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하면 내가 바보같지만 아 정말 이런걸 살아생전 당해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시간은 어언 대략 열흘을 거슬러 올라가서 16일 일요일. 전부터 찜해놨던 루시드폴의 내한(?)공연을 보기위해 인터파크에 들어가봤으나 이미 표는 매진되어 없고, 티켓거래소에 표를 구한다고 게시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지 오래지 않아 당일 오후 자신이 표를 가지고 있다며 전화를 해온 사람이 있었고, 둘 사이에 문자가 오가기 시작한다.
"루시드폴 25일꺼 2장 있습니다. 일반석 B구역 5,6 판매합니다"
정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다음날 표를 보냈다는 문자 이후로 아예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문자도 씹(!)고, 전화도 계속 받지 않고, 사람 불안하게시리. 그래도 기다렸다. 표가 오기를. 빠른등기라면 다음날까지는, 연말이라 아무리 늦는다해도 모레까지 왔어야 하는데, 안오는게다. 그래서 또 전화하고 전화하고 전화하고 했지만 이젠 전화기를 꺼놨다. 아 그때 깨달았다. 속았다. 당했다. 이런 제길.
내 돈 88,000원은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너무 분해서 해당 티켓거래소에 동일범을 찾는 게시글을 올렸으나 동일범에게 당한 피해자는 없는 듯 했다. 이런건 어디다 신고를 해야하나 해서 찾아보니 '인터넷 사기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http://www.thecheat.co.kr/)' 라는 곳이 있더라. 와 나 같이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구나 싶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신이 당한 사기피해를 토로하고 신고내역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착하신 분인지 이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분은 - 국가 사이트가 아닌 듯 - 피해 당했을 경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떻게 처신해야하는가를 긴 게시물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 신고내역을 올리고 공범을 찾는다. 그리고 내가 보낸 돈을 되찾기 위해서는 송금 은행에 가서 지급정지를 건다. 내가 보낸 돈의 액수만큼만 상대방의 계좌에서 지급정지를 거는건 가능하다. 이때 은행에다가 그냥 지급정지를 걸어주세요, 하면 안 되고, 송금실수를 했고 따라서 상대방의 계좌에서 내가 보낸 돈 만큼 지급정지를 걸어달라고 해야한다. 그러면 신분증과 이런저런 확인을 한 후 은행직원이 그쪽 은행에 전화를 걸어 지급정지를 요청한다.
지급정지를 건다고 다 끝나는건 아니다. 어설픈 놈이 아닌 전문적인 사기범은 이러한 과정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통장에서 돈을 빼간다. 역시나 나에게 사기친 녀석도 전문범이었다. 농협 자신의 통장에는 이미 1원 한푼 남겨놓지 않고 다 빼간 상태였고, 지급정지는 걸렸으나 다음번에 그 통장 계좌로 돈이 입금되지 않는 한 나는 돈을 받을 길이 없게 된다. 어설픈 사기자는 자기 돈도 있고, 그곳에 피해자의 돈까지 받아놓은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지급정지가 걸리면 받은 돈 뿐 아니라 자기 돈까지도 뽑을 수가 없다. 이러면 결국 사기범은 피해자에게 연락해 지급정지를 풀어달라고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반드시 잡힌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자기 돈도 없고 내가 보낸 돈도 다 빼갔으니 통장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인거다.
통장에 돈이 있다면 지급정지 신청 후 환급신청을 하면 되는데, 이럴 땐 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 말고는 이제 방법이 없다. 돈은 당연히 못받는다. 오로지 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해당 계좌에 내가 보낸 액수 만큼 돈이 남아있거나 들어올 경우다. 그치만 현재 0원이라니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이 녀석은 이러한 과정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신고. 신고를 위해서는 증거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받은 문자내역서를 경찰에 제출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근데 이게 또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연하고 다음날 크리스마스고 하다보니 SK지점에 갈 시간이 없어 오늘에야 갔더니 안 된다고 한다.
자신에게 온 문자내역을 확인하고 내역서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통신사 지점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자신에게 온 문자 일부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해야하는데, 이때 주의사항이 6일 안에 왔을 경우에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열흘이 지났다. 오늘 애써 종로지점까지 행차해서 내역서 신청을 했건만 안 된다는 것이다. 내역서 조회도 사실 욕설이나 비방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 외의 경우는 내용확인이 불가하다. 내게 온 문자는 욕설이나 비방이 없으니 또 내용확인이 어차피 안 되는 거였고, 어떻게 이상한 문자가 와서 그러니 확인해달라, 고 요청하면 해주기도 하는데, 기간이 6일 지나 결국 나만 발품팔고 뻘짓했다.
돈은 못받아도 이따위로 부정의를 저지르는 녀석을 잡아 유치장에 가두려했건만 결국 늦장대처와 약삭빠른 녀석의 행각으로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다. 이 녀석은 내 돈 88,000원 뿐만 아니라 연말연시 다양한 공연 티켓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서 똑같이 속여먹겠지. 그 돈으로 어디 등따시고 배불리 산다한들 이놈이 사는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아 이런 녀석들은 잡아다 넣어서 합의 없이 본 때를 보여줘야하는데 안타깝다. 논문심사에 공연준비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크리스마스에 순식간에 열흘이 지나가버리고 녀석을 잡아넣을 방도가 없다. 루시드폴 공연도 날아갔고, 88,000원도 날아갔다. 이 과정을 배운 값 쳐야지 어쩌겠나 이제. 에혀.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사람을 이렇게 쉽게 믿으면 안 되는건데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중간에 의심도 많이 하고 그래서 거래를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굳이 일요일에 돈이 급하다고 입금을 먼저 요청한게 이상하기도 했다. 계약금을 먼저 주겠대도 녀석은 사기를 치려면 자기가 더 높게 책정해서 사기를 치지 그러겠느냐고 울먹히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래서 믿었다. 사정이 급한거 같아서 어차피 거래할거 그래 미리 주자 하고 미리 줬다. 녀석은 공휴일 하루를 번 것이다. 은행에 내가 가지 못할 걸 알았고, 지급정지 신청도 늦어질 것을 알았고.
밴드 기타리스트에게 말했더니 그 녀석이 그런다. 형 나도 내 기타 팔려고 내놨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이 못믿겠다는 식이어서 내가 그랬지, 그러면 옥션에다 올릴게요, 라고. 옥션에 올리면 그렇거든. 먼저 입금을 해도 그게 나한테 오지 않고 옥션에 머물러있다가 물건을 받고 확인을 했다고 하면 돈이 나한테 오거든. 그러니깐 사기를 못치지. 아하 그렇구나. 끄덕끄덕. 직거래가 가장 안전해서 난 여지껏 직거래만 해왔다. 중고 심벌이나 드럼페달 등을 살 때 주로 그렇게 했는데 직거래가 아닐 경우는 옥션에서 해야겠구나. 물건이 도착하지 않는 한 상대방도 돈을 받지 못하니까. 왜 진작 몰랐을까. 지금 이 시간에 루시드폴 마지막 공연을 하고 있겠구나. 23일에서 26일까지 공연이었고 다시 스웨덴으로 가는거 같던데. 쩝.
만일 이랬는데도 사기 당했다면 최대한 빠르게 대처할 것. 대처방법은 '인터넷 사기피해 정보공유 사이트(http://www.thecheat.co.kr/)를 참고할 것. 연말 연시 피해자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조심하시길. 웬만하면 직거래, 아니면 옥션.
p.s. 다시 해당 사이트에 가서 글을 뒤적여보니 문자내역이 없어서 고소는 가능한거 같군요. 내일 경찰서로 가봐야겠다. 문자내역은 없지만 내 핸드폰엔 저장되어있고 아직, 이거 가지고 어떻게 고소를 해봐야지.
p.s. 2. 원래 은행에서는 사기피해 본 것을 가지고 상대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을 해주지 않지만 법이 바뀌었다. 워낙 이런 피해자들이 많은지라. 검색해보니 이놈한테 당한 분들만 십여명이 넘는다. 신고된 것만. 최근 한 달 사이에 많게는 23만원에서 적게는 5만5천원까지 다 합하면 300만원은 될 듯 한데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경찰서에서 얼굴 볼 때까지 포기 안 한다. 사람 잘못 골랐다. 쉽게 속아도 쉽게 놔주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