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 인물들과 함께 떠나는 한국철학 시간여행
황광욱 외 지음 / 동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철학. 국내 대학의 학부 철학과의 커리큘럼은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아직은 독일과 영미철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서양철학이 상륙했을 때,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건너왔고, 일본의 서양철학은 독일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커리큘럼 또한 독일 철학이 주를 이루었고, 칸트와 헤겔이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철학의 흐름이 영미로 건너왔고, 이에 관한 과목들이 개설되며 독일철학에 편중된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

  동양철학에 관해 말해볼까. 동양고대철학사, 동양근현대철학사 와 같은 개론 과목들을 제외하면 동양철학 과목은 아마 서양철학 과목에 비해 적을 것이다. 이것도 역시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주역연구, 장자 강의, 노자 강의, 유학철학 등등의 과목들이 언뜻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철학 과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개론으로 한국철학사 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지만 철학사를 다룸에 있어서 한국철학은 소외되어있다. 기껏 성균관대 유학철학과에서, 혹은 동양철학과에서, 정식으로 다룰 뿐이다. 마치 중국철학과 유행하는 서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래도 한국에서 철학하는 자로서 한번쯤 알고 가자라는 식의 곁다리 역할 정도를 할 뿐이다.

  oo철학과 같이 '철학' 앞에 나라이름을 붙여 철학을 칭할 수 있는 국가는 몇 없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중국, 인도 정도가 다이고,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이란 나라는 물론 그것이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철학의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나름 독창적인 철학사고를 했다고 보여지는, '철학사'를 이야기했을 때 꽤 큼지막한 건들이 있는 그 몇 안되는 철학하는 국가에 포함된다. 한국인들을 '지금 여기'에 놓이게 한 근원은, 철학이다.

  지구 전체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세계화에 참여해있고, 이러한 세계화는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기 이전에 세계인으로서의 소양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 '나'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고 세계인이 되는 것은 '나'를 버리고 '남'에게 흡수되는 것 밖에 될 수 없"으며, 고로 '지금 이곳의 나'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본은 철학이 될 것이다. 한국철학은 현재 유행을 타고 있는 서양의 어떤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나'를 알고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한번쯤 발로 건드리고 가야하는 돌이 아니라, 강을 건너기 위해 반드시 밟고 넘어가야만 하는 돌이다.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제일 밑바닥에 깔아야 하는 돌이다.

  여기 이 책에 열 여덟 명의 한국철학자들이 놓여있다. 최치원, 정몽주, 송시열, 최제우, 최익현, 원효, 지눌, 서경덕, 이황, 이이, 조광조 등등 대개는 우리가 한번씩 접해본, 최소한 이름은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황과 이이가 천원권과 오천원권에 괜히 얼굴을 들이민 것은 아닐게다. 그만큼 한국이란 나라가 오늘에 이르는데 막중한 역할을 했고, 그것이 비록 정치적이거나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 둘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한국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던 열여덟 개의 돌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p.s.
 
1999년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바 있는 이 책은, 2007년 '한 권으로 읽는 한국철학'이란 제목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제목이 바뀌고 좀더 보완 집필 되었다. 기존의 책은 안에 들어있는 한국철학의 거장들을 시대순으로 구성했었고, 이번에는 인물들을 세 개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는 차이가 있고, 기존의 열 다섯명에서 세 명을 추가해 열 여덟명으로 바꾸었다는 정도의 변화가 있다.  이전의 책을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저자들은 이전 책이 팔리지 못했던 이유가 제목과 내용구성에 있었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뀐 순서와 제목보다 그때가 더 나았겠다 싶다.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 보다는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이 더 대중적인 제목이고 눈에 띄기는 하지만 내용을 살펴봤을 때 그에 더 적절한 제목은 이전의 것이었다. 내용구성 또한 별 의미 없는 세 개의 주제로 나누어 쪼깨느니 시간순서대로 구성하거나 아니면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었던 철학자들끼리 묶어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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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앞에 나라이름을 붙여 철학을 칭할 수 있는 국가는 몇 없다."
한국에 고유의 철학이 없다하더라도 부끄러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상기 언설처럼 세계제국중 고유의 철학을 내세울 만한 국가가 손 꼽을 정도이므로.

다만 근세에 단기간에 '합리성'을 앞세워 유입된 서양철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로서, 과연 한국인으로서 나자신의 철학적, 사상적 아이덴티티는?
현대 한국인의 화두일 것입니다.
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그 징한 마르크스와 대머리 푸코와 데리다와
민주와 평등과 인권과 노동과 생태보전과 더불어 삼과 신영복과 리영희를
제외하고 나면 멀쩡한 고대 한국인이 남을 듯 합니다. 하하
그러므로..
제가 뒤늦게 유학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프락사스님
유학이 비록 서양철학과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철학은 아니지만
근1000년간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속에 녹아든, 체화된 철학이니 만큼
유학을 모르고서 한국철학을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로그인 2007-05-1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한국철학'에 대한 젊은이 답지 않은 관심에.. 추천 한방!!
하하

마늘빵 2007-05-1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현대 한국의 철학을 말하라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어느 하나의 국가에 있어서 철학이라는 것은 해당 공동체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어야하는데,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없을 듯 합니다.

얼마전 한국의 지식인이라 일컫는 이들을 대상으로 현대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조사해봤는데 푸코와 마르크스, 리영희, 강준만 등이 많이 나왔더랬죠.

글쎄요. 오늘날의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 근원을 과거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선은 다릅니다) 철학자 탁석산에 의하면, 한국의 정체성이란 것은 오늘날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누리고 좋아하는 그것인데, 오늘날 한국철학의 정체성 역시 지금의 한국이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푸코와 데리다와 마르크스를 논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이론을 가지고 새롭게 한국사회에 적용해 정착한 이들이 있을 것이고, 새롭게 변형된 형태로 존재할테니까요.

물론 과거부터 계속 영향을 끼쳐왔던 유학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시대를 건너오며 영향을 끼친 새로운 인물들까지도 연구에 포함해야 할테지요.

yamoo 2010-03-1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지나가다가 몇 자 적습니다..푸코와 마르크스..특히 프랑스 철학을 보면 정말 현란한 개념의 잔치가 펼쳐집니다. 모르면 무식한 것 같고...한국에는 철학이 없는 것 같고..논리도 없는 것 같고...우리 철학은 너무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탁석산 님의 한국인의 정체성 주체성도 읽어 봤지만 그의 한국철학적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 원효의 저저들을 묶은 책을 봤는데, 넋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 치밀한 논리와 현란한 불교의 개념들이 펼쳐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 학계가 너무도 연구를 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 글 참 잘읽고 갑니다~^^

마늘빵 2010-03-12 17:52   좋아요 0 | URL
저 역시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읽었지만, 매우 흥미로웠고, 호감이 생겼음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에는 동의합니다. ^^ 푸코와 데리다, 라깡, 들뢰즈 등등 현재 철학자들이 쓰는 어휘는 매우 현란하죠. 푸코는 그마나 좀 접해본 축이고, 데리다, 라깡, 들뢰즈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국에는 철학이 없다기보다는, 한국 철학을 너무 협소한 범위 안에서만 찾기 때문에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학자 김상봉 선생님을 한국의 현대 철학자로 뽑습니다. <서로주체성의 이념>이 선생님의 기본 철학 뼈대입니다. 그분은 또 함석헌을 한국의 철학자로 바라보고 계시죠. 한국 철학의 빈곤은 한국의 철학 전공자라는 분들이 대개 서양의 학문을 번역하고 전파하는 데 몰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kokoball 2022-08-2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똑똑하신 분들이 많네요;; 오우... 글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