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는 초중고뿐만 아니라 대학에서조차 아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어요. 2014년에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 근무하던 이혜정 교수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을 냈어요. 서울대에서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실증 연구를 해 보니, 교수가 수업 시간에 한 이야기를 토씨 하나도 안 빼먹고 필기해서 그대로 답안지에 써 내는 게 에이 플러스를 받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더래요. 이게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모습이라면 정말 우리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 P78

물론 우리나라에서 프랑스나 독일, 스웨덴을 이야기하면 조금 괴리감이 느껴지지요.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고요.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니까요. 그런데 이 두 나라에는 모두 대학 서열(랭킹)이 있어요. 미국의 『USA 투데이』 같은 언론에서는 아예 1년에 한 번씩 미국 대학 랭킹을 1등에서 100등까지 대서특필합니다. 그래도 한국만큼 대학 서열이 심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1등이 서울대라고 보잖아요. 하지만 미국은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엠아이티(MIT), 스탠퍼드, 캘리포니아 공대 등이 있어 분야별 1등이 다른 데다가 대학들 사이의 격차가 우리보다는 확실히 작아요. 또 사립대 등록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어지간한 중산층도 대학 랭킹에서 아예 사립대 명단을 지우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P88

이제부터 ‘대학 서열’이 ‘학벌’로 발전하게 된 메커니즘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그러다 보면 ‘정부’와 ‘민간’의 학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웬만한 장관, 차관, 검찰 총장 들이 대부분 ‘스카이’ 대학을 나왔습니다. 정부에 학벌이 존재하죠. 그런데 이것이 선배들이 후배들을 끌어 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걸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정부 내의 학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특히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은 아는데, 서울대 출신들은 후배들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정부의 학벌은 인위적인 작용보다 ‘제도’의 산물이에요. 특히 심한 대학 서열이 고시 제도와 겹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P89

사람이 가진 능력 중에 시험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부분적입니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들은 인간형 자체가 좀 남다르지요. 저는 농담 삼아 ‘시험형 인간’이라고 부르는데요, 인정 욕구와 성취욕이 강한 편이고 지능도 높은 편이고 약간 강박적 성향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사실 시험형 인간이었습니다. 이과여서 고시와는 좀 거리가 멀었습니다만. 하여튼 입시가 일종의 ‘필터’로 작용해서 ‘스카이’ 대학이 이런 시험형 인간들로 채워지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고시도 잘 보겠지요. 그래서 남들이 7급, 9급에서 시작할 때 5급에서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유리하지요. 좀 승진하다 보면 1, 2급이 보이겠고요. 자, 이 과정이 선배들이 끌어 준 덕인가요? 이 과정에 어떤 인위적 작용이 있나요? 없어요. 대학 서열화와 고시 제도가 겹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정부의 인재 풀이 명문대 출신들로 채워진 겁니다. - P92

여러분이 지금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제조업계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옛날이 아니라 지금요. 그러면 정부가 계속 ‘갑’일 것 같습니까? 이젠 기업이 정부에게 ‘그냥 방해나 하지 마.’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완전히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었죠. 정부가 갑, 기업이 을인 관계가 해체된 겁니다. 그러면 학벌 구조의 변화는 정부에서 일어나겠어요, 아니면 민간에서 일어나겠어요? 당연히 민간에서 일어납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스카이’ 출신이더라도 이들이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민간에서 학벌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거죠.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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