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나온 서술이 뒤에서 중복되는 등 (상당히 정제된?) 1권에 비하여는 다소 허둥지둥 나왔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들이 있다.
예컨대, 한스 벨쩰(Hans Welzel) 교수가 1975년 독일에 유학 나와 벨쩰 교수님을 예방한 최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저서 『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Naturrecht und materielle Gerechtigkeit』(1951)를 읽어 보았느냐고 물으셨고, (최 교수님은 그렇다고 답했으며) 참 다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취지의 신변잡기적 일화가 65-66쪽, 68쪽 굳이 두 번에 걸쳐 나온다. 심지어 책 말미 '사항색인'의 『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항목에도, 위 65, 68쪽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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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비교적 최근 사상가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그처럼 교수님 본인과 교류한 개인적 일화가 많이 나온다. 재미있게도, 에릭 볼프(Erik Wolf) 교수께서 "여행 안 하고, 잡문 안 쓰고, 사진 안 찍는" 세 가지 괴벽을 가지셨다는 서술에 대한 근거를, 각주에 "1976년 3월 31일 필자의 방문 시 교수의 증언"이라고 달아두셨다(책 21쪽). 그러니까 저 날 에릭 볼프 교수를 직접 만나셨는데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국에서 법제사 연구의 빈곤"(2020. 5. 11.)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1708855 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위대한 법사상가들』 시리즈에서 '학문적 B급 감성'이 느껴진다고 쓴 적이 있는데, 3권이 갖는 차별성이라면, 그러한 감성(?)이 주관적, 개인적 체험으로까지 내려왔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적으로 더 이전 시대 사상가들을 다룬 1권에서는 야사野史라 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 불쑥불쑥 나와 허를 찌른다.)
각 사상가 소개 뒤에 붙은, 중요 문헌을 발췌 번역한 "자료" 부분은... 아마도 직접 번역하신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당신 특유의 문체로 인하여 좀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자료" 부분이 아니라 1권의 본문에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루돌프 슈타믈러(Rudolf Stammler)가 제시한 "정법(正法 richitiges Recht)의 근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셨다(1권 382쪽).
Die Grundsätze des Achtens (존중의 원리)
1. Es darf nicht der Inhalt eines Wollens der Willkür eines anderen anheimfallen.
어떤 의욕의 내용은 타인의 자의에 맡겨질 수는 없다.
2. Jede rechtliche Anforderung darf nur in dem Sinne bestehen, daß der Verpflichtete sich noch der Nächste sein kann.
모든 법률상의 요구권은 그것에 관한 의무자가 항상 동포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주장될 여지가 있다.
Die Grundsätze des Teilnehmens (참여의 원리)
3. Es darf nicht ein rechtlich Verbundener nach Willkür von der Gemeinschaft ausgeschlossen sein.
법적으로 결합된 자는 자의에 따라 공동체에서부터 배제될 수 없다.
4. Jede rechtlich verliehene Verfügungsmacht darf nur in dem Sinne ausschließend sein,
daß der Ausgeschlossene sich noch der Nächste sein kann.
법적으로 부여된 모든 처분권은 그것에서부터 제외된 자가 항상 동포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배타적일 수 있다.
오세혁, 『법철학사』(2004), 280쪽은 어떻게 번역하였는지 보자(아래 책 이미지는 제2판. 정말 다양한 법철학자들을 이만큼 모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셨겠지만, 아래 번역 문장에서 보듯 허술한 대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제1판 335쪽에서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생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야스퍼스, 종교적 실존주의자 마르셀, 존재와 무의 문제를 천착한 하이데거, 실존의 철학자 사르트르 등을 꼽을 수 있겠다."와 같은 대목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서술이다).
1. 인간의 의욕은 타인의 자의적인 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2. 모든 법적 요구는, 의무부담자가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남을 수 있도록(자존적인 인격을 보유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3. 법적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공동체로부터 자의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
4. 법이 수여한 통제력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그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자존적인 인격을 보유하는) 한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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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위 번역도 독일어 원문에 반드시 충실한 번역은 아니다. 이렇게 번역함이 어땠을까.
1. 개인이 의욕하는 바가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2. 모든 법률상 청구권은 그 의무자가 [인용자 주: 그 청구와 의무이행 이후에도] (청구권자의)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
3. 법적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공동체로부터 자의적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4. 법이 부여한 모든 처분권은 그로부터 배제된 자가 이웃으로 남을 수 있는 한에서만 배타적일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사실은 상당히 재미있고 꽤 유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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