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2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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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비록 노래를 잘한다거나 잘 다루는 악기가 있다거나 신기해보이는 절대음감의 소유자도 아니지만 그래도 음악을 좋아한다.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가 온 신경을 온통 꽉 채워 때로는 두근거리게 때로는 꿈결같게 느끼는 것이 좋다. 지금도 나는 잘때조차 흘러가는 음악소리가 있어야 할만큼 가까이 하고있다.

  음악과 관련된 영화들은 찾아서 보곤 했지만 책은 그렇지 못한게 사실이다. 귀가 아닌 눈을 통해야 한다는 것때문일까. 음악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짧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은 음악은 단박에 반하게 할 수 있는 마력이 있는데 그것을 아무래도 책으로는 느낄수가 없으니까 책을 잡으면 무언가를 얻어 알게되는것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할것같다. 작년부터야 겨우겨우 그런 의식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읽고 싶었던 책이 이책,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이었다. 도무지 기회가 닿지 않아 못읽었는데 2권이 내 손에 쥐어져 무척 기뻤다. 

  새삼 말하기도 민망한 음악가인 금난새씨가 쓴 책이어서 믿음이 갔다. 생각보다 책 자체도 좋았고 CD도 함께 있어 귀가 심심하지 않겠구나 싶어 기뻤다. 책의 내용은 다른책에도 많이 있는 형식이다. 클래식곡을 소개하는데 있어 작가를 함께 언급하는것. 위인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루하다거나 어렵지 않아 읽는데 무리없었고 아는 곡이 나오면 너무도 반가웠다. 

  특히 생각나는 반가운 곡이라면, 내겐 동물의 사육제이다. 아주 어릴적 초등학교에 다닐때, 참고서중에 부록으로 교과서에 실린 클래식곡을 들을 수 있게 테잎을 포함시킨것이 있었다. 그 테잎을 처음엔 교과서에 나오니까 혹 시험에 나올까봐 들었는데 듣다보니 묘하게도 들을수록 좋았다. 그렇게 들은 짧은 곡들중에 동물의 사육제도 있었다. 물론 완전한 한 곡이 들어가있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좋아 듣고 또 듣고 하곤 했는데 비제와 생상의 부분에 가니 언급되는 몇몇 작품이 어릴때 들은적이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아는곡 나온다고 이리 기분이 좋아지다니 나도 참 단순하다. 추천음악에 쓰인대로 동물의 사육제는 백조가 참 유명하다. 고등학교 다닐때 고마운 친구에게 녹음테잎을 준적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몇개 녹음하고 간단히 하고싶었던 말을 하고 MR이 있는 곡으로 직접 노래까지 한것을 모두 담은 테잎이었는데 말하는 부분의 배경음악을 동물의 사육제중 백조부분으로 사용했었다. 나름대로 추억이 깃든 음악인 것이다. 당연히 동물의 사육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런곡을 작곡한 사람이 싫어했다니 머리로는 이해할수 있을것도 같지만 마음으론 이해할 수 없다.

  클래식하면 자연스럽게 오페라도 언급이 된다. 그렇다 보면 또한 자연스럽게 관련된 또다른 부분이 떠오르게 된다. 전혀 듣지 못했던 생소한 부분이 더욱 많았지만 그럼에도 기쁜마음을 가지고 한장씩 넘겨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랜시간 잊고있던 추억을 클래식 여행을 통해 다시 일깨운 시간이었다. 다음달에 있는 내 생일에, 스스로에게 동물의 사육제 CD를 선물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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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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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가 새로 나오고 작가가 김별아님인것을 알았을때 이전 작품인 미실을 떠올렸다. 역사소설을 참 좋아하고 미실이라는 인물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엄청났었다. 그때 읽은 미실은 내게는 실망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도 이번엔 두권으로 넉넉한 분량을 보이며 다가온 논개엔 새로이 기대를 했다.
 
  일부러 찾아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우연히도 논개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 저기서 들었다. 그래서 보통 알고있듯, 논개가 왜장을 꼭 껴안고 죽은 기생으로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 있다. 알려지고 포장되어진 논개는 그녀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될수록 내가 알던 논개아 아니었다. 논개라는 이름의 유래 역시 어느 사이트에서 보낸 메일을 통해 알게됐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알면 알수록 전혀 다른사람이 되어가는 그녀 논개를 대상으로 나온 이번 작품에 나는 또다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저 혼자 시나리오 구성까지 해가면서......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도 역시 실망스러웠다. 그것이 서운한 마음으로까지 번져갔다. 나는 소설을 원했다. 이전 작품 미실도 위인전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역사 속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온전히 그의 행보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소설이라는 이름아래 얼마든지 보이지 않고 없어져버린 부분을 원하는대로 채울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작가의 상상력을 기대하는 것이다. 소설을 위인전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독자가 알아서 유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캐릭터의 개성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개를 통해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고어들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옛 정취에 빠져드는 듯이 좋기도 했다. 이번에도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전작품보다는 더욱 좋다는 생각도 했다. 그만큼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 느껴져서 다음작품을 기다리게 했다. 아직 논개를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꽉 조여 팔을 풀리지 않게 한 채로 왜장과 함께 물에 뛰어든 기생으로만 알고있다면 이 책을 술술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소설이지만 분명 다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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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라도에서 생긴 일
이제하 지음 / 세계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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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만에 선보이는 소설이라지만, 난 사실 처음 접하는 작가이고 작품이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달랑 두가지. 첫째는 넘치고도 모자라 흘러서도 넘쳐나는 외국소설속에서 우리 문학을 접하면 괜히 반가움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는 권총 한 자루가 생긴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예전 직장이 경찰청이어서 나는 우연히 딱 한번, 진짜 총을 본 적이 있다. 만져볼 수도 없었고 대놓고 관심을 표할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식간에 눈이 빨려들어갈듯 눈길이 가는것을 느꼈었다. 이는 수갑이 좋지 않은 물건임을 아는데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수갑을 처음 보고 만져볼때에 그것이 무척 빛나보이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잠깐 보는 것도 그랬는데 만약 정말 내게 총이 생긴다면? 그 순간의 느낌을 짐작도 할 수가 없다. 

  아주 솔직하게,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말한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사실 기분이 안좋았다. 천성인지, 국가나 사회의 이념, 사상따위를 가지고 논쟁하고 전쟁하는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유토피아를 읽으면서 조금 어색하고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떠한 체제속이건 나는 인간적인 것을 좋아했다. 이 개인적인 성향때문에 책의 초반부터 나오는 댓글을 통한 다툼의 내용이 마음을 싹 굳게 만드는것처럼 느껴졌다. 

  불친절한 소설이라는게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작가가 충분히 던져줄 수 있을법한 것들이 부족해서 읽어도 읽어도 첫장을 읽는 것처럼 긴장감이 지속되고 멍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각 장이 이어져도 그만 끊어져 있어도 그만인것같은 이 느낌은 또 무엇인지...... 거기에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까지 더해 날 울고싶게 만들었다.

  주어진 소스가 부족해 어느것도 단정짓기 어렵고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이 작품의 설정을 내게 끼워 맞춰보았다. 내게 총이 생긴다, 실제 총이 내 손에 쥐어진다? 그 총에서 나는 무엇을 느낄지 궁금했다. 내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총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보다 더욱 컸다. 아직 젊은 나이인 탓인지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은 부려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그만큼 얻고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당연히 감수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맞섰다. 머릿속 온갖 것들이 양편으로 갈려 대치하는 느낌이 들만큼 이것은 내게 크고 자주 일어나는 고민이다. 이것을 또다시 일으키는 매개체가 흉기인 권총이라면 꽤 오랜 시간 꼼짝하지 못하고 고민할 것이다. 내 결정에 대해서도 예상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면 결단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고민하는 성격탓에 문도 벽도 창문도 없는 방 한가운데에 독자를 떨어뜨려놓는듯이 이야기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각자가 알아서 하시라고. 보고싶은 것을 보고 원하는 것을 하고 가고싶은 곳을 가라고, 그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말이다. 우습지만 작가도 이런 마음은 아닐까 혼자 공상인지 망상인지 모를것을 해본다. 

  사실 내게 참 어렵고 힘든 소설이었다. 미리 이러한 작품인줄 알았다면 지레 피해버렸을 것이다. 언젠가 이 작품이 다시 생각나고 다른 것을 떠올리게 될때 또 한번 찾을 수 있게 잘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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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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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 면장선거를 대하고 나니 오쿠다 히데오를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난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되고 그들을 통해 많은 작가와 작품을 알았다. 그중 한사람이 바로 오쿠다 히데오였다. 모두들 그의 작품속 정신과 의사 이라부에게 반해있었다. 그 유쾌함과 엽기발랄함에 즐거워했고 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처음 공중그네를 읽게 됐다. 어이없기도 했고 소설이니까 그렇지 하면서도 나 역시 참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그 작품 하나로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이어서 읽은 남쪽으로 튀어도 그의 능청맞은 유머와 낙천성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느새 그의 작품이라면 크게 따지지 않고도 읽어보고 싶어졌고 읽지 않고도 마음이 즐겁고 푸근해졌다.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라면 보통은 존경과 위엄을 갖춘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이것을 확실하게 깨뜨리는 사람이 바로 정신과 의사 이라부이다. 푹 퍼진 동글한 몸매와 먹을만큼 먹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울리지 않게 천진난만하다. 지나치게 천진난만해서 죽을만큼 힘든 마음의 짐을 갖고 온 사람들조차 자신의 고민을 잊고 당황하고 만다. 조금도 체면을 갖추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때로 보통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어할 생각이나 행동까지도 모두 드러낸다. 환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엽기적인 의사에게 이끌려 평소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을 하곤 한다. 그 엉뚱함이 주는 즐거움이 독자의 몫이다.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의사 옆에서 이야기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환자들도 해결점을 찾아가고 치유된다. 정신이상이 아닌가 싶은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다시 돌아왔다.
 
  네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향수처럼 기억에 남아있던 그 이라부가 예전모습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의사 못지않게 엽기적인 간호사도 이번만큼은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죽음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구단주이자 신문사 회장과 청년성 알츠하이머병으로 글을 못쓰는 안퐁맨, 미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는 여배우를 예전에 기억하던 방식 그대로 치료해나간다. 이번에도 이전에 느낀 황당함과 즐거움이 반가웠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면장선거부분이 웃음은 적었지만 인상적이었다.
 
  섬 전체가 편을 갈라 끼리끼리 어울리고 생활하는 모습에 적응하지 못한 료헤이 미야자키는 내가 보기에도 남은 임기가 걱정스러울만큼 똑부러지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때맞춰 면장을 다시 뽑는 선거철이 되면서 한표라도 유치하기 위해 양쪽에서 서로 미야자키를 들볶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로워하기만 한다. 그 섬의 보건소에 이라부가 2개월 임기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면장선거인데 돈받아서 좋아하고 음식접대에 좋아하다 나중에 토라지는 모습은 누가봐도 의사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후반에 이라부가 어떻게 환자들을 고칠 수 있었는지, 환자들이 당황스럽고 못미더워 하면서도 왜 그를 찾는지 이번에 알게됐다.
 "바보라는걸 눈치 채셨어요?"
 "눈치 채다말다. 무조건 주사만 놔대잖어. 그런 건 처음부터 다 아는겨. 허지만 말이여, 모두 이라부 선상님을 좋아혀. 바보는 귀엽잖어. 마음이 편해서 좋고."
 "아무렴, 아무렴.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신경통도 좋아졌따니께. 우리 노인네들이야 누군가 보살펴주고 마음 써주길 바라는거 아니겄어. 이라부 선상님은 우리 상대가 되어주니께."
(p.287 ~ p.288)
  바로 여기다. 이성적으로 이라부의 말과 행동은 못믿어도 마음으로는 그를 완전히 믿는것이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믿고 그의 관심을 사심없이 받아들이고 그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된 것이다. 쉬운일이 아니지만 이라부는 너무도 쉽게 그것을 해낸 것이다.
 
  나는 언제나 진심으로 믿고 나를 맏길 수 있는 사람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항상 생각해 왔지만 이라부를 좋아하는 노인들의 말을 읽고 보니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이 나를 믿어주길 바라고 사람을 얻기만 바라면서 나는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되게 남에게 다가갔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이제껏 눈치채지 못한 이라부의 매력을 발견한 것같다. 그를 따라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가끔은 이라부 따라쟁이가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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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호오 이야기 - 규슈 지쿠호오 탄광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민중사, 평화교육시리즈 03
오오노 세츠코 지음, 김병진 옮김 / 커뮤니티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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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이 거친 그림의 표지가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사실 언제 봐도 일본에 짓밟히던 시절의 우리 역사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다. 내가 욕을 먹고 내가 무시당하고 짐승취급을 받은듯 화끈거려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이다. 이번에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간 아픈 우리 역사에 마음을 너무 빼앗겨 다른나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오지마 전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냉담한 마음이 한켠에 있었다. 당당한 나라로서의 힘과 위상이 있으니 전쟁이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뜻을 펼치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와는 경우가 다른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었대도 사람인데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우리나라에는 비할바가 아니라고 여겨왔다. 나는 오직 얼마나 아팠는지만 기억하려고 했었던것 같다. 이건 내 실수이다. 알면서도 저지르는 실수이다.  

  또 하나의 실수라면 실수일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알게됐다. 우리역사에 마음을 빼앗긴 만큼 나는 그때에, 그때의 일에 대해 다른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갖고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일본에 식민화가 정당했다는 주장을 철썩같이 믿고 그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뉴스로 보면서, 황실과 나라에 충성을 다할것이고 이 전쟁이 승리할 수 있게 뭐든 할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난 정말로 일본인들이 우리를 싫어하고 무시하는줄 알았다. 특히 식민지로 삼았던 그때엔 누구나 다 그런줄 알았다. 얼마전까지 이것은 오해도, 실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사람이 우리 역사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어 책을 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훑어보아도 그림은 절반이고 나머지 반에서도 또 절반은 일어여서 읽을 부분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글씨 마저도 교육용 도서답게 컸다. 금새 읽겠구나 하는 생각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예상과는 달랐다. 짧으면 3줄, 길어도 10줄 내외뿐인 이야기체의 글씨가 보이는 분량과는 달리 무척 무거운 내용이었다. 천재지변과 기근에 몇년째 참혹한 살림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던 200년 전 시절의 일본에서 시작된다. 강둑이 낮고 폭이 좁아 적게 내리는 비에도 물이 불어 심어놓은 모는 물론 집마저 떠밀려가자 깊고 넓은 새 강을 파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불이붙는 까만 돌, 석탄이 발견된다. 이 신기한 불붙는 돌은 영주에게서 곡물을 대신할 세금으로 허락을 받고 사람들은 석탄발굴에 열중한다. 시간이 흘러 일찍 개화하고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은 석탄이 필요했고 탄광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밥먹자고 붉은 굴뚝을 찾아 사람들이 밀려들어온 이곳 탄광이 지쿠호오에 있었다. 내 눈에 진짜 비참하고 서러운 역사는 이제 시작인것으로 보였다. 일본이 강한 무력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전쟁까지 일으키지만 살기위해 지쿠호오로 모인 사람들은 여전히 노예처럼 일하고 죽어갔다. 탄광에 끌려온 조선인의 모습과 힘없고 무력한 일본인의 모습은 이미 국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밑바닥에서 역사적으로도 험난했던 시기를 지내온 민중의 모습이 담담한 할머니의 어조로 그려져있다. 내가 알았던 사람만이 일본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난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알고 있었을 수는 있다. 몇년 전, 탈북한 무용수가 쓴 책을 읽었을때 마지막에 쓰인 부분이 생각났다. 북한사람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그들은 아주 어릴때부터 철저히 세뇌를 당해 모르는 것 뿐이라고, 실은 너무도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남편을 따라 어린 자식을 데리고 탈북하면서 생이별을 하게 된 가족을 떠올리며 당부하는 그 구절을 뭉클하게 봤었다. 어느새 잊은 이 글귀들을 계속 기억했다면 내가 이렇게 오래 속좁은 시야를 가졌을까. 

  아직도 당당하게만 나오는 일본의 입장을 보면 파르르 화가 치솟지만 그것을 보통 시민에게 적용할 마음은 많이 사라졌다. 일본도 나라에서 그렇게 기를 쓰고 있으니 일반사람들이 지난 역사의 과오를 모르는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드러내 보이고 과거 자신들의 나라가 얼마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괴롭게 했는지 알고 그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와 인터뷰한 사람들의 용기에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그들의 힘없는 사람도 우리만큼 아프고 처절했다. 내 실수와 오해로 엉뚱한 곳에 화를 담아두고 있지 않았나 돌이켜본다. 이 가슴아픈 민중사가 널리 널리 퍼져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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