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붐이 일기 한참 전, 대략 1980년대 후반즈음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철학교육을 시도했던 그곳에서는, 가끔씩 전화가 온다.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 사범대 출신도 아니고, 하늘대학도 아닌, 내세울 것 없는 나는 비정규직 교사 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었다. 졸업 후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내가 처음 취직한 곳은 이곳이었다. 이름만 대면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 알만, 우후죽순 여기저기 늘어난 청소년 철학교실의 모태가 되는 그곳에 이력서를 냈고, 전화가 왔으며, 면접을 봤고, 취직했다. 그리고 교육은 3개월 과정이었고 그간은 차비와 밥값만 제공되었는데, 나는 함께 들어간 다른 세 명과 함께 1개월 반 정도의 교육을 받고서 현장 투입되었다. 교사가 모자랐던 것이다.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되지 않은 탓도 있었고, 기존의 교사 중 그만두는 이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사귀었고, 헤어졌으며, 직장이란 생각이 안들게 재미도 안겨줬고, 돈을 번다는게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느끼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출퇴근제가 아닌 수업이 있는 때 나와서 수업하고 빠지는 식인지라 매일매일의 스케쥴이 일정하지 않았고, 토요일은 수업이 많은지라 아침부터 밤까지 풀타임으로 일해야만 했다.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돈만 아니라면 이곳에 발을 붙여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때는. 그러나 역시 수업량에 따라 돈의 액수가 달라지는지라 많이 벌기 위해서는 많이 뛸 수 밖에 없었고, 매일같이 아침부터 밤까지 뛴다면 대기업 연봉을 능가하는 액수를 받을 수도 있었다.

  일하던 중 학교로부터 전화가 왔고, 고민 끝에 이곳을 등지고 학교를 택했다. 그곳에서는 일정한 출퇴근과 수업 이외의 업무를 가진 직위(?)를 제안했고 매우 구미에 당겼지만 거절했다. 원래 가고자 했던 곳이 학교였으므로. 사교육이냐 공교육이냐. 공교육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사교육에서 충분히 메꿔 줄 수 있고, 교육의 질이나 학생수, 환경 면에서 사교육은 이상적인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두 가지를 병행하고 싶었고, 실제로 두 가지를 병행했다.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로 갔던 나는, 내가 소지하고 있는 '철학교사자격증'으로 '기간제 교사자격'으로서는 도덕을 가르칠 수 없다는걸 뒤늦게 알았고, 학교도 그때까지 몰랐다. 꼬박꼬박 교사월급을 받아야했던 나는 시간당으로 계산하며 본래 받아야 할 돈의 반을 받아가며 3개월을 그곳에서 보냈고, 나왔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병행하기는 힘겨웠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오가는 사이 나는 내 머리와 마음의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해야했다. 내용이나 방식이나 마인드면에서 많이 달랐기에. 처음 학교수업을 할 땐 그곳의 수업방식이 몸에 배었었고, 나중에 그곳의 수업을 할 땐 학교의 수업 방식이 몸에 배어있었다. 결국 뒤범벅이 되어버렸다. 재밌는건 학교에서 수업할 때 그곳의 수업방식을 도입하면 아이들은 새롭다고 좋아했지만 그곳에서 학교의 방식으로 수업할 땐 학생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략 방법은, 누가 주도적이냐의 차이일터다. 교사가 가르쳐야할 내용을 전달하고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식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차이랄까. 한 학급당 인원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개개인이 참여하여 토론하며 수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금의  1/3 수준이 되어야 한다. 약 10명 정도가 있을 때 개개인이 모두 참여하는 수업이 가능하다.

  어쨌든, 나는 그곳을 등진 뒤로 계속 공교육에 몸담고 있고, 어느덧 횟수로 3년째 접어들었다. 학교에선 방학월급 다 떼먹었던지라 학비를 충당하기엔 수입이 부족했고, 경력에 방학기간이 포함되지 않아 나의 교직경력은 이제 1년을 넘어섰지만, 내가 학교에 몸담은 건 3년째다.

  오늘 또 전화가 왔다. 그곳에서 나름 나에게 잘해주던, 많이 신경써주시던 분으로부터. 토요일 수업을 맡아달라는게다. 나는 지금 엄연히 기간제교사고, 시간강사와 달리 기간제는 직업을 겸할 수 없다. 상황이 급박했는지, 그럴 때마다 그 분은 나를 찾았다. 너댓번은 연락을 받은 듯 한데 모두 거절했다. 한번은 할 수도 있었는데 시간표가 어중간하게 짜지면서 아예 안하겠다고 했다.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는 곳이 아닌지라,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곳이 아닌지라, 기타 등등의 다른 이유들로, 교사가 많이 나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분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일하며, 매일같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꾸준히 잘 버티는가보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찾아주는 사람에겐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이 친분관계건, 내 능력이건, 아니면 정말 연락할 곳이 없어 나를 찾는 사람이건, 이유야 어떻든간에 나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일정 부분 누군가로부터의 청을 내 능력으로 간주하는 마음을 숨길 순 없다. 바램뿐이겠지만. 예전 밴드에서 공연을 뛰어야 하는데 드러머가 없다. 네가 필요하다. 는 전화를 받았다. 고맙다. 그들의 고마움을 청을 들어줌으로써 갚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거절하게 된다. 그것이 현재의 나의 상항과 맞물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통화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상대의 청이 나의 동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오갔으리라 본다. 청을 들어줄 수 없음에도 이런 전화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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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2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러머로 청하는 전화, 일상의 반복된 생활에서 청량음료 같으네요. 거절하게 되더라도 반갑고 고맙고 흐뭇해지는 거...^^

마노아 2007-03-01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에 제 호봉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기에 이전에 근무했던 사립학교에서 제 이름으로 '착취'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지금 있는 학교에서 행정실수를 한 거였지요. 얼마일지 모르겠지만 한꺼번에 목돈 나가게 생겼어요. 와방 미워하고 있답니다..;;;;;

마늘빵 2007-03-0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 네. 옛날 칭호죠. ^^ 지금은 주력산업(?)이 다르니. 기분은 좋더라구요.
마노아님 / 아 이런. 그럼 찔끔찔끔 받은거 뭉텅이로 반납해야하잖아요. 행정실 실수가 은근 많아요 이런게. 다 확인하고 받아야지. 그냥 들어왔나보다 그러면 안되겠더라구요.

깐따삐야 2007-03-0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면, 그 성실한 인상 때문에라도 여기저기서 부르는 사람이 많이 생기잖아요. 기분 좋으셨겠다.^^ 그리고 약 10명, 저도 완전 동의해요!

2007-03-01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7-03-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설령거절해야 할지라도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거.
그거 참 행복한 일이예요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