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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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별점 다섯 개를 주러 왔다가 책 표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보고 별 네 개를 거둔다. 출판사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http://www.amazon.com/The-Valley-Masks-Tarun-Tejpal/dp/9350290464/ref=sr_1_1?ie=UTF8&qid=1346113053&sr=8-1&keywords=the valley of masks

 

  한국에서 변사자에 대한 부검은 판사의 영장을 받아, 검사의 지휘 하에, 주로 경찰관이 위임을 받아 집행한다. 이들은 모두 비전문가들이다. 검시에 참여하는 의사마저 법의부검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영미법계에는 검시를 전담하는 직책인을 두는 이른바 '전담검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검시관(coroner)을 두고, 미국에서는 선거로 선출하는 법의관(medical examine)을 둔다. 미국에서 일반의사들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에 한하여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고,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법의관에게 사체를 넘긴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검시교육의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의과대학 중 법의학 교실을 개설한 대학은 불과 5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207쪽). 반면 대륙법계에서는 특정 직종의 공무원이 검시업무를 겸임하는 '겸임검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법제도 측면에서는 (일본을 통하여) 대륙법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의학 교육 측면에서는 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당시의 시찰단은 미국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없는 것을 굳이 우리나라 대학에서만 교육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바람에 우리는, 미국과 같은 법의관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된 법의학 교과가 없는 채로 6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2012년 책 출간 당시 43개 의과대학 중 12개 대학에만 개설). 그 사이 억울한 죽음들도 수없이 묻혀 보냈다(단적으로, 몇몇 유명 연예인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을 보라).

 

  초동수사에서부터 법의학 전문가가 개입하도록 하는 검시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비전문가인 수사기관이 보는 외관만으로는 결코 범죄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부검은 수사기관의 시각에서 범죄에 의한 사망일 때 비로소 실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반대로, 전문가가 부검을 통하여 사인을 명확히 규명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범죄성이다. 법의학 전문의를 충분히 양성하여야 하고, 법률가들 역시 법의학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여야 한다. 범죄수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법검시 외에도 전염병 사망, 행려 사망, 사인불명의 병사, 신생아 및 임부의 사망 등과 같이 보건정책상 필요한 부검에 대하여 '행정검시'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우리 법과 연계성이 높은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등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다). 끝으로, 제도개혁을 위해서는 '두벌주검'에 대한 인식 전환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환자가 생존 시 앓고 있던 병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였는지, 그 질병에 사용된 약물이 어느 정도로 효과적이었는지와 같은 것은 사후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 시정과 개선이 반복되는 가운데 의학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검이 여의치 못해 다른 나라 통계를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발전을 위한 부검은 고사하고, 사법부검마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로막히기 일쑤이다. 유럽에서는 늦게는 18세기 초경까지도 '용의자가 진범이라면, 자신이 가해한 피해자의 사체를 보거나 접촉하는 순간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거나, 해당 용의자의 얼굴 표정과 몸의 거동이 달라진다'는 식의 '관법 棺法 Baarrecht'에 의거한 검시가 이루어졌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이미 1438년(세종 20년) 『신주무원록 新註無寃錄』[책 20쪽에 따른 것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동일하나, 두산백과 등에는 1440년(세종 22년) 출간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1456년(세종 38년) 『심리록 審理錄』이 간행되고, 1792년(정조 16년) 앞의 책을 증보한 『증수무원록 增修無寃錄』을 편찬하는 등 수백 년을 앞선 과학적 검시기술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미 법의학을 다룬 다양한 대중서를 펴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책들만 최근작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미술작품과 연계한 저서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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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서서
이우환 지음, 성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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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언젠가 내가 돌을 보고 있자니 눈길은 돌 저쪽으로까지 꿰뚫어나가고 동시에 돌의 눈길 또한 내 등뒤로까지 꿰뚫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 개의 눈길이 서로 뒤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나도 돌도 없고 투명한 공간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 4

 

  어쩌다 바람에 너울거리는 나무와 흔들리는 나의 눈길이 만난 순간 나는 멈춰 선 나무가 되고 나무는 걷는 내가 된다

 

  이리하여 나와 나무는 그곳에 있으면서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옮아 탄 운명의 공간을 이루게 된다

 

산정山頂 2

 

산정에 서면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라

 

이윽고 하늘이 쏟아지면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오라

 

가지 끝

 

가지를 따라 생각을 더듬어 가면

 

기억이 끊어진 저쪽에 열린 봉오리

 

우산

 

비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거니는 사람은

모두 고독하다

 

그건 비에

적시고프지 않은 작은 공간을

나르는 때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 공간에 들어가

빗속을

여기저기 저 너머로 장소를 옮긴다

 

사람이

투명한 유리케이스처럼

자신을 가둔 채 걷고 싶어하는 것은

 

우산 아래서

차가운 고독의

비에 젖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함에는 그의 글들을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그의 이름을 알리고, 그를 중심으로 '모노하(物派) 운동'을 집결시킨 것도, 그가 1969년 6월 『산사이三彩』에 발표한 「존재와 무를 넘어서 - 세키네 노부오 론 存在と無を越えて - 關根伸夫論」을 기점으로 해서였다.

 

  그가 쓰거나, 그를 다룬 책 중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된 네 권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고, 네 권은 품절되었다.

 

  2009년에 나온 『시간의 여울』은 화백의 에세이집이다. 일본의 <미술수첩>, <예술신조 藝術新潮>, <현대시수첩>, <현대사상>, <통일일보>, <아사히신문>, <일본경제신문> 등에 발표한 것들과, 미발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7년 小沢書店에서 처음 출간되었다가 2004년부터는 みすず書房에서 출간하고 있다(2016년 4월에도 책을 다시 찍어냈다). 한국에서는 1994년 디자인하우스에서 서인태 씨 번역으로 처음 나왔다가 2002년 여섯 편의 단편을 추가하여 남지현 씨가 새로이 번역하였고, 2009년에 월간 <현대문학>에 실었던 다섯 편을 더하여 현대문학사에서 재발간되었다.

  2002년에 나온 『여백의 예술』은, 화백이 미술 표현에 대한 단상, 현대 예술 일반에 대한 견해, 유럽이나 한국, 일본의 문화감각 등을 주제로 1967년부터 최근까지 일본의 잡지, 신문, 카탈로그 등에 발표하였던 단문, 또 미발표 원고를 묶은 책이다. 『시간의 여울』이 주로 신변잡기라면,  『여백의 예술』은 그의 '예술론'이다. 일본 みすず書房에서 2000년 11월 출간되었던 책을 김춘미 교수가 번역하였다.

  2004년에 나온 『멈춰 서서』는 화백의 시집이다. 그의 그림과 조각이 詩적인 만큼이나, 그의 詩도 회화적이다. 詩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각(視覺)에 관한 단문'에 가깝다. 2001년 4월 일본 書肆山田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성혜경 교수가 번역하였다.

  가장 최근인 2014년에 나온 『양의의 예술』은 심은록 작가와 화백의 대담집이다. 전문성을 갖춘 인터뷰어의 충실한 질문 덕분에 화백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은록 씨는 작년 4월, 서용선 화백과의 대담집 『사람에 대한 환원적 호기심』(교육과학사)을 펴낸 바 있다.

 

 

  절판된 책 중 화백 자신의 책으로는 우선 열화당에서 1977년에 처음 나온 『이조의 민화: 구조로서의 회화』가 있다. 조선시대 미술의 특징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1. 이조미술의 특징: 생활애(生活愛)의 예술, 2. 회화의 본령: 이조회화의 평가를 중심으로, 3. 화가와 제작: 방랑화가들과 폐쇄사회, 4. 용도와 종류: 회화와 생활공간, 5. 화관(畵觀)과 방법: 윤곽회화의 구조, 6. 성립과 해소: 무명성이라는 것'까지 총 6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이다. 본문은 48쪽이고 이후는 모두 도판이다. 아래 책 이미지는 열화당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책은 2011년 학고재에서 나온 『만남을 찾아서』이다. 이는 1960년대 말경 화백이 쓴 논문 6편을 수록한 책으로, 이들은 오늘날 이우환을 있게 한 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세키네 노부오 론'도 여기에 실려 있다. 1971년 田畑書店에서 처음 나왔지만, 2000년 美術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가, 2016년에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みすず書房에서 재출간되었다. 번역본은 김혜신 씨가 번역하였다.

  그 밖에, 화백에 대하여 많은 글을 쓴 바 있는 김미경 교수가 낸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공간사, 2006), 독일 미술사가인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가 화백의 예술세계를, 현대미술의 국제적 맥락에서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우환, 타자와의 만남』(학고재, 200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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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대우고전총서 33
제러미 벤담 지음, 강준호 옮김 / 아카넷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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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이 책이 거의 읽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가 서문에 쓴 것처럼, 공리주의는 그것이 사상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에 비하여,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서양 사상 전반에 대한 탐구가 고르게 진척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20세기 후반 들어 서양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공리주의 자체에 대한 본격적 음미는 생략된 채 그에 대한 비판론만 유행처럼 잔뜩 소개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 쪽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정작 공리주의의 본류인 벤담은 갖은 억측과 편견 속에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했다. 흔히 벤담과 밀을 양적/질적 공리주의자로 구분하는 교과서적 도식이 통용되고, 그리하여 벤담은 쳐다볼 가치도 없는 극단적이고 저급한 공리주의자로 치부되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벤담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낸 결론인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명분'과 '의리'가 논쟁의 구도를 항상-이미 왜곡하여 그 어떤 합리적 대화와 타협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국내의 논의 지형에서, 쉬운 결론을 내지 않고 개념들 간의 이동(異同)을 엄밀하게 구별하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제를 수학적 혹은 과학적 태도로 차근차근 추려나가는 벤담의 방법론과, 그 근저에 깔린 영국적 경험주의는, '균형잡기' 차원에서라도 적지 않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쉬이 예상하기 어렵다. 윤리철학적 인상을 강하게 주는 책의 제목과 달리, 『서론』은 오히려 '형법총론' 교과서에 가깝다('행위론'에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벤담의 구상은 도덕과 법 사이의 경계, 나아가 다른 법들, 특히 민사법과 형법 사이의 경계선을 찾는(긋는) '입법 과학(legislative science)'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서론』에는 마지막 장인 17장에 가서야 비로소 작은 단초만이, 그것도 주로 각주에나 제시되어 있고, 벤담 스스로도 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을 끝내 얻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영미법 이론의 발달·전개 양상을 바탕으로, 그 결론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감히 단언컨대, 벤담이 그리고자 했던 큰 그림의 일차적 목표는, 그보다 조금 앞선 체사레 베카리아와 마찬가지로, (도덕과 민사법으로도 충분하여) '불가피하지 않고 불필요한 형벌의 최소화'였을 것이다. 형벌도, 벤담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고통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므로, 필요 최소한도의 비례적 수준을 넘는 모든 형벌은, 악(惡)이고 잉여이다. 벤담은 이에 대한 합의를 설득력 있게 이끌어 내기 위하여, 아주 사소하고 지엽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부터 차곡차곡 끈덕지게 쌓아올리고 있다. 벤담의 저작 전체를 들여다 보지는 못하였지만('벤담 전집'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파놉티콘』에 관한 리뷰 http://blog.aladin.co.kr/SilentPaul/9084684 참조), 논의의 전개 속도와 벤담이 서문에 밝힌 야심찬 출판 계획[민사법-사적 분배법, 형법, 절차법(민·형사소송법의 통합), (공용수용과) 보상, 헌법-공적 분배법, 국회법과 정당법(헌법 문제의 절차법), 국제법, 재정학(재정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정치경제학(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입법 원칙), 법학의 용어와 방법에 대한 일반이론 등을 망라하고 있다]에 비추어 볼 때, 이 적지 않은 분량의 책에 단지 『서론 Introduction』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했을 만큼(이 책은 벤담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보우링 전집의 첫 권에 놓인다), 그리고 고작 '형법전' 입안의 기초가 될 만한 내용만을 다루는 데 그쳤을 만큼, 벤담의 계획은 방대한 것이었다(일생을 '파놉티콘' 구상과 실행에 바치느라 그 계획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양극화'와 '위험사회화'로 인한 '배타주의'의 영향으로, 함무라비 법전 시절에 이미 극복한 과격하고 원시적인 '응보주의'가 다시금 가장 유력한 형벌이론이 되어가고 있다.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과 더불어 『서론』은,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벤담은 오해의 근원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명제만으로 노예제와 사형제 철폐, 여성의 투표권과 이혼청구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같은 진보적인 개혁안들을 이미 19세기 초에 도출해 냈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벤담은 결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자의 인권이 얼마든지 무시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인 결론을 낸 적이 없었다(시대의 한계 탓인지, 벤담의 위법행위 목록은 여전히 상당히 도덕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벤담은 오히려, 언뜻 내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책이, 어떻게 나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숙고하게 하고, 설득하려 했다. 벤담의 논증 방식은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합리적이고 강력한 대목이 많다. 벤담주의는 어쩌면, 전 지구적 우경화와 인민주의의 파고를 헤쳐 나가는 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은 더 많이 번역되고, 더 많이 읽혀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벤담은 철학자이기 이전에 변호사이고 법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용어는 기본적으로 법률용어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서들은 모두 철학 전공자들에 의하여 번역되었다. 그러다 보니, 법학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용어 구사가 간간이 눈에 띈다. 벤담의 진의가 보다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더 많은 법률 전문가들이 벤담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업을 소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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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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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담은 자신의 이상을 실험하기 위하여, 프랑스 혁명으로 개방된 개혁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영국의 관습적 보수주의와는 대조되는 '거대한 전환'에 매혹되었다. 벤담은 다양한 주제에 관한 논평과 조언을 담아, 프랑스 제헌의회에 많은 편지를 보냈다. 이 책이 번역한 『파놉티콘』 프랑스어 판도, 벤담이 영어로 쓴 파놉티콘에 관한 여러 글들의 핵심을, 1791년에 친구인 에티엔 뒤몽 Pierre Étienne Louis Dumont과 함께 축약·번역하여 프랑스 국민의회에 보낸 것이다. 그와 같은 열정적 노력에 대한 응답으로, 벤담은 1792년 프랑스 명예시민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벤담은 이내 프랑스혁명에 대한 지지를 거두게 된다. 그는 '자연적 정의'라는 것의 논리적 토대가 약하다고 보았다. 그는 '공리의 원칙' 이외의 다른 어떤 원칙들, 예컨대 금욕주의, 공감(반감)의 원칙과 같은 것들은(벤담에 따를 때, '정의'는 공감원칙의 변형에 불과하다), 자칫 '지배자 한 사람의 최대 행복, 혹은 지배계급의 최대 행복'에 복무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파놉티콘 이야기로 돌아와서, 벤담은 감옥을 사회 개혁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1786년부터 1813년까지, 강박적이라 할 정도로 파놉티콘의 구상과 실현에 집착하였다. 아버지의 유산까지 모조리 쏟아 부었지만, 결국 사업은 실패하고 그는 파산하였다. 영국 정부까지 파놉티콘보다는 완벽한 개인별 분할 수용을 위주로 하는 미국 펜실베니아 모델을 채택하기에 이르고, 벤담도 파놉티콘에서 손을 떼게 된다. "나는 더 이상 파놉티콘에 관한 서류에 눈을 돌리기가 싫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숨겨놓은 서랍을 여는 것과 같다."

 

  생전에 저술을 정리하여 출판하는 데까지 신경쓰지 못했던 벤담은 영국 정치가이자 가까운 동료였던 John Bowring(1792~1872)에게 자신이 쓴 원고의 편집과 출판을 일임했다. 보우링이 편집한 『The Works of Jeremy Bentham』(Edinburgh: Tait, 1843)은 11권짜리이다. 위 책 148쪽에는 13권짜리라고 써있으나, 의문이다. 위 전집은 http://oll.libertyfund.org/titles/bentham-works-of-jeremy-bentham-11-vols에서 원문 전체를 편리하게 볼 수 있다. 일부는 구글북스에도 전체 공개되어 있다. 그 중 4권에 「파놉티콘 혹은 감시의 집 Panopticon or the Inspection-House」(1787, 단행본 링크는 https://books.google.co.kr/books?id=NM4TAAAAQAAJ&dq=inauthor%3A%22Jeremy%20Bentham%22&pg=PP3#v=onepage&q&f=false. 뒤에 설계, 건축 설비와 기술 등에 관한 대단히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두 편의 후속편postscript이 실려 있다), 「Panopticon versus New South Wales: or the Panopticon Penitentiary System and the Penal Colonization System, Compared」(1802)가 수록되어 있고, 8권에 파놉티콘의 '학교' 판 확장모델이라 할 수 있는 '크레스토마시아'에 관한 글 「Chrestomathia: Being a collection of papers, explanatory of the design of an institution proposed to be set on foot under the name of the Chrestomathic day school, or Chrestomathic school, for the extension of the new system of instruction to the higher branches of learning, for the use of the middling and higher ranks in life」(1816)가 수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벤담의 저작 다수를 누락한 Bowring 판 전집에 대한 대안으로(보우링의 아마추어적 편집 실력에 대해서는 악평이 무성하다), University College London 'Bentham Project'에 기반하여 J. H. Burns(1961-79), J. R. Dinwiddy(1977-83), F. Rosen(1983-94), F. Rosen and P. Schofield(1995-2003), P. Schofield(2003-)가 편집자로 참여하고 있는 『The Collected Works of Jeremy Bentham』(London: Athlone Press/Oxford: Clarendon Press, 1968-)를 참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설명은 다음 위키피디아 링크도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The_Collected_Works_of_Jeremy_Bentham). 1968년 1권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4권이 출간되었고, 총 80권 정도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간 낭비를 혐오하였던 벤담답게, 규모가 엄청나다. 벤담은 20대 후반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7만여 장, 하루 평균 15쪽 분량의 글을 썼다. 이들은 University College London 도서관에 상자 채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애초에 축약본을 번역한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간접적으로 다룬 정도를 넘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물론 양자의 초점은 다르다. 벤담이 파놉티콘을 사회개혁의 도구로 삼고자 하였다면, 푸코는 파놉티콘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훈육 이면에 깔린 권력 기제를 폭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벤담의 선의(善意)가 너무 자주, 쉽게 폄훼되었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기독교와 칸트의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여기에 유교주의가 더하여져서. 국내에는 벤담의 방대한 작업 중에서, 위 책과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 관한 서설』 정도가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벤담의 공리주의(현실주의)와 곧잘 대비되는 칸트의 도덕률이 법제도 설계에까지 전면적으로 적용·응용될 수 있을까. 세상에는 훨씬 더 저열한 도구주의가 판치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솔직하였던,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서로와 인류에 대한 '신의(信義)'보다는, 시스템과 제도, 강렬한 이기심에 터 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공공선의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던, 벤담의 개혁에 대한 이상과 열망을, 우리는 편견을 걷어내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덧1. 실학자들과 벤담을 비교하여 볼 필요성을 느낀다.

덧2. 책 뒤에 실린 '추가 독서 목록'이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되어 국내도서에 한하여 이 곳에도 소개한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살과 돌』은 안타깝게도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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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6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열심히 공부한 노력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글을 여러 편 본 적 있지만, 벤담에 관한 글은 정말 보기 어렵거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묵향 2017-01-26 17:48   좋아요 1 | URL
아직 다 읽진 못하였지만,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 관한 서설』도,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과 더불어 매우 유익합니다. 단, 한인섭 교수님의 『범죄와 형벌』 번역은 다소간 오역이 있고, 문장도 매끄럽지 않아 읽기가 힘이 듭니다. 정말 위대한 저작인데, 풍부한 해설을 덧붙이고 가독성을 높인 번역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yrus님 최근 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블루레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감독, 샤를리즈 테론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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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갈 수밖에 없는 미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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