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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구. 내가 먹는 걸 그 언니가 보는 게 싫었어요. 아저씨만큼 친한 것두 아니구."
그녀가 뜻 없이 뱉은 ‘친하다’는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그토록 순수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나는 오랜만에 들었다. - P110

L의 마음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마음의 변화란 누구에게나, 언제건 일어나게 마련이다. 오히려 영원히 나에게 집착하는 편이 더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아직 그녀와의 관계를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변화는 나를 쓸쓸하게 했다. - P120

만일, 닷새 전 내가 인사동에 들르기 전에 우연히 종로통을 걷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L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어젯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의 자췻집 앞을 배회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L과 엇갈리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어제가 L이 그 집에 들어간 마지막 날이 되었으므로. - P137

담담하게 나는 말했다.
"괜찮을 거야."
내 건조한 기질이 도움이 되는 때도 있는 것이다. 담요의 온기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그녀의 경련이 차츰 수그러들었다. 그녀의 눈물이 그치고, 금이 간 눈이 감기고, 입술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나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말없이 쥐고 있었다." - P150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구 있었어요. 거짓말쟁이거나 위선자거나, 타고나길 신부나 스님이 됐으면 좋았을 사람이겠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란 가끔가다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대체 얜 이런 얘길 나한테 왜 하는 거야?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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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초중고뿐만 아니라 대학에서조차 아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어요. 2014년에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 근무하던 이혜정 교수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을 냈어요. 서울대에서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실증 연구를 해 보니, 교수가 수업 시간에 한 이야기를 토씨 하나도 안 빼먹고 필기해서 그대로 답안지에 써 내는 게 에이 플러스를 받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더래요. 이게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모습이라면 정말 우리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 P78

물론 우리나라에서 프랑스나 독일, 스웨덴을 이야기하면 조금 괴리감이 느껴지지요.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고요.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니까요. 그런데 이 두 나라에는 모두 대학 서열(랭킹)이 있어요. 미국의 『USA 투데이』 같은 언론에서는 아예 1년에 한 번씩 미국 대학 랭킹을 1등에서 100등까지 대서특필합니다. 그래도 한국만큼 대학 서열이 심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1등이 서울대라고 보잖아요. 하지만 미국은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엠아이티(MIT), 스탠퍼드, 캘리포니아 공대 등이 있어 분야별 1등이 다른 데다가 대학들 사이의 격차가 우리보다는 확실히 작아요. 또 사립대 등록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어지간한 중산층도 대학 랭킹에서 아예 사립대 명단을 지우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P88

이제부터 ‘대학 서열’이 ‘학벌’로 발전하게 된 메커니즘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그러다 보면 ‘정부’와 ‘민간’의 학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웬만한 장관, 차관, 검찰 총장 들이 대부분 ‘스카이’ 대학을 나왔습니다. 정부에 학벌이 존재하죠. 그런데 이것이 선배들이 후배들을 끌어 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걸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정부 내의 학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특히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은 아는데, 서울대 출신들은 후배들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정부의 학벌은 인위적인 작용보다 ‘제도’의 산물이에요. 특히 심한 대학 서열이 고시 제도와 겹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P89

사람이 가진 능력 중에 시험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부분적입니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들은 인간형 자체가 좀 남다르지요. 저는 농담 삼아 ‘시험형 인간’이라고 부르는데요, 인정 욕구와 성취욕이 강한 편이고 지능도 높은 편이고 약간 강박적 성향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사실 시험형 인간이었습니다. 이과여서 고시와는 좀 거리가 멀었습니다만. 하여튼 입시가 일종의 ‘필터’로 작용해서 ‘스카이’ 대학이 이런 시험형 인간들로 채워지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고시도 잘 보겠지요. 그래서 남들이 7급, 9급에서 시작할 때 5급에서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유리하지요. 좀 승진하다 보면 1, 2급이 보이겠고요. 자, 이 과정이 선배들이 끌어 준 덕인가요? 이 과정에 어떤 인위적 작용이 있나요? 없어요. 대학 서열화와 고시 제도가 겹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정부의 인재 풀이 명문대 출신들로 채워진 겁니다. - P92

여러분이 지금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제조업계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옛날이 아니라 지금요. 그러면 정부가 계속 ‘갑’일 것 같습니까? 이젠 기업이 정부에게 ‘그냥 방해나 하지 마.’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완전히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었죠. 정부가 갑, 기업이 을인 관계가 해체된 겁니다. 그러면 학벌 구조의 변화는 정부에서 일어나겠어요, 아니면 민간에서 일어나겠어요? 당연히 민간에서 일어납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스카이’ 출신이더라도 이들이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민간에서 학벌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거죠.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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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베네딕트회, 프란체스코회, 도미니크회, 이 밖에 다른 모든 수도회는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의 분리로 특징지어지는 생활 규칙을 제정했다. 물론 이러한 여자의 거부는 아마 가차 없이 억압된 이성애의 욕망을 나타냈을 테지만, 교회법에 의거한 담론은 바로 ‘자연적이고‘ 어쩌면 지나치게 자연적이고 육욕적이고 심지어 악마적인 경향을 문화와 구도의 영역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의 표명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이처럼 모든 이성애 문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남성과 여성의 가장 엄격한 분리 속에서 경건한 평신도회와 성스러운 영성지도의 윤리를 옹호했다.

동시에 가톨릭교회는 이성애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실제로 13세기 초부터 종교 제도는 전적으로 축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때때로 실행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고, 거부하기보다는 차라리 관리하겠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에 의해 채택된 실용주의적 입장이었다. 즉, 새로운 사목 활동에 따라 남녀의 사랑은 부부의 범위 내에서 가톨릭교회에 의해 제정된 규칙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에 한해 더 큰 그리스도교적 존엄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의미심장한 현상으로서 1215년의 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결혼이 성사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남녀 커플이 공인되었고, 이와 동시에 특히 불륜의 단죄가 강화됨으로써 사랑의 문화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늘어났다. 가령 매우 상징적이게도 예전에는 신랑과 신부의 부모에 의해 행해지던 혼례의 축복기도를 이제부터는 사제가 올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사제는 지배력을 되찾았다. - P121

성사는 가톨릭 교리의 본질적인 요소이고,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는 자유로운 인류만이 성사에 참여할 수 있다. 성사는 여성을 위한 잠재적인 해방의 놀라운 수단이다. 성직자들은 이 ‘위험‘을 재빨리 이해했다. 따라서 그들은 12세기부터 결혼의 의례를 체계화하고 이와 병행하여 가사에 전념하는 아내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상술하기에 열중했다. - P124

따라서 그는 남색의 혐의가 입증된 모든 성직자를 해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레오 9세는 다미앵의 지극한 경각심에 대해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지만, 그토록 엄정할 이유가 없다는 대답을 그에게 보냈다. 사실인즉 당시의 참회 규정서 대부분이 이 죄를 덜 중대한 침해로 간주했고 흔히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반면 12세기에는 이 주제에 대한 입장이 더 엄정해졌다. 3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이에 관해 입장을 표명하기로 결정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누구라도 자연을 거스르는 무절제, 즉 하느님의 분노가 타락의 자손에게로 떨어지고 다섯 도시가 불타버리는 원인이었던 그 방탕을 저지른 사람은 성직자라면 면직되거나 수도원에 갇혀 회개해야 하며 평신도라면 파문과 신자 공동체로부터 배척받아야 한다.
13세기에는 훨씬 더 태도가 강경해졌다. 가령 알베르 르그랑과 그의 제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온 힘을 다해 남색을 단죄했는데, 그들이 보기에는 모든 가능하고 상상할 수 있는 죄 중에서 남색이 가장 가증스럽고 아마 가장 심각한 죄였을 것이다. 따라서 고작 한 세기만에 유럽 전역에서 자연을 거스르는 죄에 대한 태도가 상대적인 무관심에서 화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엄정한 단죄로 바뀌었다. - P134

에라스무스로부터 유래한 다른 ‘발견‘은 결혼이 사랑에 근거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은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요구(혈통 잇기)에 부응하지만,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참된 사랑은 결혼의 범위 밖에서만 실천될 수 있다는 생각이 유럽사회에서 통용되었던 듯하다. 에라스무스의 동시대인인 장-루이 비베스는 부부의 사랑, 즉 그가 ‘신랑과 신부의 화합‘이라 명명한 것을 적극 권한다. 가톨릭 쪽에서 신학자들은 결혼생활보다 하느님을 위한 독신생활이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성 프랑수아 드 살은 <신앙생활 입문>(1609)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은 결혼을 통해 성스럽게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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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음소리를 낼 만큼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건강한 체구에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우습기까지 했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뭔가 신중한 일을 할 때는 침착성과 평온함을 보이다가도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때는 우울해지고 집에서 변덕을 피우며, 먹지도 않고 트집만 잡아 욕설까지 해대는 사람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못마땅하며 괴롭기까지 한 것이다. 흔히들 이런 사람을 보고 복에 겨워 방자하게 구는 것이며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처럼 공동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는 더욱 자주 보게 된다. 종종 우리 병실에서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동료 죄수들이 놀려 대기도 하고 맞대 놓고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욕 먹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금방 신음소리를 뚝 그치고 조용해진다. 특히 우스찌얀쩨프는 이런 자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꾸지람과 욕설을 하기 일쑤였다. 이는 물론 병으로 인한 히스테리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둔함의 소치로 일종의 즐거움이거나 욕구일 수도 있다. 그는 처음엔 정색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직시하고 있다가 근엄함이 섞인 목소리로 훈계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치 병실 내의 질서와 공동체 의식 등을 감독하려고 파견된 사람처럼 행동하며, 모든 일에 참견을 했다. - P308

그는 귀가 얇아 남의 말에 곧장 솔깃했다. 이는 소박해서라기보다는 교제 수단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맞추려는 방편이었다. - P317

순간적으로 엄습해 왔던 상념을 성격에 따라 금방 잊어버리고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필요 이상의 열성을 가지고 주어진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마치 내부에서 그를 억압하고 짓누르는 무엇인가를 노동의 괴로움에 몰두함으로써 극복하려는 것 같았다. 이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창때의 나이로 넘치는 활력과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계절에 족쇄가 얼마나 무거울까! - P330

죄수들은 아이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실제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말>을 사는 듯한 기분과 살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 필의 말이 끌려오고 끌려서 나갔는데, 마침내 네 번째 말에 이르러 일은 종결되었다. - P351

어떠한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한 지향 없이는, 한 사람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목적과 희망을 잃은 사람은 슬픔으로 인해, 악인으로 변해 버린다……. 우리 모두에게 목적은 바로 자유이고 감옥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지금 나는 우리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분류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심지어 가장 교묘하고 추상적인 사상의 결론과 비교해 본다 하더라도, 현실은 끝없이 다양하기 때문에, 분명하고 큼직큼직하게 구별하기는 어렵다. 현실은 세분화를 지향한다. 그것이 어떠하든지 모두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자신의 고유한 인생이 있고, 그것은 획일적이고 공식적인 삶이 아니라 내면적이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인 것이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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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내 아들이여, 내 젊은 동지여.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당신은 그들이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사랑이란 먼 것입니다. 사랑이란 아픈 것입니다. 어두운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동지여. 당신은 그들의 배반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자존심을 다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부터 이천 년 전에, 신(神)의 아들조차도 그들에게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신의 아들조차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신의 사랑을 마다한 사람들이, 인간의 사랑을 마다한다고 당신은 노여워합니까? 당신은 신보다도 더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신의 아들은 모욕을 당하고도 이천 년이나 그들을 가만두었습니다. 당신은 한번 버림받았다고 대뜸 징벌론을 들고 나옵니까? 벗이여 사랑은 멀고 오랜 것입니다. 사랑은 어둡고 죄악에 찬 것입니다. 당신의 입술에 미움의 말을 담아서는 안 됩니다. 미움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도 썩히고 마는 독입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도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실패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미워한 탓인지도 모르지요. 비록 자유를 위한 증오였더라도, 당신은 고운 아가씨들을 너무 얕잡아봅니다. 끊임없이 구애하십시다. 신의 아들조차 실패했는데, 우리라고 대번 수지를 맞춘대서야 너무 꿀맛이지요. 피 흘리는 짝사랑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좋아서 하는 예술가지요. 그들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신에게로 이르는 딴 길이 없는 걸 어떡합니까? 그들이 싫대도 사랑해야 합니다. 젊은 동지여. 자 다시 한번 머리를 빗고 다시 한번 꽃다발을 챙깁시다. 이런 늙은이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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