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와 한겨레 신문을 통해 신간을 접하고, 관심 목록을 뽑아내는데, 한국일보는 우리집에서 구독하니 집으로 오지만, 한겨레는 구독하진 않으니 토요일자를 사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야 한다. 가까운 편의점에 가면 구할 수 있지만 조금만 늦으면 편의점 가판대에 있는 세 부 정도의 한겨레 신문이 동난다. (근데 왜 꼭 한겨레 신문은 다른 신문보다 널려있는 부수가 적냐. 편의점 하나 당 두 부 정도 밖에 보지 못했다. 안팔려서 그런가.) 나 같은 이들이 동네이 있는 듯 하다. -_- 그리하여 오늘도 늦게 일어나 헛걸음질하고 반대편에 있는 도로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 길거리 가판대에서 한 부 사온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이 짓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
비록 두 신문사의 책소개란을 통해 신간을 접하지만, 두 신문사의 책소개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의 다른 신문사들은 어찌 구성되는지 궁금해서 모든 신문 토요일자를 하루에 다 구입해서 보고픈 충동도 느낀다. 한국일보의 간판은 <진보의 역설>이란 책이었고, 한겨레의 간판은 <폭력에 대한 성찰>이었다. 한국일보는 <폭력에 대한 성찰>을 인문/사회 구석공간에 짧게 소개했고 한겨레는 <진보의 역설>을 다루지 않았다.
또한 한겨레는 헤겔의 법철학을 다시 읽는 <차이와 연대>, 명목상 프랑스에 속해있으나 그로부터 배제되는 방리유를 통해 보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다룬 <공존의 기술>과 같은 묵직하고 손에 쥐기 힘든 책들을 소개하였다. 반면, 한겨레에는 없지만 한국일보에는 모습을 드러낸 책들도 꽤 많다. 앞서 말한 <진보의 역설>이 그렇고, 미국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선거 25건을 소개한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 와 같은 책들이 다소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아마도 이건 책을 접하고 선정하는 기자들의 개인적 취향이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일보의 '책과 세상'의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이왕구 기자의 글이 조금 더 많고, 한겨레는 고명섭 기자의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두 사람의 글 또한 많이 다르다. 이왕구 기자의 소개글은 소개하는 책에 충실한 반면, 고명섭 기자의 글은 본인이 그간 읽어왔던 어떤 책들과 그와 관련된 경험, 자신의 지식을 조합하여 책을 소개한다. 단순한 책소개라기보다는 서평내지는 리뷰의 느낌이랄까.
어떤 것이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한국일보와 한겨레 둘 다 검토하는 이유는, 수많은 신간 중에 눈에 띄지 못한 채 지나치게 되는, 관심가질 만한 서로 다른 책들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좀 더 지식욕이 있는 독자들을 겨냥한다면, 한국일보는 그냥 무난하다. 내게는 한국일보보다는 한겨레에서 소개해주는 책에 관심을 더 갖게 되지만, 한겨레가 놓치는 책들을 한국일보를 통해 접한다. 더 많은 신문사들의 토요일자 신문을 접하게 된다면 그물은 더 커지고 그물코는 더 작아지겠지만 지금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검토해야 할 대상이 많아질수록 스트레스는 더해간다. 적당히 조절해야지.
* 관련글 : 오늘의 관심 도서 12 (http://blog.aladin.co.kr/drumset/1410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