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2007.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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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꿈꾸는 자의 현명한 선택
<드림걸즈>는 60~70년대를 풍미했던 다이애나 로스의 여성 그룹 ‘슈프림스’를 모델로 삼고 있다. 다이애나 로스의 일방적인 인기로 팀명은 "다이애나 로스 & 더 슈프림즈" 로 개명되었다가, 그녀의 탈퇴로 인해 그룹은 해체되었다고 한다. 이 그룹의 프로듀서 베리 고디 주니어는 프로 권투선수 출신이었으며, 1961년 디트로이트 출신의 플로렌스 발라드, 메리 윌슨, 다이애나 로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계약을 성사시켰다. ‘슈프림스’는 하루 사이에 스타가 되었고 1964년 ‘Where Did Our Love Go’가 첫 No.1 히트를 기록한 이후 5년간 총 11번의 No.1 히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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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로렐, 디나, 에피. 원래 에피의 자리는 가운데였지만 그녀는 그룹 전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결국 견디지 못하고 팀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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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이들은 어느 경연대회에 참여했고 그녀들이 가진 모든 재능을 다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1등을 따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그곳에 있던 매니저 커티스에 의해 인기가수 제임스 썬더 얼리의 코러스로 투입되고, 서서히 대중의 귀를 사로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재능과 열정만으론 부족하다. 온갖 뒷거래와 홍보가 있어야 하고, 오디오뿐 아니라 비디오도 되야 한다. 에피는 노래는 최고였으나 얼굴과 몸매는 아니었다. 커티스는 과감히 에피를 내려 앉히고 비디오가 되는 디나를 리더로 내세워 텔레비전을 장악한다.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결국 비디오는 떴고, 오디오는 졌다.
디나는 에피의 남자친구 커티스와 결혼을 했고,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무대에서는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광고와 영화 섭외가 밀려드는 인기를 얻었다. 반면 에피는 아버지 없는 딸을 낳아 키우고 노래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다른 일을 못해 생활고를 겪는다. 그녀는 그 동안 함께 했던 멤버들로부터, 남자친구로부터, 오빠로부터 버림받았고 홀로되었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고, 진심은 통하게 되어있다. 혼이 담긴 진짜 음악을 하겠다며, 정말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며,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세 명의 드림걸즈는 네 명의 드림걸즈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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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클. 왼쪽부터 이효리, 성유리, 옥주현,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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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림걸즈>를 보며 그룹 "핑클"을 떠올린다. 물론 핑클이 영화 속 드림걸즈와 같은 멤버들간의 불화와 소동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내게 드림걸즈의 에피는 핑클의 옥주현과 자꾸만 겹친다. 핑클이 활동을 중단한 현재, 이효리와 옥주현은 떴으며 이진과 성유리는 분야를 바꿨다. 이진은 엠씨로, 성유리는 탤런트로. (솔직히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공백과 이 정도의 개인별 활동이라면 사실상 해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핑클이 처음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은 이진과 성유리와 이효리를 좋아했고, 옥주현은 거기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가수로서의 이진과 성유리는 빛을 발하지 못했으며, 가수로서 이효리와 옥주현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효리야 원래부터 인기가 있었고 그것이 극대화되었다고 보면 그만이지만, 옥주현의 환골탈태(?)는 가히 "대단"을 넘어서 "존경"할 만하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의 팬들이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옥주현은 네 명의 멤버 중 얼굴도 몸매도 가장 안 되었더랬다. 그러나 모든 노래의 클라이막스는 옥주현이 소화했으며 그녀 없이는 핑클은 생각할 수 없었다. 옥주현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솔로활동을 했고, 동시에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빼고 성형수술을 함으로써 대변신을 감행했다. 사람들은 현대 과학기술의 힘이다, 라고 말하지만, 진심으로 나는 그녀가 대단하다 생각한다. 긍정적인 의미로.
드림걸즈의 에피는 목소리가 개성이 강하고 세다는 이유로, 얼굴이 못생기고 몸매가 안 된다는 이유로 리더에서 물러났고 이를 참지 못해 결국 그룹을 떠났다는 점에서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쫓겨나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마따나 그건 에피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핑클의 옥주현은 데뷔 당시 다른 세 명의 멤버에 비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때로 팬들에게 서운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스스로 힘겨운 노력을 통해 카메라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함으로써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드림걸즈가 실제 활동했던 미국의 60~70년대와 2007년 대한민국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에피는 자존심 지켜가며 그룹 탈퇴를 감행했고 고난의 세월 끝에 더 나이 먹고 늙은 모습으로, 9살 딸아이를 키우는 아줌마의 모습으로, 이전보다 더 뚱뚱한 모습으로 재기했지만,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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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때와는 다른 현재 옥주현의 모습. 그녀를 싫어하는 이들도 그녀의 각선미만큼은 인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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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냐 비디오냐. 예전에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길거리를 다녔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손에 TV를 하나씩 쥐고 길거리를 다닌다. 예전에 사람들은 밤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기 위해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기 위해(엄밀히는 "보기 위해") TV를 켠다. 가수의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을 듣는 대중의 주요관심사가 아니다. 요즘의 대중은 가수의 목소리보다는 가수의 얼굴에 주목하고, 얼굴과 몸매가 된다는 전제하에 그들의 목소리와 노랫말을 듣는다. 특히 여가수의 경우는 남가수의 경우보다 더욱 심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런 시점에서 옥주현이 목소리로 솔로 활동에 승부를 건 것과 동시에 솔로 성공을 위해 스스로 피나는 다이어트와 꾸준한 운동 등의 자기관리, 성형을 감행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춤을 춰도 별로 티 나지 않는 통통녀가 요가 비디오를 낼 정도의 몸매를 소유한 날씬녀가 되었고, 그것이 운동과 다이어트와 더불어 현대과학기술(성형)의 힘이라 하지만 그녀는 모든 비난으로부터 결백하다. 아무리 재능과 열정과 실력을 지녔다 할지라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가벼운 오디션 통과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며, 음반녹음과 정식가수활동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자존심 센 에피는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2007년의 대한민국은 재능과 열정에 앞서 외모를 가꿀 것을 주문한다. 재능과 열정은 그 다음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뚱뚱녀는 재능과 열정이 있었음에도 뚱뚱한 외모 때문에 무대 위의 누군가를 대신해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을 부정하고 꿈만 꿀 것이냐. 둘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면 전자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때로 현실과의 타협이 반드시 꿈의 실현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분명 무대에 오르기 위해 외모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재능과 열정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재능과 열정이 결여된 채 이쁜 외모를 가진 이는 단지 가수를 지망하는 이쁜 아가씨일 뿐이다. 옥주현이 가요 무대와 뮤지컬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외모 이전에 재능과 열정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오디오냐 비디오냐. 오디오보다 비디오의 힘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디오뿐 아니라 비디오도 소리를 지닌다는 사실은 잊고 있는 듯 하다.
무대 위에서 과감히 바지를 벗어제끼며 무대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얼리는 말한다. "난 영혼이 담긴 음악을 하고 싶다고. 더 이상 이런 간드러지는 발라드는 하지 않겠어." 발라드건 알앤비건 디스코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는 영혼이 담긴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것일 뿐. 혼이 담긴 음악은 호화 출연진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나 가수들의 일상생활을 담아낸 오락 프로그램에서보다는, 가만히 눈을 감고 들려오는 노래에 집중할 때 더 진실되게 느껴진다. 내 마음을 울리는 멜로디와 노랫말은 내 눈보다는 내 귀를 통해 들려온다. 보여지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이 댄스나 디스코의 장르라면 더더욱. 그래서 눈을 가리라 말하지 않는다. 귀를 열어라.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에게보다는 음악을 "제작"하는 기획사에 하고픈 말이다.
* 드림걸즈를 보며 핑클을 떠올리고, 에피를 보며 옥주현을 떠올리는 건, 지극히 나의 주관에 기인한다. 두 그룹과 두 사람은 엄밀히 같은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며, 동일한 성장과정을 겪지도 않았다. 더욱이 핑클에서 옥주현이 차지하는 위치와 대우는 드림걸즈의 에피의 그것과 시작부터 달랐다. 그럼에도 "나의 주관"이라는 핑계를 삼아 드림걸즈로부터 핑클을, 에피로부터 옥주현을 도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