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그다지 정성껏 글쓰는 이는 아닌 듯 하다.
애초 내가 영화를 보고, 또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나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함에서 시작되었고, 그러다보니 쓰는 글이란 것도 그저 기록하는 것이 최우선의 조건이 된다. 어떻게든 빨리 기록하고 다음 책을 읽고, 다음 영화를 보고 하는 것이 순서인데, 어느 순간 깨어져버렸다. 작년 여름에 읽은 소설 책이 아직까지 내 컴퓨터 왼쪽 벽에 기대어 나 좀 책장으로 옮겨줘, 하고 있고,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한글쪽지 한장(?)에 작년에 보고 아직 못 쓴 영화제목들이 주루룩 나열되어있다. 영화가 대략 25편 정도, 책이 5권 정도 되는데, 상황이 이쯤되면 리뷰를 쓴다해도 당시의 감흥이나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가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기 마련이다. 내 기억력은 그렇다. 이 정도 시간만 지나도 잊혀진다.
정성껏 글을 쓰고 싶다. 영화 한편에도, 책 한권에도 나름 만족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 그간 많은 영화리뷰와 책리뷰를 썼지만, 그다지 내 마음에 차는 글은 많지 않다. 글을 잘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글을 남기는 것이 목적인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고, 아직 밀려있는 녀석들 때문에 어서 하나하나 해치워야한단 압박감이 글을 더 불성실하게 만드는 두번째 이유가 되겠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는 나를 향해 리뷰 제조기라고 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한 개의 리뷰를 완성시켜 등록 버튼을 누르니까. 매번 시간을 재본것은 아니지만 대략 쓰기 시작하면 20분에서 40분 가량, 많아도 한 시간 정도면 한 개의 리뷰를 완성하는 듯 하다. 짧다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자주' '많이' 쓰다보니 이제는 정말 자연스럽게 나만의 리뷰 양식이 몸에 배었다. 좀더 다르게,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좀더 깊이있게 써보고 싶지만, 써야 할 녀석들은 많고, 읽어야 할 녀석들도 많고, 이 짓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말로만 오래전부터 써오던 논문 - 관련 책도 아직 하나도 못읽었다 -과 논술 강좌 교안 짜기 등등.
글을 쓰면서 최소한 자기만족감은 얻고 싶다. 내 글이 타인에게 공감을 얻건, 인정을 받건, 동의를 얻건, 이런 것은 나중의 일이고, 최소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 황금같은 시간을 투자해 글을 썼다면, 스스로 만족감은 느끼고 싶다. 아 이 정도면 공 좀 들였어, 정성 좀 쏟았어, 신경 좀 썼네, 하는 정도의 만족감만이라도. 어째 점점 더 멀어져가는 듯 하다. 최근 책을 읽는 양도 줄었고, 속도도 느려졌으며, 그다지 의욕에 불타지도 않고,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만 있고, 글을 쓰지는 않고 있다. 기존에 써 왔던 내 글을 '글'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정성껏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욕심만 있고,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전에 썼던 어느 글에서 나는 글은 곧 사유라고 했는데,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은, 사유의 부족함에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 아 욕심을 내보지만 곁에 쌓여있는 녀석들과 바탕화면에 적힌 제목들이 눈에 거슬리는구나. 과감히 떼어버리고 지금부터 시작할까. 창을 띄워놓고 제목을 쓰고 첫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리자. 그리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아마 또 이렇게 말해놓고 기록을 위한 글을 쓸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