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쿠호오 이야기 - 규슈 지쿠호오 탄광을 중심으로 한 격동의 민중사, 평화교육시리즈 03
오오노 세츠코 지음, 김병진 옮김 / 커뮤니티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선이 거친 그림의 표지가 그리 눈길을 끌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사실 언제 봐도 일본에 짓밟히던 시절의 우리 역사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다. 내가 욕을 먹고 내가 무시당하고 짐승취급을 받은듯 화끈거려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이다. 이번에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간 아픈 우리 역사에 마음을 너무 빼앗겨 다른나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오지마 전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냉담한 마음이 한켠에 있었다. 당당한 나라로서의 힘과 위상이 있으니 전쟁이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뜻을 펼치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와는 경우가 다른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었대도 사람인데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우리나라에는 비할바가 아니라고 여겨왔다. 나는 오직 얼마나 아팠는지만 기억하려고 했었던것 같다. 이건 내 실수이다. 알면서도 저지르는 실수이다.  

  또 하나의 실수라면 실수일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알게됐다. 우리역사에 마음을 빼앗긴 만큼 나는 그때에, 그때의 일에 대해 다른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시선을 갖고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일본에 식민화가 정당했다는 주장을 철썩같이 믿고 그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뉴스로 보면서, 황실과 나라에 충성을 다할것이고 이 전쟁이 승리할 수 있게 뭐든 할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난 정말로 일본인들이 우리를 싫어하고 무시하는줄 알았다. 특히 식민지로 삼았던 그때엔 누구나 다 그런줄 알았다. 얼마전까지 이것은 오해도, 실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사람이 우리 역사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어 책을 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훑어보아도 그림은 절반이고 나머지 반에서도 또 절반은 일어여서 읽을 부분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글씨 마저도 교육용 도서답게 컸다. 금새 읽겠구나 하는 생각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예상과는 달랐다. 짧으면 3줄, 길어도 10줄 내외뿐인 이야기체의 글씨가 보이는 분량과는 달리 무척 무거운 내용이었다. 천재지변과 기근에 몇년째 참혹한 살림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던 200년 전 시절의 일본에서 시작된다. 강둑이 낮고 폭이 좁아 적게 내리는 비에도 물이 불어 심어놓은 모는 물론 집마저 떠밀려가자 깊고 넓은 새 강을 파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불이붙는 까만 돌, 석탄이 발견된다. 이 신기한 불붙는 돌은 영주에게서 곡물을 대신할 세금으로 허락을 받고 사람들은 석탄발굴에 열중한다. 시간이 흘러 일찍 개화하고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은 석탄이 필요했고 탄광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밥먹자고 붉은 굴뚝을 찾아 사람들이 밀려들어온 이곳 탄광이 지쿠호오에 있었다. 내 눈에 진짜 비참하고 서러운 역사는 이제 시작인것으로 보였다. 일본이 강한 무력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전쟁까지 일으키지만 살기위해 지쿠호오로 모인 사람들은 여전히 노예처럼 일하고 죽어갔다. 탄광에 끌려온 조선인의 모습과 힘없고 무력한 일본인의 모습은 이미 국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밑바닥에서 역사적으로도 험난했던 시기를 지내온 민중의 모습이 담담한 할머니의 어조로 그려져있다. 내가 알았던 사람만이 일본사람의 전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난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알고 있었을 수는 있다. 몇년 전, 탈북한 무용수가 쓴 책을 읽었을때 마지막에 쓰인 부분이 생각났다. 북한사람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그들은 아주 어릴때부터 철저히 세뇌를 당해 모르는 것 뿐이라고, 실은 너무도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남편을 따라 어린 자식을 데리고 탈북하면서 생이별을 하게 된 가족을 떠올리며 당부하는 그 구절을 뭉클하게 봤었다. 어느새 잊은 이 글귀들을 계속 기억했다면 내가 이렇게 오래 속좁은 시야를 가졌을까. 

  아직도 당당하게만 나오는 일본의 입장을 보면 파르르 화가 치솟지만 그것을 보통 시민에게 적용할 마음은 많이 사라졌다. 일본도 나라에서 그렇게 기를 쓰고 있으니 일반사람들이 지난 역사의 과오를 모르는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드러내 보이고 과거 자신들의 나라가 얼마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괴롭게 했는지 알고 그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와 인터뷰한 사람들의 용기에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그들의 힘없는 사람도 우리만큼 아프고 처절했다. 내 실수와 오해로 엉뚱한 곳에 화를 담아두고 있지 않았나 돌이켜본다. 이 가슴아픈 민중사가 널리 널리 퍼져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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