 습관은 오래 누적된 것이니 만큼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어쨌든 아침에 들어올린 무자년 1월 1일의 신문은 두툼했고, 뭐가 이렇게 많나 해서 안을 살펴보니, 신춘문예발표지가 끼워져있었다. 올해는 또 어떤 사람들이 그간 자신의 내면에 누적시킨 문학의 꿈을 실현했나 궁금해진다.
시, 소설, 희곡, 동화 등 일일히 모든 글을 읽어보진 않는다. 내가 관심 갖는 부분은 당선자의 이력과 그의 소감과 심사평이다. 올해도 역시 작년만큼이나 독특하다고 말하긴 어렵고, 고생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지는 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이력을 보고 있으면 이 지면만큼은 사회의 어떤 힘도 미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건, 당선자들의 이력이 보통 사회에서 주목받는 엘리트의 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이들 중 대학원까지 졸업한 고학력자도 끼어있긴 하지만, 적어도 학력이나 학벌이 당선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소설, 시, 희곡, 동화 등 각 분야별 1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대개 우리가 알고 있는 1등들의 프로필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 같지도 않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의 소위 말하는 '수능성적 상위등급'의 일류대 출신도 아니다. 가족 중 정부 고위 기관이나 학계의 거목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 그것까지 나와있지도 않고 나올 필요도 없으니 -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이 아닌 건 분명해보인다.
신춘문예 당선 지면은 그런 점에서 참 공정하다. 이런 생각 자체가 문학계를 잘 모르는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당선자들은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뽑힌 인물들이니, 심사위원과 특별한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건 가능성 없는 음모론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이것 역시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해보면 오늘 신춘문예 지면에 이름을 올린 이들 뿐 아니라 등단한 소설가나 시인, 동화작가들의 간판과 배경은 유독 다른 분야의 상위그룹과 너무나 다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대학 출신거나 고졸학력자도 있고, 서울의 부유한 지역보다는 가보지도 못한, 듣도보지도 못한 작은 지역 출신인 이들이 많다. 나이는 20대에서 50대를 넘나들고, 외모는 꽃미남 꽃미녀와는 담을 쌓았다. 이들은 나이도 적지 않고 얼굴엔 매일마다 출퇴근을 반복하며 저녁엔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는 이들과는 다른 표정을 담아내고 있다.
좋은 문학 작품은 고민없이 세상을 살아온 이들보다는 산전수전 온갖 경험을 겪은 물리적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사에 새로울 것이 없는 4,50대의 표정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듯 하다. 내 생각만큼 당선자들은 심하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생이 아니라면 열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것) 그저 꾸준히 습작한 결과 한 편을 보냈는데 그게 당선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그들의 이력과 표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치만, 정말 그들에겐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 남들이 살지 않은 세계를 그들은 자기 안에 살고 있다. 그렇게 믿는다. 그들의 당선작을 읽다가 가슴이 저릿한 건 그 때문이 아닐까.
p.s. 다 읽어 본건 아니지만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진연주씨의 '방'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건 아마도 시나 희곡이나 동화를 읽어내는 눈은 없지만, 소설은 그나마 친숙하기라도 해서 그런지도.
당선소감 중 ↓
>> 접힌 부분 펼치기 >>
"계속되는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동안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시는 특별한 이력이나 천재성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오히려 평범한 내 삶과 무거운 엉덩이와 큰 머리, 굵은 손가락,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무대뽀식의 내 젊음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한자리에 끝까지 앉아서 오랫동안 응시하고 무겁고 육중한 시를 쓰는 일이 내 체질에 어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당선소식을 전해 들었던 지난 밤, 아직은 설익은 작품으로 당선된 것에 대해 내 속에서 들끓었던 많은 고민과 갈등에 작은 위안을 삼고자 한다." (정은기, 시 '차창밖, 풍경의 빈 곳' 당선)
"내게 소설은, 그들을 기억하는 내 방식처럼 파편화되고 맥락 없는 어떤 것이다. 무엇을 어떤 그릇에 담아 어떻게 차려내야 할지, 요령부득이다. 그러나 내 삶이 유일하게 희망했던 것은 소설, 그러니 삶을 연명하기 위해서는, 삶에 아부하기 위해서는 쓰는 길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이제, 마음껏 굿이라도 쳐보아라, 멍석까지 깔렸으니 손 놓기는 글렀다. 잘 되었다." (진연주, 소설 '방' 당선)
"참으로 멀리 돌아온 길이었다. 하지만 날마다 세월에 발길을 묻으면서도, 한 번도 문학에의 짝사랑을 멈춘 적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따라가니 초등학교 때 새봄을 기다리며,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꿈을 썼던 시가 생각난다. 이제 그때의 씨앗들이 하나 둘씩 꽃을 피우나 보다. 그 길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이 그리워하며 아파했던가?" (김영미, 동시 '재개발 아파트' 당선)
"시간이 지나면 그냥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됐습니다. 제 속에는 아직도 힘없고 작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걸. 그때부터였습니다. 글은 저에게 위로가 되고 따뜻한 손길이 되어주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많은 길을 돌아왔습니다. 때로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했습니다.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 손을 놓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내 안의 아이였습니다. 이제 내 안의 아이를 키우면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임정순, 동화 '그 녀석 길들이기' 당선)
"나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고차원적인 생물로 진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식 시세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강남 땅값이 오르는 데에 너무 분개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공무원 시험 합격한 것이 가문의 영광처럼 평가되지 말았으면 하고, 세금을 떼먹었다는 기사가 더 이상 나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저 멀리 몇 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에 사는 외계인이 보낸 우호적인 메세지가 들렸으면 좋겠고, 멸종되었다는 생물이 다시 출현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으면 좋겠고, 암을 극복하는 혁신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대한민국에서 연극하는 김지용이가 돈은 못 벌었는데 골 때리는 작품 하나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용, 희곡 '그 섬에서의 생존방식' 당선)
<<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