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효용 - 개인의 정체성과 도시 생활
리차드 세넷 지음, 유강은 옮김 / 다시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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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거처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도시화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도시 기저에 응축된 문화적 무질서의 힘으로부터 성숙한 사회가 태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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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0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도 어려운데 말미잘님 백자평도 어딘가 어려워요. ㅎㅎ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02   좋아요 0 | URL
ㅋㅋ 악.. 이거, 올해의 책 투표를 했을 뿐인데 제 서재에 버젓이 뜨는 걸 몰랐네요. 평생 백자평도 안 쓰는 인간이 상품에 눈이 뒤집혀서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욕심에 눈 먼 인생이 부끄럽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4-12-0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이런걸 읽는분을 내가 알다니 ♥♥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02   좋아요 0 | URL
이게.. 사실 여러가지로 사연이 쪼까 있는 책이올습니다. 고모리님. ㅎㅎ

Mephistopheles 2014-12-0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래서요....??

뷰리풀말미잘 2014-12-01 20:03   좋아요 0 | URL
역시 예리한 눈매의 소유자 메피님. 원래 이거 세 문장 쓸려고 한 거였거든요? 하지만 회사 윗분이 매의 눈을 하고 제 등 뒤로 다가오셔서. 하하하.
 
대항해 시대 -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주경철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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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1

 

고대인들은 바다를 동경했다. 푸른빛으로 넘실거리는 미지의 평원.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들은 밤낮으로 노를 저어도 끊임없는 그 망망한 대해를 이야기로 채워서 딛고 건넜다. 빛도 닿지 않는 심해 깊숙한 곳에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라는 이데아를 지었고, 조선인들은 용궁이라는 무릉도원을 상상했다. 어느 갑판장은 꾸벅꾸벅 조는 부하들을 깨우기 위해 선원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이야기를 지었고, 안데르센은 인어공주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로맨스를 꿈꿨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자들에게 마침내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바다로 툭 튀어나온 호기심의 부두에서 세계로 닻을 올린 사람들이 있었으니, 15세기, 근대가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시절이었다.

 

1405년 명나라의 정화가 황제의 명을 받아 3500척 대 선단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아프리카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 이래, 유럽의 항해자들은 지중해를 거미줄 같은 상업 네트워크로 엮었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마다가스카르와 홍해, 인도까지 항로를 개척했다. 영국의 은괴는 인도의 목면과 교환되었고, 일본의 비단이 네덜란드의 면직물과 거래되었다. 프랑스의 미식가들은 매콤한 아랍산 후추에 열광했고, 중국의 가난한 마을은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고구마와 옥수수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생태계가 뒤섞이고, 문화가 교류되자 잠들었던 세계가 꿈틀거렸다. 바야흐로 대항해시대의 시작이다. 
 
물론 바다가 늘 낭만적인 것은 아니라, 항해마다 10~20%에 이르는 항해자들이 질병과 사고로 물고기 밥이 되었다. 노예무역선의 끔찍함은 아우슈비츠 이전까지 가장 어두운 역사의 그늘이었다. 노예들은 햇빛 한 점 얻을 수 없는 퀴퀴한 선창, 관처럼 답답한 공간에 묶여 절망적일만큼 처절한 뱃멀미와 충격적으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몇 달이 넘는 항해를 견뎠다. 항로가 뒤엉켜가는 동안 로망의 바다는 어느새 욕망으로 물들었고, 지구 반대편의 대자연과, 막대한 천연자원과, 원주민들의 생활은 서구인들이 지니고 온 총과 질병으로 파괴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야만은 있었을 것이나, 이제 그 야만은 지구적인 규모로 확장된 것이다.

 


#. 2

 

저자는 그간 역사학의 주류였던 대륙-농경 문화적 관점과 유럽 중심주의적 사관에서 벗어나 소외되었던 근대 해양세계의 발전에 주목한다. 바다를 통해 광대한 네트워크를 개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바다에서 쓰여 바다로 돌아간 줄 알았던 해양의 역사를 451건의 참고문헌을 들춰 재구성한다. 오랜 시간 침묵하던 역사학 좌현의 노를 추슬러 ‘지구사’로 저어간다.

 

그 시대 유럽의 배들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돛을 꼿꼿이 세우고 끝없이 국경을 넓혀나갔다. 그 최전선에서 문명과 문명, 선단과 선단, 국가와 국가가 격돌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유럽세력은 세계를 근대라는 이름의 새로운 질서로 편입시켰다. 세계인들은 서구의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다소의 편의를 얻었으나, 영영 소박한 삶을 잃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결과로 우리는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마시며,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음악을 듣고, 유럽의 미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라는 가치판단을 떠나 인류의 태동 이래 이제까지 없었던 차원의 삶을 우리는 직면하게 된 것이다.

 

여기는 어딘가. 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의 목표를 ‘지구사’의 서술이라고 적었지만, 궁극적인 관심은 ‘지금, 여기’에 잇닿아 있을 것이다. E.A 카가 말 하듯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니던가.

 

나침반 이전의 항해자들은 배 뒤로 부표를 던지고 배가 멀어지는 속도와 방향을 가늠해 지도상에서 현재 위치를 짐작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는 저자가 근대로 던져 놓은 부표.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 3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구름 낀 하늘을 태양석으로 관측하며 목적지를 가늠하는 바이킹이었다. 가업으로 포르투칼어 사전을 편찬하는 17세기 일본의 청년이었다. 악명을 떨치는 카리브해의 해적이었다가, 리버풀의 노예상인과 사랑에 빠진 이국의 노예였다. 동인도 회사의 폭정에 맞서 칼을 쥔 필리핀의 농부였고 이를 앙다물어 이끼가 가득한 오크통의 물을 걸러먹는 포르투갈의 뱃사람이었다. 매일 밤, 책을 펼 때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제, 돛 내리듯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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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8-2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업으로 포르투갈어 사전을 편찬하는 17세기 일본 청년이라니... 멋지다..노예상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국의 노예라니...아 낭만적이야..♡

뷰리풀말미잘 2014-08-21 10:58   좋아요 0 | URL
이 글의 포인트는 제가 참고문헌을 일일이 세 봤다는 겁니다. ㅋㅋ 451개를.

다락방 2014-08-21 11:26   좋아요 0 | URL
저는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글을 읽었네요? 엉뚱한 데에 꽂히고 ㅎㅎ

뷰리풀말미잘 2014-08-21 11: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것도 몰라요?

2014-08-31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1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밤 2014-09-0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봄밤이 어제부터 12번째 쓰고 베끼고 있는 글입니다.

"헤테로토피아"의 한구절을 적어요.

...당신은 배가 왜 우리 문명에서, 16세기 이래 지금까지 가장 거대한 경제적 수단(이는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인 동시에 가장 거대한 상상력의 보고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배, 그것은 전형적인 헤테로토피아이다. 배 없는 문명에서는 꿈이 고갈되고, 정탐질이 모험을 대신하며, 경찰이 해적을 대체하고 마는 것이다. p. 58

"헤테로토피아"를 보고 "원피스"가 생각났고, 이 구절로 "대항해 시대"를 만납니다.

더불어 망망대해에서 뷰말님을 만나고요! 얍


뷰리풀말미잘 2014-09-02 08:18   좋아요 0 | URL
헤테로토피아를 열 두번...? 헐.

제가 무식해서 배를 헤테로토피아라고 생각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솔직히 아무리 번역을 잘 해놔도 프랑스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못 알아듣겠어요.) 최근의 크루즈선이 바로 물질문명이 가진 유토피아적 이상을 구현한 배라는 생각은 드는군요. 그 자리를 떠나고 나면 물결밖에는 남는 것이 없으니 정말, 원어의 의미처럼 ou아무것도 없는+toppos장소.

전 원피스는 읽다 말았지만, 대항해시대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봄밤 2014-09-0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순히 배를 떠올린것에 지나지 않았어요. 뷰말님 글로 이해를 쌓아요. 이 책은 무척 얇고, 저는 글이 시 같아서 더듬거렸습니다. 리뷰만으로도 읽고 싶은 책이에요. 기억하고, 찾아볼게요.

뷰리풀말미잘 2014-09-02 14:58   좋아요 0 | URL
즐거운 시간이 되실겁니다.
 
<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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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 대단한 글쟁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에세이와 소설을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필력에 대한 입소문은 워낙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싸움닭' 진중권도 고종석에 대한 평가만큼은 후했다. '시칠리아의 암소'에서 였던가? "현대적 기준에 따라 ‘진정한 자유주의자’라 부를 수 있는 건 고종석씨뿐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가끔 마주치는 고종석의 칼럼들은 그러한 세간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 '고종석의 여자들'은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책이다. 기대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세간의 평판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 감상은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이것이 그 고종석의 글이 맞는가. 혹시 나의 읽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래 좋은 글이란 이렇게 난삽하고 정신없는 것인가. 이인화의 첫 소설에 대한 누군가의 평론으로 기억한다. '1급의 평론가라고 1급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고종석이 1급의 글쟁이라고 해서 늘 1급의 글을 쓰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어떤 소설가가 매번 이상문학상을 타겠는가. 알라딘 최고 글쟁이인 아치도 매번 10개 이상의 추천을 받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기복이 있다. 아마 이 책 '여자들'은 고종석의 슬럼프가 아닐까?

책이 산만해질수 밖에 없었던 건 구성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책은 저자가 관심있는 서른 네명의 여자들을 다루는데. 각각의 인물이 하나의 챕터의 주제가 되는 식이다. 그러니 불과 300페이지도 안 되는 전체 장 수에서 각 인물에 할애된 분량은 사진 빼고 그림빼면 네장 남짓. 에이포 용지로 두장이나 될까 말까한 길이다.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더라도 그 짧은 글에 한 인물의 특징을 우그러뜨려 넣는건 빠듯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매번 호흡을 깔딱거린다. 

그래서 그의 격조있는 문장과 세련된 어휘는 흐릿한 주제의 언저리를 더듬거릴 뿐이다. 각각의 글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하고, 수준있는 담론을 담아내지 못한다. 서두에서 거창하게 말 한 역사 앞의 여성의 종속성이나 부차성에 대해서 접근하지도 못한다. 그는 그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으면" 또 "생각의 깊이를 얻"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흥미도, 깊이도 얻지 못했다. 다만 얻은 것은 똑똑한 남자의 13000원 짜리 한담. 

이 남자, 실컷 벗겨 놓고 침만 잔뜩 묻혀놓은 꼴. 뒷 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그녀들,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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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2-2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가 야하다. ^^
고종석씨에게는 생각을 정갈하게 정리한 글이 어울려요. 얼핏 신문에서 이 책의 내용 중 한 꼭지를 읽은적이 있는데 고종석씨의 색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의도는 넘쳤고, 기획은 틈이 많이 났죠.
난 좀 행복한게, 다재다능이란게 있지만 저마다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게 있잖아요. 글도 그런거니까, 주어 서술어 맥락 등등이 어설픈 글이라도 자꾸 쓰다보면 나도 좀 나아질거란 생각이 드는거죠. 아, 갑자기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아주 아주 오랫동안 소네트를 짓던 변호사던가? 그 분 이야기가 떠오르는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7 17:20   좋아요 0 | URL
제가 멋지고 정리가 꼼꼼하고 그런 리뷰로 안되니까 본격에로리뷰로 경쟁력을 확보해 보려구요. ㅎㅎ

어쩐지. 이게 신문에 연재하던 글이었군요. 읽으면서 그럴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 이 책은 별로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책에 대해 기대감이 떨어지지는 않았어요.

아치 누가 글 못쓴다고 했어요? 확 전기톱으로 썰어버릴라.

Arch 2009-12-27 18:37   좋아요 0 | URL
니가 그랬잖아요. 본격무협전기톱스릴러가 될 듯 ^^

뷰리풀말미잘 2009-12-27 18:54   좋아요 0 | URL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했지 못쓴다고는 안 했어요. ㅎㅎ 이러다 아치팬들한테 테러당하는거 아닌지 몰라요.

2009-12-2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12-27 20:06   좋아요 0 | URL
난 Arch팬이지만 뷰리풀말미잘님을 테러하진 않겠습니다. 불끈!

뷰리풀말미잘 2009-12-27 20:56   좋아요 0 | URL
오 다락방님 똘레랑스 장난 아니신데요.

Arch 2009-12-27 21:52   좋아요 0 | URL
다락레랑스가 별명이라죠. (똘락방이 더 낫나?)

다락방님, 비밀 댓글로 미잘이 잠자는 아치 콧털을 건드리는데 어쩌죠! 어흥~

뷰리풀말미잘 2009-12-27 22:35   좋아요 0 | URL
이 사람이 네이밍 센스가 없어. 달레랑스 어떤가요?

아치. 실력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합시다. ㅎㅎ

다락방 2009-12-28 00:05   좋아요 0 | URL
나 완전 똘락방에 빵 터졌어요. 그게 저한테 더 잘어울려요. 슈퍼또라이로 동료들 사이에 불렸었던 걸 감안하면 똘락방이 낫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

미잘님과 Arch님은 원래 서로의 콧털을 건드리는 사이가 아니던가요? 건드리지 않을때, 그때 어떡하죠, 하고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8 01:52   좋아요 0 | URL
아치가 제 코털 다 뽑아갔대요.

Arch 2009-12-28 11:19   좋아요 0 | URL
미잘은 콧털 나오는 남자예요.

달레랑스는 너무 달콤해서(달콤한 남자 같으니) 이걸로 하면 제일 어울리긴 하지만 말예요. 다락방님의 이미지가 너무 좋으니까 좀 깨자는 의미에서 똘락방도 괜찮을 듯. 다락방님 뭘로 할래요. (선택하란다. 뭐 좋은거라고.^^)

다락방 2009-12-28 17:02   좋아요 0 | URL
말미잘님께 콧털 청소기 하나 사드려야겠어요.

당근 똘락방.
똘아이 다락방의 준말로. 히히

승주나무 2010-01-0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남자의 13000원 짜리 한담 따위를 듣기보다는 저와 함께 칼 폴라니의 세계로 빠져드심이 어떨까요 ㅋㅋㅋ 4개월만에 거대한 전환을 완독했는데 아직 리뷰는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 신년 인사 다니고 있어요. 아치 님이랑 좀 친하게 지내세요. 더 그랬단 연애할라 ㅎㅎㅎ 혹시 ing~~~ 올해는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만납시다^^

뷰리풀말미잘 2010-01-02 18:22   좋아요 0 | URL
오, 승주나무님 반갑습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아요. ^^ 바쁘신 중에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완독하셨다니.. 저는 경제학이 특히 무식한 분야중 하나라 관심은 갖고 있었는데 아직 도전도 못 해보고 있습니다. 그걸 읽는거 자체가 제겐 사고의 거대한 전환을 요하는 일이라서요 ㅎㅎ 일단 보관함에 두겠습니다. 조만간 폴라니를 씹으면서 맥주한잔 하시죠.

요새 가쉽에 좀 어두우신듯. 아치님 연애 시작한지 꽤 됐어요. 지들끼리만 연애하는 더러운 세상! ㅎㅎ
 
<깐깐한 독서본능>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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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 세상이 죽은 듯 고요하고 이따금 종소리 들리는 흠내골 오두막. 그 곳에 염소 먹이고 호박 심는 은자가 산다. 당랑거철螳螂拒轍하던 도시의 삶 내던지고 매화향 아득한 초야에 묻혀 조지오웰과 마르케스, 장정일과 김훈, 이탁오와 박지원을 벗 삼아 술잔 기울이는 사람. 낮에는 깨 볶고 밤에는 가득히 쌓인 서책과 독야청청‘讀’也靑靑하는 사람. 그가 파란여우다.

40이 넘어 읽기 시작한 글이라지만 그의 책 읽기는 바다처럼 넓고 우물처럼 깊다. 각 국의 문학과 고전, 인문과 사회, 인물과 평전, 환경과 생태, 문화와 예술, 역사와 기행, 심지어 만화와 아동도서까지 넘나드는 그 방대한 지적 탐구. 나 같은 게으른 독자는 그저 목차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겸손해질 뿐이다. 또 그런 망망한 인식과 관조의 바다 속에서 헤메이고 뒤채임이 일상이련만 치우침 없이, 국한됨 없이 가지런한 서평의 목록을 뽑아든 그녀가 또한 존경스럽다.  

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지난 5년간 쓴 380편의 서평 중 86편을 엄선해 엮은 것이다. 원래도 좋은 글이었는데 추리고 다듬고 깔끔하게 편집까지 해 놓으니 구슬을 금실로 꿰어놓은 격. 책은 보기 좋고 문장은 향기롭다.

#. 2 

그의 문장에서 나는 이 냄새는 필시 시골의 냄새다. 책의 첫 챕터 첫 장부터 아찔한 라일락 냄새. 들여다보니 어쩐지, 그녀 독서인생의 ‘첫사랑’이었다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서평이 아닌가.  

“나에게 장정일은 ‘독서인생’의 첫사랑이다.... 나는 이 독서일기 첫째 권을 시작으로 장정일이 대신 들려주는 책의 수다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게 벌써 일곱 번째다. 첫 번째 독서일기로부터 14년이 흘렀고 그도 나도 마흔이 훌쩍 넘었다. 작가와 애독자가 함께 늙어간 세월이다. 이제 장정일은 대머리가 되어가고 나도 주름살이 늘기 시작했다.” 파란여우는 그가 독서인생에 불을 지폈으니 ‘첫사랑에 대한 보답은 충분하다.’며 쿨한 척 하지만 아직도 그의 신간을 궁금해 한다는 윗 단락의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연모에 대한 장정일의 보답이 충분했던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서평에서 94년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첫 출간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쓰기를 대관하며 늙어 부드러워지는 장정일의 글쓰기를 주목한다. 짧으나 긴 호흡으로 쓰인 글이다. 웬만한 정성과 애정 없이 쓰기 힘든 글이다. 하긴, 이 서평의 제목은 ‘당신과 함께 늙을 수 있어 기쁘네요.’ 오, 이런 달콤쌉싸름한 고백이라니.

박근혜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대한 서평에서는 새파란 청양 고추처럼 매운 냄새가 난다. 저자는 사정없이 죽비를 휘두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박근혜의 첫 번째 자서전은 두터운 화장 냄새만 진동한다.... 박씨네 부녀가 한국 역사에서 한 축을 맡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역할이었는가를 독자는 물을 필요가 있다.” 이 서평에서 파란여우는 박근혜의 뻔뻔한 현실인식으로부터 출발해 그 정치가의 낡은 멘탈리티와 더불어 한국 근현대사가 품고 있는 정치, 경제의 어두운 측면을 추적한다. 그 치열한 논구에 끝에 내려진 그의 결론은 파격적이나 명쾌하다. “진실의 의도적인 은폐와 은닉과 봉합의 삼박자 리듬을 탄 박근혜의 자서전은 한마디로 역사의 날조를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여러 편의 곱씹어 볼 서평들이 있지만 꼭 이 한편의 서평을 소개하고 싶다. 촛불 시위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책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에 대한 서평 ‘촛불의 회계장부 왜 필요한가’. 여기에서 파란여우의 펜촉은 결 고운 참빗처럼 촛불의 환상을 훑어나간다.

저자는 우선 왜 촛불이 소멸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어서 촛불에 대해 비폭력 혁명 주장까지 하는 과도한 기대치를 지적하고, 그래서 결국 촛불의 실질적인 소득이 무엇이었는지 질책한다.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애써 외면했던 지점을 가차없이 들춰낸다. 촛불이 결집된 에너지를 목표에 겨냥하지 못하고 거꾸로 돌려 문화제와 놀이마당에서 허무하게 소진했다는 비판도 통렬하다. 그녀는 현상을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분조분 촛불의 과오를 따져 묻는다. 결론은 역시 명징하다. 촛불이 비록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의식화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역풍이 언론을 압박하여 촛불의 심지까지 강타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촛불은 가능한 것일까? 촛불의 외연만을 신화화하고 찬양하기에 급했던 필자들에게 모골이 송연해질 지적이다. 

하지만 비판은 애정을 잃지 않고 명박 산성 언저리에서 흩어진 촛불들과 제 흥에 겨워 계통을 잃어버린 촛불들을 보듬는다. 그 어떤 촛불이 저희를 성장시키는 비판을 고깝게 들을 수 있을까. 만약 촛불에 관련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새로운 담론의 거처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갈피에서 풍기는 청청한 솔향을 맡는다. 세한도의 소나무가 툭 튀어나와 풍길것만 같은 청청한 내음이다. 누구도 메스를 들이대기 어려운 부위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파란여우에게서 겨울이 진해질수록 깊어지는 초록의 기개를 본다.     

#. 3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책은 쓰인 부분과 쓰이지 않은 부분으로 나뉜다. 홀로 완벽한 책이 어디에 있으랴. 완전한 독해는 책의 이면을 꿰뚫는 서평과 보족補足하는 것이다. 파란여우는 절름거리는 책들을 부추켜 걷게한다. 독자는 이 책 ‘깐깐한 독서본능’에서 파란여우와 함께 걸어오는 여든 여섯권의 책을 만날 것인데, 읽은 책이라면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시선을,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면 참신한 소개를 얻으리라. 풍요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책 맨 뒷장을 덮는데 문득, 하얗게 눈 내리는 날 산 봉긋하고 들판 너르다는 흠내골로 찾아가고 싶다. 파란여우와 눈에 파묻힌 배추를 걷고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생계의 고달픔과 더불어 탁주 한 잔 나누고 싶다. 오랜 친구처럼. 그녀가 그녀의 마르케스, 이탁오에게 그렇게 느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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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 / 시유시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1

작년 겨울이었다. 오랜 친구 하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구조대는 반파된 차에서 녀석을 꺼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내 친구를 구한 것은 긴급한 응급조치와 빠른 후송, 그리고 지체 없이 이어진 수술이었다. 결국 그는 목숨을 보전했고 지금은 거의 완전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이야기다. 만약 구조대가 10분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혹 수술이 얼마라도 지체되었더라면 내 친구는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 할 수도 있었던 노릇이었다. 이 사례는 분명 효율성의 승리로 기록될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충분히 느린 속도로 차를 몰았더라면 애초에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과연 무엇이 내 친구를 사고로 몰아갔는가 하는 의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던져보면 그 최종적 용의선상에도 분명 효율성이라는 단어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막스베버는 사회가 분업화되고 구조가 복잡성을 띠면서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를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용어로 통찰했다. 이러한 근대적 합리성은 ‘관료제’를 탄생시켰고 관료제는 적어도 70년대까지 세상의 모든 조직을 지배했다. 책의 저자 조지리처는 베버의 적자로 그가 주장하는 ‘맥도날드화’는 근대적 합리성과 관료제의 최신 버전이다. 그는 이 책에서 '맥도날드화'를 돋보기처럼 들이대고 병든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 2
 
주문한지 3분 만에 포장된 햄버거 세트가 나온다. 쟁반에 가지런히 담긴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캐첩, 스트로우, 티슈를 들고 가까운 창가자리에 앉는다. 흘러나오는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햄버거를 완전히 해치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사실 그 이상 천천히 먹고 싶어도 자리가 불편하다. 나와 거의 동시에 옆자리에 궁둥이를 들이 밀었던 사람은 벌써 다 먹고 나간지 오래다. 가게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손님이 몰려들어 내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고 있다.

이 재빠름, 이 효율성이 언제부터인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말도 필요 없고 어정쩡한 제스츄어도 필요 없다. 단지 이것. 한 마디와 크레딧 카드 한 장이면 우리는 놀이공원에서 짜릿한 스릴을 구입할 수 있고, 예쁜 여성과 섹스를 구입할 수 있다. 뿐 만이냐 옮긴이의 말처럼 의료, 영화, 스포츠, 쇼핑, 마케팅, 출생, 죽음, 심지어 죽음 이후의 영역에까지 효율성은 달콤한 사탕가루처럼 묻어있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맥도날드화이며 그 대가로 우리가 바쳐할 것이 다름 아닌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맥도날드엔 손맛이 없고, 놀이공원엔 리스크가 없으며, 예쁜 여자는 사랑이 없다. 인터넷 쇼핑은 에누리가 없고, 컴퓨터 경마에는 말발굽에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냄새가 없다. 보람 상조에 월 3만원씩 내면 죽음의 순간 오물로 화한 내 육신은 깔끔하고 빠르게 수습되겠지만, 그 직원들이 진정으로 슬퍼하고 눈물 흘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처럼 맥도날드화가 자랑하는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종업원, 고객, 제품에 대한 완벽한 통제는 어느 순간 이 합리적인 불합리에 직면한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 보라, 유대인들을 빠르고 쉽게 살해하기 위해 거대한 소각장을 건설한 효율적 마인드, 개체수를 조절해 적절한 인구를 유지하는 계산가능성, 일단 들어온 자들은 100% 소각된다는 예측가능성. 이 일련의 과정이 나치라는 ‘고객’의 의뢰를 의해, 교도관이라는 ‘종업원’들의 작업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물론 그 생산물이란 앙상한채로 죽은 유태인이라는 ‘제품’.  

리처는 이러한 맥도날드화의 내재적 한계가 역사적 사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고등교육은 육류처리를 닮아가고 있으며, 의료시스템에서 환자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맥도날드화에 대한 대응’을 다루고 있는 10장에서 노골적인 어법으로 맥도날드화에 대한 혐오를 내비치고 그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바램을 드러낸다. 그가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딜런 토마스의 시구는 자못 비장하다. 

"그 깊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라"   

#. 3

흑인 마을에 간 어느 백인 선교사가 커다란 지옥도를 걸어놓고 흑인들을 겁박했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 죽어 지옥에 떨어지리라. 그림을 본 흑인들은 겁에 질려 흩어졌다. 그러나 웬걸? 다음주 주일에 교회에 모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노하며 연유를 묻는 백인 선교사에게 흑인 하나가 그랬단다.

“그림에서 지옥에 간 사람들은 모두 백인뿐이더군요.”

지금 여기에서 맥도날드화란 어떤 의미일까? 정말 그것이 악마와의 계약일까? 최소한 나는 악마적 맥도날드화를 피부로 체감하기 어렵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는 맥도날드가 생겼다가도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고,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동네 밥집은 메뉴 하나 늘지 않지만 점포의 크기는 두 배로 늘었다. 비근한 예지만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의 의사는 늘 친절하며, 우리 동네 슈퍼에서는 ‘씨즐리언’도, ‘유대인 베이컨’도 팔지 않는다. 이건 그의 분석틀이 지역적 국한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조지 리처의 염려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지나친 효율성의 추구가 인간의 인간다움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불안이 지나치게 맥도날드화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점을 의심해 볼 여지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맥도날드화의 선례를 찾아볼까? 내가 생각하기에 현대인들의 수명이 이전과 비교해 월등하게 늘어난 이유도 맥도날드화 즉, 효율성의 극대화가 이뤄낸 성과다. 그 중심에는 의료와 행정과 서비스를 통합한 신식 병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리처가 병원 서비스를 맥도날드화의 부작용으로 평가절하 하게 된 이유는 미국의 후진 의료서비스 체계에 있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조지 리처가 염려하는 많은 부분들은 ‘맥도날드화’의 부작용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풍토병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는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저서와 자료들을 가지고 좌충우돌하지만 그 조차도 대부분은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들이 아닌가.

그래서 리처의 현실인식 보다는 마지막 장에서 소개하는 맥도날드화에 대한 대안 부분이 더 재미있다. 마트에 대항하는 식품협동조합, 주립 대학에 대항하는 소규모 대학들, 베스킨라빈스에 대항하는 수제 아이스크림, 반 노동자적 포디즘에 대항하는 스웨덴의 샤브나 볼보 같은 자동차 기업들. 또 개인적 차원의 대응 모색까지.. 이러한 글쓴이의 탐구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답기 원하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4

베버의 시대는 암울했다. 산업혁명과 1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식인은 낮선 모든 현상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조지 리처는 막스 베버의 적자. 그래서 세상을 독해하는 그의 눈빛도 베버의 예민한 눈빛을 닮았다. 그래서 그의 분석은 지나친 시니시즘에 빠져있다. 하지만 그러한 불완전한 구석이 있더라도 세상을 읽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성과는 눈부시다. 

맥도날드화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인간의 역사는 유구한 세월을 거쳐 오며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왔고, 때로는 어리석게 퇴보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명석한 길을 찾아 진보하기도 했다. 맥도날드화란 과거 어느 시점에 취한 선택의 결과이며 또 다른 선택의 기로이리라.

전태일은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당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스스로 자신의 심장에 불을 당겼다. 그는 온 몸으로 맥도날드화를 거부했다. 그가 한줌 재로 스러진 이후 한국의 노동현실은 숱한 변화가 있었다. 때로는 퇴보했지만 대체로는 진보했다. 아직도 열악한 노동은 많지만 그 정도를 과거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줄어드는 노동시간과 그나마라도 늘어나는 임금, 손톱만큼씩이라도 나아지는 복지.

나는 숱한 전태일이 불을 당긴 그 진보를 믿는다. 그리고 그 치열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펼쳐진 지금의 역사를 신뢰한다. 내가 맥도날드화를 겁내지 않는 건, 그 역사가 달고 있는 저울추의 무게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망한다.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은 효율성과 더불어 뜨끈뜨끈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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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2-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잘 읽었어요. 책 한권을 보는 것 같아요.^^ 괴물의 탄생 독서 모임할 때도 비슷한 대안이 나왔었죠.

그런데 페이퍼는 안 써요? 응?

뷰리풀말미잘 2009-12-15 11:47   좋아요 0 | URL
쓰, 쓸게요. 안 그래도 쓰고 싶은 얘기가 한참 밀렸어요. ㅎㅎ

Arch 2009-12-15 11:56   좋아요 0 | URL
나 완전 기다린다! ^^

2010-07-05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07-10 09:18   좋아요 0 | URL
별로 재미없습니다. :) 뭔가 막 추천해드리고 싶은데 지금 막 생각이 안나네요.

2010-07-12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07-12 18:52   좋아요 0 | URL
의외로 공대 출신이셨군요:) 개인적으로 이공계 출신들을 우대합니다. 샤프한 매력이 있지요. 진중권이나 박노자 김규항의 책들이 좋아요 고종석의 칼럼이나 유시민의 글도 좋구요. 위 저자들중에는 직접만나본 사람도 있고,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애정이 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거나 다 좋은 필자이긴 하죠. 원하시는 장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신과 미녀 전문의 정혜신의 남자vs남자 사람vs사람 추천합니다. 인물론, 심리학, 사회과학이 파티하는것 같은 책들이에요.

봄밤 2014-07-05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생각나서 찾고 있었어요. 아, 책보다 더 좋은 리뷰를 보고가요. 그냥 갈 수 없어서 안부를 남겨요. 여름, 건강히 계셔요.

뷰리풀말미잘 2014-07-07 09:08   좋아요 0 | URL
리뷰보다 더 좋은 댓글이네요. 링크 타고 서재 구경 잘 했습니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 또 어디서 나타났지?

봄밤 2014-07-07 19:51   좋아요 0 | URL
뷰말님의 예전글에 지내다가요. 어찌나 계속 읽고 싶게 쓰셨는지. '잘'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부족해요. 뷰리풀말미잘님의 '지금'을 기다립니다!

뷰리풀말미잘 2014-07-07 21:53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쓸 때 좀 더 열심히 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