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

대학에서는 후설을 중심으로 한 신칸트학파가 전체 학계를 주도한 편이었는데, 하이데거는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박사학위 논문 통과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교수직을 얻는 것조차 불투명해질 우려가 있었다.따라서 하이데거는 자신의 생각을 대단히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이데거의『존재와 시간』만큼 난해한 책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그런데 그 이유가 반드시 학문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저작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정치적 요인과 밀접히 관련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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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출간에 관여할 일이 있어서 사보게 되었는데, 역시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지식을 그때그때 찾아보는 것보다 일관성을 지키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어쩌다 책의 초판이라 할 수 있는 2008년 매뉴얼도 예전에 사서 가지고 있는데, 2020년 매뉴얼 앞에 붙은 2020년부터 2015년까지, 또 2008년 머리말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장에서는 필수품이 된 지 오래되었고, 학술지 편집자 중에서도 이 매뉴얼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과학자를 포함하여 결국은 글로 먹고사는 분들 중에 매뉴얼이 나올 때마다 사는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매년 머리말들에서 주의를 끄는 대목을 나열해 본다.


  먼저 2020년이다.


[...] 일본의 저명한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에 의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명백한 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기 때문에 사료에 나타나지 않기 마련>이고, 이런 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수께끼로 남게 되는 것이 역사학의 주된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거창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어난 일은 동일합니다. 지금 당연한 지식은 조만간 당연하지 않게 되고, 너무 당연해서 적을 필요조차 없던 것은 더 알기 어려운 것으로 남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해마다 기존 매뉴얼을 새로운 눈으로 검증하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에 담긴 지식과 노하우는 역사로 남겠지만, 다른 출판사 등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 중에 의견이 갈리나 어느 쪽도 오답은 아닌 경우가 있다고 할 때, 기록되지 않은 쪽은 결국 사장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열린책들'의 방식이 점차 표준이 되고 나머지는 출판 생태계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인데, 한 권 책에 몰입해 있는 동안 머릿속을 떠다니는 온갖 창의적인 계기들이 빠른 시간 내에 활자로 박제되지 않으면 어느새 휘발되어 버리고 말아 아쉬울 때가 많다. 이렇게 블로그에라도 써두고 나면 나중에 '내가 이런 생각도 했구나' 새삼 낯설게라도 상기할 수 있게 되는데 말이다. 논어 위정편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이라는 구절이 있지만, 아무튼 요즘은 쓰지는 않고 읽기만 하면 망각(忘却)하게 되고 생각을 체계적으로 진전시키지 못하여 위태롭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책을 하루에 일고여덟 권씩 다짜고자로 읽어 치우던 시절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서 요즘은 가급적 짧게라도 뭔가를 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적어야 산다('적자생존'이라고 표현하는 분도 있던데, 아무튼...). 요즘 자기 방에도 서재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딸이 내가 죽은 뒤에도 여기에 남은 디지털 유산을 읽으며 웃음지을 수 있기를... [요즘 싸이월드를 두고 말이 많은데(다행히 그곳에 썼던 책 리뷰는 이 곳 서재를 열면서 대체로 옮겼다), 딸과 함께 책을 논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이 곳이 생기 넘칠 수 있을까. balmas 선생님이나 로쟈 선생님 등의 블로그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라딘 서재 서비스가 개시된 것이 2003년 말 정도부터였던 것 같은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라 문득 걱정도 된다.]


  다음으로 2019년. 2018년 12월 국립 국어원의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해설 개정판』을 반영했다고 한다.


[...] 이번에 표준 계약서 양식이 바뀐 것은 특기할 만합니다. 문체부가 공지한 새로운 계약서는 <갑>, <을>이라는 말 대신 <저작 재산권자>, <출판권자>를 사용할 것과, 주민등록번호 대신 생년월일만을 기재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표상하는 대표 명칭이 된 말을 퇴출시킴과 동시에 계약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언어생활이든, 편집이든, 출판이든 모두가 사회의 변화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매년 매뉴얼에서 <해마다 부족하다가 느껴지는 점들을 개정, 보충한다>고 쓰고 있습니다만, 아마 그 말은 매뉴얼이 틀리면 안 된다, 완벽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족한 무엇>은 편집자의 책상을 넘어선 차원에서도 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개인 정보'를 띄어 쓴 것과, 문화체육관광부를 '문체부'로 쓴 것에 눈길이 갔다.


  참고로,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과 같은 명칭 변천을 거쳤다(공보부 -> 문화공보부 + 체육부 -> 문화부 + 체육청소년부 -> 문화체육부 -> 문화관광부 -> 문화체육관광부).

  1961. 6. 22. 국무원 사무처 공보국과 방송관리국이 통합한 '공보부' 설치,

  1968. 7. 24. '문화공보부'로 개편(문교부로부터 출판·저작권 기타 문화·예술에 관한 사무 이관받음),

  1982. 3. 20. '체육부' 설치(문교부로부터 체육에 관한 사무 이관받음... 세월이 흐르면서 업무가 전문화, 세분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때까지 문교부가 얼마나 넓은 범위를 커버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1990. 1. 3. 문화공보부를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

  1990. 12. 23. 체육부를 '체육청소년부'로 개편

  1993. 3. 6.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통합하여 '문화체육부' 설치

  1998. 2. 28. 문화체육부를 '문화관광부'로 개편

  2008. 2. 29. 문화관광부와 국정홍보처를 통합하여 '문화체육관광부'를 설치

  그런데 내 나이 탓인지, '문체부'라고 하면 왠지 1998년부터 2008년 사이에 있었던 '문광부' 이전에(이게 왠지 더 익숙하다), 1993년부터 1998년 사이에 존재했던 '문화체육부' 같은 느낌이 든다. 어쨌든 문화체육관광부도 공식 누리집에 스스로를 '문체부'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다. https://www.mcst.go.kr/kor/main.jsp


  2018년이다. 2017년에는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1988년 고시된 이후 처음 개정되었는데, 이를 반영했다.


  열린책들은 독자적인 러시아어 표기 규정이 있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지만, 1986년 출판사 출범 시부터 그것을 의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된소리와 구개음화의 사용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러시아적> 표기(모스끄바/블라지미르)는 열린책들의 창안이나 개성이었다기보다는 당시 국내 노문학계의 통용 표기, 즉 <업계 상식>에 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상황은 관계 기관의 외래어 표기법이 차례로 고시되면서 변화하게 되었고, 노문학계의 통용 표기를 계속 존중해 온 열린책들의 방침은 이제 다소 희귀하고 고독한 것으로 비치게 되었습니다.

  [...] 지금 간단하게 통용 표기라고 말하고 있는 이 러시아어 표기 방식은 따져 보면 1950년대 이전 출판물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여러 세대의 한국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러시아 문학에 대한 기억과 불가분으로 얽혀 있습니다. 본래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면서 시작한 출판사에서 이것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은 번역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저희는 봅니다.

[...] 전공자들의 자문을 거치기는 했지만, 표기법 개정을 준비하며 꼬박 1년 동안 편집부원들은 러시아어를 공부했습니다. 그 정도 공부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저희도 알고 있지만, 남들에게 참고가 되는 책을 만드는 데 본인들이 어떤 내용인지는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열린책들의 러시아어 표기에 관하여는 독자들 사이에도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열린책들 자신의 입장을 고스란히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머리말이라 의미가 깊다.


  다음으로 2017년이다. 개인적으로는 '매뉴얼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열린책들 편집부의 자각 내지 자의식을 느낄 수 있는 머리말이어서 자못 감동을 느꼈다(난 왜 이런 게 좋지ㅠ;;;). 발췌문에서는 뺐지만, 일간지도 겹낫표(『』)로 표시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특유의 문장 부호인데, 자판으로 치기가 번거로워서 그렇지, 시각적으로는 참 편리한 부호가 아닐 수 없다. 국어 논문의 내용을 영어로, 영어 논문을 우리말로 옮길 때 문장 부호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도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난제이다(예컨대, 영어에서는 세미콜론, 콜론, 대시, 볼드체와 이탤릭, 또 대문자 표기 등이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때로는 단지 부호 정도가 아니라 문장 구분을 바꾸는 등 내용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 앞의 8판(2015년판)에서 [...] 그래서 앞으로는 제목에 연도를 표시하지 않고 몇 번째 판이라는 것만 알리겠다고 썼습니다.

  이 결정에는 현실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었습니다. 개정의 폭은 해마다 달라서, 어떤 해에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굳이 새로운 판을 만들어 출시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실용적인 매뉴얼이나 참고서들이 매년 연도를 제목에 달고 출간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 결과는 8판이라는 것이 몇 년도에 나온 판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번거롭게 찾아보거나 문의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책 제목에 매년 새로운 연도를 표시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든 간에, 그것이 최신판이냐 아니냐를 직관적으로 알려 주는 효과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연도가 삭제된 매뉴얼은 초판부터 매뉴얼을 꾸준히 사 모았던 독자들로부터는 불안한 징후(열린책들이 매뉴얼 간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로 읽혔습니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출판업계 종사자들 역시 이런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분들 ― 우리도 그의 일부이지만 ― 에게는 출판과 관련된 매뉴얼이 매년 새로운 연도가 찍혀 나온다는 것에,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이것을 자기 책상에 비치해 두는 것에 적지 않은 심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매뉴얼은 올해부터 다시 제목에 연도를 표시하여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 새로운 판을 내기 위해 열린책들 편집부는 이번에도 3주간에 걸쳐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매년 세미나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편집 매뉴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중 두 가지 예만 들어 봅니다. 하나는 위키피디아에 대한 것입니다. [...]

  두 번째는 매뉴얼 각 규정 밑에 붙은 보기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 보기들은 그 규정을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 선택된 것일 뿐 어떤 대표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편집 현장에서 이 보기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보기로 언급되지 않았을 뿐인 다른 멀쩡한 말은 억제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매우 놀랐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예는 예일 뿐입니다. 〈그 말을 써야 한다〉는 의도였다면 보기에 넣지 않고 규정으로 첨가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예는 매뉴얼이라는 형식이 서 있는 불안정한 지반을 보여 줍니다. 즉 매뉴얼은 사용자가 다른 수고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뉴얼이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사용자가 자기 판단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매뉴얼 초판 머리말에는 〈상황에 맞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당부의 말이 실려 있었나 봅니다. 매뉴얼이 상황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멈추는 부분, 그 공백으로 남는 영역을 최소화하는 게 매뉴얼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개정 작업을 통해 모든 것이 분명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말 자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8판'이라는 제목을 앞세워 나온, 논란의 2015년판이다(위 2017년 매뉴얼 머리말 참조, 2016년에 매뉴얼이 나오지 않은 것도 그와와 관련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거의 고칠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을 게다). 한글 맞춤법 중 <문장 부호 규정>이 1988년 고시된 이래 처음으로 전면 개정되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매뉴얼 자체의 역사라는 차원에서 '제목에 관한 변' 부분만 발췌한다.


  수정 작업과 함께 앞으로의 매뉴얼 발행 계획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고 다소간 변화를 가하기로 했습니다. 신판 매뉴얼의 주요한 변화는 예년과 달리 <제8판>으로 발행되었다는 점입니다. 2008년 첫 매뉴얼을 선보인 후 여덟 번째 개정판이라는 뜻입니다. 그간 열린책들은 구성과 내용을 보강하는 한편으로, 어문 규정 등의 변화를 그때그때 반영해 마치 헤진 곳을 기우듯 개정판을 내왔습니다. 어문 규정 등이 새롭게 고시되어 수정할 내용이 특별히 많은 해도 있었지만, 때로는 거의 고칠 것이 없는 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최신의 정보를 제공해 건강한 출판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각오로 개정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세상에 내보낸 매뉴얼이 이제 3만 부 가까이 됩니다. 마땅한 지침서가 없던 출판계에 그리고 독자들께 어문 규정의 기본을 좀 더 알기 쉽게 보급하고, 열린책들의 원칙을 하나의 사례로서 제시한다는 처음의 목표가 어느 정도 결실을 냈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제는 매뉴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보다 주력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취지로 그간 개정 연도를 표기하던 방식을 개정 판쇄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매뉴얼 머리말에는 2014년 말 시행된 개정 「출판문화 산업 진흥법」(도서 정가제 개정 법률)에 관한 언급도 있다. 불현듯 당시의 충격과 공포가 떠오른다. 인생에서 책 구입을 둘러싼 여러 좋은 기억, 안 좋은 기억이 있지만, 도서 정가제 구입을 앞두고, 곧 할인 폭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책을 왕창 구입했던 날이 있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바로 2014년 11월 20일로, 책 105권을 사는 데 1,019,480원을 썼다. 주로 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나로서는 '새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날이 아닌가 싶고, 하루에 쓴 금액으로도 손에 꼽히는 날 같다. 저 시절 마침 직장에서 책을 같이 읽던 동료가 있었는데, '야, 큰일났어, 망했어'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출혈 구매에 적잖이 악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하고 회고한다(그 때 산 책들은 당연히! 아직 다 읽지 못했다...).

  2019년 6월 27일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는 "20주년 당신의 기록"을 보면, 내가 2005년부터 알라딘에 쓴 금액이 18,939,560원이었다는데(놀랍게도 2005. 1. 1. 알라딘에서 처음 산 책이 데리다, 『법의 힘』이다. 다행히 이건 읽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주로 낙성대 '흙서점', 신림동 '책상은 책상이다' 등 헌책방에 발품을 팔아 책을 샀지, 온라인 구매는 잘 하지 않았다), 사실상 돈을 제대로 벌기 시작한 2011년 4월 전까지 2005년부터 6년 동안 알라딘에서 쓴 금액이 고작 10권, 106,510원이고, 책 구입처를 알라딘으로 '거의 일원화'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지난 뒤의 일이니, 결국은 2011년 이후로 8년 동안 매월 20만 원 이상씩은 알라딘에 갖다 바친(?) 셈이 된다... 20주년에는 좀 바빴는지 월 평균 19권, 191,421원이었고, 19주년에는 월 평균 27권, 263,155원, 18주년에는 월 평균 34권 353,840원, 17주년에는 월 평균 22권, 205,985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렇게 비난받을 정도로 많이 산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아이 책에 드는 비용이 크기도 하고[전집 구입에 대한 부정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린이 책 시장은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책도 엄청나게 많고, 전집 구입 방식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책도 많다. 요즘 아이가 말 그대로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방하고 있는 "추피T'choupi의 생활이야기" 시리즈도 전집으로만 판다. 며칠 전 어린이 책 중고서점 계의 기린아(?), '개똥이네' 오프라인 매장에 갔다가 아이도 나도 별세계를 경험하였다.], 집에 책을 놓을 자리가 없기도 하고, 작년에는 아마존에 주로 조공하였기 때문에 통계가 현저히 완화(?)될 것 같다.




  2014년부터 2009년까지 매뉴얼의 머리말은 생략한다. 이렇게 붙여놓고 나니 예쁘다.




  끝으로, 역사의 시작이 된 대망의 2008년 매뉴얼이다.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은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술은 때로 모험과 도전일 수 있지만, 편집은 언제나 1백 퍼센트 완성도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 아무쪼록 이 책이 좋은 책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신입 편집자들이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문 규정의 얼개를 요령 있게 전달해 주는 교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국어 어문 규정집을 대체할 것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닙니다. 한 출판사가 나름대로 채용한 편집 원칙과 방식을 보여 줄 뿐이지요. 독자나 편집자들은 이 책의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다른 것은 다른 대로 상황에 맞게 참고하시길 바립니다.

  처음부터 책으로 묶어 낼 생각이 없었으므로, 내용이 겹친다든가 뜻하지 않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잡아 주시길 기대합니다.



덧. 2021년 매뉴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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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 옳고 그름의 발견, 6판
루이스 포이만.제임스 피저 지음, 박찬구 외 옮김 / 울력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막 읽기 시작해서 아주 조금밖에 안 읽었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책이 소름 돋을 정도로 좋다... 8판을 번역한 개정판이 작년에 또 나왔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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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 나온 서술이 뒤에서 중복되는 등 (상당히 정제된?) 1권에 비하여는 다소 허둥지둥 나왔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들이 있다.

  예컨대, 한스 벨쩰(Hans Welzel) 교수가 1975년 독일에 유학 나와 벨쩰 교수님을 예방한 최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저서 『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Naturrecht und materielle Gerechtigkeit』(1951)를 읽어 보았느냐고 물으셨고, (최 교수님은 그렇다고 답했으며) 참 다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취지의 신변잡기적 일화가 65-66쪽, 68쪽 굳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 심지어 책 말미 '사항색인'의 『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항목에도, 위 65, 68쪽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3권은 비교적 최근 사상가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그처럼 교수님 본인과 교류한 개인적 일화가 많이 나온다. 재미있게도, 에릭 볼프(Erik Wolf) 교수께서 "여행 안 하고, 잡문 안 쓰고, 사진 안 찍는" 세 가지 괴벽을 가지셨다는 서술에 대한 근거를, 각주에 "1976년 3월 31일 필자의 방문 시 교수의 증언"이라고 달아두셨다(책 21쪽). 그러니까 저 날 에릭 볼프 교수를 직접 만나셨는데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국에서 법제사 연구의 빈곤"(2020. 5. 11.)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708855 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위대한 법사상가들』 시리즈에서 '학문적 B급 감성'이 느껴진다고 쓴 적이 있는데, 3권이 갖는 차별성이라면, 그러한 감성(?)이 주관적, 개인적 체험으로까지 내려왔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적으로 더 이전 시대 사상가들을 다룬 1권에서는 야사野史라 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 불쑥불쑥 나와 허를 찌른다.)


  각 사상가 소개 뒤에 붙은, 중요 문헌을 발췌 번역한 "자료" 부분은... 아마도 직접 번역하신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당신 특유의 문체로 인하여 좀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자료" 부분이 아니라 1권의 본문에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루돌프 슈타믈러(Rudolf Stammler)가 제시한 "정법(正法 richitiges Recht)의 근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셨다(1권 382쪽).


  Die Grundsätze des Achtens (존중의 원리)

  1. Es darf nicht der Inhalt eines Wollens der Willkür eines anderen anheimfallen.

    어떤 의욕의 내용은 타인의 자의에 맡겨질 수는 없다.

  2. Jede rechtliche Anforderung darf nur in dem Sinne bestehen, daß der Verpflichtete sich noch der Nächste sein kann.

    모든 법률상의 요구권은 그것에 관한 의무자가 항상 동포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주장될 여지가 있다.

  Die Grundsätze des Teilnehmens (참여의 원리)

  3. Es darf nicht ein rechtlich Verbundener nach Willkür von der Gemeinschaft ausgeschlossen sein.

    법적으로 결합된 자는 자의에 따라 공동체에서부터 배제될 수 없다.

  4.  Jede rechtlich verliehene Verfügungsmacht darf nur in dem Sinne ausschließend sein, daß der Ausgeschlossene sich noch der Nächste sein kann.

    법적으로 부여된 모든 처분권은 그것에서부터 제외된 자가 항상 동포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배타적일 수 있다.


  오세혁, 『법철학사』(2004), 280쪽은 어떻게 번역하였는지 보자(아래 책 이미지는 제2판. 정말 다양한 법철학자들을 이만큼 모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셨겠지만, 아래 번역 문장에서 보듯 허술한 대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제1판 335쪽에서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생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야스퍼스, 종교적 실존주의자 마르셀, 존재와 무의 문제를 천착한 하이데거, 실존의 철학자 사르트르 등을 꼽을 수 있겠다."와 같은 대목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서술이다).


  1. 인간의 의욕은 타인의 자의적인 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2. 모든 법적 요구는, 의무부담자가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남을 수 있도록(자존적인 인격을 보유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3. 법적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공동체로부터 자의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

  4. 법이 수여한 통제력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자존적인 인격을 보유하는) 한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위 번역도 독일어 원문에 반드시 충실한 번역은 아니다. 이렇게 번역함이 어땠을까.


  1. 개인이 의욕하는 바가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2. 모든 법률상 청구권은 그 의무자가 [인용자 주: 그 청구와 의무이행 이후에도] (청구권자의)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

  3. 법적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공동체로부터 자의적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4. 법이 부여한 모든 처분권은 그로부터 배제된 자가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 한에서만 배타적일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사실은 상당히 재미있고 꽤 유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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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rebuch 2020-06-16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묵향님!
˝존중의 원리˝ 2번 독일어 원문, 빠진 부분이 있어 보완했습니다. 살펴보세요.
Jede rechtliche Anforderung darf nur in dem Sinne bestehen, daß der Verpflichtete sich noch der Nächste sein kann.

묵향 2020-06-16 13:37   좋아요 0 | URL
livrebuch 님!! 뒷부분이 빠져 있었네요~ 알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전문가께서 댓글 남겨주실 수 있게 되었으니, 운 좋은 누락이었네요^^
 
 전출처 : 묵향 > [마이리뷰]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1년 전에 읽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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